소설리스트

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94)화 (94/159)

#94

흠칫. 도유는 자기가 한 생각에 소스라치며 고개를 흔들었다.

“안 돼. 그런데 넌 어떻게 알았어?”

“마도서가 있는 곳에서 마법을 사용하면 안 된다는 정보는 이 녀석의 인맥이면 충분히 알아낼 수 있는 정보예요, 형.”

“…혹시 보안 등급이 있는 정보였어?”

“네. 임원급만 열람 가능한 정보에는 있거든요.”

칭찬해 달라는 듯 눈을 반짝이는 청신의 눈빛에 손이 저절로 움직였다. 손에 착착 부드럽게 감기는 머리카락을 대충 어루만져 주면서 도유는 착잡해졌다.

그런 보안 등급이 있는 정보를 일개 사원인 제게 알려 준 청신에게 고마워해야 할지, 이 임무를 시킨 임원인 유정현이 유량과 혈연관계임에도 알려 주지 않았단 사실에 씁쓸해야 할지 헷갈렸다.

그러나 곧 도유는 문득 떠오른 의문에 눈을 부릅떴다. 무심코 손에 힘이 들어간 까닭에 머리카락이 잡아당겨진 청신이 ‘아얏’ 하고 엄살을 부렸지만 무시했다.

“그러고 보니 넌 여기 어떻게 온 거야?”

분명 이 안으로 끌려들어 올 때도, 폐건물에 들어설 때도 청신의 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만약 그가 투영 마법을 사용했다면 도유가 보지 못했을 리 없었다.

당시의 상황을 떠올려 보던 도유는 또 다른 엄청난 현실을 깨닫고 숨을 들이켰다.

“아니, 이것보다…! 네 말대로라면 너도 마법을 못 쓴다는 거잖아?”

“네. 저도 못 쓰죠.”

“지금도, 못 쓰는 거지…?”

“그렇죠.”

생긋 웃는 얼굴이 그 어느 때보다 참 예뻐 보인다고 생각하며 도유는 주먹을 꽉 쥐었다.

“왜 왔어. 알면서 온 거잖아, 너.”

“그야 사랑하는 사람이 위험에 처했는데 어떻게 안 올 수가 있어요?”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마법사는 그냥 평범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 인간의 입에서 천연덕스럽게 나온 말에 도유는 기가 막혀 입만 벙긋거렸다.

자신들의 상황이 이따금 편의점에서 행사하는 원 플러스 원 행사 상품 꼴이 됐다는 사실을 이 녀석도 분명 알았을 것이다. 도유는 심호흡을 하며 거친 파도처럼 격렬하게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걱정 마세요, 도유 형. 제가 저 새끼처럼 지능이 없는 것도 아니고, 다 대비책이 있으니 여기에 온 것 아니겠어요?”

“역시 그렇지?”

도유의 눈이 희망으로 반짝였다.

“청신아, 그 대비책이 뭔지 알려 줄래?”

마도서 회수를 포기하고 결계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라도, 현재 가지고 있는 것들을 최대한 활용해야 했다.

청신은 기대감 어린 푸른 눈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석을 보듯 애정이 담뿍 담긴 눈빛으로 마주하며 진지하게 대답했다.

“사랑의 힘이요.”

진지하게 짖는 소리에 당황한 도유의 반응이 한 발짝 늦게 튀어나왔다.

“…뭐?”

“말 그대로예요, 도유 형. 형과 저의… 농담이에요.”

도유가 묵묵히 청신의 머리카락을 힘주어 잡아당기자 그가 바로 항복 선언을 했다.

“형, 아파요. 물론 저는 머리가 벗겨져도 예쁘고 잘생길 거예요. 그런데 일단 제 나이대의 보편적인 미의 기준은 얼굴과 몸매도 중요하지만 머리카락의 유무도 제법 비중을 차지하거든요? 도유 형. 혀엉….”

이번만큼은 엄살이 아니었는지 녹색 눈을 그렁거리며 도유의 손목을 붙잡는 청신의 모습은 굉장히 가엾고 애처로웠다.

그 모습에 금세 마음이 풀린 도유는 손에서 힘을 풀고 조심스럽게 청신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자세히 말해 줄 수는 없고, ‘마법’을 사용할 수는 있다고 대답할게요. 전 절대 도유 형을 위험에 처하게 하지 않아요.”

“…….”

청신이 강아지처럼 도유의 손바닥에 머리를 부비적거리고 있지만 않았어도 진지하고 믿음직스러워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마저 청신다워서 도유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알았어. 믿을게.”

“고마워요, 도유 형.”

고마운 건 나다. 도유는 당연한 대답을 하는 대신 청신을 끌어당겨 키스를 하려고 했다. 이번에야말로 실수하지 않고, 부드럽게.

그러나 뒤쪽에서 유량이 끙끙 앓는 소리에 움직임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도유의 손길에 기대를 품었던 청신은, 제 애인이 냉정할 정도로 저를 곧바로 놓고 유량 쪽으로 다가가는 걸 보며 아쉬움과 방해자를 향한 짜증에 혀를 찼다.

“헉-!”

비명과 같은 숨소리와 함께 유량이 눈을 떴다. 그는 악몽을 꾼 사람처럼 크게 가슴을 들썩이며 숨을 몰아쉬었다. 초점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눈을 본 도유가 그에게로 몸을 숙였다.

“유량 씨. 정신이 드십니까? 유량 씨?”

몇 번을 반복해서 부르자 서서히 숨이 가라앉고, 량의 눈에 초점이 맺히기 시작했다. 도유는 그가 정신을 차려 가는 걸 보고 묵묵히 기다렸다. 이윽고 그의 눈이 완전히 빛을 되찾고, 자신을 내려다보는 도유를 담아 냈다.

