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62)화 (62/159)

#62

“경찰서에…. 같이 가 주세요. 혼자, 가야 하는데, 무서워서, 이번 한 번만 부탁드려요.”

자신이 사용한 범법자의 마법으로 인해 타인이 죽었다는 걸 알게 된 순간, ‘피해자’들의 반응은 둘로 나뉘어졌다.

‘내가 한 일이 아니야!’

‘정말 죽을 줄은 몰랐어!’

‘이런 식으로 될 거라고 알았으면 제가 썼겠어요?!’

죄를 부정하고, 순식간에 사형대 앞에 오르게 된 자신의 삶을 한탄하며 남의 탓을 하는 사람과 지금의 서현처럼 죄를 직시하고 고개를 떨구는 사람들로 나뉘었다.

그들의 나이대와 성별은 다양했다. 서현보다 나이가 많은 고등학생도 있었고 호스피스에 들어간 노인도 있었다.

도유의 경우는 예외였다.

어린 날의 도유는 공포와 슬픔에 젖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울음을 터트렸을 뿐, 죄를 직시하는 것도 남 탓도 하지 못했다.

사랑해 주길 바랐던 부모님이 자기 때문에 죽었다는 것을 명징하게 이해하고 있었으므로, 그 무게부터가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웠기 때문이었다.

겁에 질려 무력하게 우는 어린아이였던 도유와 달리 서현은 창백하게 물든 안색으로 덜덜 떨면서도 분명하게 말했다.

“자백을, 해야 해요.”

투둑. 투명한 눈물이 고요히 흘러내린다.

“네가 입 다물어 달라고 하면 그렇게 할게.”

도유의 말에 청신이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지금 그를 보면 당황한 기색이 역력할 것이 분명했다. 범법자의 마법을 사용한 ‘피해자’를 감싸고 위증을 한 것이 들키면 도유는 이번에야말로 항변할 기회도 없이 곧장 사형이었다.

심지어 도유는 이곳에 서현과 단둘이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옆에 청신이 있다. 마법사 협회 카단의 협회장 송유원의 아들인 이청신 말이다. 그런 그의 앞에서 대놓고 침묵하겠다는 선언은 청신을 무시하는 행동이 될 수 있었다.

그걸 알면서도 도유는 입을 멈출 수 없었다.

“네가 원본은 사용하지 않았으니까, 이걸로 어떻게든, 조작하면 아무도 네가 범인이란 걸 알지 못할 거야.”

현장에서 다양한 경험을 해 온 도유다. 카단의 조사 방법이 어떤지는 누구보다도 더 잘 알았다. 도유는 울렁거리는 속을 애써 진정시켰다. 청신을 보기가 무서웠다. 시선만 던질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청신을 향한 죄책감을 더욱 부추겼다.

도유의 말을 들은 서현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아녜요. 나 때문에 사람이 죽었다면, 나는 가야 해요.”

“…괜찮겠어?”

도유는 질문을 내뱉고 나서 즉시 후회했다. 괜찮기는, 안 괜찮다는 걸 자기가 제일 잘 알면서도 이 무슨 기만적인 질문이란 말인가.

스스로의 질문에 혀를 깨물고 싶은 심정이 됐다. 저와는 달리 의연한 서현의 태도에 무의식중에 질투라도 한 걸지도 모른다.

또다시 밀려오는 자기혐오에 도유가 구역감을 꾹 참을 때, 청신의 손이 도유의 허벅지 위에 올려놓은 손을 건드렸다.

괜찮다고 달래는 것처럼 부드럽게 손가락부터 손등을 쓸어 주고 감싼 뒤 손바닥을 마주해서 깍지를 껴 온다.

평소라면 떨쳐 냈을 손을 이번에는 거부할 수 없었다. 단단하게 잡아 오는 청신의 손이 도유가 어떤 인간이든 이해하고 사랑할 거라는 말처럼 느껴져서 의지하고 싶었다.

“할아버지가 그랬어요. 내가 남에게 피해를 입히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 죽는 건 무섭지만. 죽고 싶지도, 흐끅, 않지만. 나 때문에 이미 사람들이, 죽은 거잖아요.”

새벽, 신문 배달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 서현은 지치고 피곤해 보이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봉사 단체의 사람들이 이웃을 위해 새벽 일찍부터 모여서 열심히 뭔가를 만들고, 나눠 주는 걸 보았다.

그들은 이따금 새벽부터 신문 배달을 하는 서현에게 빵과 우유나 식사를 나눠 줬다.

신문 배달을 하러 간 아파트에서도, 사람들은 배달을 하는 이가 어린애라는 걸 알고 소소한 간식들을 준비해 뒀다가 나눠 주었다.

서현은 이러한 사소한 선의들이 너무나 좋았다. 그들처럼 상냥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렇기에 서현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의 얼굴에 떠오른 짙은 피로가 조금이라도 사라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범법자로부터 받은 마법을 썼다.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얼굴이 너무나 우울하고 슬퍼 보여서 그들이 조금이라도 좋은 꿈을 꾸길 바라며 마법을 썼다.

그리고 그 결과는 그들의 죽음이다.

“나는… 나 때문에…. 나 때문에… 흐으윽….”

오열하기 시작하는 서현을 보며 도유는 참담한 심정으로 청신의 손을 꽉 붙들었다.

행복한 꿈을 꾸게 만들어 주는 마법.

