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49)화 (49/159)

#49

도유는 당분간 은신 아티팩트를 쓰든, 청신에게 은신 마법을 걸어 달라고 하든 간에 사람의 시선을 떨쳐 내야겠다고 다짐했다.

오늘의 조사도 청신이 달라붙는 걸 억지로 떼어 놓고 왔는데, 그냥 너드 혼자 책 읽으며 앉아 있는데도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니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슬슬 돌아가려고 할 때쯤, 멀찍이서 청신이 도유를 향해 빠르게 다가오는 게 보였다. 도유는 시간을 확인했다. 약속했던 시간이 끝나자마자 바로 연구실을 뛰쳐나온 거다.

“형, 어서 나가요.”

활짝 웃으며 청신이 손을 내밀었다. 역시나 청신이 도유에게 다가올 때부터 이쪽을 주시하던 학생들이 부러움과 시기를 담아 도유를 노려보는 게 느껴졌다.

‘이게 무슨 학생들 보는 로맨스 드라마도 아니고….’

그런 생각을 하며 도유는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청신아. 내가 욕먹는 걸 보고 싶지 않다면 손 내려.”

“아.”

청신의 짧은 중얼거림과 함께 도유는 제 주변으로 마력이 휘도는 것을 보았다. 순식간에 둘을 향한 시선이 사라졌다. 마치 아무도 없었다는 것처럼, 학생들의 시선이 사라지자 도유가 말했다.

“많이 해 본 솜씨네.”

“네, 많이 해 봤어요. 도유 형도 알잖아요. 저 잘생기고 예쁜 거.”

“으응….”

“그래서 이 마법으로 많이 피했죠. 특히 길거리 걸을 때는 명함부터 들이미는 사람이 많아서요.”

“명함?”

“연예 기획사요. 썩히기 아깝다면서.”

맞는 말이다. 청신의 얼굴과 목소리라면 배우를 하든 다른 분야의 연예인을 하든 크게 성공했을 것이다.

“근데 아시다시피 저는 천재 마법사잖아요. 마법사 쪽이 여러모로 훨씬 낫죠.”

“그렇긴 하겠네.”

도유는 순순히 인정했다. 청신의 지식과 재능을 썩히는 건 굉장히 아까운 일이었으니까. 특히 이동 능력. 생각해 보니 저번 천화 마을에 갔을 때도 그 근처까지라도 청신을 타고, 아니 청신에게 부탁해서 이동했으면 좋았을 거란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어때요, 도유 형?”

“뭐가?”

“저 경제력도 좋잖아요. 도유 형이랑 결혼할 상대로 적합하죠?”

“…….”

도유는 대답하지 않았다.

*

오늘은 도유가 청신에게 간식을 사 주기로 약속한 날이었다.

일단은 그가 직장 동료가 된 것은 맞지만, 아카데미에서는 학점만 받고 경제적인 대가 없이 도유를 도와주는 착한 후배인 건 사실이었기에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사 주고 있었다.

보통은 청신이 도유가 먹을 걸 사 오거나, 만들어 오거나, 아니면 데려가서 먹이는 것이 많았지만 도유가 고집을 부려 적어도 며칠에 한 번씩은 이렇게 청신과 둘이 돌아다니며 맛있는 걸 먹었다.

그동안 청신이 먼저 뭔가 먹고 싶다고 하는 일이 없고, 도유의 입맛에 맞는 건 자기 입맛에도 맞는다며 호응했기에 도유는 어쩔 수 없이 자기가 가고 싶은 곳에 가서 밥을 먹여 줬다.

그랬던 청신이, 어제 처음으로 도유에게 제 의견을 말했다.

‘형, 저 먹고 싶은 거 있어요.’

‘뭘 먹고 싶어? 사 줄게.’

도유는 솔직히 기뻤다. 청신을 급습하며 서로 정체(?)를 알게 된 날 이전에는 청신이 제가 선배이기 때문에 의견을 제시하지 못하는 거라는 생각에 속으로 많이 미안했다.

그런 청신이 직접적으로 말하다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하고 생각했지만, 그 생각은 돌아온 답변에 황당함으로 바뀌었다.

‘도유 형 먹고 싶어요. 그다음에 형이 먹혀 줬으면 좋겠어요.’

‘…먹고 싶다는 말이나 먹혀 줬으면 좋겠다는 말이 그게 그거 아니냐?’

‘걱정 마세요, 형. 저한테 한 번 먹히면 먹고 싶다는 말은 절대 안 나올 테니까.’

황당한 동시에 너무나 청신다운 말이라 도유는 화를 낼 생각도 못 했다.

도유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케이크를 먹는 청신을 보았다. 전에 제 몫의 솜사탕을 사 놓고 먹지 않기에 단걸 좋아하지 않는 줄 알았더니 먹이면 또 잘 먹는다.

대신에 음료수까지 단것을 먹는 도유와 달리 쓰거나 진한 커피를 마시지만 사 주는 족족 남기지 않고 다 먹으니 사 주는 입장에서는 만족스러울 따름이다.

다만.

“왜 그렇게 빤히 봐요? 먹여 드릴까요? 아니면 그 반대?”

기대 어린 어조에 도유는 매몰차게 고개를 젓고 케이크를 먹어 치웠다. 청신이 아쉬워하며 마저 먹는다. 도유는 그 모습을 보면서 줄곧 청신에게 품어 왔던 의문을 떠올렸다.

‘이놈은 왜 나를 사랑하는 거지?’

범법자를 낚을 방법을 다시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레 생각이 청신을 향했다. 생각해 보면 청신은 정말 이상한 인간이었다.

모두가 기피하는 너드에게 먼저 접근하고 방긋방긋 웃어 주고 제게 그다지 메리트가 없는 조건임에도 낚여 줬다.

