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60)화 (60/159)

#60

이천의 뒤에 베일처럼 반투명한 빛이 모여들었다. 이윽고 사람의 형태를 한 그것은 이천을 뒤에서 보듬듯이 끌어안았다.

“그렇다면 왜 제게 따로 조사를 맡기신 거죠?”

“관점이 다르니까.”

창연이 손을 뻗자 이천을 안고 있던 투명한 형태가 그의 손끝에 연기처럼 스며들었다. 그는 잠시 눈을 감고 있다가 이내 천천히 떴다.

“음, 역시 이쪽도 소득이 없네. 이번 사건은 정말 이상해. 범법자의 마법이 분명한데,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수법을 바꿀 리가 없는데.”

서서히 생각에 잠기는 창연의 모습에 이천은 입을 다물고 무심한 눈으로 창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새파랗게 물든 하늘을 보며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피해자’가 잡히든 말든, 이 이상 사망자만 더 나오지 않으면 된다고.

*

“도유 형!”

도유가 서현을 다시 만난 건 마지막으로 봤던 날로부터 한 달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초등학교 검정고시와 내년 초에 있을 이카루스 아카데미 청소년반에 지원하기 위해 매일같이 공부에 몰두하고 있다는 걸 들었던 도유는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밝은 서현의 표정을 보고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서현아. 잘 지냈어?”

“형 덕분에요!”

얼마나 반가웠는지, 서현이 도유의 품에 와락 안겨 왔다. 잔뜩 들뜬 표정에 도유는 차마 밀어 내지 못하고 가볍게 서현을 토닥여 주었다. 제 옆에 있던 이가 묘한 표정으로 눈을 흘기는 걸 보았지만 못 본 척했다.

“형 덕분에 하고 싶었던 공부도 시작했어요. 아! 얼마 전에 선생님께 마법 기초-속성 입문편 책도 선물받았어요! 그거랑 마법식 개론이랑, 또-.”

“서현아, 알았어. 그런데 일단 어디 들어가서 이야기하는 게 어때? 날이 더우니까.”

“아, 네! 그런데 도유 형. 옆에 예쁜 형은 누구예요…?”

서현이 도유의 옆에 버티듯 서 있는 청신을 보며 물었다. 오늘 서현과 만난다고 하니 저도 가겠다며 끈질기게 달라붙은 청신은 저를 올려다보는 호기심 어린 눈을 보며 생긋 웃으며 대답했다.

“난 도유 형의 애-.”

“아는 동생이야. 이름은 이청신, 25살이니까 얘도 형이라고 부르면 돼, 서현아.”

이럴 줄 알았다. 대비해 두고 있던 탓에 도유는 칼같이 청신의 말을 끊어 버릴 수 있었다. 청신이 음울하게 눈을 번뜩이는 걸 봤지만 무시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서현은 청신과 도유를 번갈아 보더니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청신이 눈빛이나 입 모양으로 서현에게 협박이라도 한 건가 싶어서 도유가 청신을 흘끗 본 순간 서현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도유 형, 어서 가요.”

서현이 비어 있던 도유의 손을 꼭 잡아당겼다. 도유는 청신에게 눈빛으로 ‘애니까 질투하지 마라.’라는 뜻을 담아 열심히 눈을 깜빡인 뒤, 미리 봐 뒀던 카페로 걸음을 옮겼다.

칸막이로 나뉘어 있는 형태의 카페는 생각보다 사람이 없었다. 청신을 데리고 다니면 온갖 사람들의 시선이 쏟아졌기에 도유는 내심 안도했다.

아무리 도유가 인상을 흐릿하게 만드는 뿔테 안경을 쓰고 다녀도, 청신은 보란 듯이 다녔다.

그게 당연한 거긴 했지만 청신을 범법자로 오해했을 때 그의 뒤를 밟았던 도유로서는 어이가 없었다. 그때의 그는 사람들의 눈에 띄는 게 싫다면서 투영 마법을 사용하면서 돌아다녔으니까.

‘그야 도유 형이 내 사람이라는 걸 떳떳하게 드러내기 위한 거죠. 형처럼 예쁜 사람은 언제든 벌레가 달라붙잖아요.’

‘…그럼 너도 벌레야?’

지난번에 나눴던 대화가 떠오른 도유는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지는 의미심장한 웃음으로 화답했던 청신의 얼굴을 떠올리고 브런치 세트를 먹는 서현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서현이 도유에게 보답으로 꼭 주고 싶은 게 있다면서 연락이 왔을 때부터 고민을 거듭하여 고른 장소였다.

도유는 15살짜리 아이가 뭘 좋아하는지 몰랐다. 주변에 어린아이가 없는 환경에서 자라 왔고, 15살의 서도유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알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나마 성희유 덕에 자신이 단것을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지만, 도유는 단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제법 많다는 걸 알았기에 무턱대고 서현에게 강요할 순 없었다.

그렇기에 성인이 아닌 15살 아이를 데려갈 장소를 고르는 일이 난제처럼 느껴졌다.

물론, 겉모습은 9살 정도 되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한 직장 상사가 본부에 있었지만 성희유에게 ‘요즘 15살짜리 애들은 뭘 좋아하는지 아십니까?’라고 질문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질문을 한 순간 ‘도유 씨는 제가 아이처럼 보이시나 봐요?’ 하는 온화한 답변을 빙자한, ‘죽고 싶으신가 봐요.’ 하는 질문을 고스란히 담은 살벌한 웃음이 돌아올 게 뻔했기에 말도 못 꺼냈다.

