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40대 남성 김 모 씨, 재직 중이던 □□□대기업 건물 20층서 투신자살. 로또 1등 당첨된 지 한 달 만에…. 대체 왜? 유가족 ‘자살할 사람이 아니다.’]
[XXX 아파트서 같은 동 주민 및 아이 동반 투신자살, 7명 사망, 2살 아이 나무에 걸려 극적 생존… 가벼운 찰과상만 입고 무사.]
[B 지역 봉사 단체 ‘천사들의 기쁨과 행복 나눔’ 소속 봉사자 20명 동반 투신자살. 유가족들 ‘이해할 수가 없다. 이건 자살이 아니라 분명 살인이다.’ 주장]
[또 B 지역…. 대형 쇼핑몰 B 건물서 회사원 4명 동반 투신자살]
이번에 박연이 조사해야 할 사건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개별적인 이유로 자살한 사건이라 생각되어 경찰에서 일반적인 사건으로 분류했지만, 동반 자살이 두 달 만에 한 지역에서 계속 일어나자 카단으로 수사 협조 요청이 넘어온 건이었다.
조사부에 오래 있다 보면 감이라는 것이 생긴다. 현은 이번 일이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죽게 만든 범법자의 마법과 관련이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는 지금쯤 신나게 짐을 싸고 있을 박연에게 건네줄 자료를 들고 팀장실을 나갔다.
*
사랑은 쟁취하는 거라는 등의 미친 소리를 내뱉은 청신은, 그날 이후부터 정말 사랑에 미친 놈처럼 굴었다.
“도유 형.”
오전의 햇살이 유독 눈부시게 비추는 따듯한 날, 오늘도 졸업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 실제로는 잠입 수사를 하기 위해 - 아카데미의 개인 연구실에 출근한 도유는 제 시야 한가득 들어온 꽃을 보고 집에 가고 싶어졌다.
“보고 싶었어요, 도유 형. 오늘은 도유 형이 좋아하는 제 수제 블루베리잼을 넣은 샌드위치를 만들어 왔어요. 아침이니까 달달한 음료 대신 도유 형이 좋아하는 얼그레이 밀크티를 조금 진하게 우려서 준비하고, 후식으로는-.”
“청신아.”
“네, 도유 형.”
슬슬 같은 층 연구실에도 다른 7학년 학생들이 출근할 시간인지라 도유는 청신이 제게 내민 꽃다발을 밀어 내며 연구실에 들어섰다.
청신이 꽃다발을 내려놓고 쪼르르 따라붙어 우아한 손길로 도유의 재킷을 벗게 도와주려고 했으나 도유는 매몰차게 쳐 냈다.
순간 상처받은 청신의 표정을 보았지만 죄책감이 몰려오기는커녕, 면역이 된 도유가 냉정하게 말했다.
“네가 사랑은 쟁취하는 거라고 말한 뒤부터 꼭 내 시중 노릇을 하게 된 거 같은데,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진 않아?”
“도유 형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라면 저는 하인도 노예도 되어 드릴 수 있어요.”
도유는 한탄했다. 저런 미인이 저런 미성으로 저런 개소리를 한다는 걸 저를 제외한 누구도 알지 못한다. 만약 알았더라면 청신과 같이 나란히 걸을 때마다 불구대천의 원수를 보듯 저를 노려보는 학생들의 시선이 사라졌을 텐데.
“샌드위치 안 먹어요?”
“좀 이따가.”
“그럼 점심 전에는 꼭 먹어요. 보존 마법 걸어 놓을게요.”
대답하지도 않았는데 곧바로 샌드위치에 보존 마법을 건다.
아티팩트나 마법사에게 의뢰를 맡기면 기간에 따라 다르지만 최소 금액이 천만 단위부터 시작하는 마법을 샌드위치에 거는 청신을 보며 도유는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처음엔 경악스러웠지만, 생각해 보니 상대방이 이청신이라 자기 힘을 자기가 어떻게 쓰든 상관없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도유 형, 밀크티는 마실 거죠?”
“응. 고마워.”
“꽃은 꽃병에 꽂아 둘게요. 보고 싶을 때 봐요.”
“…고마워.”
“저도 보고 싶을 때 마음껏 봐도 돼요. 만지고 싶을 때 만져도 되고요.”
“그러고 보니까.”
도유는 청신의 헛소리를 가볍게 넘기고, 어제 간만에 찾아온 여가 시간에 본 영화를 떠올리며 물었다.
“너. 정신 세뇌 계열 마법 사용할 수 있어?”
“…도유 형, 혹시 취조인가요?”
정신계 마법 중에도 정신 세뇌의 마법은 금기 중의 금기다. 카단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여 관리하고 있는 마법이었기에, 그 마법식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중범죄였다.
“취조가 아니야. 어제 봤던 영화에서 사랑에 빠진 남자가 상대방에게 그 마법으로 마음을 얻는 걸 봤거든. 너는 그럴 만한 능력이 되잖아.”
이 질문의 절반은 취조가 맞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넌지시 묻는 바보가 어디 있겠는가. 도유는 최대한 가벼운 어조로 물었지만, 주제 때문인지 청신은 곤혹스러운 표정이었다.
“도유 형. 제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해 줬으면 좋겠어요.”
이윽고 무거운 어조로 내뱉은 청신의 말에 도유까지 자연스레 긴장으로 몸을 굳혔다. 도유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속으로 낭패하고 있었다.
이청신이라는 인간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있게 파헤쳐 보고 싶은 마음에 최대한 자연스럽게 말했던 것인데 이런 진중한 반응이 나올 줄은 몰랐다.
