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괴로움을 견디지 못해 불면증에 시달리고, 약을 먹지 않으면 잠들지 못하는 나날도 있었다. 그런데도 도유는 단 한 번도 특수부에 온 걸 후회하지 않았다.
“팀장님, 저는 결코 후회하지 않습니다.”
다짐하듯 반복된 결연한 목소리에 성희유가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요.”
다행이라거나 고맙다는 말 따위가 아닌 긍정의 말 한마디가 도유에겐 그 어떤 말보다 안도하는 말처럼 들렸다. 그렇기에 마주 웃을 수 있었다.
“어제 보니 청신 씨가 재밌는 일을 하나 꾸미더군요.”
“네?”
갑자기 나온 청신의 이름에 도유는 눈을 끔뻑였다. 동시에 성희유가 ‘재밌다’라는 단어를 사용한 걸 알아차리고 바짝 긴장했다.
그가 ‘재밌다’라는 표현을 사용한 일 중에서는 재밌긴커녕 전혀 재미없는 일이 벌어지기 일쑤였다.
거기에 이 자리에 없는 청신이라는 이름까지 들어가니 훈훈했던 기분이 아침의 첫 서리처럼 차갑게 싸악 내려앉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성희유는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평소엔 재판에 관심도 없던 미친놈을 재판에 가도록 꼬시더라고요.”
“…미친놈이요?”
성희유가 ‘미친놈’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걸 난생처음 들어 본 도유가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네. 카단에서 두 번째로 미친놈일 거예요. 그 미친놈이 저만 보면 죽이려 들어서 구경 갈 수 없는 게 안타깝지만…. 미친놈이 미친 짓 하기엔 좋은 환경이 되었을 테니까요. 다음 주가 굉장히 기대되네요.”
성희유는 그렇게 중얼거리듯 말하더니, 다시 생각하니 더 웃긴지 혼자 큭큭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도유의 눈에는 미친놈이라는 단어가 적합한 또 다른 사람이 제 앞에 있는 것 같았지만, 직장인의 짬밥이 있었기에 입을 꾹 다물었다.
*
마법사 협회 카단의 본부에는 감옥이 없다. 과거에는 감옥이 있었지만 그곳에 있던 수감자 중 하나가 탈출하여 귀가하던 임원을 살해한 이후 사라지고 말았다.
현재는 본부와 떨어진 시외 쪽에 따로 10층짜리 건물을 지어 마법 관련 범죄자를 수용하는 감옥으로 사용했다.
서현은 그 건물의 지상 10층의 감옥에 수용되었다.
‘감옥 같지가 않아.’
서현은 창밖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아이는 이런 풍경을 난생처음 보았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처음으로 타 봤던 차처럼, 이 방의 모든 풍경이 서현에겐 낯설었다.
사람들이 감옥이라 부른 방은 너무나 넓고 예뻤다. 커다란 TV도 있었고 푹신한 침대와 소파가 있었다.
처음 침대에 누웠을 때 서현은 침대가 이렇게 좋은 거라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소파도 마찬가지였다.
침대처럼 누워서 잠을 자도 충분한 푹신하고 긴 길이의 소파였기에 소파와 침대에 번갈아 누워 보기도 했다.
침구만 놀라운 게 아니었다. 서현의 집에는 없는 커다란 냉장고에는 갓 만든 것처럼 맛있어 보이는 음료와 과자, 과일 등이 종류별로 한가득 들어 있었다.
심지어 화장실의 크기가 서현이 할아버지와 살았던 집의 방만 했고, 커다란 욕조도 있었다.
화장실에서는 서현의 집에서 나던 퀴퀴한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오히려 꽃 향을 닮은 기분 좋은 향이 계속 났다.
게다가 규칙적으로 서현을 찾아와 맛있는 식사를 주는 제복을 입은 사람은 서현에게 먹고 싶은 게 없는지, 필요한 게 없는지 꾸준히 물으며 상냥하게 대해 줬다.
서현은 그때마다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모든 게 작아 보이는 좋은 방에 있다 보니 도유 형을 불러 달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아니야. 도유 형은 이 방에 오면 안 돼.’
서현은 곧 있으면 자신이 사형당할 걸 알았다. 아무리 타인이 행복한 꿈을 꾸길 바라며 마법을 사용했다 한들, 사망자가 나왔다.
한두 명도 아니다. 많은 사람이 서현이 사용한 마법으로 인해 원치 않던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으니 자신은 나쁜 아이였다. 그것도 굉장히 나쁜 아이. 사람을 죽인 나쁜 아이는 죽어야 한다고 서현은 생각했다.
도서관에서 많은 책을 읽었고, 할아버지가 그 죽음을 맞이했기에 서현은 사형이 무엇인지, 죽음이 무엇인지 개념을 이해하고 있었다.
카단에서 서현에게 재판까지 일주일이 남은 현재 이렇게 좋은 방을 내어 준 이유도, 카단의 제복을 입은 간수가 올 때마다 자꾸만 먹고 싶은 것, 가지고 싶은 걸 묻는 이유도 사형수에게 베푸는 자비라는 걸 알았다.
먹고 싶은 것, 가지고 싶은 건 예전에는 한가득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서현에게는 아무것도 필요 없었다. 감히 바라지 못했다. 그렇기에 아이는 현재 이 방에 있는 걸로도 충분히 감사하다고만 했다.
사실 마음 같아선 마지막으로 도유와 함께 있고 싶다고 하고 싶었다.
그런데도 말하지 않는 이유는 도유에게 피해가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도유는 좋은 사람이었다. 서현이 만났던 사람들 중에 가장 다정하고 상냥한 사람.
