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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90)화 (90/159)

#90

사무실에 둘밖에 없고 지금 성희유는 회의를 위해 자리를 비운 상태라 이곳에서 해도 됐지만 언제 어느 때 사람이 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청신이 깨달은 표정으로 냉큼 의자에서 일어났다.

나란히 손을 잡고 개인 사무실이 있는 방향으로 몸을 튼 순간, 도유는 문 앞에 서 있던 이와 눈이 딱 마주쳤다.

툭.

상대방이 입에 물고 있던 팩 와인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내용물이 사무실 바닥으로 사정없이 흘러내리는 걸 봤지만 도유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알고 계셨던 거 아니에요, 도유 형?”

너무 당황한 나머지 석상처럼 굳어 버린 도유의 곁에서 여유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만큼은 때려 주고 싶을 정도로 능글맞은 질문이었다.

“너, 너, 너희.”

같은 특수부 제1팀의 팀원인 화영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청신을 보았다가, 도유를 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세 번이나 둘을 번갈아 본 뒤에 마지막으로 꼭 붙잡고 있는 손으로 떨어졌다. 시선이 올라와 도유와 눈이 마주쳤다.

“너희, 사귀냐?”

“네. 제가 도유 형 애인이에요.”

“와씨.”

이상한 탄성과 동시에 화영이 몸을 돌려 사무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도유의 시선이 저절로 청신을 향했다.

“말하면 안 되는 거였어요?”

미인이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한다.

가면에 가려진 눈이 지금쯤 알이 굵은 알밤처럼 동그랗게 떠졌을 것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다. 도유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이청신은 안 된다고 하면 ‘어쩔 수 없네요’ 하면서 카단 본부 로비에서 장미 100송이가 든 꽃다발을 주며 발도 못 빼게 확인 사살을 할 인간이라는 걸 잘 알고 있는 도유다.

“잘했어.”

여기서 ‘말하면 안 되는 거였다.’라고 말하거나, 따지거나 하는 것보다는 긍정이 가장 현명하고 후환이 없는 올바른 선택지였다.

“그럼 상으로 여기에도 넣을 수 있게 해 줘요.”

다른 손으로 도유의 엉덩이를, 명확하게는 그사이를 손끝으로 슬쩍 누른다. 도유는 그 손을 냉정하게 떨쳐 내고 화영이 사라지기 전 남긴, 아니 바닥에 떨군 팩 와인을 내려다봤다.

“저거 내가 치워야겠-.”

“야야야!”

우렁찬 부름과 함께 화영이 돌아왔다. 그녀는 팩 와인이 묶음으로 든 상자를 빠듯할 정도로 한가득 안고 있었다. 성희유가 집으로 가지고 가라고 했던 걸 기어코 가져온 것은 그녀답지만, 갑자기 왜 저러는 걸까.

“축하한다, 서도유! 야! 너 숙맥인 줄 알았는데! 이건 축하주야! 축하해! 너, 누군진 모르겠지만 너도 축하한다!”

“아하. 고마워요.”

“난 화영 누나라고 불러도 돼! 와, 서도유. 내가 마음 같아선 폭죽 사 오려고 했는데 내가 반입하면 테러라 그건 안 되겠더라!”

얼어붙은 도유와 다르게 청신은 느긋하게 그녀가 건낸 팩 와인 묶음을 챙겨 도유의 자리에 내려놓는 여유를 보이고는 생긋 입꼬리를 올렸다.

“당분간 특수부 제1팀의 예비 신입으로 일하게 됐으니 잘 부탁드려요, 화영 누나.”

“크. 그래, 반가워!”

“…….”

도유는 밀려오는 두통에 머리를 감싸 쥐었다. 성가셔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

도유의 예감은 들어맞았다.

[축하해.]

임무와 관련된 일이 아니면 좀처럼 먼저 연락하는 법이 없는 백휘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화영이 청신과 도유의 교제를 알게 된 지 반나절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벌써 소문이….”

“응? 무슨 소문이요?”

청신이 도유의 옆에 딱 붙어 앉으며 한 팔로 그를 끌어안았다.

방금 막 씻고 나온 탓에 그가 사용한 나무와 풀잎이 은은하게 섞인 향이 도유의 코에 기분 좋게 스몄다.

그 덕분에 슬며시 일던 두통이 가라앉는 걸 느낀 도유는 저항 없이 청신에게 몸을 기울여 안겼다.

“아까 사무실에서 화영 씨에게 네가 내 애인이라고 했잖아. 우리 팀에 벌써 소문이 다 돌았어….”

도유의 목소리가 축 처졌다.

특수부 제1팀은 개인 성향이 강한 팀이다. 사적인 관계가 섞일 틈이 없이 쏟아져 오는 임무에 외근을 나가 있는 팀원이 대부분이고, 설령 사무실에 2인 이상 모이게 된다 해도 회식은커녕 말도 잘 섞지 않는다.

하지만 화영은 달랐다. 그녀는 제1팀에서 유일하게 가장 사교적인 행위를 하는 사람이었다. 문자든 전화든 한바탕 연락을 돌렸을 것이다.

백휘가 알게 된 게 그 증거였다. 백휘는 화영과 사이가 그리 원만하지 않으니까.

“연백휘라면 천화 마을에 갔을 때 도유 형과 함께 움직인 마법사네요.”

도유가 든 핸드폰을 멋대로 손으로 톡톡 쳐서 발신인을 확인한 청신이, 돌연 도유의 목에 입술을 묻었다. 그러고는 슬쩍 눈치를 보더니 잘근잘근 목을 깨물기 시작했다.

