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만약 저 소년이 저대로 지갑을 주워 제 주머니에 넣는다면 그냥 모르는 척할 생각이었다.
저기에 오로지 현금만 들어 있었으니 당분간 주린 배를 충분히 채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도유를 부른다면.
“저기! 저기! 이거, 떨어트렸어요…!”
도유가 뒤돌아보자 소년이 양손으로 공손하게 지갑을 내밀었다. 딱 봐도 이런 상황이 익숙하지 않고, 타인에 대한 경계로 딱딱하게 굳은 표정이었지만 도유에게 지갑을 건네는 손길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아. 떨어졌었네요. 고맙습니다.”
“아니에요.”
도유는 지갑을 받아 들며 안경 너머로 소년의 얼굴을 면밀히 관찰했다. 도유에게 도움이 됐다는 것이 좋았는지 웃음기가 가득한 소년은 정말 기뻐 보였다. 소년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럼 좋은 하루 되세요!”
그러고는 미련도 없이 몸을 휙 돌린다. 역시 휘청거리지 않는다. 자연에 떠도는 마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증거다. 속으로 확신한 도유는 서둘러 소년을 붙잡았다.
“잠시만요.”
“네? 아. 저 지갑 안 열어 봤어요!”
소중한 금품이라도 빼내 갔을까 붙잡은 거라고 생각했는지 소년이 당황하며 말한다. 도유는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라, 사례를 해 드리고 싶어서요. 잠시 시간 괜찮으신가요?”
“그러실 필요 없어요!”
고개를 꾸벅 숙이는 소년은 당황한 듯 보였다. 이미 예상했던 반응이다.
“이 지갑, 제게 굉장히 소중한 지갑이거든요.”
오늘 마스크를 쓰고 올까 하다가 쓰지 않고 인상을 흐릿하게 만드는 뿔테 안경만 쓰고 나와서 정말 다행이었다. 도유는 소년을 향해 최대한 상냥하고 무해해 보이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걸 잃어버렸다면 정말 큰일 났을 겁니다. 그리고 지갑을 되찾아 준 분에게 아무런 사례도 하지 않으면 재수가 없어진다는 말도 있으니까요.”
“그런 말도 있어요?”
“네. 그러니-.”
꼬륵. 꼬르르륵. 꼭.
소년의 배에서 나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도저히 모른 척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소리에 소년이 너무 놀란 나머지 입을 벌리는 게 보였다. 도유는 여전히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유지하며 말했다.
“마침 잘 됐군요. 사례로 한 끼 대접해 드려도 될까요?”
“아, 그러니깐….”
배를 움켜잡으며 망설이던 소년은, 한참 망설이듯 ‘그러니까, 어쩌지’ 하는 말을 번갈아 중얼거리더니 이윽고 결단을 내린 듯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내가 납치범인 줄 알았다고?”
끄덕끄덕.
식사를 마치고도 배가 고팠는지 반찬을 주워 먹는 소년, 김서현에게 음식을 하나 더 시켜 준 도유는 서현이 한 말에 당황했다.
“네. 할아버지가 그랬거든요. 근데 아닌 거 이제는 알아요. 도유 형은 좋은 사람이에요.”
서현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서로 통성명을 하고, 도유가 제게 존댓말을 하는 게 부담스럽다고 했던 아이는 추가로 시킨 뚝배기불고기가 제 앞에 놓이자 눈을 반짝였다.
그러나 먼저 손을 뻗는 대신 도유를 보았다. 도유가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니 행복이 만연한 얼굴로 먹기 시작한다. 정말 복스럽게 잘 먹는다.
청신은 식사를 할 때 끼적끼적 먹는 편에 속한다. 풀 뜯어 먹는 토끼처럼 조금씩 씹어 먹고, 소가 여물 먹듯이 꼭꼭 오래 씹어 먹었다.
그러나 서현은 한 입 한 입 먹을 때마다 행복해하는 얼굴로 한술 크게 퍼서 크게 먹고 적당히 씹은 뒤에 삼켰다.
“할아버지가 계셔?”
질문을 하자마자 후회했다. 열심히 밥을 먹던 서현이 시무룩한 얼굴로 손을 멈췄으니까.
“미안해. 내가 괜한 걸 물었어.”
“아니에요. 할아버지는 작년에 돌아가시고, 아빠는 할아버지 장례식이 끝난 뒤에 사라져서 지금은 저 혼자 살아요.”
“혼자 산다고? 혹시 할아버지와 살았던 집에서 혼자 사는 거야?”
“네.”
도유의 반응에 서현이 의아해한다. 아이는 혼자 살 수 없다. 듣자 하니 서현의 나이는 열다섯, 중학교에 입학하고도 남을 나이였다. 도유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서현에게 조금씩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서현은 머뭇거리면서도 하나하나 대답해 주었다. 그 덕분에 도유가 알게 된 것은, 이 아이가 사회적으로 아무런 지원을 보장받지 못하는 ‘없는’ 아이라는 사실이었다.
명확한 건 서류를 떼 봐야 했지만 서현은 의무 교육을 한 번도 받지 않고 할아버지에게 배우거나, 여기서 1시간 거리에 있는 도서관에서 친해진 또래 아이들에게 배웠다 한다.
도유는 굳어지는 표정을 숨기기 위해 애꿎은 물만 들이켰다. 솔직히 제 주제에 남을 동정하거나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위선이었다.
