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쉬이익!
“…!”
아주 작지만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시야에 잡힌 마력의 흐름이 미세하게 움직인 것을 보고 도유는 곧바로 몸을 굴렸다.
바로 전까지 도유가 웅크리고 있던 곳에 바늘 같은 것들이 엄청난 기세로 꽂혔다. 불에 달궈진 바늘은 땅에 꽂히자마자 사라지며 안개 같은 희뿌연 연기를 뿜어냈다.
‘이건…!’
연기를 피하기 위해 그 자리에서 일어나 뛰기 시작하며 도유는 마법이 날아온 곳을 보았다. 그곳엔 유량과 함께였던 이들 중 하나인 강이환이 있었다. 강이환은 아쉽다는 듯 도유를 보다가 눈이 마주치자 피식 웃으며 외쳤다.
“아차, 실수!”
“…….”
실수라기엔 너무나 정확한 조준이라는 건, 문외한이라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도유는 서늘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발밑에서 진동을 느끼고서 도약했다.
도약과 동시에 땅에서 솟아오른 송곳같이 날카로운 가시덤불이 도유를 향해 쇄도해 왔다. 나이프로 제 어깨를 노린 가시덤불을 잘라 내고 한 손으로는 봉 형태의 아티팩트를 꺼내 쳐 냈다.
와중에 가시덤불이 함정 마법을 건드렸는지, 그물이 머리 위에서 도유를 덮치고 있었다.
도유는 와이어를 이용해 그물의 방향을 틀었다. 그물은 아슬아슬하게 바로 옆 바닥에 떨어졌다.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유량 씨.”
“오해하지 마. ‘실수’야.”
“실수라고요?”
“그래. 함정 마법 하나하나에 굼떠서 쩔쩔매고 있길래 대신 처리해 주려고 하다가 조준을 ‘잘못’한 것뿐이야. 그렇죠?”
“네, 그렇습니다.”
“긴장해서 자꾸 실수를 하게 되네요-!”
화르륵!
호응하던 이들 중 하나가 화염 마법을 시전했다. 허공에 둥글게 뭉친 거대한 화염 공이 수십 개로 나뉜다. 그것들은 모두 도유를 향해 날아왔다.
죽일 생각까지는 없는지 효력이 약화된 것을 확인한 도유는 나이프를 집어넣고 한 손에 들고 있던 봉을 고쳐 쥐었다. 달칵. 아티팩트의 속성을 치환시킨 뒤 불타오르는 공들을 모조리 쳐 냈다.
“이것도 ‘실수’입니까.”
딱딱한 목소리에 량이 씨익 웃는다. 자신보다 낮고 약한 것, 하찮은 것을 내려다보는 오만한 눈빛으로 도유를 내려다보며 량이 대답했다.
“그래, 실수야. 지금부터 할 것들도 모두 실수지.”
“…….”
잔인하게 웃으며 량이 허리춤의 채찍을 손에 들었다. 그의 뒤편에 하나, 도유의 뒤에 하나, 그리고 양옆으로 한 명씩. 사냥을 하듯 거리를 두고 도유를 포위한 이들은 마치 재밌는 사냥 놀이를 하듯 마법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유를 포함한 이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이런 그들의 모습을 청신을 비롯하여 대기 중이던 2조부터 35조까지의 다른 조 사람들이 거대한 벽면을 차지한 모니터를 통해 지켜보고 있었다.
*
‘음, 이건 예상하지 못했는데.’
카단의 아티팩트 제작부의 팀원은 난처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가 보는 모니터에는 지금 실시간으로 네 번째 훈련을 받은 1조의 모습이 고스란히 송출되고 있었다.
심지어 곳곳에 숨어 있는 부분 카메라에 탑재된 AI 시스템으로 상대방의 얼굴이 제대로 찍히도록, 무엇 하나 놓치지 않도록 다각도에서 촬영 화면을 제공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너무나 잘 보였다. 유량과 그와 같은 조가 된 이들이 비마법사인 특수부 제1팀의 팀원, 서도유에게 하는 행동들이. 누가 봐도 유치하고 옹졸한 집단 괴롭힘이다.
제작부의 팀원은 단순히 이번 촬영을 신제품을 테스트하기 위해 도입한 것뿐이었다. 일반적인 카메라로는 마법 현상을 담아낼 수 없다.
제작부의 팀원은 그런 마법 현상을 카메라에 담아 모니터로 보고 싶다는 일념으로 특별한 렌즈를 개발했고 그 테스트를 위해 오늘을 기다렸다.
결과는 좋았다. 훈련장 내에 구현된 환상 마법도 제대로 비쳤고, 함정 마법이나 결계 마법이 발동할 때마다 육안으로 보는 것과 똑같은 풍경이 모니터에 고스란히 비쳤으니까.
하지만 정말, 제작부 팀원은 유치한 괴롭힘을 생중계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제 노력이 모욕받는 기분까지 들었다.
‘내가 이러려고 개발한 게 아닌데.’
그는 속으로 한여름의 습기처럼 턱턱 숨이 막히는 한숨을 삼키며 모니터를 봤다. 모니터 안에는 한 사람, 카단의 특수부 제1팀의 제복을 입은 서도유가 뛰어다니고 있었다.
‘근데 정말 대단하단 말야.’
도유를 죽일 생각은 없었는지 ‘실수’인 척 마법을 날리는 마법사가 셋이다. 도유는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그들의 마법을 피하면서 도망쳤다.
싸우기 싫다는 뜻이 역력한 모습이었지만 그런 도유의 위로 비웃음만 쏟아진다. 듣는 제삼자마저 욱하게 만드는 말을 도유는 묵묵히 들으면서 제4구역으로 올라가려고 했다.
