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부디 오늘도 무사히 살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도유가 베이커리에 도착했을 때였다. 도유는 베이커리 앞에 서 있는 익숙한 얼굴을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
가게 앞에 선 채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서현이 도유를 발견하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가, 활짝 웃으며 도유에게로 뛰어왔다.
“형, 도유 형!”
“오랜만이야. 혹시 날 기다리고 있던 거야?”
“네! 형이 저번에 준 빵이 여기 거길래, 매일 기다렸어요.”
“내가 연락처 줬잖아. 전화하지 않고.”
서현에게 연락처를 준 뒤 도유는 매일 이 아이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을까 기대하며 핸드폰을 확인했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연락이 오지 않았기에 빵으로 끼니를 대충 때우는 건가 하고 걱정하고 있었다.
“현금이 없었어서…. 그래도 오늘 신문 배달 알바비 받았어요. 이제 전화할 수 있으니까 다음부턴 전화할게요.”
공중전화를 사용해서 연락을 하겠다는 뜻이다. 잠시 고민하던 도유는 일단 서현에게 물었다.
“서현아. 혹시 식사했니?”
“도유 형이랑 같이 먹으려고 안 먹고 기다렸어요. 지난번에 형이 사 줬으니까 이번에 내가 사 줄 거예요.”
의지로 반짝이는 눈이 서현이 얼마나 이 순간을 기다렸는지 보였지만, 도유는 서현의 마음을 짓밟는 것임을 알면서도 단호하게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마음만 받을게. 미성년자는 성인한테 밥 사는 거 아니야.”
“저 다 컸어요. 할아버지가 이제 다 컸다고 했는걸요.”
“으음. 그렇긴 하지. 그래도 이번에는 네게 할 말도 있어서 좀 멀리 가야 하니까, 내가 사게 해 줘.”
“할 말이요? 멀리?”
“응. 형이 맛있는 식당을 아는데 여기서 좀 걸리거든. 차 타고 가야 해.”
그래서 차도 가져왔다. 오늘 이곳에 온 것은 빵도 목적이었지만 서현을 위해 그동안 도유가 자립 센터를 비롯한 각 기관에 상담받았던 내용을 권유해 보기 위해서였다.
“저 살찌워서 납치하는 거예요?”
“어? 아니야.”
“할아버지가 그랬어요. 납치범들이 살찌워서 차에 태워서 납치해 가지고 바다 건너편에 팔아 버린다고.”
“그런 놈도 분명 있긴 있어.”
도유의 대답에 서현의 눈이 크게 흔들린다. 뒷걸음질까지 치는 게 겁먹은 기색이 완연하다. 도유는 실수했다는 걸 깨닫고 서현을 달래려고 했다. 그러나 그것보다 서현이 웃음을 터트리는 게 빨랐다.
“형은 그럴 것 같지 않으니까 따라가 볼래요. 차 타 본 건 한 번뿐이지만.”
“그래도 괜찮겠어?”
“형은 좋은 사람 같거든요. 저한테 밥 사 줘서 그런 게 아니라, 뭔가 다른 사람들이랑도 다르고, 할아버지랑은 다른데… 으으음. 느낌이 다른데. 정확히 뭔지 모르겠어요.”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지 서현이 고개를 갸웃갸웃하며 고민한다. 도유는 서현이 말하는 ‘다른 느낌’이 뭔지 알아차렸다.
도유보다는 아니지만 서현도 일반인보다 마나 감응력이 높기 때문에 도유의 주변에 몰려 있는 자연계의 마력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특히 도유의 주변에는 서현보다 더 밀도가 촘촘하고 높은 마력이 머물렀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서현이 처음부터 도유를 따랐던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이제야 들었다. 도유는 이걸 좋게 생각해야 할지 말지 고민하다가 지난번에 봤을 때보다 더 비쩍 마른 서현을 먹이는 게 먼저라는 걸 깨닫고는 말했다.
“난 알 거 같아. 괜찮다면 식사하면서 이야기해 줄게.”
“좋아요!”
“혹시 네가 나와 함께 간다고 말해 둘 사람 있니?”
“꼭 그래야 해요?”
“어른과 단둘이 어딘가에 가야 할 때, 만약의 경우에 신고해 줄 동네 지인이나 친인척에게 말해 두는 게 좋거든.”
“도유 형을 신고해요?”
“내가 정말 못된 납치범이든 아니든, 서현이 넌 보호받아야 할 나이니까 최대한 안전을 고려해 두는 게 좋지.”
서현은 도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기색이 역력했으나,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저기 모퉁이 돌면 슈퍼 아줌마 있어요. 아줌마가 가끔 저한테 밥이랑 과자 주시니까…. 말씀드려도 될 거 같아요.”
“좋아. 그럼 잠시 들렀다 가자.”
손을 내밀자 서현이 물끄러미 바라본다. 마치 생소한 행동을 본 사람과 같은 서현의 반응에 도유는 어째서 서현에게 자꾸 신경이 쓰였던 것인지 깨달았다.
‘도유가 또 파양당했네….’
‘이번이 두 번째지? 어떡하나…. 이젠 나이가 들어서 입양도 어려울 텐데.’
‘쟤 생긴 게 잘생기고 똑똑하다고 데려가 놓고, 한두 달 키우면 꼭 다들 똑같은 소리 하면서 데려오더라. 느낌이 이상하다고. 인간 같지가 않다고. 저 애, 귀신이라도 씐 거 아냐?’
도유는 지금도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고아원 사람들이 저를 향해 쑥덕이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말이 맞는다는 것도 알았다.
