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89)화 (89/159)

#89

*

다음 날 아침, 도유는 출근하자마자 성희유에게 인사하러 갈 틈도 없이 임원실에 불려 가 ‘개인 임무’를 받았다.

임원실에서 나와 사무실로 돌아온 도유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팀장님 말씀대로네.’

아니, 성희유의 말을 듣고 각오했던 것보다 상황이 나빴다. 투입 인원은 도유를 포함한 고작 2명이었다.

도유는 착잡한 마음으로 자리에 앉아 무의미하게 마우스를 움직이며 생각에 잠겼다.

명령을 내린 건 이사 중에서도 가장 까다롭고 끈질기기로 유명한 유정현 이사였다.

거부권은 없었고, 인력을 더 달라는 말도 못 했다. 개죽음이 될 걸 알고 있다고 해도.

하지만 도유는 자신이 이번 임무로 죽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도유와 계약을 맺은 정령의 힘을 믿는 게 아니라, 성희유를 믿었기 때문이었다.

‘도유 씨. 저는 제가 아끼는 부하를 그딴 늙은이의 사리사욕에 희생시킬 생각 따윈 없어요.’

성희유는 빈말을 하지 않는다. 그는 그의 말대로 부하를 아꼈다.

지금까지의 지난한 시간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기에 도유는 그를 믿었다.

그는 도유가 외딴곳에서 무의미한 죽음을 맞지 않게 해 줄 사람이었다.

“하아….”

그 점에 대해서는 안도가 되지만, 아무래도 일주일 뒤 제 발로 마도서를 지키기 위해 한 마법사가 만들어 놨을 장소에 초면일 사람과 가야 한다는 사실만큼은 좀 우울했기에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도유 형.”

“왔구나.”

“무슨 일 있어요? 이렇게 섹시하게 한숨만 푹푹 쉬면 걱정되잖아요. 한숨 쉴 거면 침대 위에서 제 밑에 깔려서 해 주세요.”

“…….”

아무리 들어 봐도 농담이 아니다. 도유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제 옆에 앉는 청신을 물끄러미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무의미하게 마우스 클릭만 했더니 엉뚱한 곳을 눌러 버렸다. 도유의 시선을 따라 자연히 그의 모니터를 함께 들여다보게 된 청신이 화면을 보고 눈을 깜빡였다.

“놀이동산 가고 싶어요?”

하필 잘못 누른 게 이번에 개장했다는 놀이동산 기사다.

매일 아침 근무 시간이 시작되기 전에 뉴스를 보는 도유의 습관을 알고 있는 청신은 도유가 대답을 망설이자 마우스를 쥔 도유의 손에 제 손을 올렸다.

“제가 눈치가 없었네요. 생각해 보니 우리가 데이트다운 데이트는 못 했던 것 같아요. 그렇죠?”

천연덕스러운 말에 도유는 눈을 가늘게 떴다.

사귀기 전에도 틈만 나면 데이트해요, 사랑해요, 좋아해요, 같은 말을 하면서 엉겨 붙던 청신이 저리 말하니 뻔뻔해 보였지만 동시에 조금 귀여웠다.

도유가 주변을 한번 싹 훑고는 손을 올려 청신의 뺨을 꼬집으려다가 목적지를 바꿔 귀를 잡아당겼다.

“지금까지 데이트하자면서 같이 이곳저곳 다녔던 건 다 잊었나 봐?”

“잊어버리긴요. 지금 당장 어디 어디 갔는지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소상하게 기억하고 있어요. 하지만 도유 형, 우리 ‘평범한 코스’는 못 가 봤잖아요.”

“…맞는 말이긴 하네.”

도유가 책에서 보았던 연인들은 함께 놀이동산에 가거나 손잡고 공원을 걷거나, 로맨스 영화를 보는 등의 평화로운 행동을 했다.

그러나 도유가 청신에게 마음을 준 뒤로는 둘 다 일이 바빠 영화를 보지 못했으며, 같이 시간을 보낸 건 사건 현장이 대부분이었다.

최근에는 어떤가. 한 달간 마지막 날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훈련소의 규칙에 맞춰 보냈다.

도유는 청신을 물끄러미 보았다. 이번만큼은 청신의 반가면을 벗기고 얼굴을 보고 싶었다.

“제가 좀 이쁘죠?”

“그래, 너 예쁘다.”

“형…!”

“그러니까 가만히 좀 있어 봐.”

“네! 가면 벗을게요.”

“그건 안 되고.”

단칼에 거절하니 청신이 입꼬리를 내린다. 그게 괜히 귀여워서 잡고 있던 귓불을 만지작거리자 간지러운지 그가 몸을 움츠린다.

도유는 청신을 빤히 보다가, 일주일 뒤 벌어질 일들을 떠올리고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그 임무에 참여했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청신이 제가 다친 것처럼 마음 아파할 게 뻔해서 우울해졌다.

아니, 우울해하기만 하면 차라리 나을지도 모른다. 도유가 아는 청신은 그 원인을 제 손으로 없애버리거나, 처리하려 들 것이다.

도유는 저를 안았을 때 제게 향하던 청신의 조심스러운 손길을 기억했다. 처음으로 관계를 맺었을 때 청신은 도유의 몸 곳곳에 입을 맞췄었다.

그건 연인보다는 제가 감히 넘보지 못할 것을 탐하고 품게 된 독실한 신자처럼 정중하고 깊은 입맞춤이었다.

그런데도 잠깐도 눈을 떼지 않고 온전히 도유만을 보던 녹색 눈은 사랑에 푹 빠진 이의 눈이라서, 도유는 청신의 애정을 의심할 수 없었다.