“맛있어?”

“네! 맛있어요!”

인터넷을 뒤적거리며 서현이 좋아할 법한 음식들을 찾고 찾다가, 식사부터 케이크나 파르페 같은 디저트류까지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브런치 카페에 데려온 것인데 다행히 반응이 좋다.

안도하며 웃던 도유는 제 몫으로 나온 캐러멜 시럽이 잔뜩 들어간 음료와 케이크를 한 입씩 먹은 후, 제 옆에 딱 붙은 청신을 보았다.

청신은 우아한 손길로 오믈렛을 조금씩 썰어 먹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야밤에 루프탑에서 커피가 아니라 와인 잔을 두고 스테이크를 썰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도유는 못마땅하게 청신을 보았다. 전부터 생각했지만 역시 너무 조금씩 적게 먹는다. 그나마 청신이 많이 먹던 때는 도유가 반강제로 꿀떡을 먹여 주었을 때뿐이다.

“청신아,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더 시켜.”

서현이 아니라 제게 이런 권유를 할 줄은 몰랐는지, 청신이 녹색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눈웃음쳤다.

“잠시 귀 좀 빌려주시겠어요?”

서현의 앞에서 하지 못할 말인가 싶어서 순순히 고개를 기울여 주니 청신이 매혹적인 목소리로 속삭였다.

“제가 먹고 싶은 건 형밖에 없어요.”

도유는 청신의 말을 귓등으로 흘리며 캐러멜 음료를 쭉 빨아 먹었다. 스트레스에는 역시 당분이 최고라고 생각하면서 거의 빈 서현의 접시를 보고 물었다.

“서현아, 더 먹을래?”

“이제 배불러요! 그보다 도유 형, 줄 거 있어요!”

서현이 포크를 내려놓고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도유 형 덕분에 저 이제 학교도 다닐 수 있고, 친구도 사귈 수 있고, 제 이름으로 책도 빌릴 수 있게 됐어요. 저 학교에 가는 게 소원이었거든요.”

구깃구깃한 종이를 꺼내 반듯하게 펴며 서현은 기쁨이 고스란히 드러난 홍조 어린 얼굴로 방긋 웃었다.

식당 앞에서 처음 만났을 때, 마르고 어두웠던 서현이 지금처럼 적당히 살도 오르고 밝아진 모습에 도유가 흡족해할 때, 손으로 종이를 열심히 반듯하게 편 서현이 도유에게 종이를 내밀었다.

“이거 형 줄게요. 이걸 찢으면 도유 형이랑 도유 형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행복한 꿈을 꿀 수 있대요. 진짜예요! 저도 이걸로 엄마랑 아빠랑 할아버지랑 사는 꿈도 꾸고, 학교에 가는 꿈도 꿨어요!”

어린아이들 사이에서 어떤 미신이라도 도는 걸까. 어쨌든 이런 미신에 기대어 하루하루 살아왔을 서현의 꿈이 이제는 현실로 이루어질 수 있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도유가 종이를 받아들었다.

“내 꿈은 도유 형이 이뤄 줬으니까 나한텐 이제 필요 없어요.”

접힌 자국이 잔뜩 나 있어서, 처음에는 별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점점 종이에 그려진 마법진을 보고, 그 안에 들어간 마법식을 이해하기 시작한 순간 도유의 표정이 굳었다.

“…도유 형. 잠시 실례할게요.”

옆에서 함께 종이를 보고 있던 청신의 목소리와, 그가 떨리는 제 손을 테이블 아래로 감추도록 누르는 손길에 도유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

“제, 제 선물… 별로예요…?”

도유의 심상찮은 반응에 서현이 겁에 질린 얼굴로 물었다.

도유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형용할 수 없는 기분에 울화가 치밀었다. 어째서. 하필. 머릿속에서 수없이 같은 질문을 반복했으나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이 무슨 장난이란 말인가.

서현이 도유에게 준 것은 범법자의 마법이었다.

그간의 경험을 통해 도유는 그동안 카단에서 찾았던 꿈 사건의 ‘피해자’가 바로 이 아이라는 걸 눈치챘다. 도유는 무너지려는 표정에 힘을 주며 입술을 깨물었다.

범법자의 마법을 사용한 ‘피해자’는 사형당한다.

범법자가 마법을 줄 때, 그가 준 마법을 사용할 경우 일어날 수 있는 죽음을 고지하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사람들이 죽지 않았을 것임을, 아무 일 없이 평화를 이어 나갔을 것을 알고도 마법을 사용해 무고한 사람들을 죽게 만들었기에 그 죄로써 사형을 선고 받았다.

12살의 서도유의 기억은 온전치 않다. 길게 자른 종이를 잘라 이어 붙인 것처럼 어느 날의 기억이 끊겼다가 사라져 있었다.

그렇기에 도유는 어디에서 언제, 범법자에게 어떤 식으로 그의 마법을 받았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병원에서 눈을 떴을 때 도유의 손에는 범법자의 마법을 바로 발동할 수 있는 마법진이 그려진 종이가 있었다.

도유는 자신이 어쩌다 다쳤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나 종이에 대해서는 어렴풋이 기억했다.

‘이 종이를 찢으면 소원을 이룰 수 있지만, 소원이 이루어지는 형태가 죽음일 수도 있어.’

누군가가 소리 없는 목소리로 속삭인 것처럼 떠오르는 말. 죽음이라는 단어는 무서웠지만 당시의 어린 도유는 세 번째로 자신을 입양해 준 양부모님이 자기를 사랑해 주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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