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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50)화 (50/159)

#50

그렇게 말하며 남자는 다시 옥상에 올라갈 생각인지 건물을 향해 허겁지겁 뛰어갔다. 어느덧 주변을 빙 둘러싼 사람들이 남자를 몸으로 막으며 말리기 시작했을 무렵, 다시 고개를 든 도유는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청신은 무표정한 얼굴로 도유가 방금 발견한, 같은 옥상에서 뛰어내려 지상으로 낙하하고 있는 사람들을 올려다보았다. 이번에도 남자와 같은 일이 벌어졌다. 남자까지 포함한다면 총 다섯 명이다. 그들은 각각 다른 회사의 것으로 보이는 사원증을 걸고 있었다.

도유는 유심히 그들이 여전히 신고 있는 신발을 보다가, 방금 전 남자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이 살아남았다는 걸 알고 슬픔을 넘어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가야, 갈 거야. 낙원이 앞에 있는데 왜 막아요? 막지 마세요, 난 거기가 좋아요.”

“저리 비켜!! 방해하지 말라고! 댁들이 뭔데 내가 가는 걸 막아?! 질투해서 그러지?!”

“거긴 선택받은 사람만 가는 곳이야! 당신들은 낙원에 갈 자격이 없고! 비켜, 나는 낙원에 갈 거야!”

사람들의 입에서 공통적인 단어가 나왔다. 그리고 그들의 몸부림은 점점 심해졌다.

다시 옥상으로 올라가 뛰어내리려는 사람들을 제지하기 위해 행인들이 그들에게 다닥다닥 붙어 막았다. 경찰에 신고했다는 소리를 한 귀로 흘려들으며 도유는 핸드폰을 꺼내 카단에 연락을 넣었다.

“청신아, 저 사람들 좀 재워 줘. 내가 저 사람들을 물리적인 수단으로 기절시킬 수 있기는 한데, 지금 사람들 시선이 너무 쏠려서 안 돼.”

이 현장에서 눈에 띄는 건 청신뿐이어야 한다. 청신은 공식적인 마법사이고, 도유는 너드 학생이니까. 일반적인 환경에서 자라 온 너드 학생에게는 수도로 사람을 기절시키는 능력 따윈 없었다.

“네, 형. 그런데 수고비를 주셔야겠는데요.”

청신의 말에 도유는 여전히 사람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물었다.

“뭘 원해? 키스라고 하면 화낸다.”

“평소라면 말씀대로 키스라고 했을 텐데, 방금 형이 저 부른 거 듣고 주인님과 시종 플레이를 하는 것도 재밌겠다 싶었어요.”

도유는 잠시 제가 남자를 받아 달라는 뜻에서 ‘이청신, 부유 마법!’이라는 말을 너무 강압적인 어조로 해 버리고 말았다는 걸 깨닫고 사과하려고 했다.

“사과하실 필요 없어요. 전 정말 진심이에요, 도유 형.”

말마따나 은근히 흥분했는지 눈까지 빛내는 걸 보고 안도한 도유는 고민했다. 마음 같아선 거절하고 다른 걸 제시하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럼 청신이 거절할 것 같았다. 심각한 얼굴로 고민하던 도유는, 한 사람이 자길 막고 있던 사람을 때리려는 걸 보고 대답했다.

“알았어. 하자. 주인님과 시종 플레이.”

“…진짜요?”

청신의 평정이 깨졌다. 그는 올해 제일 들을 수 없는 말을 들은 사람처럼 놀란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되물었다. 도유는 고개를 끄덕이고, 진지하게 말했다.

“사람들 좀 재우거라, 노비야.”

청신은 자신이 무엇을 간과했는지 깨달았다.

도유는 책을 읽을 때 장르나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즉 두루두루 읽는다는 것이다. 그것을 알기에 그는 ‘주인님’과 ‘시종’에 당연히 근세적인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라고 생각하고 말았다. 착각이었다.

“어…….”

‘분명 이것도 주인님과 시종 플레이가 맞긴 한데. 아니, 맞긴 한 것 같은데….’

청신이 고민하는 사이 도유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어, 노비는 좀 그런가? 그럼 하인아, 빨리 저 사람들을 재우거라.”

주말에 영화 말고도 사극을 봤던 도유가 어설프게 따라 하는 어조에 청신의 녹색 눈이 침울한 빛으로 물들었다. 그는 한숨을 쉬며 손짓 한 번으로 날뛰던 사람들을 단번에 재워 버렸다. 도유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청신아. 카단을 불렀으니 이제 곧 있으면 올 거야.”

“형.”

“응?”

“미안해요. 제가 사극을 몰라서, 호응이 어려웠어요. 다음에는 제대로 공부해서 어떤 식으로 대응을 하면 자연스럽게 형과 침대로 갈 수 있을지 고민해 올게요.”

“…하지 마라. 하면 화낸다.”

“네. 그럼 다음에 주인님과 시종이 나오는 영화 보러 가요.”

“됐어.”

나름 열연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도유는 내심 아쉬운 마음에 미간을 좁혔다. 그런 도유의 모습을 바로 옆에서 본 청신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마스크에 얼굴 절반이 가려져 입매는 보이지 않았지만, 뿔테 안경 너머 보이는 푸른 눈동자만 보고도 도유가 굉장히 아쉬워하는 게 한눈에 보였다.

