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57)화 (57/159)

#57

청신은 어째서인지 생각에 잠겨 있는 도유의 얼굴을 그림을 감상하듯 나른하게 바라보며 입술을 핥았다.

지금 생각에 골몰한 상태니 슬쩍 뺨에 입을 맞추고 턱선부터 귓가까지 길게 핥고 싶었다.

움찔하는 도유의 뺨을 붙잡고 귓불을 잘근잘근 깨물다가, 놀라서 벌어진 입에 깊이 혀를 묻으면 얼마나 귀여운 반응을 할까? 상상만 해도 아랫배가 뻐근해졌다.

“청신아.”

“…네, 형.”

최면에서 깨어난 듯, 귓가에 스미는 도유의 목소리에 청신이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도유는 어느덧 청신을 보고 있었다.

“혹시 나중에라도 내 의뢰도 받아 줄 수 있어?”

“지금 당장도 가능해요. 그리고 의뢰라뇨. 우리 사이에 삭막하게. 형이 원하는 걸 말해 주세요. 그게 뭐든 만들어 줄 수 있고, 형이 바라는 대로 행할 자신 있어요.”

청신은 그렇게 말하며 도유의 한 손을 양손으로 꼭 잡았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사랑에 빠진 이보다는 광신도가 신을 보는 눈빛처럼 느껴질 정도의 끈적한 동시에 사람의 본능을 섬뜩하게 만드는 모습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도유는 청신의 헌신적인 발언에 기뻐하긴커녕 눈살을 찌푸렸다.

“청신아. 내가 전부터 이 말을 하려다가 말았는데 안 되겠다.”

갑자기 화가 난 듯한 도유의 어조에 청신은 눈을 껌뻑였다.

“네?”

“졸업 작품 때문에 계약서를 작성할 때도 그렇고, 넌 노동법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 같아. 네 나이가 아무리 성인이라 해도 일단은 아카데미 소속이면 학생이야.”

“…네?”

“학생은 하루 8시간씩 일하면 노동법에 걸려. 그리고 너와 같이 뛰어난 마법사가 만드는 아티팩트는-.”

그렇게 도유는 청신을 붙들고 노동법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청신은 조곤조곤한 어조로, 대체 왜 외우고 있는지 의문인 노동법을 몇 가지 읊어 준 뒤,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하는 도유를 보았다.

그는 청신이 제공한 노동력과 그에 따른 시간 계산법, 급여 계산법 등등까지 설명하고, 무급 노동이 얼마나 학생에게 좋지 않은 건지를 설명하며 하나하나 제대로 이해했는지 질문을 던졌다.

청신은 도유를 사랑한다. 그가 어떤 말을 하든 언제까지고 카나리아의 노랫소리처럼 아름답고 귓가에 기분 좋게 느껴질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지금까지 그랬다. 도유의 목소리는 어떤 때이든 청신의 심장을 설레게 만들고 행복을 자아냈다. 그렇기에 청신은 절대로 도유의 말을 가로채거나 끊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어쩔 수 없다. 도유에게 이쁨받기 위해서 그가 관심 있을 법한 것들은 전부 머릿속에 욱여넣었던 청신이다.

그때는 도유가 노동법에 관심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에 지금 좀 당황스러웠지만, 일단 이 대화를 이어 나가고 싶지 않았다.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가 아니다. 도유가 열심히 설명하고 말하는 모습도 귀여워서 당장 눕혀 놓고 ‘그럼 선생님, 침대 위에서 가르쳐 주시겠어요?’ 하는 플레이 같은 것도 해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한 충동을 억누르고 도유의 말을 끊어야 했다. 더 중요한 일이 생겼으니까.

“도유 형.”

“응, 여기까지 질문 있어?”

질문이라 생각했는지 목소리 톤이 높아지고 푸른 눈을 동그랗게 뜬다.

너드 분장 때문에 쓴 저 빌어먹을 뿔테 안경만 아니었어도 어여쁜 눈을 더 가까이 보고 쪽쪽거렸을 텐데.

청신은 속으로만 아쉬워하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도유 형이 상세하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셔서 질문은 없어요. 노동법에 대해선 이제 충분히 알았고, 도유 형 의뢰라고 해서 무료로 해 주거나 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마세요.”

“정말?”

“그럼요. 형, 이것보다 중요한 일이 있으니까 빨리 일어나죠.”

“중요한 일?”

청신이 도유를 반쯤 끌어안고 일어서니 자연히 도유도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도유가 다시 앉지 못하게 허리를 꽉 붙들어 안았다.

여유가 사라지고 진지한 표정이 된 청신을 본 도유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윽고 놀람은 걱정으로 바뀌었다.

갑자기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밖에 범법자라도 나타났나? 아님, 본부에서 뭔가 청신에게 긴급 호출을 넣었나? 하고 도유가 혼란스러워하는 사이, 청신이 비장하게 말했다.

“벌써 점심시간이에요. 밥 먹으러 가야죠.”

‘우리 도유 형 밥 먹여야 해.’ 하는 의지가 청신의 녹색 눈에 번뜩이고 있었다.

안 그래도 요즘 일이 바빠서 그런지 도유의 체중이 줄어들었다. 틈이 날 때마다 도유를 껴안고 주무른 덕분에 알 수 있었다.

이대로 도유가 살이 많이 빠지고, 근육까지 빠져서 체력이 약해지게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신혼이 코앞이었으니까.

