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
*
카단의 특수부 제1팀에게는 휴가가 없다.
임무 중이 아닐 때는 일반 직장인들과 마찬가지로 본사에서 근무하면서 부수적인 서류 업무를 하거나, 지하에 마련된 훈련실에서 현장 업무에 필요한 기술을 익히고 갈고닦아야 했다.
도유는 이를 어겨 본 적이 없었지만 이를 어기고 자율 행동을 할 시, 정도에 따라 최소 감봉부터 최악의 경우엔 사형당할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특히 사형으로 간주되는 건 도주의 정황이 분명할 때다.
‘도주로 간주될까.’
도유가 발견됐던 곳, 적성교가 집단 자살을 했던 그 부지는 지방에 있었다. 그것도 거의 하루를 꼬박 차로 달려야 하는 곳에 위치해 있었고, 휴가가 없는 도유가 본사도 아닌데 그곳으로 가면 도주로 간주될지도 모른다.
카단에서는 특별한 이유가 아니면 그런 먼 곳까지 절대 특수부 제1팀의 팀원을 보내 주지 않는다. 다른 부서의 사람이라면 가능하지만, 사형수들로만 가득한 제1팀이니까.
어떻게 하면 그곳에 ‘합법적으로’ 갈 수 있을지 고민하던 때였다. 성희유가 본사로 출근한 도유를 불러 이렇게 말한 것이다.
“이번에 열리는 정기 합동 훈련에 도유 씨와 청신 씨가 다녀오세요.”
1년에 한 번씩, 한 달 동안 각 부서 팀에서 2인씩 뽑아서 하는 합동 훈련이었다. 도유는 대답보다 먼저 성희유가 내민 합동 훈련 안내문부터 살폈다.
시일과 장소를 확인한 도유의 푸른 눈이 작게 흔들렸다. 합동 훈련이 열리는 장소가 바로, 적성교가 있던 부지 근처였다. 심지어 가깝다.
차로 10분 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어떻게든 저곳에 합법적으로 다녀올 생각으로 열심히 지도를 살폈던 터라 어렵지 않게 시간을 뽑아낸 도유는 엄청난 우연에 기뻐하다가, 성희유가 ‘청신’의 이름도 입에 담았음을 뒤늦게 깨닫고 눈을 가늘게 떴다.
‘설마 내가 눈치챘다는 걸 알고 유도한 건가?’
나흘 전, 야밤에 갑자기 도유가 먹을 디저트를 잔뜩 가져다준 청신은 당분간 개인적으로 하는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도유의 식사를 챙길 때를 제외하면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지.’
정령에 대해 말해 주긴 했어도 그것이 무슨 말을 했는지, 자기가 어떤 의심을 하고 있는지는 청신에게 일언반구도 하지 않은 도유다. 도유는 제 생각이 지나치다 생각하며 성희유에게 말했다.
“팀장님, 정기 합동 훈련에 다녀오는 것은 상관없습니다만, 전 내일부터 아카데미 잠입 임무에 복귀해야 합니다. 괜찮겠습니까?”
“그 임무라면 걱정 마세요. 철수 명령이 내려왔거든요.”
“예…?”
“아카데미에서 나온 ‘피해자’들 또한 소원 나무라는 사이트에서 댓글을 통해 마법을 얻었다는 것이 확인됐어요. 범법자의 마법을 받은 장소가 아카데미였을 뿐이고요.”
“…그럼 제 처리는 자퇴로 되겠군요.”
“네, 서류 절차는 준비되었으니 도유 씨가 훈련 전에 잠깐 가서 제출만 하면 돼요.”
“…….”
도유는 형용키 어려운 기분에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자신이 아쉬워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카데미에서 좋아하는 책을 잔뜩 읽은 것도 좋았지만, 한때는 누리고 싶어도 누리지 못했던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자신도 그런 존재가 된 것처럼 지냈던 시간이 좋았던 것이다.
무엇보다 청신과 만난 곳도 아카데미였고, 둘이서 함께 시간을 가장 많이 보낸 곳도 아카데미 연구실이어서 그런지 이전 임무들과 다르게 아쉬움이 컸다.
“아쉬운 것 같군요.”
“네….”
솔직한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성희유가 빙긋 웃었다. 그가 서랍을 뒤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지 않아도, 도유 씨를 넘보던 교수가 그 이야기를 듣고 난리를 치긴 했죠.”
“예? 교수님이요?”
뜬금없는 존재의 언급에 도유가 눈을 깜빡였다.
“아티팩트 제작과 현영하 교수요. 도유 씨 지도 담당 교수. 지난번에 개인 연구실 제안까지 받았다고 했던 것 같은데.”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카단 내에서 공유되는 정보를 왜 그분이 아시는 건지…. 아. 자퇴는 담당 교수에게 사전에 연락이 가기 때문입니까?”
“그것도 있는데, 현영하 교수는 일단 아카데미 교수이기 이전에 카단 이사회 임원 중 한 명이거든요. 현영하 이사라고 들어 봤죠? 이전에는 제작부 제1팀 팀장도 하긴 했지만 금방 관두셔서 이건 모를 수도 있겠네요.”
“네?”
“모르시는군요.”
성희유가 태블릿을 조작해 도유에게 건넸다. 현재 카단 협회의 이사회 구성원들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그린 조직도였다.
이사 현영하라는 이름 위, 띄워진 사진을 보고 도유는 입을 벌렸다. 지금보다 더 젊은 얼굴의 교수가 사진에 떡하니 있었던 것이다. 입을 떡 벌리는 도유를 보며 성희유가 말했다.
