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71)화 (71/159)

#71

“저는 서류를 조작한 적이 없어요.”

담백한 어조에 도유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그럼 설마… 만들어 냈어…?”

이동 마법까지 제한 없이 가능한 데다, 휴양지로 유명한 곳 중 아무 데나 선택해서 기이한 현상을 만들어 버리는 것이 가능한 인간이 바로 이청신이다.

지진이 난 것처럼 사정없이 떨리는 도유의 눈동자에 청신이 웃음을 터트렸다.

“물론 그 방법을 고안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렇게 했으면 형 화낼 거죠?”

“당연하지. 그러니 솔직하게 대답해.”

“전 항상 형에게 솔직하게 대하는데 그렇게 말하니까 더 솔직하게 대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떻게 생각해요?”

입가에 와인 잔을 가져다 댄 청신이 야릇하게 웃는다.

그 웃음에 일말의 불안감을 느낀 도유는 곧바로 물러났다.

“지금의 거리가 딱 좋은 것 같다고 생각해. 넌 잘하고 있어.”

“정말요?”

“응. 그러니 마저 말해 봐. 서류를 조작한 게 아니라면 진짜 ‘기이한 현상’이 나타난 게 맞다는 거잖아.”

도유는 머릿속으로 서류의 내용들을 복기했다.

한밤중에 이 섬에 상주하는 직원들이 밤낚시를 갔다가 기이한 현상을 목격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그것을 목격한 직원들의 일부가 그날부터 굉장히 아프고 악몽에 시달린다는 거였다.

“맞아요. 서류에는 기재돼 있지 않지만, 몇몇 직원들이 입을 모아서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뭐, 뭐가 나와?”

대답을 짐작했지만 도유는 제발 아니길 바라는 마음으로 되물었다.

도유가 어떤 대답을 원하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청신은 보는 사람의 심장을 내려놓을 정도로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귀신이요.”

도유의 얼굴이 새파랗게 얼어붙었다.

*

서도유는 귀신이 무서웠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못 죽이잖아….”

힘없이 내뱉어진 말에 다듬어지지 않은 길을 먼저 헤쳐 나가던 청신이 도유를 돌아보았다. 도유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사람처럼 핼쑥한 얼굴이었다.

“죽이지 못해서 무서운 거예요?”

“당연하지. 생각해 봐, 청신아. 마법사든 언데드든 일단 육신이 존재하잖아. 그래서 죽이면 멈춰. 정 안 될 때는 머리를 날려 버리거나 얼려 버리면 멈추잖아. 그런데 귀신은 어떻게 해도 타격을 가할 수가 없어.”

그것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마력으로 구성된 ‘악의’였다.

카단의 특수부에 입단한 지 몇 년 되지 않았을 무렵, 귀신에 특화된 제2팀에서 맡았어야 할 일에 도유가 투입이 된 적이 있었다. 그날 도유는 정말 죽는 줄 알았다.

불타오르는 듯한 붉은색 마력의 형상이 인간의 형체가 되어 자신을 죽이려고 달려드는데 아무리 도망쳐도 벗어날 수 없었다. 공격을 막는 것도 불가능했다. 도유가 가진 힘으로 막을 수 있기는 했지만 효율성이 무척 나빴다.

당시 도유와 함께 파견되었던 같은 팀의 마법사는 진즉 행동 불능에 빠져 귀신에게 몸까지 빼앗긴 상태였다.

어디선가 나타난 성희유가 - 그때는 몰랐지만 - 빼앗아 온 제2팀 팀장의 무기를 휘둘러 그것들을 멸하지 않았더라면 도유도 팀원과 똑같은 결말을 맞이했을 터였다.

“한 번은 무기에 부적을 붙여서 때려 보기는 했는데, 부적에도 내구성이 있으니까 떨어지면 한계가 있더라고.”

“그 전에 죽이면 되지 않아요?”

“부적만으로는 못 죽여. 일시적인 봉인만 가능하고. 원한이 크면 클수록 부적도 안 통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더라.”

도유는 부르르 떨었다. 무기에 부적을 붙여서 열심히 팼더니 소멸은커녕 더 화가 나서 기괴한 꼴로 바뀐 귀신이 제게 네발로 기어 오던 때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선연하게 남아 있다.

어느덧 도유에게 다가온 청신이 부드럽게 도유의 어깨를 껴안았다. 이번만큼은 도유도 거절하지 않았다.

“무서우면 손잡아 줄까요?”

“이런 길에서 손잡고 가다가 사이좋게 넘어질 테니까 사양할게. 지금 이 방향에 그… 귀신이 목격된 곳이 있는 거지?”

“네. 정말 괜찮겠어요? 도유 형. 저 혼자 가도 되니깐 방으로 돌아가서 자도 돼요.”

“미쳤어? 안 돼. 절대 안 돼.”

도유는 정말 미친놈 보듯 청신을 보았다. 이 녀석은 먼저 공포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던 주제에 그런 영화의 클리셰를 전혀 모르는 건가? 모든 공포 영화에서는 저런 말을 하는 놈부터 제일 먼저 귀신에게 당했다.

“청신아, 지금 네 파트너는 나야. 널 혼자 보내는 것도 안 되고, 네가 날 혼자 두는 것도 안 돼.”

“도유 형….”

청신이 감격에 차서 도유를 봤으나 도유는 사방이 깜깜한 길을 손전등 하나에 의지해서 걷느라 그를 볼 틈이 없었다.