그동안 청신은 도유가 제 얼굴을 좋아한다는 건 알았지만, 이청신이라는 존재 자체를 좋아한다는 것에는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바로 지난주에 도유가 제 입으로 - 지인으로서 - 좋아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청신은 도유가 바라는 것이 뭔지 잘 알고, 그것을 본인도 모르게 채워 주고 있었기에 확신했다.

조만간 도유와 이어질 수 있다고.

단둘이서 함께 알콩달콩 오래 살아가려면 꾸준한 식사와 체력 관리가 최우선이었다. 그렇기에 청신은 도유가 황당해하거나 말거나 꿋꿋하게 연구실 밖으로 도유를 데리고 나갔다.

청신의 생각을 전혀 짐작할 수 없는 도유는 측은한 눈빛으로 그를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얘가 배가 많이 고팠나 보네.’

*

일주일이 흘러 다시 주말이 왔다.

그사이 수사에도 진전이 있었다. 꿈에서 본 곳에 가기 위해 죽음을 택한 이들이 언제 어디에서 범법자의 마법에 걸린 것인지 알 수 있는 장소가 특정된 것이다.

이는 조사부 제1팀에서 범법자의 마법에 휘말려 죽을 뻔한 조사관이 이를 악물고 찾아낸 덕분이었다.

‘심지어 마법으로 알아낸 것도 아니에요. 피해자들이 지나갔던 곳, 갔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의 CCTV를 모두 받아 와서 수십 대의 모니터에 틀어 놓고 눈으로 확인해 알아낸 거더군요. 과학의, 아니 인간의 힘이죠.’

‘그런 유의 정보를 수집해야 하는 거였다면 정보부에 맡기면 됐을 텐데.’ 하고 덧붙이며 성희유는 이런 사람이야말로 인재라며 비꼬는 건지 칭찬하는 건지 모를 미묘한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러고는 도유에게 ‘범법자 수사는 어떻게 되고 있죠?’라고 묻는 것도 잊지 않았다.

도유는 그때 아무런 답변도 못 했다. 성희유가 이해한다며 평소와 다르게 응원의 말도 해 주었지만 그게 더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내가 하는 수사에는 진전이 전혀 없네.’

지난 일주일간 도유는 범법자를 찾기 위해 틈틈이 아카데미를 수색했다. 하지만 아카데미는 축제를 앞두고 굉장히 평화롭고 사람이 협동하며 사는 아름다운 풍경을 그려 내고 있었고, 도유는 거기 섞일 수 없는 이상한 너드일 뿐이었다.

이러다 올해 안으로 범법자를 찾지 못하면, 도유를 볼 때마다 자기 연구실에서 차라도 마시고 가라는 교수에게 자발적으로 잡혀가야 할지도 모른다.

가급적이면 그 선택지는 고르고 싶지 않았다. 처음에는 내심 좋은 게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엊그제 마주친 한 존재에 의해 그 생각을 고칠 수밖에 없었다.

도유는 엊그제, 일주일 후에 있을 졸업 작품 관련 1차 발표 때문에 교수실에 찾아갔다가 ‘교수에게 잡혀갈 경우’의 산증인을 우연히 교수실에서 마주쳤다.

그는 교수에게서 도유의 이야기를 들었는지, 교수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도유에게 성큼성큼 다가와 이렇게 속삭였다.

‘지옥. 도망쳐. 넌 살아.’

굉장히 슬픈 눈으로 도유를 보고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이기까지 했다. 도유는 사람의 눈 밑에 다크서클이 그렇게 길게 내려올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도유에게 경고인지 살려 달라는 메시지인지 알 수 없는 말을 남긴 산증인은 흐물거리는 걸음으로 교수실을 떠나면서도, 마지막까지 교수의 눈을 피해 손가락으로 도망치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그때 도유는 절대 교수의 밑으로 제 발로 걸어가는 행동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다만 그렇게 되면 선택지가 거의 없었다. 지금 만드는 졸업 작품의 완성도가 뛰어나니 이걸로 졸업을 하지 못할 리가 없다. 누가 일부러 없애 버리지 않는 한.

그러나 그것도 가능한 사람이 극소수기에 도유가 선택할 미래는 조교가 되거나 연구실로 가는 것밖에 없었다.

‘이중 직장이라니 싫다.’

심지어 한 곳은 평생직장이고 다른 한 곳은 반평생 직장이다. 그나마 평생직장은 본부 밥이 맛있기라도 하지, 반평생 직장은 밥도 디저트도 맛없었다.

직장인은 하루의 절반을 밥심으로 살아가는 존재다.

최근에는 독이 오른 것처럼 도유의 삼시 세끼를 유독 영양가 있는 맛있는 것들로 꼼꼼하게 챙겨 주는 청신 덕분에 아카데미에서도 맛있는 걸 먹지만 졸업하면 전부 끝날 터였다.

도유는 암담한 미래에 자연히 느려지는 걸음을 깨닫고는 걸음을 재촉했다. 오늘은 주말이다. 제2팀은 여전히 연락도 안 한다.

그렇기에 도유는 오늘이야말로 요전번 먹지 못했던 왕복 3시간짜리 빵집에 다시 찾아왔다. 이번에는 빵만 목적이 아니었지만, 어쨌든 빵은 반드시 사야 했다.

[저는 밤식빵과 탕종식빵이랑 콩포트요.]

지난번처럼 성희유에게 임무지 이탈 연락이 갈 것이 뻔해서 아침에 [왕복 3시간 거리의 빵집에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메시지를 넣었더니 저런 답변이 왔다. 심지어 예상했던 답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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