“하지 마.”

네가 개야? 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올 뻔했으나, 그렇게 말한 순간 진짜 개가 뭔지 보여 주겠다며 예쁘게 눈웃음을 치고 소파에 눕힐 것 같았다.

“응? 뭘요?”

목을 깨물고, 핥는다. 점점 그의 입이 올라와 도유의 귓바퀴에 닿았다. 말캉하고 축축한 혀가 귀에 닿는 감촉과 적나라한 소리에 도유가 몸을 움츠리자, 청신이 다른 손을 도유의 허벅지 위에 올렸다.

“하지 말라니까.”

“이 이상 하면 어떻게 할 건데요?”

“으음….”

막상 물으니 고민됐다. 청신을 범죄자들처럼 폭력으로 제압하는 건 아예 고민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 제게 애정을 쏟고 사랑받기 위해 매일같이 노력하는 사람에게 그런 야만적인 짓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도유는 잠시 고민하다가, 슬쩍 청신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이름 안 부를 거야.”

“……!”

청신의 움직임이 모두 멈췄다. 크게 충격을 받은 미인의 얼굴에 도유의 마음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도유가 황급히 덧붙였다.

“일주일 동안만.”

“일주일이나요…?”

여전히 충격받은 표정에 도유는 재빨리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럼 나흘, 아니 사흘… 알았어, 하루!”

“기한이 어떻든, 도유 형이 불러 주지 않는 제 이름은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가지지 못해요. 그런데도 하루씩이나… 저를 부르지 않겠다고요?”

청신의 몸이 도유에게로 완전히 기울었다.

당장 눈물이라도 쏟을 것 같은 녹색 눈은 사람의 마음을 폭풍에 휘말린 나무처럼 흔들리게 만드는, 아련한 슬픔을 가진 것처럼 보여 마음이 약해졌다.

그러나 와중에 도유는 이런 생각이 들어서 좀 착잡해졌다.

‘그 이름, 분명 네 부모님이 주신 걸 텐데…. 지금 네 발언을 부모님이 들으면 슬퍼하시지 않을까?’

자기 때문에 불효의 발언을 막힘 없이 하는 청신에게 그 점을 지적해야 할지, 아니면 이 순간에도 끈덕지게 제 허벅지를 만지는 척 그곳을 자극하는 손부터 잡아채야 할지 잠깐 망설였다.

“도유 혀엉.”

“읏, 알았어. 어쨌든 손 떼.”

“오늘 키스해 주고 싶다고 하면서 결국 안 해 줬잖아요.”

당연하지 않은가. 화영이 축하니 뭐니 하면서 팩 와인을 잔뜩 준 뒤로 계속 말을 거는 바람에 퇴근까지 이야기 - 연애사 - 를 나눠야 했다.

도중에 성희유가 왔다면 그나마 짬이라도 났을 텐데, 회의가 길어지는 건지 그는 퇴근할 때까지도 돌아오지 않았기에 화영과의 대화를 끊을 틈이 없었다.

하지만 도유는 조금, 아니 굉장히 억울했다.

“…청신아, 우리 여기 오자마자 했던 것 같은데.”

명확하게는 청신이 도유를 덮쳤다.

본부에서 함께 퇴근하고, 저녁을 만들어 주고 싶다면서 청신은 자연스럽게 도유를 납치했다.

‘딱 ‘식사’만 하고 바로 갈 거야.’

도유는 청신의 집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엄포를 놓았고, 그때 청신도 고개를 끄덕였었다. 하지만 그는 집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곧바로 도유를 붙들고 키스를 퍼부었었다.

“그건 제가 도유 형에게 한 거잖아요?”

즉 아직 도유가 청신에게 해 주지 않았으니 빨리 해 달라는 거다.

“맞는 말이긴 한데.”

“도유 형은 저랑 키스하는 거 싫어요? 아닐 텐데.”

청신의 손이 도유의 몸을 더듬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 손길을 떨쳐 내기도 전에 미인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다. 숨결이 닿는 거리만큼 가까이.

입을 맞출 거란 생각에 무심코 눈을 감으려던 도유는 유독 저를 빤히 보는 시선에 눈도 감지 못한 채 그를 마주해야 했다.

“키스할 때마다 흥분해서 바들바들 떨잖아요. 토끼처럼.”

슥. 지그시 가슴께를 누르는 뜨거운 손바닥에 도유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의 말이 맞았다. 키스에 서툰 도유와 달리 청신은 굉장히 능숙했으니까. 억울한 마음에 도유가 따졌다.

“넌 능숙하잖아. 난 네가 처음이라고.”

여유롭게 머물던 웃음이 살며시 가셨다.

“제가 처음이라고요? 키스? 아니면, 제가 첫 연인이라는 뜻인가요?”

“…둘 다.”

머뭇거리며 내뱉은 대답에 노골적으로 놀라는 청신의 표정을 가까이서 본 도유는 입을 꾹 다물었다.

청신과 만나기 전까지는 사람과 접촉하는 걸 꺼렸던 탓에 연애는 한 번도 못 했던 도유다.

사적인 시간을 누릴 때, 특수부가 아닌 서도유에게 호감을 드러낸 사람이나 대놓고 사귀자고 했던 사람들은 제법 있었지만 도유는 전부 거절했다.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그리고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이 강렬해지고, 그에 타인과 사귀자고 다짐하는 순간 머릿속에 각인된 것처럼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 사람이 아니다.’

꼭 다른 사람이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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