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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74)화 (74/159)

#74

청신은 의문을 가지고 더 따져 묻는 대신에 도유가 안전한 쪽을 택했다. 도유의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네가 싫어졌냐고 물어봤잖아.”

“네.”

그것과 안대를 벗는 것의 상관관계를 전혀 모르겠다는 듯한 어조다. 도유는 손을 들어 청신의 얼굴이 있을 곳을 만졌다. 목에서부터 뺨으로, 청신이 그랬던 것처럼 도유는 그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며 말했다.

“지금 난 네 얼굴이 보고 싶어.”

“제, 얼굴이요?”

“응. 그걸로는 대답이 안 되나?”

네가 무서워진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좋아졌다고, 그런 뜻으로 한 말인데 청신은 바로 알아듣지 못했는지 대답이 없다.

그러나 도유는 곧 제 손바닥에 닿은 청신의 얼굴이 한결 더 따듯해진 것과, 손가락에 그의 체온처럼 따듯한 액체가 닿는 걸 느끼고 놀라고 말았다.

“청신아, 너 울어?”

“아뇨. 안 울어요.”

그럼 내 손가락에 닿은 이 액체는 뭐냐고 물으려다가 말았다.

대신 엉덩이를 들어 무릎걸음으로 청신에게 가까이 몸을 붙이고, 양팔로 청신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청신이 밀어 낸다면 떨어질 생각이었지만 청신은 순순히 몸을 붙여 오며 도유의 허리를 껴안았다.

“도유 형이 이렇게 나오면 안 되는데….”

“왜?”

“그때 폐가에서 형이 저를 피하길래, 싫어하는 줄 알고. 저를 무서워하는 줄 알고서… 도유 형이 떠날까 봐 무서워서 대답이 시원찮으면 그냥 감금하려고 했단 말이에요….”

생각지도 못한 고백에 도유는 몸을 옴찔하며 되물었다.

“…진짜?”

“네.”

간결한 대답에 청신이 그 어느 때보다 진심이라는 걸 알게 된 도유가 속으로 비명을 삼키는 사이, 청신이 도유의 몸을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 힘에 순순히 따라가 준 도유는 청신의 위에 엎어지듯 몸을 맡겼다. 도유를 끌어안은 채로 침대에 눕게 된 청신이 애교를 부리듯이 도유의 목에 입술을 묻으며 투덜거렸다.

“형이 이렇게 날 좋아하는 티를 내는데 내가 어떻게 형을 감금할 수 있겠어요. 형이 이렇게 예쁘게 날 사랑해 주는데도 감금하면 내가 진짜 개자식이지.”

청신의 어머니가 제 직장 최고 보스라는 걸 아는 도유는 반사적으로 움찔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 떨림마저도 귀엽다는 듯이 청신이 도유의 목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너 이러니까 진짜 개 같다고, 그러니까 깨물지 좀 말라고 말하려던 찰나 청신이 먼저 말했다.

“그래도 형, 조금 전에 했던 말은 거짓말이 아니에요. 형이 또 내 앞에서 자해하면 전 정말 개자식이 될 거니까 그렇게 알아요.”

청신이 개자식이 될 경우 그 개가 누구일지 알아서 도유는 굉장히 마음이 괴로웠지만, 지금은 무엇이 우선인지 알았기에 손을 들어 청신의 머리카락 사이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살살 쓰다듬어 주자 아래에서 그가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웃음소리에 귀 기울이며 도유가 대답했다.

“…알았어. 놀라게 해서 미안해, 청신아.”

“네, 용서해 줄게요.”

“걱정 마.”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몸을 옆으로 굴려 도유를 침대 위에 다시 눕힌 청신은 도유의 입술에 짧은 입맞춤을 남기고 침대에서 내려갔다.

“약 가져다줄 테니까 기다려요.”

*

본부로 복귀하는 날. 청신은 섬에 들어갈 때와 달리 전혀 멀미를 하지 않았다. 이에 도유가 의문을 품었지만, 청신은 그가 의문에 사로잡혀 깊게 파고들 틈을 주지 않았다.

요트에서부터 차로 옮겨 타 도유가 머무는 숙소에 데려다주는 내내 옆에 찰싹 달라붙어 애교를 부린 것이다.

청신은 제 품에 안겼던 체온과 손바닥에 닿았던 사랑하는 이의 감촉을 머릿속으로 덧그리며 곧바로 카단 본사로 향했다.

제복을 입지 않은 훤칠한 키의 미인이 카단의 본부를 막힘없이 걷자 사람들의 이목이 쏠렸다. 몇몇 이들은 노골적으로 청신을 향해 호기심을 드러냈지만, 청신은 한 번도 시선을 맞추지 않았다.

청신의 걸음이 멈춘 것은 최상층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앞이었다. 그 앞을 지키던 가드는 오늘 일정에 없던 낯선 손님의 모습에 경계하는 기색을 드러내며 그를 막아섰다.

“성명과 소속, 방문 목적을 밝히십시오.”

“이청신. 송유원 씨를 보러 왔어요.”

“협회장님을…? 사전에 약속은 잡고 오신 겁니까?”

“아니요. 갑자기 온 건 미안한데, 이미 송유원 씨는 알 테니까 그냥 비켜요.”

존댓말이었지만 비키지 않으면 강제로라도 뚫고 가겠다는 뜻이 다분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가드는 엘리베이터를 열어 주는 대신에 주변에서 대기 중인 마법사들을 호출하기 위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 순간 가드의 등 뒤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그는 당황했다.