청신은 슬쩍 도유의 축 처진 손을 잡기 위해 손을 뻗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당장 도유의 마스크를 벗겨 턱을 붙들고 놀라 벌어진 입에 깊이 혀를 밀어 넣고 싶어질 게 분명했으니까.

딱 한 번, 도유의 눈을 빌리기 위해 했던 키스에서 거칠게 달아오른 숨소리에 얼마나 흥분했던가.

“치워.”

그러나 청신의 기색을 기민하게 눈치챈 도유가 얄짤없이 손을 쳐 냈다. 청신이 노골적으로 아쉬워하며 입맛을 다시는 모습을 흘끗 노려본 도유는 시선을 돌려 인도 바로 옆 도로에 멈춘 차들로 시선을 옮겼다.

*

현장에서 증인으로서 카단의 본부로 납치되다시피 끌려오게 된 도유와 청신은 곧바로 호출을 당했다.

이미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기에 놀라지는 않았지만 예상보다 심각한 사안인 듯, 청신과 함께 제복으로 갈아입고 대회의실에 들어서자 바로 보이는 얼굴들에 도유가 잠시 멈칫했다.

도유는 빠르게 대회의실의 상황을 파악했다. 사람이 머물다 간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자리. 슬슬 짐을 챙기거나 나가는 몇몇 부서 사람들과 사복, 경찰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보였다. 그리고 가장자리에 앉아 있는 반갑지 않은 얼굴도 보였다.

보지 못한 척하고 서둘러 고개를 돌리려던 순간, 도유와 딱 눈이 마주친 남자가 함께 이야기하고 있던 사람에게 뭐라 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에 자연히 그의 일행도 도유를 보게 됐다. 먼저 눈이 마주친 남자가 도유를 보고 싱글벙글 웃었던 것과 다르게, 두 번째로 눈이 마주친 남자는 도유를 보자마자 대번에 인상을 팍 찡그렸다.

“이게 누구야. 서도유 아니야? 아직도 안 죽고 살아 있었네?”

싱글벙글 웃는 남자는 도유와 똑같은 제복을 입고 있었다. 그가 손으로 도유의 어깨를 두드리려고 했지만 도유는 매끄럽게 몸을 옆으로 살짝 틀어 손길을 피하며 대답했다.

“안녕하십니까, 특수부 제2팀 하창연 팀장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딱딱한 건 여전하네~ 편하게 말하라니까. 이러니 매번 성 팀장이 속상해하지!”

“…….”

성희유 팀장이 뭘 속상해한다는 걸까. 의문을 곱씹다가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되물어보려고 했지만 그의 시선은 이미 청신에게 닿아 있었다.

웃음이 가득했던 창연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한 걸 보고 도유가 흠칫 놀랐다.

청신은 반가면 아래로 드러난 입매를 올리고 있었다. 여유롭게 웃는 얼굴이다. 창연이 청신에게로 가까이 붙으며 물었다.

“너 뭐냐?”

“특수부 제1팀 임시 신입입니다.”

초면이라는 사실을 잊었는지 창연이 청신의 주변을 돌며 이리저리 그를 살폈다. 도유는 마른침을 삼키며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말려야 할지 말지 고민스러웠다. 도유와는 다른 종류의 눈을 지닌 그가 청신에게서 무엇을 보고 있는지는 관심 없었다.

하창연의 눈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귀신이나 영혼을 본다.

도유가 천화 마을에서 봤던 붉은색의 불길한 빛을 품은 마력들을 구체적인 형체로 보는 것이다. 또한 보는 것만이 아니라 그런 존재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귀신이라도 붙어 있는 겁니까?”

도유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저놈의 얼굴에 몸매에 목소리면 붙어 있는 것이 이해가 됐기에 이상할 것도 없었다.

“으으음.”

창연이 눈살을 찌푸리며 신음을 흘렸다.

도유는 혹시나 해서 청신을 유심히 살폈다. 그의 눈에는 여전히 다른 마법사들과 동일한 마력의 흐름만이 보일 뿐이다.

불길한 붉은색 마력은 아무리 봐도 티끌조차 보이지 않았다.

도유가 빤히 쳐다보고 있자 청신이 부끄러웠는지 입술을 꾹 닫는 게 보였다.

“모르겠네. 나도 이런 건 처음인데. 너 인간 맞지?”

“그럼요. 제가 여러 방면에서 워낙 뛰어나서 인간 같지 않다는 소리는 종종 듣지만요.”

느긋한 미성을 들으며 도유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청신의 능력이나 외형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완벽하게 잘 만들어진 인형처럼 느껴질 정도로 뛰어났다.

창연이 저런 질문을 하는 것도 딱히 이상하지 않았다.

“그딴 거 말고. 으음…. 아. 곧 브리핑해야지? 화장실 좀 다녀올게. 계속 앉아 있으려니 죽겠다!”

시계를 보고 멈칫한 창연이 빠르게 회의실 밖으로 걸어 나갔다.

특수부 제2팀 팀장이 참석해야 할 정도의 안건이라면 성희유도 참석할 가능성이 높았다. 도유는 잠시 고민했다. 성희유를 기다렸다가 함께 앉을까 하다가 그만뒀다.

그의 성격상 자신의 부하가 괜히 저를 기다리느라 어정쩡하게 서 있는 걸 보면 ‘제가 그렇게 권위적인가요?’ 하면서 못마땅해할 게 분명했다. 결정을 내린 도유가 청신에게 특수부 제1팀이 앉는 자리를 알려 주기 위해 몸을 돌리던 때였다.

“야. 서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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