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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82)화 (82/159)

#82

얼굴을 노린 창날을 고개를 움직여 피하던 도유는 량이 찬 손목시계를 보고 흠칫했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 지난 거지?’

분명 자신의 손목시계로 시간을 봤을 때는 넉넉했다. 하지만 량의 시계는 도유가 봤던 시간보다 더 미래를 찍고 있었다.

도유는 량의 손목을 턱 잡아챘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량이 흠칫하는 사이, 재빨리 반대편 손에 찬 제 시계를 본 도유가 아, 하고 짧은 신음을 흘렸다.

‘고장 났잖아…!’

절망하기도 잠시 량이 발을 날리며 붙잡힌 제 손을 흔들었다.

“이거, 놔!”

“아. 죄송합니다.”

“으윽!!”

쥐고 있던 량의 손목을 비틀어 던지려다가, 날아오는 그의 발에 놀란 도유가 량이 놓친 창의 손잡이 부분으로 그의 다리를 있는 힘껏 찍어 버렸다.

도유는 제가 아픈 표정이 되었다.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시간에 놀라고, 발길질에 놀라 강하게 대응해 버렸다.

“유량 씨!!”

“저게 량 씨에게 감히!”

이쯤 되니 도유는 제가 악당이 된 기분이었지만, 일단 그들에게 말을 건네 보았다.

“임무 제한 시간까지 약 15분 남았습니다. 불필요한 싸움은 관두고 목적지에 함께 가시지 않겠습니까?”

여기서 목적지까지 빨리 가면 5분이고, 목표물을 회수해서 걸어가면 10분이 넘을 터였다. 마법사가 셋이나 있으니 아래로 둥둥 떠서 가면 이르게 도착할지 모른다.

“우리 목적은 당신입니다!”

“눈에 거슬렸다고요! 맨날 량 씨에게 시비 걸고 건방지게 눈 뜨고 다니고. 비마법사 주제에 기세등등하게 카단에 있지 말란 말이야!”

“맞아, 살인자 주제에 그냥 사형당할 것이지. 분위기 흐리게 만들지 말라고!”

누구는 좋아서 카단에 있는 줄 아나. 특수부 제1팀 소속들의 사정을 알면서 저리 말하니 조금 상처받았다.

량은 통증에 아무 말도 못 하다가, 도유의 시선을 받자마자 으르렁거렸다. 도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이라도 협력할 의지가 없으시군요.”

“남자한테 몸 파는 더러운 새끼에게 협력할 필요가 있나?”

도유가 멈칫했다.

“유량 씨. 뭐라고 하셨습니까.”

방금 전과는 다른, 서늘한 도유의 목소리에 유량을 제외한 이들이 흠칫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량은 하, 하고 그를 대놓고 비웃으며 대답했다.

“네가 이번에 1팀에 들어온 신입, 이청신이랬나? 그 인간한테 알랑거리는 거 다 봤거든. 이제는 걜 방패로 삼아서 살아남을 속셈이잖아. 그렇게 남자한테 다리 벌리고 살면 좋아? 그 녀석도 너와 수준이 비슷-.”

퍼억!

도유를 제외한 이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다. 량 또한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다. 그들이 상황을 파악한 건, 량의 목 아래로 흘러나온 옅은 숨소리를 들었을 때였다.

“유량 씨!!”

소리도 없이 도유의 발밑에서부터 이어진 새하얀 얼음이 마치 손처럼 량의 목을 틀어쥐고 있었다.

얼음이 흐른 듯한 자리부터 량의 몸이 새하얗게 얼어붙는 걸 본 이들이 마법을 사용하려고 했지만 도유가 그들보다 빨랐다.

언제 꺼내 들었는지도 모르는 총을 량을 향해 가려던 마법 지원부 소속의 조원, 박희성을 향해 쏜 도유는 그가 결계로 막아 내자마자 한 번 더 총을 쐈다.

그가 비웃으며 도유를 막아 낸 순간, 박희성은 바닥으로 추락하여 그대로 땅에 처박혔다.

그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움직이려다가 하반신에서 느껴지는 끔찍한 고통에 고개를 숙인 박희성은 입을 떡 벌렸다.

량과 마찬가지로 하반신이 얼음에 둘러싸인 것이다. 마법으로 없애려고 했지만 마법을 사용할 수 없었다.

“어? 뭐, 뭐야! 왜 마법이 안 써져?!”

“둘.”

나직하게 중얼거린 도유의 목소리와 함께, 그가 다시 움직였다. 박희성이 당하는 걸 목격한 강이환은 제게 접근해 오는 도유를 보고 곧바로 거리를 두면서 마법을 사용했다.

도유는 감정이 배제된 사람처럼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무표정한 얼굴로 총을 쐈다. 직접 마법으로 막아 내는 대신 제 몸의 속도를 가속화해 피해 낸 강이환이 공격 마법을 시전하려던 때였다.

“으아악!!”

분명 피해 냈다. 피해 낸 순간 허공에 떠 있던 그의 몸이 땅바닥에 곤두박질쳤다. 육신에 가해진 충격에 반사적으로 몸을 웅크렸던 그는 뒤늦게 도유가 저를 주시하고 있었다는 걸 기억하고 고개를 들었다가 제 이마를 겨눈 총구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

“가만히.”

사무적인 어조로 도유가 말하자마자, 상황을 주시하던 결계부의 이화정이 결계 마법을 사용했다. 도유와 강이환의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결계. 도유는 총을 쐈다.

