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47)화 (47/159)

#47

으르렁거리는 도유의 목소리에 그 어떤 의심도 품지 못한 청신이 기뻐하며 도유를 끌어안으려고 했다. 그러나 여전히 도유가 청신의 손을 놓지 않았기에 청신은 도유를 껴안지 못했다.

의자에서 일어난 도유가 재빨리 몸을 움직였다. 범죄자를 제압할 때처럼 청신의 팔을 뒤로 꺾어 그대로 수갑을 채웠다. 청신은 반항하지 않았다. 그저 녹색 눈만 깜빡였을 뿐이다.

“도유 형?”

마력이 차단되는 수갑인데도 청신은 태연하게 보였다. 도유는 아직 상황 파악이 되지 않은 듯한 청신을 보고 개미 더듬이만큼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카단의 제복을 입고 있는 걸 봐서 현장 조사 중이거나 조사가 끝나자마자 이동 마법으로 온 것 같은데, 인사 대신 수갑부터 채우는 건 아무래도 좀 그랬나 싶어 머뭇거릴 때 청신이 알겠다는 표정으로 미소 지었다.

“도유 형은 역시 이런 게 취향이죠?”

“뭐?”

“걱정 마세요. 전 형의 취향을 존중해요. 제복도 입고, 수갑까지 찬 제게 거칠게 당하는 게 취향이신 거잖아요. 좋은 취향이에요. 제가 기꺼이 맞춰 드릴게요.”

“청신아.”

“네, 도유 형.”

“날 유혹할 거라면서?”

“……예?”

도유가 쌍욕을 하거나 저를 걷어차거나 멱살을 잡을 거라 예상했던 청신은 생각도 못 한 질문에 눈만 깜빡였다.

“그런 주제에 나한테 접근한 신입생을 협박해?”

청신은 그가 누구를 말하는지 바로 알아차리고 눈을 가늘게 뜨며 입꼬리를 올렸다. 이윤원을 협박할 때 도유에게 말하지 말라고는 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일러바칠 줄은 몰랐다.

“유혹할 자신이 없어서 엉뚱한 사람들한테 협박하면서 피해 끼칠 거면, 나한테 사적으로 접촉하지 마.”

청신은 눈치가 빨랐다. 윤원에게 보복할 생각도 없었지만, 만약 보복한다고 하면 도유는 화를 내는 대신에 저와 사적인 관계를 모조리 끊어 낼 것이다. 청신의 녹색 눈이 곱게 휘었다. 청신은 이런 도유가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걱정 마세요, 도유 형. 앞으로는 안 그럴 거니까.”

유순한 반응에 도유가 안도하기도 잠시, 청신이 팔에 힘을 주는 게 보였다.

상황이 끝났으니 수갑을 풀어 달라는 뜻인 줄 알고 열쇠를 꺼내 들던 도유는 눈앞에서 벌어진 기이한 현상에 그대로 멈췄다.

뚜두둑.

청신이 수갑을 끊어 냈다.

아티팩트로 만든 도구의 힘이 아닌, 순수한 몸의 힘으로. 도유의 머릿속에 수많은 의문이 스쳤다.

저게 가능해? 어떻게?

저건 도구를 써도 끊어 낼 수 없는 거였다. 끊어 낼 수 있는 건 강화 마법이 중첩으로 걸린 특별한 도구로만 가능했다.

“어, 어, 어떻게 끊은 거야?”

“한쪽에만 채워졌을 때 이 수갑의 속성과 경도를 바꾸는 마법을 사용했어요. 이런 마력을 차단하는 마력 구속구는 둘 다 채워졌을 때부터 효력을 가지는 거라서요.”

동시에 채우지는 않았어도 고작 몇 초 차이였는데 그사이에 속성과 경도를 바꾸는 고난도의 마법을 아무런 이상 현상도 없이, 고생도 없이 사용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멈칫하는 사이 청신이 기쁨이 가득한 얼굴로 도유를 끌어안았다.

“도유 형은 매번 제게 새로운 깨달음을 주는 소중한 사람이에요. 지금도 도유 형 덕분에 깊은 깨달음을 얻었어요. 사랑해요, 형.”

“무슨, 깨달음?”

별로 한 말도 없었는데 대체 혼자 무슨 깨달음을 얻었다는 건지 상상만으로도 무서웠다. 엉뚱한 깨달음을 얻고 이상한 짓을 하는 게 아닐까 걱정하는 도유를 향해 청신이 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속삭이듯 대답했다.

“사랑은 쟁취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이요!”

도유는 생각했다.

‘이게 무슨 개소리야?’

*

카단에서 제일 바쁜 부서는 조사부다.

전국에서 벌어지는 사건 사고 중 조금이라도 마법과 관련이 있다고 파악되면 수사 협력 요청이 들어오는 까닭에 조사부는 하루에만 수십, 수백 건의 요청을 받았다.

그런 조사부 중에서도 제일 바쁘다고 소문난 1팀은 말 그대로 지옥이었다.

