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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66)화 (66/159)

#66

도유의 푸른 눈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청신은 그런 도유의 반응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다가 살짝 부어오른 뺨에서 손을 치우며 말을 맺었다.

“지금은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안 느껴지네요. 제가 착각한 것 같으니 신경 쓰지 마세요, 도유 형.”

도유는 대답 대신 어렵게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살짝 창백해진 안색에 청신이 옅게 웃었다. 그는 단순하게 도유가 겁에 질려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도유가 귀신을 무서워한다는 걸 알고 있기에 생각이 그쪽으로 치우쳤다.

전에 한 번, 도유와 단둘이 영화를 보러 갔다가 공포 영화를 봤을 때 도유의 반응이 지금과 비슷했기 때문에 더더욱 다른 생각은 할 수 없었다.

청신은 도유가 영화를 좋아하고, 카단에서 오랫동안 일했으니 공포 영화를 B급 영화 보듯 볼 줄 알았다.

그러나 그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함께 공포 영화를 보는 내내 도유는, 귀신이 나올 것 같은 구간만 되면 두 눈을 꾹 감고 고개를 숙였다.

혹시 지금 자신이 한 말이 귀신 같은 것이라 생각하고 겁먹은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한 청신이 도유를 달래려고 했을 때, 도유가 먼저 움직였다.

그는 성큼성큼 걸어 특수부의 개인 사무실 내에 마련된 냉장고를 열더니 작은 얼음 팩을 꺼내 손수건으로 감쌌다.

“얼굴.”

짧은 말이었지만 알아들은 청신은 기꺼이 얼굴을 내어 주었다.

도유가 조심스러운 손길로 청신의 뺨에 손수건을 가져다 댔다. 이렇게 닿는 것만으로도 청신이 아파할까 봐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한 손길이었다.

이 정도의 상처 아닌 상처라면, 얼마든지 마법으로 치유할 수 있었지만 청신은 그러는 대신 손수건 너머로 맨얼굴에 닿은 도유의 손을 만끽했다.

“고마워요. 그런데 저, 이제 용서받은 거죠?”

“…그걸 물어봐?”

“용서를 받아야 할 수 있는 것도 있어서요.”

“달라붙을 생각이라면 나중에 용서해 줄게.”

도유의 말에 청신이 고민하는 척하더니 생긋 웃으며 말했다.

“그럼 곤란한데. 지금 용서해 주면 안 돼요?”

“뭘 하려고.”

장난스레 웃는 걸 보니 키스하자거나 좀 전에 하던 것의 진도를 더 빼자는 등의 성적인 발언일 것 같았지만 예의상 물었다.

정당방위였어도 7살 차이 나는 청신에게 손찌검을 한 것이 잘한 일은 아니었으니까.

도유는 청신을 막을 다른 수단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폭력을 사용한 스스로에게 아직도 놀라고 있었다.

예전의 자신이었다면 무방비나 다름없는 청신을 그대로 제압해서 바닥에 내던졌거나, 아티팩트를 사용해서 일시적으로 마비시키고 떨어트렸을 것이다. 하지만 도유가 택한 건 손찌검이었다.

‘설마.’

청신이 느꼈다던 시선을 떠올리고 도유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것도 대답에 따라 하게 해 줄 거예요?”

“헛소리하면 듣는 척도 안 할 테니까 잘 생각해서 말해.”

“질문을 하고 싶었어요.”

“질문? 이상한 거 아니면 해도 돼.”

청신이 제 뺨에 여전히 머무는 도유의 손을 겹쳐 쥐었다.

“도유 형이 김서현에게 그렇게 신경 쓰는 이유는, 그 애와 형이 특수부에 들어오게 됐을 때의 상황이 비슷해서 그런 거죠?”

조금이라도 호기심을 드러냈다면 불쾌해하면서 ‘입 다물어.’라고 단호하게 내뱉었을 텐데.

도유는 청신과 가만히 시선을 맞췄다.

지금의 그는 자신의 말 한마디에 도유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불쾌해할지, 그도 아니면 상처받을지 고민하면서도 조금이라도 도유에게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에 조바심 내고 있었다.

청신의 뺨에 가져다 댔던 손을 내렸다. 그는 아쉬워하면서도 손을 내어 주었다. 도유는 떨린다고 생각했던 심장이, 사실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뛰고 있음을 알았다.

가슴속에 묵직한 열기를 느꼈다. 바로 대답하지 않는 도유를 채근하지도 않고 청신은 가만히 기다리고 있다.

그 모습을 보며 도유는 청신이 자신에게 ‘사랑스럽다’라고 할 때 어떤 기분으로, 어떤 감각을 느끼며 말했는지 알 것 같았다.

지금의 자신이 그 단어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감각을 느끼고 있으니까. 그렇기에 대답했다.

“네 말이 맞아. …서현이의 상황과 내 상황이 다르지만 비슷했으니까. 말이 이상하다는 건 아는데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가 없어.”

청신은 도유가 범법자로부터 받은 마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사형수가 됐던 건 알고 있었지만 자세한 건 알지 못했다.

“범법자는 내게 ‘소원을 이루는 마법’을 줬고, 나는 거기에 소원을 빌었어.”

잠시 말을 끊은 도유는 작게 심호흡을 하고, 말을 이었다.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게 해 달라고 빌었지. 그리고 내 소원은, 부모님이 나를 사랑한 채로 죽는 형태로 이루어졌어.”