총탄이 결계에 막혔다. 강이환이 식은땀을 흘리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딴 총탄 따위가 마법으로 만든 결계를 부술 수-.”

탕! 쩌저적.

강이환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결계에 금이 갔다. 도유가 말했다.

“지금 남은 탄환은 마법이 담긴 아티팩트입니다. 결계를 부수고도 남습니다. 항복하시겠습니까.”

강이환은 눈을 흘겼다. 도유가 아니라 이화정이다. 그녀가 입술을 깨물며 도유를 향해 공격 마법을 사용했다.

도유는 자신을 향한 물줄기를 가만히 보았다. 쩡! 하는 소리와 함께, 물줄기가 허공에서 얼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힉…!”

그 시작점에 서 있던 이화정의 목 바로 아래에는, 얼어붙은 물줄기로부터 솟구쳐 오른 날카로운 얼음 고드름이 있었다.

강이환은 이를 갈며 말했다.

“…가만히 있을 테니 쏘지 마.”

“그럼.”

도유가 주머니에서 다른 아티팩트를 꺼내 강이환에게 던지자, 그의 몸에 닿은 아티팩트에서 수십 개의 줄이 튀어나와 그의 몸을 옭아맸다. 마법사를 제압할 때 사용하는 구속구란 걸 알아차린 강이환이 이를 가는 순간이었다.

“왜, 왜, 안 치워?”

여전히 제 얼굴을 향해 있는 총구에 도유는 대답 대신 방아쇠를 당기는 걸 보고 강이환이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아픔도, 결계가 깨지는 소리도 없었다. 그는 몸을 움츠리며 눈을 떴다.

“거짓말이었습니다.”

그렇게 말한 도유는 거의 정신을 잃기 직전인 량에게 다가갔다. 그 모습을 보던 강이환은 도유가 말한 ‘거짓말’이 결계를 깰 수 있다는 탄환이라는 걸 알아차리고 욕을 중얼거렸으나 도유는 시선도 주지 않았다.

“유량 씨.”

주저앉은 량을 내려다보며 도유가 그를 불렀다. 량이 마법을 사용하려고 하면 할수록, 숨을 조이는 냉기와 빠르게 제 육신을 좀먹는 고통에 이를 갈며 도유를 올려다보았다. 도유가 무릎을 굽혔다. 량의 눈높이에 맞춰서.

“나에 대해 뭐라고 하는 건 상관없는데. 이청신, 걔는 건드리지 마. 죽고 싶지 않으면.”

걔 어머니가 협회장이다. 심지어 이따금 청신이 권력의 지팡이를 휘두를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걸 봐서, 굉장히 아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

도유는 무심코 튀어나오려는 말을 가까스로 삼켰다.

심지어 청신의 성격도 장난이 아니었다. 그라면 분명, 일전에 한 번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도유를 건들고 자신을 모욕한 유량을 죽일 게 뻔했다. 물론 훈련을 시작하기 전에 했던 약속이 있기에 대놓고 죽이진 않겠지만, 일단 귀찮은 일이 생길 게 자명했다.

‘그나마 지금 벌어지는 일들은 청신이가 못 봐서 다행이다.’

봤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유량을 죽일지도 모른다. 도유는 속으로 깊이 안도하며 말을 이었다.

“충분히 알아들었을 거라 생각하고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분노도, 짜증도 아니다. 감정을 잘라 낸 것처럼 도유의 푸른 눈에는 아무런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유량은 그에 소름이 돋았다. 그가 그러거나 말거나, 도유는 다시 무릎을 펴고 일어서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제4구역으로 향하는 방향이었다.

“……?”

내심 도유가 더 보복하지 않고 떠나는 모습에 안도하던 강이환과 박희성, 그리고 이화정은 뒤 한 번 돌아보지 않고 나아갈 줄 알았던 도유가 갑자기 몸을 돌려 되돌아오자 의아해했다.

“팀 점수로 인정이 될까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돌아왔습니다.”

“뭐…?”

“네…?”

어리둥절해하는 사람들의 반응을 뒤로 한 채, 도유는 손목에 착용한 팔찌에서 와이어를 뽑아내며 말했다.

“괜히 발버둥 치면 다치실 수 있으니 가만히 계셔 주시길 권장합니다. 그럼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

도유는 반짝이는 눈동자로 네 번째 훈련의 성적표를 보았다. 팀전 점수. 만점이 50점인데, 도유의 점수는 10점이었다. 도유는 감격스러운 점수에 입을 틀어막았다.

‘맨날 1점만 받았는데 처음으로 두 자릿수, 그것도 10점이야! 10점이나 받았다고…!’

난생처음으로 높은 점수를 받게 된 도유는 앞으로도 이번처럼 해야겠다고 다짐하며 지조도 없이 실실 흘러나오려는 웃음을 애써 막았다. 입가에 경련이 나는 바람에 뺨이 아파 왔지만 그마저도 기뻤다.

“저기 좀 봐. 서도유다.”

“그 ‘굴비’의 서도유…?”

“와….”

훈련소 내부 직원들이 중얼거리는 말이 들려왔다. 그걸 들은 도유는 속으로 혀를 찼다. 굴비라니, 말이 심하다. 차라리 기차놀이라고 하는 게 낫지 않나 하고 의견을 제시할까 하다가 더 미친놈 취급을 받을 걸 알아서 그냥 반응하지 않았다.

조금 더 귀를 기울이면 같은 카단 사람들이 도유에 대해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하나같이, 도유가 네 번째 훈련에서 보인 기행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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