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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73)화 (73/159)

#73

“도유 형이 먹는 진통제요. 성희유 팀장이 이런 때 도유 형이 먹는 진통제가 따로 있다고 하던데요. 지금, 담배 형태로 섭취하는 건 안 되잖아요. 도유 형 짐을 다 찾아봤는데 뭔지 모르겠어서.”

감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평이한 어조다. 안대 때문에 얼굴도 보이지 않아 도유는 불안감이 점점 저를 삼키는 것을 느끼며 최대한 분명한 어조로 말을 쥐어짜 냈다.

“시계…. 두, 번째 버튼, 오른쪽으로…. 돌려서, 눌러.”

목이 너무 아팠다. 아파서 눈물도 났다. 하지만 이 이상 아픈 티를 내면 청신의 마음이 더 상할 것을 알아 어금니를 꽉 깨물고 신음을 참았다.

청신의 녹색 눈이 옅은 광채를 띄며 도유를 잠시 내려다봤다. 성희유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아픈 기색을 전혀 숨기지 않았던 도유가, 청신이 있다는 걸 알게 되자 곧바로 아픈 것을 숨기려든다. 청신은 이를 악물고 움직였다.

달칵. 손목시계를 조작하는 소리와 함께 잠깐 소리가 사라졌다.

이윽고 도유가 누워 있던 침대에 무게가 실렸다. 청신이 등 아래로 손을 받쳐 도유의 상체를 들어 올렸다.

몸이 움직이자 전신이 비명을 질렀지만 도유는 입술을 파르르 떨면서도 신음 한 번 내지 않았다.

컵에 물을 따르는 소리가 들렸다. 도유가 약을 달라고 말하려던 순간 청신이 입술을 포갰다. 뜬금없는 키스에 도유가 그를 밀어 내기도 잠시, 곧 그의 뜻을 알아차리고 순순히 입을 벌렸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기다렸다는 듯 들어오는 액체를 삼키는 것이 버거웠다.

도유가 몸을 움츠리며 반사적으로 밀어 내려고 하자 청신이 도유의 턱을 잡고 혀를 움직여 도왔다. 미처 삼키지 못한 물이 턱을 타고 흘러내려 옷 위로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도유가 입 안으로 넘어온 약을 삼키자 청신은 미련 없이 떨어졌다. 이윽고 부드러운 천이 입가와 물이 떨어졌던 곳들을 조심스럽게 닦아 냈다. 아이를 돌보듯 상냥한 손길이었다.

이런 작은 행동에도 밀려오는 통증에 고맙다는 인사도 못한 채 고개를 푹 숙인 도유는 애써 신음을 삼켰다. 핏기가 사라진 입술을 앙다물고 티 내지 않기 위해 호흡을 조절했다.

“…왜.”

머리 위로 들려온 목소리에 도유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은 없었다.

그저, 청신이 도유를 안았을 뿐이다. 닿는 것도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조심스러운 손길이었다.

약효가 돌기 시작하며 통증이 빠르게 사라지는 것을 느낀 도유는 기꺼이 청신의 품에 몸을 기댔다. 멈칫하던 청신이 팔에 살짝 힘을 줬다.

“왜 그랬어요. 갑자기 왜 그랬냐고요. 내가 얼마나 놀랐는데.”

“…미안해.”

사과밖에 할 말이 없었다. 정령에 대해 말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도유는 처음으로 제게 분명한 의사를 전하고, 계약을 무시하고 멋대로 힘을 이끌어 냈던 정령이 했던 말이 마음에 걸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째서 함께 있는 것이냐.’

‘저건 너를 ■■려고 했던 어린 ■■■ ■■■이다.’

정령이 특정 단어를 말했을 때, 그 부분만 마치 긁어낸 듯 이해할 수 없었다.

애초에 정령의 ‘목소리’는 소리로 들리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으로 인지하는 것과 같아 그나마 주워들은 말도 제대로 들은 것인지 애매모호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정령은 청신에게 깊이 분노하고 있었고, 죽이려고 들었다.

그런 정령의 태도를 통해 도유는 제대로 들리지 않았던 앞의 문장이 뭔지 유추해 낼 수 있었다. ‘저건 너를 ■■려고 했던’에서 듣지 못한 단어는 ‘죽이려고’ 또는 ‘해치거나 해하려고’ 했다는 뜻을 담은 게 아닐까?

단어의 조각을 끼워 넣어 보던 도유는 안대 아래로 미간을 좁혔다.

‘그래도 이해가 되지 않아.’

청신이 도유를 언제 죽이려고 했다는 건가. 정령의 말은 분명히 과거형이었다. 작은 검은색 상자에 넘실거리던 검은색 기운이 청신의 손에 빨려 들어간 것을 본 직후였으니, 정령은 그때를 말한 것이 아니었다.

“아. 청신아, 너 상자…! 손, 손 괜찮아? 어디 아픈 곳 없어?”

도유는 청신의 얼굴이 있을 곳부터 목, 어깨, 팔, 손을 순서대로 더듬었다. 얌전히 도유에게 몸을 내어 주는 청신의 시선이 안대 위로 느껴졌지만 그의 눈치를 볼 때가 아니었다.

앞이 보이지 않아 더듬더듬 청신의 손을 만지작거린 도유는 그의 손이 썩거나 상처 없이 단단하고 매끈하다는 걸 알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나 놀려요?”