하지만 도와주고 싶었다. 이 애의 주변에 자아도 없는 마력이 몰려 있는 걸 보면 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과, 잘 갈고 닦을 방법을 찾는다면 지금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기 때문이었다.
출생 신고를 하지 않았으니, 이제라도 센터에 연결해서 지원을 받게 해 주고 마법사이거나 마나 감응자로서 증명만 해낸다면 홀로 충분히 설 기회가 있을 터였다. 마나 감응력이 높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가끔 특채나 교육 기관에서 공고가 올라오니까.
“혹시 마법사 검사 받아 봤어?”
마법사 검사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의무적으로 받을 수 있다. 신분 검사를 딱히 하지 않으니 받았을 수도 있다. 서현이 생각을 더듬는 듯 잠시 시선을 위로 들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근데 전 마법사가 아니래요. 형은 마법사예요?”
기대 어린 눈으로 저를 보는 서현의 모습에 도유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미안하지만 난 마법사가 아니야.”
서현은 대번에 실망했다.
“에이…. 마법사를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마법사와 비마법사는 대부분 생활권이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다. 물론 아카데미나 마법과 관련된 기업들은 섞여 있긴 하지만 그렇지 않은 곳이 많았다.
일단 마법사란 존재는 비마법사를 손쉽게 죽일 수 있는 존재였고, 마법사 중에서는 유량처럼 비마법사를 인간 이하로 생각하고 괄시하는 자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도유는 최대한 온화한 표현을 머릿속에서 끄집어낸 뒤 서현에게 말했다.
“마법사랑 만나 봤자 좋을 거 없어.”
“왜요?”
“비마법사에게 나쁜 마법사가 많거든.”
“아녜요, 형! 착한 마법사도 있어요!”
서현이 처음으로 언성을 높였다. 아이의 격한 반응에 조금 놀라긴 했지만, 저 나이대의 아이들이 마법사는 정의롭고, 사람들의 평화를 지키는 히어로 같은 존재라고 믿는 걸 많이 봤기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맞아. 확실히 좋은 마법사들도 있지.”
그제야 서현의 얼굴에 웃음이 되돌아왔다. 도유는 서현이 잘 먹던 반찬이 빈 걸 보고 추가하며 아이가 먹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
서현과 헤어지기 전, 도유는 제 연락처를 주었다. 아카데미용으로 주어진 핸드폰의 연락처였다. 많은 걸 도와줄 수는 없다. 그러니 적어도, 주린 배를 채워 주고 싶다는 마음에 제가 산 빵을 전부 안겨 주고 배가 고플 때 연락하라며 연락처를 준 것이다.
도유는 이런 스스로에게 환멸을 느꼈다. 정말 주제넘는 행동이다.
이런 위선적인 행위로 자신도 타인을 도울 수 있다고 자위라도 하고 싶은 건가. 이건 서현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아니라는 걸 뻔히 알고 있다.
그 애에게 정말 필요한 건 일회성이 아닌 지속 가능한 세심한 도움이었다.
집에 와서 서현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봤지만 법을 뒤져 봐도 당장 눈에 띄는 건 없었다.
“차라리 기관을 연결해 주는 게 낫지 않았어요?”
그리고 다시 돌아온 평일. 제2팀의 현재까지의 수사 내역을 받기 위해 본부로 출근한 도유를 보자마자 성희유가 대뜸 물었다.
인사보다 먼저 나온 질문에 그가 무슨 말을 하는 걸까 의심하던 도유는 곧 그게 서현에 대한 이야기임을 깨닫고 경악했다.
“어, 어, 어떻게-.”
“임무지에서 크게 이탈하면 제게 보고가 오니까요.”
손끝으로 톡톡 태블릿을 두드린다. 임무지에서 이탈하지 않는 범위 내에 있었기에 간 것이었는데, 제가 계산한 거리와 카단에서 측정하는 거리가 달랐던 듯싶었다. 도유는 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만일 성희유가 도유를 잘 알지 못했다면 임무지 이탈과 동시에 추격 명령을 내렸을 테고, 도유는 빵을 먹지도 못한 채 처분당했을 것이다. 이번에 무사할 수 있었던 건 온전히 성희유의 아량 때문이라는 걸 알기에 입 안이 쓰게 느껴졌다.
“사과하실 필요는 없어요. 도유 씨도 주말에 쉴 수 있으면 쉬어야죠. 그보다, 마땅한 기관은 없었어요?”
“없었습니다.”
“도유 씨가 월급 탈 때마다 익명으로 월급의 절반을 기부하는 청소년 센터랑 자립 센터에서 비슷한 일을 하는 것 같던데, 거기도 조건이 안 되던가요.”
대체 이 짧은 사이에 김서현에 대해 조사를 한 걸까. 심지어 보란 듯이 대놓고 김서현에 대해서가 아닌, 그의 가족 사항이 든 서류를 도유에게 건넨다. 그것들을 읽으며 도유가 사무적으로 대답했다. 아이가 말한 대로다.
“조건이 부족해서 안 될 겁니다. 그래도 오늘 연락은 해 보려고 합니다.”
“좋아요.”
“…팀장님께서 이런 일에 신경 쓰실 줄은 몰랐습니다.”
“도유 씨가 임무와 관계없는 누군가를 직접적으로 돕는 일은 처음이잖아요. 다 컸구나 해서.”
“전 이미 다 컸습니다.”
“알아요. 그래서, 그 애를 도왔던 이유가 뭔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