서현은 주머니에서 리본 끈을 꺼내 만지작거렸다. 도유가 저와 처음 만났을 때 줬었던 블루베리콩포트의 뚜껑을 장식하고 있던 리본 끈이었지만, 지금은 서현의 소중한 부적이었다.
이곳에 들어올 때 입고 있던 옷가지는 물론 소지품까지 모조리 압수당했지만 이것만큼은 고집을 부려 가져왔다.
이 리본 끈은 서현의 부적이자, 현실이 꿈이 아니라는 증거다.
도유와 만난 뒤로 서현은 잠깐이나마 꿈을 현실로 바꿨었으니까.
‘그래도 역시, 도유 형 보고 싶다.’
도유가 카단에 서현을 데려다주었을 때, 그는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서현은 푸른색 눈이 어둡게 물들었던 것을 보았다. 그게 너무 슬퍼 보여서 괜찮다고 말해 주고 싶었다. 그때 말해 주지 못한 게 후회스러웠다.
말할 기회가 있을까.
다시 간수가 온다면 말 한마디만 전달해 달라고 부탁해 봐야겠다. 서현이 그렇게 생각했을 때 오롯이 서현의 소리로만 가득했던 공간에 다른 소리가 끼어들었다.
똑똑, 똑.
서현에게 밥을 가져다주는 간수의 노크 소리였다. 때마침 잘 됐다고 생각하며 바로 현관으로 달려가려던 서현은 멈칫하며 시계를 보았다. 오후 4시. 저녁을 가져다주기에는 너무나 이른 시간이다.
혹시 재판이 앞당겨진 것은 아닐까? 마음의 준비를 완전히 끝마치기 전에 문고리가 자동으로 돌아가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애초에 안에서 잠글 수 없는 구조기는 했지만 그래도 간수는 매번 서현의 대답을 기다린 후에 문을 열었다. 그러나 지금은 대답도 하지 않았는데 그냥 문을 열어 버린다.
‘정말 재판이 앞당겨졌나 봐.’
서현이 울먹이며 겁먹은 사이, 문이 열리고 카단의 제복을 입은 간수가 들어왔다.
“간수 아저씨….”
“…….”
간수는 가만히 서현을 보았다. 무표정한 얼굴에 서현은 제게 죽음이 코앞으로 다가왔다고 생각해서 그에게 훌쩍이며 다가갔다.
“재판이 앞당겨진 거죠?”
“음. 서현아?”
간수가 돌연 웃으며 서현을 불렀다. 서현은 눈을 끔뻑이다가 곧바로 뒷걸음질 쳤다. 간수는 그동안 서현이 어린데도 꿋꿋하게 ‘김서현 씨’라고 부르면서 존댓말을 사용해 주었다.
“아저씬 누구세요? 간수 아저씨가 아니야.”
확고한 목소리에 간수가 입술을 달싹이다가 이내 씨익 웃는다. 이윽고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과장되게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 뭐야. 카단의 마법사는 애한테도 빡빡하게 구나 보네. 먼저 호칭부터 캐고 재울걸.”
“누구냐고요…!”
서현은 소리치면서도 방 안으로 도망쳐서 곧장 침대 쪽으로 갔다. 호출 버튼을 누르면 사람이 올라온다고 했던 것을 떠올리고 버튼을 향해 손을 뻗었을 때, 순식간에 가까이 다가온 간수의 모습을 한 이가 턱 하고 아이의 얇은 손목을 잡아 막았다.
“난 무서운 사람이 아냐. 네가 협조만 잘한다면 해를 끼칠 생각이 저어언혀~ 없어.”
“혀, 협조요?”
“응. 여기에, 네가 이번에 사용한 마법을 그려 줘.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완벽하게. 이 간수가 그러던데, 넌 특별한 도구 없이 일반 도구로 범법자의 마법이 발동되는 마법진을 그릴 수 있다며?”
간수의 모습을 한 이, 간수의 정신을 재우고 일시적으로 몸을 지배한 주영연이 밝은 어조로 말하며 제복 주머니에서 펜과 종이를 꺼냈다.
이 방에서 유일하게 없는 것이었다. 카단에서 서현의 능력을 알고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서 필기를 할 수 있는 모든 도구를 치워 버렸고, 반입조차 엄중하게 막은 것을 영연이 간수의 몸으로 건넸다.
“전 이제 그딴 마법진은 그리지 않을 거예요!”
서현이 소리치며 손을 뒤로 숨겼다.
서현에게는 행복한 꿈을 꾸게 만들어 준 마법이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죽음이 된 끔찍한 마법을 두 번 다시 그리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곧 있으면 자신은 재판을 받고 사형을 당하게 될 테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그릴 수 없었다.
“으음. 이거 곤란하네. 난 그게 필요하거든. 원본도, 네가 그려서 제출한 것도 본부에서 철통같이 지키고 있으니까 엄두도 못 내겠어서 그려 달라고 하려고 찾아온 건데 본인이 싫다니.”
“네. 전 무슨 일이 있어도 그리지 않을 거니까 간수 아저씨를 돌-.”
푹!
서현의 눈이 크게 떠졌다. 아이는 난생처음 살이 뚫리는 소리를 들었다. 후두두둑. 붉은 피가 튀었다. 영연은 웃으며 제 팔에 꽂아 넣었던 펜을 빼냈다.
“다음은 어딜 찌를까아아.”
“으, 으으아…!”
“쉿, 서현아. 조용히 해. 이 아저씨가 아저씨 팔이 아니라 서현이 목에 이걸 꽂아 버리면 어쩌려고?”
노래하듯이 쾌활한 어조로 말하며 영연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펜을 던졌다가 받았다. 간수의 팔에서 피가 쏟아지듯 흐른다. 서현은 공포에 질려 주저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