“서도유…?”

“네, 맞습니다. 정신이 드셨으면 몸 상태가 어떤지 말씀해 주십시오.”

유량은 아직 완전히 정신을 차린 건 아니었는지, 묵묵히 도유의 요구에 따라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다.

도유는 그의 움직임에서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있는지 면밀하게 관찰하며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이윽고 량이 누워 있던 바닥에서 몸을 일으켜며 말했다.

“문제없어. 그것보다 여긴 대체 어디야?”

량은 여전히 겁에 질려 있는 듯했다. 주변을 배회하는 시선에는 평소에 보았던 오만 대신 공포가 만연했다. 그러나 곧, 가만히 서서 이쪽을 응시하는 청신을 발견하고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가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저 사람은 누구야?”

‘아차.’

도유는 속으로 낭패했다. 생각해 보니 량은 청신의 맨얼굴을 몰랐다. 매번 반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다녔으니 당연했다.

그나마 특수부 제1팀의 제복을 입었다면 체형만 보고 자길 죽기 직전까지 몰아넣었던 신입이라는 걸 알아차렸을 것이다.

‘목소리로 알아차릴 텐데….’

이런 상황에서라면 상식적인 인간들은 분란의 소지를 아예 무시하는 암묵적인 합의를 할 테지만 상대는 량이다. 도유는 그가 굉장히 감정적이며 자기중심적이고 오만한 인간이란 걸 알았다.

“너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고민에 잠긴 도유의 귓가에 다시금 량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유는 화드득 놀라 량을 봤다. 량은 은은하게 웃고 있는 청신에게로 다가갔다.

도유는 그를 뜯어말리려고 했다. 남들이 보기에 상대방을 향한 호의와 선의가 가득한 청신의 웃음은, 실제로는 그 반대라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그러나 도유가 량을 부르기도 전에 발밑이 진동했다. 그들의 시선이 저절로 아래로 향했다.

“이, 이게 뭐야!!”

그들이 딛고 있는 땅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당장 무너질 것처럼 진동까지 하는 와중에 새까맸던 바닥이 설원보다 더 하얗게 물들기 시작했다.

불길할 정도로 완벽한 순백의 색에 도유가 곧바로 청신에게 달려가 그의 손을 잡음과 동시에 하늘 대신 허공을 가득 차지한 거울의 파편이 아래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무수히 많은 파편이 눈송이처럼 느릿하게 떨어져 내렸다. 도유는 청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를 품에 안으려고 하다가 멈췄다. 청신이 아주 당당하게 고개를 쳐들고 떨어져 내리는 파편을 올려다보고 있는 걸 보고 손을 뻗었다.

“야, 고개 숙여! 다쳐!”

“보세요, 도유 형.”

“보긴 뭘, …어?”

파편이 몸에 닿았다. 그러나 닿는 느낌도, 고통도 없었다. 그것들은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대로 통과해 새하얀 바닥에 스며들었다. 천천히. 스며든 파편은 점차 바닥을 저들의 색으로 물들여 가기 시작했다.

모래시계 같다고, 도유는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기도 잠시뿐이었다. 변화는 순식간에 일어났다. 심장이 요동치듯이 그들이 딛고 선 공간이 흔들렸다. 떨림을 눈치챔과 동시에 그들이 있던 공간이 바뀌었다.

“방…?”

“으, 으아아!”

량이 비명을 질렀다. 순식간에 눈앞에서 일어난 변화에 그는 서둘러 도유 쪽으로 다가왔다.

“유량 씨. 진정하십시오.”

“어떻게 내가 진정해! 미친 거 아니야? 나가야 해! 여기서 나가야 한다고!”

“잠시 살펴봅시다.”

“살펴볼 게 뭐가 있어!! 사방이 다 막혔는데!”

새하얀 벽. 새하얀 천장. 새하얀 바닥만 있는, 강당처럼 거대한 네모난 방. 기이한 것은 이 공간에는 그들만 존재할 뿐 문도, 창문도 없다는 것이다. 량의 말대로 그들은 사방이 막힌 방에 갇혀 있었다.

“일단…. 파괴가 되는지 한번 시도해 봅시다.”

도유는 벨트에 꽂아 둔 봉을 꺼내 들었다. 그때 청신이 도유의 손을 잡았다.

“바닥을 봐요.”

작지만 또렷한 목소리에 유량과 도유의 시선이 바닥을 향했다.

첨벙.

“…!”

“…물?”

발을 움직이자 잔물결이 일었다. 투명한 물이다. 그들은 잠시 말없이 제 발밑을 관찰하다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점점 차오르고 있어….”

량의 덜덜 떨리는 목소리가,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그의 말대로 어디서 나왔는지도 모를 물이 서서히 방 안에 차오르고 있었다.

찰팍!

채찍을 맞은 물이 튕기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그뿐, 아무런 변화도 생기지 않았다. 마법을 사용하면 죽을 수 있다는 경고를 받았기에 물리적인 힘으로 벽을 뚫어 보려던 유량은 어금니를 꽉 깨물며 다시 채찍을 고쳐 쥐었다.

이 공간을 벗어나기 위해 벽을 향해 채찍을 휘두르고, 상비한 공격형 아티팩트를 던지는 시도를 했다.

하지만 아티팩트는 던져도 발동하지 않고 고장 났으며, 채찍을 비롯해서 서도유에게 빌린 봉으로 후려쳐도 새하얀 벽에 흔적도 남길 수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