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92)화 (92/159)

#92

‘아. 보고 싶어요. 형, 너무 보고 싶어요.’

청신은 속으로 쉼 없이 속삭이며 조심스럽게 도유의 이마에, 머리카락에 입을 맞췄다.

어서 이 사랑스러운 사람이 눈을 뜨고 저를 봐 주길. 제 이름을 속삭여 주길 바라면서.

그간의 기다림이 너무나 길었기에 이제는 이 짧은 기다림조차 인내하기 어려웠다.

그 후 청신은 견디지 못하고 도유의 얼굴 곳곳에 입을 맞추고, 종내에는 가슴까지 입을 맞추다가 깨어난 도유의 반사적인 행동에 의해 한 대 얻어맞고 나서야 떨어졌다.

*

마도서 회수 임무 당일.

지시받은 시간이 되기 전, 함께 임무에 착수할 이름 모를 마법사를 기다리며 도유는 차에서 내렸다.

사람의 눈길도, CCTV도 없는 산길이라 사위에는 새소리와 벌레, 야생동물의 소리만 들릴 뿐 별 것 없었지만 도유는 한번 주변을 둘러본 뒤에야 움직였다.

그는 트렁크를 열고 공구함처럼 생긴 큰 상자를 열었다.

달칵하는 소리와 함께 상자가 열리며 안에 있던 것들이 드러났다.

온갖 크기의 나이프와 총, 석궁 따위부터 어디에 사용하는지도 알 수 없는 형태의 작은 물품들이 빈틈없이 놓여 있었다.

이번 임무에서는 제복이 아니라 사복을 입어야 해서 숨기거나 착용할 수 있는 곳이 마땅치 않았다.

도유는 숄더 홀스터를 몸에 단단히 고정시킨 뒤 상자에 있던 아티팩트 총을 빈 자리에 꽂아 넣었다.

탄환을 챙기며 순서를 외운 후 손목과 발목 등 옷으로 가려질 수 있는 부위들까지도 아티팩트를 알뜰하고 꼼꼼하게 챙겨 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청신이 봤다면 다람쥐가 도토리를 챙기는 모습 같다며 웃었을 테지만, 그는 이 자리에 없었다.

‘뒤에서 따라오려는 건가.’

오늘 임무를 나올 때까지 청신은 도유에게 아침 인사차 전화를 하며 사랑을 속삭였을 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따라오거나 하는 기색도 전혀 없었다. 언제나 느껴졌던 그의 사역마의 시선이 없었으니까. 도유는 가슴 주머니에 넣어 둔 배지를 꺼냈다.

성희유가 명목상 청신에게 주라고 했던 아티팩트였지만 실제론 도유에게 지니고 있으라 했던 배지였다. 이걸로 신호라도 주는 건가 싶어서 살펴봤지만 평범해 보이기까지 하는 모양새에 괜스레 울적해졌다.

‘아니야.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지.’

집중해야 했다. 감각을 최대한 벼려 내야 했다.

성화의 마도서가 있는 곳으로 추정되는 폐건물. 그 안에 들어가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몰랐다.

마도서와 관련된 임무는 처음 맡아 보지만 도유는 그동안 이 임무를 준비하며 현재 세간에 드러난 마도서가 발견됐을 당시의 자료들을 전부 찾아보았다.

그 덕에 도유는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됐다. 마도서 자체를 입수하는 상황에서 죽은 사람보다 마도서를 발견한 뒤 안전한 곳에 놓인 순간부터 많은 죽음이 생겨났다는 사실이었다.

마도서는 탐욕을 부른다.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일반인조차 마도서를 손에 넣으면 강한 마법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다. 특정 분야의 마법에 있어서는 신과 같은 영역을 누릴 수 있게 되니, 누가 욕심을 부리지 않을까?

‘없으면 좋겠다.’

도유는 진심으로 바랐다. 차라리 마도서가 없는 게 나았다.

성희유의 말대로 생존을 목적으로 할 것이고, 회수할 가능성도 지극히 낮았지만 만에 하나라도 도유 자신이 발견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그 이후가 걱정되고 신경 쓰였다.

그걸 임원에게 전달해 주는 것으로 분란의 씨앗이 발아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바스락, 바스락.

수풀을 헤치는 소리. 이쪽으로 다가오는 인기척은 분명 사람의 것이었기에, 경계하며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쳤다.

“…….”

“이런 씨X.”

눈이 마주치고, 서로 얼굴을 알아보자마자 도유는 입을 다물었고 상대방은 걸쭉한 욕을 내뱉었다.

그걸 들은 순간 도유는 그에게 확인해 볼 것도 없이 임원이 개인 임무를 위해 붙여 준 마법사가 저자라는 걸 알고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그러나 얼굴 위로 불쾌감이나 적의를 드러내진 않았다. 그저 평소처럼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유량 씨.”

“왜 하필 서도유야!”

빽 하고 소리를 친 유량이 도유를 노려봤다.

흉흉한 적의를 마주한 도유는 입을 꾹 다물었다. 도유야말로 억울했다. 그 많고 많은 마법사 중에 왜 하필 유량이란 말인가.

임원과 무슨 모종의 관계라도 있는 건가, 생각하다가 도유는 곧 유량의 뒷배인 임원이 이번 임무를 내린 인물이란 사실을 깨닫고 기함했다.