도유는 손전등의 빛 말고도, 제 눈에 보이는 주변에 흐르는 자연의 마력의 색이 달라지는 지점을 찾아 두리번거리면서 긴장으로 몸을 뻣뻣하게 굳혔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돌연 청신이 걸음을 멈췄다. 도유도 걸음을 멈췄다. 도유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이 섬에 상주하는 직원들이 기이한 현상을 목격했다는 곳인 섬의 끝자락에 있는 폐가를 보았다.

“귀신만 아니면 돼. 귀신만.”

주문처럼 중얼거리는 도유를 향해 청신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도유 형, 뭔가 보여요?”

“아니. 별건 안 보여.”

귀신이 있는 곳이면 붉은 마력이 굉장히 많았지만, 폐가 근처에 잔재한 자연의 마력들은 본래의 색으로 유유히 빛나고 있었다. 그렇다고 도유는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저러다가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제 눈에도 딱히 특별한 건 보이지 않네요. 안쪽으로 들어가 보죠.”

“…그래.”

마음 같아서는 말리고 싶었지만, 청신의 말대로 안쪽까지 살펴보는 게 나았기에 도유도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옮겼다.

한낮이 아니라 깊은 밤에 보는 폐가는 도저히 맨정신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지만, 직장인은 일을 해야 했기에 둘은 바닷바람에 부식되어 쓰러진 대문 안쪽으로 들어갔다.

야밤에 빛 한 점 없어도 잘만 돌아다니는 도유였지만 과거의 기억이 도유를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과거에도 이런 식으로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붉은 마력의 형상이 눈앞에 있던 팀원을 꿀꺽해서 몸을 빼앗은 걸 기억하는 도유는 제 앞에 선 청신의 손을 잡았다.

“걱정 마세요, 형. 정말 귀신이 와도 내쫓는 방법을 알고 있으니까요.”

“뭔데?”

솔깃해하는 도유를 보며 청신이 야릇한 웃음을 머금었다.

“귀신은 양기에 약하다고 책에서 읽었거든요. 인간은 잠자리를 할 때 가장 농도 짙은 양기가 발산된다고 하니까 바로 그 자리에서 하면-.”

“너는 귀신이든 다른 사람이든 그런 급박한 상황에서 누가 보고 있는데 하는 게 가능해?”

평소라면 대답도 하지 않았을 말이었지만, 기가 차서 물으니 청신이 쑥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도유 형을 보는 것만으로도 흥분되는데 어떻게 불가능하겠어요. 아, 형이 안 될까 봐 걱정하는 거예요? 걱정 마세요. 나 말고 딴건 신경도 쓰이지 않도록 만들어 줄게요.”

“하지 마라.”

“싫….”

돌연 청신이 말을 멈췄다. 그가 언제 애교를 부렸나는 듯, 빙판보다 더 단단하게 굳은 표정으로 폐가 안쪽을 주시하는 모습에 이번엔 도유가 얼어붙었다.

얼결에 청신의 시선을 따라갔지만 도유의 눈에 특별히 보이는 것은 없었다. 다른 사람의 기척이 느껴지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흉흉하게까지 느껴지는 청신의 기세에 저 안에 뭔가 있다는 것만큼은 알았다.

“청신아…?”

여차할 때 바로 반응할 수 있도록 한 손으로는 허리춤의 아티팩트 총을, 다른 손으로는 청신의 팔을 잡으며 그를 불렀다.

풀벌레와 섬에 사는 동물들이 이따금 내는 소리만 가득한 공간에서 지금까지 이른 아침의 새들처럼 재잘재잘 떠들었던 청신의 목소리가 사라지자 도유는 불안해졌다.

“잠깐만요, 형. 확인해 볼 게 생겼네요.”

딱. 청신이 손가락을 튕겼다. 동시에 사위가 대낮처럼 밝아졌다. 허공에 떠오른 조명처럼 밝은 불빛에 놀란 새들이 나무 위에서 푸드덕거리며 도망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주변이 밝아지자 그나마 나아진 풍경에 도유는 조금 마음을 놓고 청신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폐가의 안, 거실로 추정되는 곳에 들어가니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다분히 드러났다.

벽면에 아직도 걸려 있는 달력의 연도와 날짜를 통해 이곳에 30년 전까지 사람이 살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청신은 마치 제집처럼 걸음을 옮겼다. 거실을 지나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는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마법을 사용해 기다란 형태의 송곳을 만들어 내서 장판이 벗겨진 부엌 바닥에 꽂았다. 송곳은 마치 빨려 들어가듯 바닥 아래로 사라졌다.

“이제 말 좀 해 주면 안 돼?”

“아, 죄송해요. 도유 형. 여기 봐 주시겠어요?”

순순히 사과를 한 청신이 손끝으로 송곳이 파고들어 간 곳을 가리켰다. 도유가 다시 그곳을 본 순간 변화가 일어났다. 바닥 아래쪽에서 쩍, 쩌적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약간의 진동과 함께 바닥이 움푹 솟아오른 것이다.

마치 나무가 자란 듯 무엇인가에 밀린 형태로 솟아오른 땅 위에는 네모반듯한 작은 상자가 있었다.

“…!”

상자를 본 도유는 경악했다. 순식간에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어째서 이 상자에서 범법자의 마법이 사람들을 죽일 때 보았던 새까만 흐름이 보이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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