이 엘리베이터를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첫 번째는 가드가 가진 특별한 아티팩트로 움직이는 것이고, 두 번째는 송유원이 마력을 직접 운용해서 열어 주는 경우였다. 가드는 아티팩트를 사용하지 않았기에 후자 쪽이라는 걸 알고 빠르게 비켜섰다.

“고마워요.”

마음에도 없는 소릴 하며 청신이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그가 올라타자마자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혔다. 청신은 무표정한 얼굴로 층수의 표기조차 없이, 아무런 버튼도 없는 엘리베이터 안에 가만히 서 있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엘리베이터의 문이 다시 열렸다. 청신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달라진 풍경에 눈살을 찌푸렸다.

“악취미네요.”

협회장실이어야 하는 공간은 한 가정집과 똑같았다. 과거에 청신이 태어나서 2년 남짓 살았던 곳. 그러나 한순간에 뜯겨 나가듯 사라진 곳이다. 송유원이 얼굴에 쓴 가면 아래로 후후, 하고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매번 전화만 하던 아들이 직접 찾아왔으니까.”

변덕을 부려 봤다는 뜻이다. 청신은 대답하지 않고 손가락을 튕겼다. 순식간에 풍경이 원래대로 되돌아온다. 협회장의 방이다. 사무적인 공간으로 돌아오자 냄새 또한 변했다. 그는 공기 중에 녹아든 단내를 맡았다. 그리고 곧, 냄새의 근원지를 찾고 살풋 눈살을 찌푸렸다.

아이들이 좋아할 법한 디저트가 긴 테이블 위에 한가득이다. 디저트로 유명한 호텔의 브랜드 로고가 새겨진 타르트부터 에클레르, 마카롱 따위가 놓여 있었다. 청신이 말했다.

“전 이제 단건 싫어하는데요.”

“챙겨 가렴. 도유가 좋아하잖니.”

“…….”

청신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전에 도유를 감싸는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그사이에 송유원이 도유의 식성까지 파악했을 줄은 몰랐다.

송유원의 괜한 친절은 그다지 달갑지 않았지만, 청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유가 저 테이블에 있는 디저트들을 좋아하는 건 사실이었고, 섬에서 돌아오는 내내 은근히 생각에 깊이 잠겨 있는 것을 보았기에 송유원의 친절을 받기로 결정했다.

저걸 핑계로 해서 도유의 집에 가서 어떤 말을 할지 순식간에 대본까지 짜낸 청신은 송유원이 일어서는 기척에 그녀를 보았다.

“앉으렴. 모처럼 아들이 엄마를 찾아왔는데 서 있게 할 수는 없으니.”

“아니요. 그럴 필요는 없어요.”

청신은 싸늘하게 대답하고 들고 있던 가방에서 뭔가를 꺼냈다. 무심코 청신의 손을 본 송유원의 몸이 일순 멈칫했다.

청신의 손에 들린 건, 폐가에서 찾았던 상자였다.

청신이 들고 있던 상자를 손에서 놓았다. 상자는 중력에 따라 바닥으로 떨어지는 대신, 홀로 의지를 가진 것처럼 허공에 뜬 채 그녀의 앞까지 이동했다. 이윽고 송유원이 손을 뻗자 기다렸다는 듯 손바닥에 안착한다.

“어떻게…. 이게 남았을 리가 없는데…?”

가면 너머로 그녀의 호흡이 크게 흐트러진 것이 들려왔다. 청신은 그녀의 손길, 움직임을 하나하나 주시하며 말했다.

“이성환 부회장 소유의 섬에 있던 폐가에서 발견한 거예요. 보니까 다른 사람 명의까지 빌려서 산 섬이더라고요. 딱, ‘협회장님’께서 ‘청소’를 시작하기 직전에요.”

“…….”

“반응을 보아하니 ‘협회장님’께서는 모르셨나 봐요.”

“알았다면 내가, 너를 어떻게 거기에 보내. 거기에….”

내내 무표정했던 청신의 얼굴에 화사한 미소가 걸린다. 그는 언제 냉담하게 굴었냐는 듯, 온화하게 웃으며 말했다.

“의심해서 죄송해요, 어머니.”

“…아니, 아니란다. 미안해할 필요 없어. 이 안에 있던 ‘힘’은 어떻게 됐니?”

“제가 어떻게 할 틈도 없이 바로 먹히던걸요. 예상은 했지만요.”

끊임없이 흐르는 강으로 합류한 가느다란 물줄기는 섞이기 마련이다. 청신의 담담한 말에 송유원은 바로 상자를 내려놓고 청신에게로 다가왔다.

청신은 물러나는 대신 송유원이 원하는 대로 하게 내버려 뒀다. 아들의 얼굴, 몸 구석구석, 넘어진 어린아이를 살피듯 송유원은 청신의 상태를 살피고 그가 말마따나 무사하다는 걸 확신하고 나서야 손을 내려놨다.

“이 건은 내게 맡기렴.”

“네, 부탁드려요, 어머니.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부탁드려도 될까요?”

“뭐든 말만 하렴.”

“도유 형이 수행 중인 이카루스 잠입 명령 말인데요, 이제 거둬도 될 것 같아서요.”

“범법자가 그 아카데미에 있을 확률이 높아. 아직 포기할 수 없단다.”

송유원은 이번만큼은 강하게 나왔다. 범법자는 카단이 수호하는 법을 깨고, 재앙을 부른다. 재앙이 이어질 때마다 혹시라도 제 아들에게 영향이 갈까 전전긍긍하는 그녀의 마음을 알았기에 청신은 부드럽게 그녀를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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