물론 얼굴 밖으론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위험도가 있는 일이기에 오히려 유량을 투입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큰 오해였다.

아니면 도유가 마도서를 빼돌릴 것을 염려한 걸까. 어느 쪽이든 짜증이 났기에, 도유는 생각을 길게 이어가지 않았다.

“잘 부탁드립니다.”

“너. 서도유. 미리 말하는데, 내 발목이나 붙잡지 마라.”

당신이야말로 내 발목이나 붙잡지 말라고, 목 아래까지 그 말이 올라왔으나 도유는 고개만 얌전히 끄덕였다.

이미 훈련장에서 그 사달을 겪고도 이렇게 고개가 뻣뻣하고 자기중심적인 유량에게 어떤 말을 한다 한들 제대로 들어주지 않을 것임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아직 임무 시작 시간까진 시간적 여유가 있습니다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헛소리 말고 당장 시작해.”

그럴 줄 알았다. 도유는 고개만 까딱이고는 폐건물이 있을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뒤따라오는 게 짜증이 났는지 유량이 도유를 제치고 앞장서서 걷는 모습에 저절로 한숨이 나오려고 했지만 속으로 삼켜 내며 묵묵히 그의 뒤를 따랐다.

*

산 중턱에 있는 폐건물은 어떤 목적으로 지어졌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시간의 흐름을 그대로 맞은 모양새였다.

건물 속으로 파고든 나무뿌리. 이름 모를 넝쿨이 건물을 휘감고 휑하게 뚫린 창문 안으로 이따금 새들이 드나드는 게 보였다.

도유는 건물을 올려다보다가 유량이 당장 욕이라도 쏟을 것 같은 얼굴로 저를 뒤돌아보자 걸음을 재촉했다.

‘특별하게 이상한 점은 없다.’

이곳도 그간 봐 왔던 곳처럼 마력의 흐름도 색도 모두 정상이었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었다.

천화 마을 때도 석주언은 아주 오래전에 방공호로 사용되었던 지하를 개조해서 자신의 왕국을 만들고 사람들의 목숨을 유린했기에, 이 건물의 지하도 그럴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했다.

유량이 먼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도유는 아직까지도 아무런 신호도, 연락도 없는 청신이 뒤따라오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잠시 뒤돌아봤다. 역시나 아무도 없다. 그들이 지나온 흔적도 남지 않았다.

‘이러면 안 되겠지.’

청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오는 것일지도 모르고, 들키면 안 되기 때문에 티를 내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런 식으로 계속 주변을 살피는 제 행동은 유량이 의심을 품는 여지만 줄 뿐이다.

결론을 내린 도유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려 유량을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도유는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홀로 걸어가던 량이 도유를 보며 의아해했다. 그러나 도유는 제 눈에 보이는 믿어지지 않는 풍경에 압도되어 움직일 수 없었다.

빨려 들어간다.

언젠가 거대한 호수 한가운데 나타난 싱크홀로, 물이 빨려 들어가던 동영상을 본 적이 있었다. 지금 도유의 눈에 비치는 마력의 흐름이 그러했다.

건물 내부에 들어오는 자연에 머무는 마력이 소나기가 땅에 스며드는 것보다 더 빠르고 격렬하게 요동치며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단 한 번도 이러한 현상을 본 적 없는 도유는 새하얗게 질린 채, 그것을 보다가 고개를 휙휙 움직여 주변을 둘러봤다. 그저 평범한 폐건물. 물리적으로 눈에 띄는 현상은 없다.

“야, 왜 그래?”

“유량 씨.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느껴지긴 뭐가 느껴진다는 거야?”

“탐지 마법으로 지하를 탐색해 주십시오.”

“나한테 명령, 됐다.”

도유의 표정이나 어조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 챈 량이 탐지 마법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도유는 그 결과를 기다리며 다시금 바닥 아래로 빨려 들어가는 마력의 흐름을 보았다.

이상했다. 동시에 두려웠다.

이렇게 많은 마력이 바닥에 빨려 들어가고 있는데, 지금 당장 눈에 띄는 현상은 없다. 물은 흐른다. 자연의 마력도 공기처럼 떠다니며 흐르고 섞인다. 하지만 이 마력들은 어디로 빨려 들어가는지 알 수가 없다.

도유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만약에 이 마력들이 지하에 있는 마도서에 빨려 들어가고 있는 거라면 어떨까.

아니면 마도서가 있는 어딘가에 퇴적층처럼 쌓인다면? 가정을 하면서도 머릿속의 상식은 도유의 의심을 부정했다. 그건 불가능할뿐더러, 설령 그렇다 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자연계의 마력은 마법사가 마법을 사용하면 남는 흔적과는 다르다. 아무리 많이 모여 있어도 폭발하거나 하지 않는다.

“딱히 탐색되는 건 없는데? 뭔가 보이나 봐?”

비꼬는 기색이 역력한 말투. 도유는 욱하는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주변을 떠도는 마력들이 이 아래로 빨려 들어가고 있습니다. 원래 자연계에 머무는 마력은 이렇게 한곳으로 흘러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알아. 너 지금 나 무시하냐? 일단 내려가 보자고.”

량은 도유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들은 곧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발견하고 그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