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55)화 (55/159)

#55

역시 눈치챘다. 단순히 동정으로 서현을 도운 것이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었다는 걸 바로 눈치채는 성희유에게 도유는 약간 소름이 끼쳤다.

“…자연에 머무는 마력이, 그 애 주변에 유독 많이 몰려 있었습니다.”

“도유 씨처럼 마나 감응력이 높은 거겠네요.”

이쯤 되니 도유는 성희유가 주말 내내 저를 스토킹한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러나 그 의심을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성희유가 웃는 얼굴로 대검을 집어 던질 것임을 알기에 얌전히 입을 다물고 의아해하는 표정만 지었다.

“마법사였다면 도유 씨가 곧바로 카단으로 데려왔을 테니까요.”

“…정말 예리하십니다.”

“제가 이래 봬도 도유 씨 상사인걸요.”

맞는 말이라 반론도 못 하겠다. 이런 도유의 표정이 재밌었는지 성희유가 싱글벙글하며 준비해 둔 다른 태블릿을 건넸다.

“제2팀에서 현재까지 수사한 내용이에요. 진전은 없지만, 그래도 자잘한 사항이 추가됐으니 봐 두면 좋겠죠.”

“네.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잘 가요.”

다른 일 없이 이것만 받으러 온 터라 더는 본부에 머물 이유가 없었다.

“아, 맞아.”

팀장실을 나가려던 찰나에 들려온 소리에 도유가 다시 몸을 돌렸다.

“다음에 또 그 빵집에 갈 거면 제 몫의 빵도 부탁해요. 왕복 3시간을 감수할 정도의 빵이라면 저도 먹어 보고 싶거든요.”

이건 놀리는 거다. 도유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가 성희유가 볼세라 냉큼 풀며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팀장실을 나갔다.

*

도유가 본부에서 아카데미로 향하고 있는 사이, 청신은 이미 아카데미에서 전혀 반갑지 않은 얼굴과 마주하는 중이었다.

“너무 오랜만이다~ 청신아!”

영연이 활짝 웃으며 청신을 향해 양팔을 벌리고 달려들었지만 청신에게 닿기도 전에 보이지 않는 투명한 벽에 머리를 박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제대로 부딪쳤는지 얼굴을 감싸 쥐고 고통을 호소하는 영연을 무표정하게 내려다보며 청신이 말했다.

“주영연.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들었지.”

“지금은 박영연이야~ 이 아카데미에 나랑 성씨까지 완전히 똑같은 사람은 없어서.”

“신분을 샀다 들었는데.”

“그럼~ 제대로 값을 치렀지.”

청신의 녹색 눈이 가늘어졌다. 주영연이 말하는 ‘값을 치렀다’는 뜻은 결코 물질을 지불했다는 뜻이 아니다. 아니, 애초에 ‘샀다’라는 표현조차도 잘못되었다.

주영연은 원래의 박영연이 저와 이름이 똑같다는 이유로 그를 죽이고, 그들의 가족들을 세뇌시켰을 것이다. 거기다 서류 조작을 위해 그와 관련된 일반인들에게도 세뇌 마법을 걸었을 게 분명했다.

얼마 전 도유가 카단에 박영연의 자료를 요청한 것을 봤던 청신은, 윤원이 도유에게 서류를 전달하기 전에 내용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주영연이 카단에서 지정한 금기 마법을 한순간에 다섯 가지 이상 어겼다는 걸 확신했다.

“처리는.”

“지금 날 걱정해 주는 거야? 청신아, 감동이야!”

그렇게 말하며 영연이 언제 아파했냐는 듯 헤죽 웃고는 다시 청신에게로 다가갔다. 조금 전의 고통이 크긴 컸는지 옆으로 살금살금 걷는 모습이 게 같았다. 청신은 검지로 테이블 위를 툭 두드렸다. 영연의 몸이 멈췄다. 영연은 울듯이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왜 날 거부해? 전에는 내가 껴안으면 껴안는 대로 있었잖아.”

“이제는 안 돼. 임자 있는 몸이니까.”

단호한 어조에 영연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임자? 역시 서도유?”

“알면서 도유 형에게 접근한 거잖아.”

녹색 눈에 떠오른 살의에 영연이 입을 일자로 다물었다. 청신은 그가 그러거나 말거나, 앉아 있던 의자에서 일어나 영연의 바로 앞까지 성큼 다가갔다.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영연은 움직이지 않았다. 몸을 움직인 순간 뼈까지 으스러트릴 것만 같은 기세로 청신의 마법이 저를 옭아매고 있다는 걸 알기에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영연아. 나는 내게 관심받으려고 사고 치고 짖는 개보다 얌전한 개를 원하거든. 그러니 계속 내 개가 되고 싶다면, 명령받는 것만 해.”

“…….”

“이번처럼 주제넘는 짓 하지 말고.”

영연의 입가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영연은 분노와 질투로 얼룩진 눈을 형형하게 빛내며 청신을 노려봤다.

“주제넘는 짓이라고? 서도유에게 접근해서 번호 딴 게 그렇게 주제넘는 짓이야?”

청신이 관심을 보이고 애정을 쏟아붓는 대상에 대한 질투심으로 접근한 건 맞았지만, 개인적으로도 서도유에 대한 호기심이 일어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접근했던 것뿐이다. 그런데 이렇게 청신이 날을 세우니 속이 뒤집어질 것 같았다.