그렇다고 청신이 동정심이 많거나 타인에게 친근한 성격인 건 아니었다.

청신은 타인을 동정하지 않는다. 그간의 사건들을 통해 그것을 명확하게 보여 왔다.

타인에게 친근한 성격도 아니었다. 분명 타인에게 친절해 보였지만, 사적인 영역에 들어오려고 하면 선을 긋고 밀어 냈다.

상대방은 자기가 분명하게 거절당한 줄도 모르고 그저 청신이 다음을 약속해 줬다며 좋아했다. 그리고 그다음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 아카데미에서 청신과 함께 다니며 저러는 걸 지긋지긋하게 봐서 알았다.

도유에게만 달랐다. 도유를 보는 청신의 모든 행동에 호감과 존중이 느껴진다.

도유는 ‘사랑’과 ‘애정’을 느껴 본 적이 없었지만 어렸을 적의 제가 상상하고 갈망했던 사랑의 행동들이, 지금의 청신이 저를 대하는 것과 똑같다는 것을 알았기에 확신했다. 이청신은 서도유를 사랑한다고.

‘진짜 모르겠네. 대놓고 물어볼 수도 없고.’

대놓고 물어봤다간 청신이 헛소리를 하며 달려들 게 뻔하고, ‘날 왜 사랑하는 거야?’라고 뻔뻔하게 물어보기엔 낯짝이 두껍지 못했다.

“다 먹었으면 나가자.”

청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이좋게 밖으로 나오니 곧 비가 내릴 건지 맑았던 하늘에 먹구름이 낀 게 보였다.

원래 일정은 이대로 헤어지는 거였지만, 곧바로 헤어지기에는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도유는 행선지도 묻지 않고 제 옆에 나란히 걷고 있는 청신에게 물었다.

“재료 사러 쇼핑 센터에 갈 건데 같이 갈래?”

“재료요? 부족한 게 있어요?”

“카단에서 운영하는 마법 관련 쇼핑 센터야. 겉보기로는 그냥 일반 마법 재료 파는 곳이지만, 소속을 밝히면 임무에 용이하게 쓸 수 있는 재료를 보여 주거든.”

그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도유 형과 조금이라도 더 오래 같이 있을 수 있다면 어딜 가든 기뻐요.”

생긋 웃는 얼굴에 거짓이라고는 조금도 없다. 도유는 괜스레 설레 오는 기분에 조금 늦게 대답하고 말았다.

“…알았어. 한 30분 정도 걸어야 해. 괜찮아?”

“그 이상도 좋아요.”

사실은 평생을 같이 걸어도 좋은데. 하고 중얼거리는 척 슬쩍 덧붙이는 청신의 말을 듣지 못한 척하고 도유는 묵묵히 걸었다. 시시콜콜한 잡담 - 주로 데이트 신청이었지만 - 을 나누면서 걸으니 어느덧 저 멀리 목적지인 쇼핑 센터가 보였다.

“저 쇼핑 센터 옥상에서 파는 와플 맛있어. 살 거 사고 먹으러 가자.”

청신은 눈을 동그랗게 뜨다가 이내 생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30분 전에 있었던 카페에서 혼자 케이크 다섯 조각과 초콜릿이 잔뜩 들어간 음료를 먹지 않았느냐 하기엔, 은근히 눈을 반짝이는 도유가 그저 예뻐 보여서 아무렴 어떻냐는 생각이 들었다.

와중에 이렇게 먹는데도 말라 보여서 더 먹여 주고 싶었다.

물론 도유는 마르지 않았다. 군살이라고는 없는 탄탄한 군인의 몸을 유지하고 있었다. 마법사와 달리 몸으로 직접 싸울 때가 많았기에 자기 관리를 대충 했다가는 현장에서의 죽음으로 이어지기 때문이었다.

“…!”

그때였다. 기이한 예감에 도유가 고개를 쳐들었다. 청신의 시선이 자연히 도유를 따라 올라갔다.

그리고 두 사람은 양복을 입은 남자가 옥상에서 머리부터 떨어지는 것을 목격했다.

건물은 25층이었다. 남자가 떨어지기 시작하자 뒤늦게 남자를 본 사람들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이청신, 부유 마법!”

도유의 호명에 청신은 바로 반응했다. 그의 마법이 머리부터 떨어지는 남자의 몸을 받아 내 무사히 땅에 닿게 하자마자 도유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남자에게 말을 걸려던 순간,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남자가 자신이 죽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고 눈물을 흘렸다. 그가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왜, 왜, 왜?”

“진정하십시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저는 알지 못하지만, 이런 형태로 죽으시면 안 됩니다.”

타인이 죽음을 선택하기까지 도유가 감히 이해하지 못할 괴로움이 있었을 터였다. 자신이 그것에 대해 함부로 말할 수 없고, 아무런 위로도 해 주지 못할 걸 알기에 도유는 진지하게 남자를 설득했다.

“여기에서 이런 형태로 돌아가시면 교통 체증 유발로 벌금을 물게 됩니다. 만약 건물에 근무하는 분이 아니라면 불법 침입으로 인한 벌금이 추가가 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당신에게 깔린 행인이 있을 경우, 부상의 정도에 따라 유족에게 피해가 갈 수 있으니 유념하셔야 합니다.”

“형…….”

내심 도유가 할 말을 기대했던 청신은 자신의 예상을 모두 빗나간 것도 모자라 지나치게 현실적인 말에 노골적으로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딴 건 상관없어! 난 당장 돌아가야 해! 돌아가야 한다고!!”

“어딜 돌아간다는 겁니까?”

“낙원, 낙원에 돌아갈 거야. 여긴 내 낙원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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