어린 도유는 사랑받는 아이가 되고자 떼쓰지 않고 울지 않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웃으며 하란 대로 했다. 사랑받기 위해 도서관에 다니며 꾸준히 공부도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처음엔 도유를 예뻐하다가 점점 두려움에 사로잡혀 다시 고아원에 데려다 놓고 사라지길 반복했다.
‘아, 빌어먹을. 그렇구나.’
그렇게 고아원에서 살 때의 제 모습과 너무나 겹쳐 보였기 때문에, 서현이 외로워 보였기 때문에 챙겨 주고 싶었던 것이다.
도유와 서현의 외로움의 원인은 달랐지만 근본은 같았다. 그걸 알았기 때문에 서현에게 자꾸 눈길이 갔던 거였다.
그것을 깨닫자 스스로의 졸렬함에 혐오감을 느꼈다. 밀려오는 구역감을 턱에 힘을 주어 버텼다. 서현이 알아차릴까 봐 금세 힘을 풀었지만, 속에서는 자기혐오가 들끓어 올랐다.
사랑과 관심을 요구하는 서현의 눈을 통해 어린 자신을 비춰 보면서 자신은 지금, 서현을 돕는 것으로 제 어린 날 채우지 못했던 욕구를 대신 채우려고 하는 게 아닐까?
최악이다. 도유는 서현이 제대로 된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되면 곧바로 연락을 끊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마음으로 이 애를 대하는 건 기만이다.
순수하게 걱정해서가 아니라, 과거의 자신을 위한 행동이면 끊어 내는 게 옳았다.
“헤헤. 저 할아버지 말고 다른 사람이랑 손잡는 거 처음이에요.”
부끄러운 듯이 방긋 웃으며 제 손을 잡아 오는 서현의 만면에 기쁨이 가득했다. 티 없는 웃음을 보며 도유는 더욱 제 결심을 굳혔다.
*
“도유 형. 요즘 저 말고 다른 놈 만나요?”
갑작스러운 헛소리에 도유는 그의 말을 무시하고 오늘 행정실에서 받아 온 안내 책자를 읽기 시작했다. 시선조차 주지 않는 도유의 매정함에 상처받은 청신이 슬쩍 도유 옆으로 자리를 옮기자 도유가 말했다.
“청신아, 떨어져. 손.”
“이렇게 예쁜 제가 있는데 저 안 봐 줄 거예요?”
도유는 제 몸을 꽉 끌어안아 오며 거머리처럼 달라붙는 청신을 밀어 낼까 하다가 그만뒀다. 지금은 청신에게 집중할 때가 아니었다.
청신은 도유의 무반응에 부루퉁한 표정을 지었다.
평소라면 이렇게 매달렸을 때 신발에 달라붙은 껌 떼어 놓듯 인상을 팍 찡그리며 매정하게 밀어 냈을 도유다.
그러나 지금은 고작 책자 하나에 집중해서는 제게 눈길도 주지 않는다.
제 미모가 이제 도유의 눈에 너무 익숙해져서 면역이 되어 버린 건가 하고 심각하게 고민을 하며 청신은 도유가 손에 든 책자를 슥 빼내 갔다.
“야.”
“다 읽은 거 다 봤어요.”
“다시 읽어 보는 거야. 내놔.”
“이건 왜 읽어요? 이카루스 아카데미 청소년반 입학 과정은 도유 형과 관련이….”
돌연 청신이 입을 다물었다. 도유가 의문을 느끼기도 전에 청신이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도유의 손을 꽉 잡았다.
도유는 본능적으로 이 녀석이 엄청난 오해를 했다는 걸 깨달았다. 점점 흉흉해지는 녹색 눈을 보고 있자니 모를 수가 없었다.
“이청신, 미리 말하지만 나에게 숨겨 둔 자식 같은 건 없어.”
“알아요.”
확신하는 어조에 당황한 건 도유였다.
그는 저도 모르게 되물었다.
“네가 어떻게 알아?”
질문을 하면서도 몸은 긴장으로 뻣뻣해졌다. 청신이 자신에 대해 뒷조사를 했으리란 건 예상했지만, 숨겨 둔 애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깊이 있게 조사한 거면 카단에서 지웠던 정보도 다 열람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제가 아무리 도유 형을 사랑한다 해도, 임자 있는 유부남에게 껄떡거리는 쓰레기는 아니라서요.”
솔직히 청신이라면 임자가 있든 말든 제 미모 등등을 이용해서 당당하게 뺏겠다고 선언할 줄 알았던 도유는, 예상을 뛰어넘는 양심적인 말에 당황하고 말았다. 이놈에게도 양심이란 것이 있었구나. 하고 속으로 감탄하던 중, 청신이 말했다.
“형이 여기에 잠입하려는 거죠?”
“뭐?”
“놀란 척해도 상관없어요. 사람의 육체를 어릴 때로 바꾸는 건 어려운 마법이지만, 저 같은 천재는 가능하니까 제가 기꺼이 해 드리죠. 17살로 잠입하나요? 아님 16살? 몇 살로 잠입하든 도유 형은 굉장히 멋지고 예쁜 사람이니까 껄떡이는 놈이 분명 있을 테니 호신용 아티팩트를…. 아니, 아니에요. 안 되겠어요. 저도 같이 잠입하죠.”
어떤 식으로 생각하면 저런 방향으로 생각이 튀는 걸까? 도유는 순수한 의문을 품었다. 동시에 이런 독특한(?) 사고를 하니 청신이 더 뛰어난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며 도유는 일갈하듯 단호하게 말했다.
“잠입을 위해서가 아니야. 아는 애가 들어갈 수 있을지 보고 있었을 뿐이니까 꿈 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