‘드디어, 도유 형을 가졌어요. 제가 도유 형을, 도유 형이 저를 가졌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형.’

그리고 청신은 끝에 가서 도유를 꼭 껴안으며 소리 없이 울음을 터트렸다.

그 속삭임을 들었을 때, 도유는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청신과의 첫 만남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정령의 공격적인 반응도, 그가 들고 있던 상자를 보고 했던 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정령의 적의는 청신이 아니라 그 상자 안에 있던 무엇인가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나니, 도유는 조금씩이나마 청신에게 애정을 보일 수 있게 되었다.

“읏….”

미인의 신음에 도유가 화들짝 놀라며 그를 보았다.

흥분과 기쁨의 희열에 들뜬 미성과 아름다운 미소를 떠올리다가 무심코 손에 힘을 줬다고 생각한 도유가 황급히 사과했다.

“미안해, 청신아. 생각 없이 만지다가…. 많이 아팠어?”

“도유 형….”

“응, 좀 보자.”

발갛게 되어 있을까. 손톱에 꼬집히기라도 한 게 아닐까 걱정하며 청신 쪽으로 도유가 몸을 기울인 순간 청신이 도유의 귓가에 입술을 붙여 왔다. 뜨겁고 거친 숨소리. 그에 도유가 어리둥절해하는 틈에 청신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렇게 야한 손길로 만지면 흥분되잖아요….”

“놔라, 이청신.”

어깨를 잡은 손을 먼지 털어 내듯 툭 털어 내며 청신과 거리를 두니 청신이 아쉬워하면서도 웃음을 터트렸다.

“아, 귀여워요. 형. 저 아팠을까 봐 걱정 많이 했어요?”

“당연하지…!”

청신이 도유를 아껴 주는 것만큼은 아니었지만 도유도 그를 아꼈다.

그가 아파하면 걱정되고, 그 원인이 저라면 죄책감에 어쩔 줄 몰랐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 청신은 아카데미에서 일정을 마치고 도유를 보기 위해 불필요한 출근까지 한 상태였기에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기뻐요, 형. 저도 형 걱정 많이 하는 거 알죠?”

“알아.”

그렇게 티 내는데 모르면 바보였다. 도유는 괜한 심술에 청신의 머리카락을 살짝 잡아당겼다.

“그렇죠? 형이 다치거나 아프면 저는 많이 슬프고, 마음이 아파서 앓아누울지도 몰라요.”

도유는 성희유가 말했던, 그가 준비해 둔 ‘수’가 청신이라는 걸 알아차리고 멈칫했다. 청신에게 주라던 배지를 지니고 있으란 말을 듣고 이미 반쯤은 눈치챘지만 지금 그가 하는 말을 듣고 확신했다. 도유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넌 그럴 것 같다.”

“형이 많이 다치면 제가 어떻게 될지, 한 번 맞춰 볼래요?”

앓다가 죽지 않을까.

마음이 아파서 앓아눕는다 했으니 청신은 정말 그것만으로도 죽을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과거 과학 신문에서 봤던 실험이 하나 떠오른 도유가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릇에 양파를 각각 하나씩 물에 넣어 놓고, 한쪽에는 욕을, 한쪽에는 칭찬만 매일같이 속삭여 준 실험 결과를. 그 결과에서 욕만 먹은 양파는 죽었다고 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욕만 먹든 칭찬만 받았든 양파의 생존력에 따라 결과가 달라졌을 뿐이라고 했지.’

어린 시절 마법보다 과학이, 특히 마음의 힘에 대해 끌렸던 때 그 글을 읽고 얼마나 어이가 없었는지 지금도 떠올랐다.

“지금 다른 생각 했죠.”

도유의 생각이 다른 방향으로 튀어 나간 것을 귀신같이 눈치챈 청신이 부루퉁한 얼굴로 말하며 도유의 뺨을 검지로 찌르다가 만지작거린다.

“…응, 미안.”

“미안한 거 알면 됐어요. 대답은요?”

“너라면 앓다가…… 쓰, 아니 많이 힘들어할 것 같아.”

농담이라도 ‘죽는다’는 말이든, ‘쓰러진다’는 말이든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그대로 이루어질까 봐 겁에 질린 도유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도유는 의아한 얼굴로 청신을 보았다.

어째서 이 녀석은 감동한 얼굴로 뺨을 붉히는 걸까. 도유가 뜨뜻미지근한 시선으로 쳐다보든 말든, 청신은 도유의 손을 쥐고 주물럭거리며 말했다.

“사랑에 빠지면 상대방이 여린 꽃처럼 느껴진다더니 정말인가 봐요. 도유 형이 저를 이렇게 연약하게 봐주니 너무 기뻐서 설레고 흥분할 것 같아요.”

후자는 듣지 못한 척했다.

“감금할 거예요.”

“어?”

“도유 형이 내가 없는 곳에서 많이 다치면 감금할 거예요. 아무도 없는 곳에, 나만 갈 수 있는 곳에.”

손등에 입을 맞추는 입술이 유독 부드럽다.

청신은 전에도 도유에게 감금에 대해 말한 적이 있었다. 그렇기에 도유는 자해를 하면 사지를 묶어서 감금해 버릴 거라고 했던 때와 지금 그의 눈빛이 그때와 전혀 다르지 않다는 걸 알았다.

도유는 손을 들어 청신의 뺨을 감쌌다가 손을 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유 형?”

“내 개인 사무실로 들어가자.”

“…혼내도 번복하지는 않을,”

“그게 아니라. 키스하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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