청신이 크게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유가 세 번째로 입양된 곳은 평범한 가정이었다. 사랑한 끝에 남녀가 결혼을 했고, 사랑을 나눴다. 그러나 10년을 기다려도 아이는 들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들은 고심 끝에 아이를 입양하기로 했다.

다만 서로 일 때문에 갓난아기를 돌볼 시간이 없었다. 그들에게는 어느 정도 혼자 앞가림이 가능하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아이가 필요했다.

그래서 도유가 선택받았다. 제대로 먹지 못한 탓에 또래보다 훨씬 작고 마른 몸이었지만 어릴 때부터 외모가 눈에 띄고, 모든 검사를 통해 영재라는 도장을 받은 아이였다.

부부는 도유를 마음에 들어 했다. 물론 전부 마음에 들어 한 것은 아니었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반년 전, 동네 도서관에 갔다가 그대로 실종되었던 이 아이가 두 달 전에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이비 교단의 ‘성지’에서 일어난 끔찍한 사건 현장에서 정신을 잃은 채 발견됐다는 사실이었다.

부부는 고민했다. 거기서 무슨 짓을 했을지도 모르고, 당했을지도 모르는 아이를 입양하는 게 ‘잘하는’ 선택인지를.

그들의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이는 실종됐을 때부터 구출되기 전까지의 기억을 말끔하게 잃어버렸기에 겪지 않은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렇게 생각한 부부는 도유를 입양했다.

그리고 도유를 입양한 지 세 달 만에 그들은 10년간 그토록 바랐던 자신들의 피를 이은 ‘자식’을 배 속에 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 소원을 빌었던 거야. 아이가 생겼다는 걸 알게 된 뒤로 내게 관심을 주지 않게 됐거든.”

도유는 씁쓸하게 웃었다. 입양된 직후도 그리 원만한 관계는 아니었다.

그들은 항상 바빴고, 도유를 꾸며서 남들에게 자랑할 때만 관심을 주었다.

배 속에 아기가 들어선 뒤에는 그마저도 사라져 버리고 남의 아이를 보듯, 사소한 것에 화를 내고 질색하며 이따금 체벌로 굶기기도 했지만 그래도 도유는 사랑받고 싶었다.

“난 내가 빈 소원이 이루어지는 형태가 죽음이 될 수 있다는 걸 그때 분명 알고 있었어. 하지만 내 소원은 죽음과 관계없다고 생각했어. 내가 바란 건 부모님의 사랑뿐이었으니까. 거기에 죽음이 끼어들 자리 따윈 없는 줄 알았는데….”

서현도 도유와 비슷했다. 심문 결과, 그 아이도 행복한 꿈을 꾸고 죽음을 얻을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로 이루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꿈.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 어떻게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간단 말인가?

“그래서 내가 서현이에게 더 신경 쓰게 됐나 봐. 아까 전엔 말려 줘서 고마워.”

지금 말하면서 생각해 보니 그때 그대로 뛰어갔으면 현장에 있을 사람들에게, 특히 제2팀의 유량에게 온갖 폭언을 들었을지도 모른다.

폭언 따위야 얼마든지 참아 낼 수 있지만 다른 부서에 소문이 퍼져 나가고 귀찮은 일이 생겼을 게 뻔했다. 도유는 그 짧은 사이에 빠르게 상황을 읽어 낸 청신의 혜안에 감탄했다.

“청신아.”

청신을 본 도유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말하는 내내 도유는 일부러 그를 보지 않았다. 하지만 볼 걸 그랬다고 생각했다.

그는 계속 이런 표정이었던 걸까? 도유는 희게 질린 채로 투명한 눈물을 흘리는 청신의 양 뺨을 조심스럽게 감쌌다.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녹색 눈에 떠오른 감정을 읽는 것이 이토록 어렵게 느껴지는 건 처음이었다.

그건 언뜻 슬픔을 닮았지만 그보다도 더 깊은 곳에 침전된 다른 감정처럼 보였다.

“청신아.”

여전히 대답 없는 청신을 불렀다. 청신은 그제야 정신을 차린 것처럼 도유와 시선을 맞췄다. 도유의 호흡이 가늘게 떨렸다.

흰 종이에 붉은색이 스민 붓으로 그은 듯, 홀로 선명한 존재가 자신을 위해 울고 있다는 사실이 불쾌하지 않았다. 그게 동정이든 아니든 상관없었다.

그래서 도유는 한참이나 저를 보며 눈물을 뚝뚝 흘리는 청신의 얼굴을 감상하듯 바라보고, 이따금 젖은 눈을 직접 손으로 닦아 주며 그의 곁에 있었다.

“…도유 형.”

울어서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에 마음이 쓰인 도유가 물을 가져다주자, 청신은 받아 들기만 하고 마시지는 않았다.

“범법자를 죽이고 싶으세요?”

울음을 그친 청신이 무슨 말을 꺼낼지 예상은 했지만 지금의 질문은 조금 의외였다. 도유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아직은 모르겠어.”

만약 죽이고 싶다고 했다면 청신은 도유를 위해 범법자를 잡아다가 대령했을까? 필시 그랬을 것 같다.

그럼 좋긴 하지만, 범법자가 그리 쉽게 잡히는 존재가 아니고 겨우 찾았다고 생각했던 꼬리도 완전히 놓쳐 버렸다는 걸 알기에 도유는 망상을 하는 대신 솔직한 속내를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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