“그래. 그리고 두 개 더 있잖아?”

“두 개 더 있다고?”

영연은 눈을 굴리는 척 생각에 잠겼다. 하나는 분명하게 알겠는데 다른 하나는 정말 짐작 가는 바가 없었다.

“모르겠는데.”

반은 거짓말이고 반은 진심이었다. 청신은 그런 영연을 보며 코웃음 쳤다.

그런 모습마저도 아름다워, 영연은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청신의 얼굴을 감상했다.

어릴 때부터 시도 때도 없이 세뇌 마법을 시도하고 있지만 단 한 번도 걸리지 않는 점까지 해서 청신은 영연에게 가장 가지고 싶은 존재였다.

청신은 저를 보며 소유욕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영연의 시선에 노골적으로 불쾌해하며 손가락을 튕겼다. 무형의 힘이 영연의 얼굴을 치고 지나갔다.

“아, 청신아, 너무한 거 아냐? 코피 나잖아아.”

“한 번만 더 그딴 더러운 눈으로 보면, 다음에는 네 눈을 터트려 버릴 거야.”

“무서워라.”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섬뜩한 소리를 내뱉었다. 영연은 줄줄 흘러내리는 피를 손등으로 대충 훔쳐 냈다.

저 말이 그저 겁주기 위한 농담이 아니라는 건 영연이 제일 잘 알았다. 실제로 청신이 자신을 덮치려고 했던 인간의 사지를 터트려 버리고, 숨을 붙여 바닷물에 빠트리는 걸 직접 봤던 영연이니 모를 수가 없었다.

“영연아.”

영연이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청신은 그림으로도 그려 낼 수 없는 아름다운 미소를 머금은 채, 영연에게 말했다.

“네가 카단에 범법자가 이카루스 아카데미를 다닌다는 정보를 밀고한 건 이제는 상관없어. 하지만 내가 의뢰를 받고 만든 마법을 멋대로 복제하진 말았어야지. 너 때문에 계획이 틀어졌잖아.”

“복제? 내가?”

금시초문인 듯 영연이 동그랗게 눈을 뜨며 놀랐지만, 그런 모습조차 청신에게는 가증스러운 연기로만 보였다. 웃고 있던 얼굴에 짜증이 어렸다.

“그래. 네가 어떻게 은하 형에게 준 원본을 빼돌렸는지는 관심 없어. 지금이라도 의뢰인에게 제대로 전달해.”

영연은 청신의 말을 곱씹어 보고 경악했다. 청신은 ‘그쪽’의 의뢰를 받으면 항상 산은하를 통해 의뢰인에게 전달하도록 했다.

그런데 그것을 청신이 이번에 제가 중간에서 가로챈 것도 모자라, 의뢰인이 사용해야 하는 원본을 멋대로 복제해서 남발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번만큼은 청신이 어떤 의뢰를 받았는지 몰랐던 영연이다.

산은하로부터 청신의 메시지, ‘나대지 마라’라는 말을 듣고 상처받아서 평소처럼 의욕적으로 살지 못했으니까. 이건 분명하게 해명해서 오해를 풀어야 했다.

“잠깐, 청신아!”

한발 늦게 정신을 차린 영연이 청신을 붙잡으려고 했지만 청신은 이미 이동 마법을 사용해 자리를 떠난 뒤였다. 혼자 박영연의 개인 기숙사에 남겨진 영연은 억울함에 이를 갈다가 곧장 핸드폰을 들어 전화를 걸었다.

[“전화 받-.”]

“은하 형!”

[“영연 씨. 무슨 일이십니까.”]

산은하의 목소리가 딱딱하다. 영연은 본능적으로 눈치챘다. 은하도 청신과 똑같은 오해를 하고 있다는 걸.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내가 청신이 마법을 복제했다니?”

[“…일단 설명은 드리겠습니다.”]

청신과는 달리 은하는 인정이 있는 사람이었기에 억울해하는 영연에게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그 덕분에 영연은 최근 심상찮게 일어나는 사건과 연관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청신 님이 만든 원본이었다면 그렇게 조금씩 소수로 일어날 것이 아니라, 한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최소 수백 명이 휘말렸을 겁니다.”]

“그래서 지금 내가 의심받는 거네? 망할, 내가 복제한 줄 알고, 청신이보다 약하니까?”

[“…결과적으론 그렇습니다.”]

“그 의뢰인에게 형이 전달한 건 확실해?”

[“네. 전달했습니다.”]

“의뢰인 정보 알려 줘. 내가 확인해 볼게. 누구한테 그걸 넘겨줬는지, 그걸 썼는지 말야.”

[“청신 님의 규칙을 깨지 마십시오.”]

철벽같은 반응에 영연이 답답해하며 소리쳤다.

“아, 청신이가 날 의심하고 있는데 어떡해!”

[“죄송합니다.”]

결국 산은하도, 영연도 청신의 사람이다. 서로가 그를 배신할 수 없음을 잘 알기에 영연은 전화를 끊었다.

그는 청신에게 맞아 흘린 코피로 흥건히 젖은 제 소매를 보며 차라리 그 의뢰자가 빨리 원본을 사용하기를 바라며 이를 갈았다.

그걸 사용하면 그 마법 범위 안에 있는 마력이 약한 사람, 특히 일반인은 죄다 휘말려 죽는다는 걸 알았지만 상관없었다.

거기에 운 좋게 서도유까지 걸려들어 죽으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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