서현은 그것을 동기로 삼아 나아갔지만 다른 이들은 그러지 못했다. 아니, 만약 그들이 서현 또래의, 혹은 그 아래의 아이였다면 그들도 자살을 택하는 대신 삶의 원동력으로 삼아 나아가지 않았을까.

도유는 서현이 차라리 울다가 지쳐서 잠들기를 바랐다. 그리고 자신이 사형수가 되는 순간을, 피해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들으며 죄를 복기하는 그 끔찍한 심판대 위의 위압감과 공포를 느낄 새도 없이 꿈에 잠긴 채 떠나가길 바랐다.

하지만 서현은 곧 울음을 그쳤고, 도유와 청신은 서현을 카단으로 데려갔다.

*

카단에 꿈 사건과 관련된 ‘피해자’로서 서현을 데리고 오자 이 사건을 맡았던 제2팀과 조사부 제1팀은 발칵 뒤집혔다. 도유는 서현의 취조를 비롯한 과정을 직접 보고 싶다고 의사를 밝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도유 씨가 참관하는 걸 제2팀에서 강하게 안 된다고 밀어붙였더군요. 음, 제2팀이라고 하기엔 어폐가 있군요. 밀어붙인 건 유량 씨뿐이니.”

성희유가 음울한 얼굴로 앉아 있는 도유를 보다 못해 말해 주자 도유의 얼굴이 한층 더 무거워졌다.

다음 주면 서현의 재판이 열린다. 참여하는 건 협회장을 비롯한 이사회 전원과 각 부서에서 희망하는 팀장급 이상뿐이었다.

도유는 재판에 참여할 수는 없어도 참관은 가능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메인을 맡은 제2팀의 량이 도유가 서현을 데려왔기 때문에 위증이든 도주의 위험이든 뭐든 있다고 우기면서 참관도 막았다 한다.

량이 둘러댄 ‘이유’가 그럴싸해서 이번 사건의 재판 참관은 빠지라는 명령이 왔지만, 실제로는 량이 이사회의 임원 중 한 명과 연줄이 있는 걸 아는 도유는 그 임원의 입김이 닿았다는 걸 너무나 잘 알았다.

“이거나 먹어요.”

성희유가 도유에게 잼을 잔뜩 바른 식빵을 내밀었다.

“괜찮습니다.”

도유는 거절했다. 서현에 대한 걱정 때문에 먹을 생각이 들지 않는 건 둘째 치고, 상사가 손수 사 온 빵과 잼을 직접 썰고 잼까지 발라 건네주니 한 입 먹는 순간 체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성희유는 미련 없이 제가 내밀었던 식빵을 먹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식빵을 야금야금 먹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귀엽고 그 나이대 같았지만 속에 든 건 나이를 알 수 없는, 이 카단에서 최소 20년 이상은 굴렀을 성인이다.

“팀장님께서는 재판의 결과가 어떻게 될 거라 생각하십니까.”

“사형이죠.”

일말의 망설임 없는 대답에 도유가 머뭇거리며 물었다.

“서현이에겐 일반 종이와 펜으로 마법식을 새기면 자연의 마력을 끌어와 그것을 바로 발동시킬 수 있는 특별한 힘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형이란 말입니까?”

“테스트를 해 보니 사용하기 까다로운 능력이라서요. 게다가 주변에 마력이 충만해야 한다는 조건도 있고요. 무엇보다 범법자의 마법처럼 마법식에 순환과 증폭식을 사용한 게 아니면 영향을 미치는 마법을 구현해 내는 게 어려우니 있으나 마나죠. 본인이 수식을 만들 수도 없고. 서현 씨는 특수부에 들어올 수 없어요.”

잠시 말을 멈춘 성희유는 초코우유를 한 모금 마신 후 도유에게 물었다.

“도유 씨는 서현 씨가 특수부에 들어오길 바라요?”

“아니오, 그건 아닙니다.”

도유는 서현이 견딜 수 없을 거라 확신했다.

서현의 성격에는 차라리 사형을 당하는 것이 나았다. 이 부서에 들어온 뒤에 하는 일은 대부분이 인간이 맨정신으로 견디지 못할 일들뿐이었으니까.

서현은 심성이 착한 아이다. 도유와는 달리, 너무나 착하고 상냥한 아이라 이 부서에 들어오면 첫 임무에서 죽을 것이다. 혹시라도 운 좋게 살아남아 버틴다 해도 정신이 버티지 못하고 무너질 것임을 알았기에 사형당하는 게 낫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

앉아 있는 도유는 제 앞에 다가온 성희유의 모습에 멈칫했다. 성희유가 손을 뻗어 도유의 뺨에 손을 가져다 댔다.

“특수부에 들어온 걸 후회하나요? 차라리 사형을 당하는 게 나았다고 생각해요?”

성희유의 목소리는 온화했다. 도유를 응시하는 주홍색 눈은 어떤 대답을 한다 한들 다 포용할 거라는 듯이 목소리만큼이나 따듯하게 빛났다.

도유의 입술이 달싹였다. 뺨에 닿은 성희유의 손을 감싸 쥐었다.

어렸을 때 이 손을 잡고 카단으로 들어왔던 것을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몇 번이고 현장에서 죽을 뻔한 도유를 살리고 이끌어 줬던 손이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성희유는 과거에 박제당한 듯 그날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도유는 분명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후회하지 않습니다.”

특수부에 들어와 하게 된 임무는 대부분이 괴로운 일투성이였다.

반드시 죽는 사람이 나왔다. 적이 죽을 때도 있었고 도유의 옆에 있던 동료일 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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