청신의 목소리에 도유가 흠칫했다. 왜 지금에서야 깨달았을까. 청신은 처음부터 도유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걱정돼서,”

“나는 형 걱정 안 했을 것 같아요? 지금 누가 누구를 걱정해요? 이유도 안 알려 주고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만 하고, 날 걱정하면 내가 기뻐할 것 같아요?”

도유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고개를 숙였다. 청신의 말이 백번 옳았다. 목 아래로 으르렁거리며 화를 내는 청신이 분을 이기지 못하고 주먹을 휘두른다고 해도 아무 말도 못 할 정도로 청신에게 미안해졌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면 더더욱 그랬다.

“네 말이 옳아. 내가…. 아직은 나도 이해가 안 돼서 전부 말해 줄 수는 없어. 그런데 일단 이건 분명하게 말할게. 내가 정말 잘못했다.”

너를 지키기 위해서였다고 말하면 청신은 도유에게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그럼 저도 말 안 해요.”

“어?”

“그 상자. 도유 형이 먼저 이야기해 줄 때 까지 말 안 할 거라고요. 절대로. 도유 형도 말 안 해 주는데 제가 대답할 필요가 있을까요?”

“…보고해야 하잖아.”

“이번 일은 보고서 제출이 필수가 아니라는 말, 기억하시죠? 도유 형.”

“…응.”

“아직도 식은땀 흘리고 있으면서.”

청신의 목소리에 희미하지만 물기가 어렸다. 도유는 청신을 보았지만, 눈을 가린 안대 때문에 보이지 않았다. 당장에라도 안대를 치워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도유는 평소처럼 정령의 시선을 차단할 수 있을 정도로 몸 상태가 좋진 않았다. 약물로 강제할 수는 있었지만 그리했다간 정말 청신에게 미움받을 것이라 생각해 입도 벙긋할 수 없었다.

“두 번 다시 내 앞에서 그런 짓 하지 말아 줘요, 형.”

“……노력,”

해 볼게, 그렇게 대답하려던 때 청신의 손이 도유의 입을 막았다. 그가 으르렁거리며 경고했다.

“잘 대답해요. 한 번만 더 하면 사지를 묶어서 감금할 거니까.”

나지막한 목소리에 평소 하는 농담 따위가 아니라 진담이라는 걸 알았다.

도유는 비어 있는 손으로 무릎 위의 이불자락을 움켜쥐었다. 청신의 말이 거북하게 들려야 했다. 하지만 그와 반대의 감정이 도유를 사로잡았다.

기뻤다.

도유가 잘못했다는 걸 알면서도, 감추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미워하는 대신에 붙잡을 거라는 말이 기쁘게 느껴졌다.

‘형이 저를 볼 때마다 다른 것의 시선을 느껴서요.’

전에 청신이 도유에게 그 말을 했을 때 도유는 두려움에 사로잡혔었다.

기억에도 없는 친부모와, 자기를 입양했다가 파양했던 사람들처럼 청신 또한 저를 버릴 거라는 두려움에 질린 도유는 그날 청신에게 먼저 키스했었다.

청신만큼 저를 좋아해 주는 사람은 두 번 다시 존재하지 않을 걸 알아서, 도유 또한 청신을 마음에 두기 시작했기에 놓치기 싫어서 매달린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렇게 해서 붙들었던 청신을 이번 일로 완전히 잃게 되는 건 아닐지, 청신이 저를 포기해 버리는 건 아닐지 내심 겁에 질렸던 도유는 지금 청신의 감금할 거라는 말에 기쁨을 느끼고 말았다.

‘이러면 안 되는데….’

스스로가 이성적이라고, 상식적인 범주 안의 인간이라고 생각했던 도유는 요즘 들어 청신 때문에 그 경계선이 애매모호해지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입술을 깨물었다.

“왜 대답 안 해요?”

감정을 정리하느라 도유의 침묵이 길어지자 청신이 도유의 뺨을 손으로 감쌌다. 얼굴이 가까이 다가온 것이 느껴졌다. 안대 위로 느껴지는 그의 시선에 온몸의 감각이 곤두섰다.

“제가 미친놈 같아요?”

아니, 네가 아니라 내가 미친놈 같아서 그렇다.

무심코 툭 튀어나올 것 같은 대답을 목 아래로 밀어 넣었다.

“그럼, 제가 싫어졌어요?”

청신이 어떤 표정으로 이런 질문을 하는 건지 궁금했다. 자기가 싫냐고 묻는 주제에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다는 걸 이 녀석은 전혀 모르는 듯했다. 싫다고 하면 깊이 상처받은 얼굴로 도망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도유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청신아.”

“네, 도유 형.”

착실하게 돌아오는 대답이 꼭 각인된 것처럼 느껴졌다.

“내 가방에서 약 좀 꺼내 줄래? 담배 형태 말야.”

“…지금요? 약 드셨잖아요. 효과가 없어요? 아직도 아파요?”

뺨을 감쌌던 손이 도유의 얼굴과 목덜미에 닿았다. 조심스럽게 살피는 손길은 도저히 사지를 묶어서 감금하겠다는 말을 한 사람답지 않았다.

“조금 전에 네가 먹여 준 건 진통제야. 눈 때문에. 지금 내가 가진 약 중에 시야를 정상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게 담배 형태를 한 약밖에 없거든.”

“안대 쓰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니에요? 성희유 팀장이 그랬는데. 도유 형이 그런 건 눈 때문일 수도 있다고….”

뒷말은 중얼거림에 가까웠다. 도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반은 맞고, 절반은… 조금 전에 말했다시피 아직 말해 줄 수 없는 이유야. 하지만 지금은 벗고 싶어.”

“그냥 쓰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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