“도유 형은 역시, 강압적인, 그러니까 자길 막 대하는 가학적인 플레이를 좋아하는 거죠? 어떤 새끼가 형을 그렇게 만들었어요?”
“……뭐?”
“걱정 말고 솔직하게 말해 주세요.”
“전혀 아니야.”
기가 막혀서 만지작거리던 펜을 청신의 머리에 꽂아 넣을 듯이 움켜쥐며 대답하자 청신이 눈에 띄게 안도했다.
“다행이네요. 마법사에게 대놓고 정신 세뇌 마법을 묻는다는 건, 안 좋은 의도를 가졌을 때밖에 없어서요. 그런데 형은 제게 그럴 사람이 아니니까요.”
“…그렇지. 정말 호기심이었어.”
안 좋은 의도래 봤자 청신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떠본 것에 불과했지만, 그것도 어떻게 보면 안 좋은 의도여서 서둘러 대답했다. 청신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 세뇌 마법이 만들어진 계기가 뭔지 알아요?”
임무 하나가 끝날 때마다 그 임무와 관련된 마법에 대한 책들을 닥치는 대로 찾아 읽었던 도유였기에 한 마법 역사서에 언급되어 있던 기억을 뽑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으음. 정확히는 모르겠네. 그런데 한 300년 전쯤에 처음 나왔다는 건 알아.”
“맞아요. 정확하게는 360년 전에 살았던 마법사가 만들었죠. 만든 이유는 도유 형이 본 영화와 똑같아요.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를 봐 주지 않자, 이에 절망한 마법사가 정신 세뇌 마법을 만들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걸었죠.”
“차라리 정치적인 이유가 나았을 것 같군.”
사람의 감정을 마법으로 얻으려 하다니 최악이다. 경멸하는 기색을 고스란히 드러낸 도유의 얼굴을 본 청신은 이상야릇하게 웃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세뇌 마법 따위로 상대방의 마음을 얻는 건, 결국 그 상대방을 동등한 인격체가 아니라 물건으로 보고 소유하는 것과 똑같거든요.”
도유는 굉장히 의외라는 듯이 청신을 보았다. 이런 말을 하는 주제에 윤원을 질투해서 새파란 어린애 - 라고는 해도 성인이지만 - 에게 찾아가 협박을 하다니.
“그리고 전 세뇌 마법 싫어해요. 세뇌라는 단어 자체도 싫고요.”
드물게 진심으로 질색하는 적나라한 표정이다. 목소리에도 짙은 혐오감이 묻어나 있는 게 마음에 걸렸다.
혹시 세뇌와 관련되어 뭔가 좋지 않은 일이라도 당한 걸까. 도유는 청신의 어깨를 한 번 토닥여 주고는 화제를 돌렸다.
“이제 일하자.”
*
도유의 머릿속은 계획으로 가득했다.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윤원에게 요청했던 박영연에 대한 정보에 [사고로 인한 성형 수술]이라는 단어가 들어가고, 분명 그리 깨끗한 수단으로 구하지 않았을 성형 수술을 한 병원의 진료 기록과 사진을 보고 제가 헛다리 짚었다는 걸 인정한 뒤부터였다.
도유는 또다시 범법자를 낚기 위한 방법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분명하게 범법자를 낚을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심지어 범법자가 이 이카루스 아카데미에 있다는 첩보 자체가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한 범법자의 수작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아무리 아카데미의 학생들을 관찰해 봐도 특별한 마력의 흐름을 가진 학생이나 수상쩍은 행동을 하는 이상한 학생은 없다. 혹시 학생이 아니라 교수나 조교가 아닐까 싶어 틈틈이 관찰했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도유 학생! 자네 설마 저 신 교수에게 관심 있는 건 아니겠지?’
…아니. 다른 교수들을 쳐다보는 모습을 자신의 연구소로 오라고 권했던 담당 교수, 현영하에게 들키자마자 저런 말을 들은 뒤로는 몰래몰래 관찰하느라 제대로 보지 못했다.
현영하 교수는 교육자가 아니라 무슨 카단에서 심어 놓은 다른 비밀 요원이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은신을 잘했다.
도유에게 마력의 흐름이 보이지 않았더라면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을 정도로 뛰어난 은신력으로, 도유가 딴 과의 교수를 오래 쳐다보고 있으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불쑥 튀어나와선 저 교수에게 관심 있냐면서 눈을 치떴다.
솔직히 지금 이렇게 벤치에 앉아 있는 상황에서도, 언제 어디서 현영하 교수가 튀어나올지 몰라 도유는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야야, 저기 망상증 너드 있다.”
“쉿! 눈 마주치면 어떡하려고…!”
학생들이 벤치에 앉은 도유를 발견하곤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유는 씁쓸하게 웃었다. 설계도 내밀고 다니던 때의 기억이 워낙 강렬했는지 아직도 도유를 기억하는 학생이 정말 많았다.
“청신 선배랑 같이 조 짰다는데 너무 부럽다.”
“선배가 저 너드 엄청 따른다는데? 나중에 동아리 권유해 볼까? 그럼 청신 선배가 들어올지도 모르잖아!”
“요즘 저 너드랑만 같이 다닌다더라. 저 망상증 너드가 우리 선배를 빼앗았어.”
청신의 추종자들이 중얼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일반인이라면 듣지 못할 거리였지만 평소에 신체 능력을 강화시켜 주는 아티팩트까지 필수적으로 착용하고 다니는 도유에겐 슬플 정도로 잘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