채찍을 든 유량이 중거리에서 공격하지만 않았다면, 실제로도 제4구역으로 올라갈 수 있었을 터였다. 량의 채찍이 도유가 든 봉을 휘감는다.
계속해서 봉을 사수했던 도유가 손을 놓자마자 전격 마법이 쏟아진다. 도유는 예상했다는 듯 물러나며 발을 굴렀다.
그의 발밑에 있던 함정 마법이 발동했다. 공중에 생겨난 빛이 주변에 있던 마법사들을 덮쳤으나 그들은 어렵지 않게 피해 냈다.
제작부의 팀원은 도유가 저런 식으로 발동시키는 함정 마법이 전부, 그들을 다치지 않게 하는 속박계 마법뿐이라는 걸 알고 혀를 찼다. 자칫하면 크게 다칠 수 있는 상황인데 대인배라는 생각과, 과연 ‘특수부’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으득.
이를 가는 소리에 제작부 팀원의 고개가 저절로 돌아갔다. 반가면을 쓴 장신의 남자가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는 게 보였다.
도유와 똑같은 제복이다. 팔짱을 낀 모습을 보고 그의 심기가 얼마나 불편한지 잘 보여서 제작부 팀원은 슬그머니 다시 모니터로 고개를 돌렸다.
“저 미친놈들…. 저 광견을 건드리네.”
다른 방향에서 누군가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제작부 팀원의 고개는 물론, 이를 갈며 모니터를 응시하던 남자, 청신의 고개도 그쪽을 향해 돌아갔다.
“누가 광견이라고요?”
청신이 물었다. 귀에 부드럽게 착 감기는 미성에 중얼거린 이가 움찔했으나 곧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특수부 제1팀 서도유 저놈이요. 카단에서 경력 긴 인간은 다 알아요. 쟤 미친 또라이라서 안 건드려요.”
“자세히 말해 줬으면 좋겠는데.”
“쟤는 자기가 정해 둔 선을 넘으면 바로 머리가 도는 놈이죠. 제가 보기에는 쟤네가 지금 선 넘고 있으니까 제가 말 안 해도 이제 곧 보게 될 거예요.”
제작부 팀원은 너무 궁금했기에 속으로 더 물어봐라, 더 상세하게! 하고 속으로 외쳤으나, 청신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모니터로 다시 시선을 옮겼다. 제작부 팀원은 아쉬움에 손을 불끈 쥐었으나, 곧, 모니터를 통해 비치는 장면들에 입을 떡 벌리며 경악했다.
*
도유는 생각했다. 앞으로 남은 시간과 자신이 소모한 아티팩트와 제4구역까지의 거리.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지겹게 따라붙으며, 이제는 ‘실수’랄 것도 없이 마법을 대놓고 퍼붓는 마법사들을 상대할 경우 소모되는 최소 시간을 계산했다.
“이제 보니 사람이 아니라 쥐새끼 같은데요!”
“아, 진짜 요리조리 잘도 피하네! 지겹다!”
맞으면 뼈가 부러질 텐데 순순히 맞을 바보가 어디 있겠나. 게다가 유량을 제외하면 다 기본적으로 비전투 쪽이라 그런지 마법도 느렸다. 저런 걸 맞아서 부상 입었다는 걸 성희유가 알게 된다면 도유는 정말 그에게 죽을지도 모른다.
쿠구국! 쾅!
손톱보다 작았던 돌덩이가 순식간에 커지며 도유를 덮치려고 했다. 도유는 방어 아티팩트를 발동시켰다.
“고작 그런 걸로 막을 수 없어!”
맞는 말이다. 도유는 인정했다. 그는 제 손등 위에 나타난 방패 형태를 확인한 후, 거대한 돌덩이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그들은 도유의 손이 으스러졌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연이어 일어난 현상에 멈칫하는 수밖에 없었다.
맹렬한 기세로 날아가던 거대한 돌덩이가 그대로 반으로 갈라지며, 부스러진 것이다. 흙먼지가 날렸지만 도유는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꾹 다문 채 손을 움직였다.
팔찌 형태의 아티팩트가 발동하며, 와이어가 허공에 둥둥 뜬 강이환을 향한다. 놀라서 멈춰 있던 강이환은 그대로 와이어에 휘감겼다.
그가 와이어를 끊어 내기 위해 마법을 시전하려던 때 도유를 향해 상어처럼 날카로운 쐐기들이 그를 잡기 위해 땅에서 솟구쳐 나왔다.
도유는 주머니에서 아티팩트를 꺼낸 후, 발동시키는 동시에 와이어로 잡은 강이환을 제게 접근해 오는 속박 마법을 향해 집어 던졌다.
“으아아악! 아악!”
“헉, 안 돼, 안 돼!”
도유 대신에 날카로운 쐐기들에 휘감기고 몸 일부가 뚫린 강이환이 비명을 질렀다. 마법을 사용한 결계부의 마법사도 비명을 지르며 마법을 취소하려고 했다. 도유는 손에 쥔 아티팩트를 결계부의 마법사를 향해 던졌다.
“이 자식이 감히!”
량이었다. 량은 도유가 던진 아티팩트를 채찍으로 쳐 내고는 도유에게 달려들었다. 그가 손에 쥔 채찍이 창 형태로 변환되는 걸 본 도유는 다시 나이프를 꺼내 제 급소를 노리는 창날을 흘려보냈다.
“이제는 대놓고 공격하시는 겁니까.”
“닥쳐. 서도유.”
파바박!
스파크가 튀었다. 량이 디딘 바닥에 설치된 함정이 발동된 것이다. 몸을 저릿저릿하게 만드는 전류에 도유가 멈칫한 사이, 마법으로 스스로를 보호한 량이 웃으며 창날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