“우리 부서가 이사회와 관련된 임무에서 제외되고, 그들에게 일방적으로 눈엣가시로 여겨지고 있지만…. 적어도 이사회 구성원이 누군지는 알아야겠죠? 도유 씨.”
말투는 부드러웠으나 꾸짖는 것을 알았기에 도유는 고개를 숙였다.
그 와중에도 제가 열심히 거절하고 밀어 내고 피해 다녔던 교수가 임원이었다는 걸 알게 되자 도유는 착잡함을 숨길 수가 없었다.
설마 특수부 제1팀 주제에 건방지게 거절했다고 뭔가 보복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도유가 표정을 굳히고 있는 걸 본 성희유가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래요?”
“제가…. 교수님, 아니 이사님이 쫓… 아니 연구실 권유를 하실 때마다 끊어 내고 도망쳐서…. 그렇습니다.”
“현영하 이사가 도유 씨에게 업무적인 보복을 가할 거라 생각하시나 봐요?”
“…예.”
“뭐가 걱정이에요? 청신 씨가 있는데.”
“…아.”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다. 협회장인 송유원은 현재 자신의 세력을 꽉 붙잡고 있었고, 청신 또한 마법사로서의 자질이 뛰어난 사람이다.
괜히 도유 따위에게 보복하겠다고 척을 질 리가 없었다. 도유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다가, 청신이 당연히 제 편을 들어 줄 거라고 생각한 성희유를 보며 눈을 껌뻑였다. 설마?
“청신 씨가 도유 씨 사랑하는 티를 엄청 내는데 모르면 바보죠.”
도유의 표정을 고스란히 읽은 성희유의 말에 도유의 암울했던 얼굴은 이제 발갛게 달아올랐다. 그러거나 말거나 성희유는 제 할 말을 이어 갔다.
“마저 하던 이야기로 돌아갈게요. 만약 도유 씨가 아카데미 졸업은 마치고 싶다면, 계속 다녀도 돼요.”
“예?”
“현영하 ‘교수’의 재량으로 졸업 작품만 내년까지 제출하면 된다더군요. 잘 생각해 보고 하고 싶은 대로 해요.”
그럴 필요 없다고, 그냥 자퇴 처리를 하라고 해야 했다. 하지만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계속 다니고 싶은 건 맞았으니까. 그렇기에, 도유는 겨우 고개만 끄덕였다.
*
이카루스 아카데미에 휴학 신청서를 제출한 도유는 곧바로 청신과 함께 정기 합동 훈련이 열리는 훈련소로 출발했다. 원래는 같은 부서끼리 모여서 이동했지만, 특수부는 어김없이 예외였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차로 1, 2, 3팀이 함께 이동한 적이 있었는데, 차 안에서 싸우는 바람에 차는 날아가고 인근 도로는 박살 나고 전원 부상을 입는 바람에 이후부터는 따로 움직였다고 해.”
도유는 전에 백휘에게 들었던 말을 고스란히 전해 주었다. 백휘는 워낙 피 터지게 싸웠던 터라 사망 직전까지 간 이도 여럿 있었다는 말을 덧붙였었지만, 청신이 굳이 알 필요가 없을 듯해서 말하진 않았다.
청신은 도유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이윽고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아쉽네요. 같이 타고 가면 재밌었을 텐데. 특히 2팀과 한 차에 탔다면 이것저것 실험해 볼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가벼운 어조로 내뱉은 말에 도유는 저도 모르게 운전 중인 청신의 표정을 살폈다. 도유의 시선을 느낀 청신이 도유를 힐끗 보았다. 자연스레 이어지는 미인의 미소가 아름다웠지만, 도유의 눈에는 마냥 아름답게 보이지만은 않았다.
‘실험? 뭘 실험한다는 거지?’
어느 쪽이든 함께 동석하게 되는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좋은 방향의 실험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요, 도유 형?”
“…아니야.”
“걱정 마세요, 만약 같은 차를 타고 가게 될 일이 생기면 목적지에 도착하는데 지장 없도록 할게요. 아니면 훈련이 끝난 뒤에 한번 함께 돌아가 보자고 할까요? 2팀의 유량은 은근히 반길 것 같은데.”
“유량 씨가 이번 훈련에 참여해?”
“네, 2팀에서는 유량과 이다연, 제 3팀에서는 영준원, 박희연이 참여하더라고요. 다른 부서 사람도 궁금해요?”
“괜찮아.”
2팀을 콕 집어서 말하기에 설마 했더니 진짜였다. 게다가 도유는 자기도 몰랐던 것을 청신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진심으로 유량의 안위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도유는 유량에게 특별한 유감이 없었다. 그가 짖을 때는 한 귀로 듣고 흘리거나, 밤길에 몰래 응징할 자신이 충분히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청신이 정말 마음만 먹으면 아무런 증거도 없이 그를 죽이는 건 어렵지 않다는 걸 알고 있기에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청신아, 미리 말하지만 내게 시비 거는 사람들에게 네가 일일이 반응할 필요 없어. 그냥 무시해.”
“싫으면 어떡해요?”
“싫으면….”
죽여 버리라고는 할 수 없었다. 같은 카단 내에서 살인이 난 적이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기에 확신은 할 수 없었지만, 아무리 청신이라 하더라도 징계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 성희유의 말대로 ‘임시’ 제1팀 소속인 청신이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