자잘한 사건들의 현장 조사는 물론이고 마법적인 반응이 없어도 일단은 과학적으로 그 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지 입증을 해야 했다.

그렇게 입증을 해내면 다시 경찰 쪽에 결과서를 보내 주고, 입증을 해내지 못하면 있는 것, 없는 것 긁어다가 가까스로 흔적을 잡아내고는 그 티끌만 한 흔적을 가지고 온갖 짓을 다 해서 어떤 마법을 썼는지 입증해 내야 했다.

차라리 전자는 사람이 할 만했다.

카단은 마법사 협회였지만 경찰이나 대학 등 여러 분야의 과학 연구소와 같은 곳과 연계를 하여 사무실 내에 뛰어난 인재들을 나이와 상관없이 두루두루 채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의외로 결과를 금방 입증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마법의 경우에는 정말 답이 없었다.

가령 ‘안녕’이라는 문장이 범인이 사용한 마법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여기서 조사부가 찾아내는 마법의 흔적이란, 저 ‘안녕’의 ‘ㅇ’, ‘ㅕ’라는 자음과 모음 하나둘 찾은 것에 불과했다.

그럼 조사부는 ‘ㅇ’과 ‘ㅕ’가 들어가 있는 모든 마법을 파헤치고 일일이 분석하고 확장시켜서 어떤 식으로 해야 사건과 관련된 현상을 일으킬 수 있는지 입증해 내야 했다.

말로는 쉬워 보이나 쉽지 않았다. 저 ‘ㅇ’이 들어간 마법만 해도 세 자릿수였으니까.

이런 미친 것 같은 조사부 1팀에 입사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리 학구열에 미친 인간이라 해도 한 달을 채 버티지 못하고 퇴사를 했다.

현재 조사부에 고인돌을 세우고 있는 이들은 전부 해탈한 자거나 미친 자거나 또라이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 조사부 1팀의 ‘해탈한 자’ 파트에 추가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두 달 차 신입, 정박연은 출근하자마자 진지하게 퇴사를 할까 고민했다.

“……외근이요?”

“그래. 이번에는 산골 마을이 아니니까 걱정 마. 이 근처야.”

얼마 전에 멀쩡한 사람을 납치하여 인형으로 만드는 [천화 마을 사건]이라 명명한 사건 현장의 조사를 마치고 왔던 정박연의 안색이 파랗게 변했다.

그것을 본 그녀의 상사, 상현은 그녀의 눈빛에 일순 스쳐 지나간 [퇴사]라는 단어를 보고 서둘러 덧붙였다.

“걱정하지 마. 이번엔 그렇게 끔찍한 현장은 아닐 테니까.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장소라 핏자국까지 싹 다 지웠어.”

“아뇨, 그 이유가 아니에요. 팀장님, 혹시 그 또라이, 아니 그 특수부 1팀 개놈, 아니 팀원도 오나요?”

평소에는 현명하고 또렷또렷한 목소리로 말하는 정박연이 말을 버벅거리자 상현은 현장 조사를 나갈 때면 눈을 반짝이던 박연이 지금은 이렇게 공포에 질린 눈을 한 이유를 깨달았다. 상현은 친절하게 제안했다.

“그냥 또라이 개놈이라고 해. 이야긴 들었으니까.”

천화 마을의 면적의 절반 정도 되는 거대 지하 공동에 만들어진 마법사의 연구실과 사람들을 가뒀던 것으로 추정되는 감옥 조사로 파견됐던 건 박연 말고도 아주 많았다.

조사부의 1팀과 3팀의 인원 전체가 파견됐었기에 현은 그날, 조사부에 갑작스럽게 동행하게 된 특수부 제1팀의 신입 팀원 이야기도 자연히 듣게 되었다.

들을 수밖에 없었다. 팀원들에게는 전달되지 않은 사항이지만, 특별한 연줄이 있는 현은 알았다.

빨리 돌아가야 한단 이유로 고난도의 마법을 동시에 세 개나 시전해서 숨겨진 금고와 함정을 전부 해체하고 그 공간에서 행해졌던 마법들의 수식을 벽에 불로 지져 새긴 미친놈이 바로 협회장의 숨겨진 아들이라는 것을.

“그래서 이번에도 같이 가나요? 또 현장 경험 배운다고 동행하면 저 말고 다른 담당 붙여 주세요. 그 사람은 정말 팀워크가 없어요.”

“그래, 네 말이 다 맞아.”

현은 고개를 열렬하게 끄덕이며 호응하는 것으로 그녀의 말이 옳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날, 박연이 조사를 마치고 청신이 남긴 마법의 흔적을 지워 내느라 애를 먹었다는 건 조사부의 사람들이 다 아는 일이다.

청신 정도의 마법사가 마법을 사용하고 그 공간에 남은 흔적은, 쌓이고 농축되어 언젠가 반드시 폭발과 같은 이상을 일으키게 되니 정화 마법으로 천천히 지워 내야 했다.

“너와 애들이 무슨 고생을 했는지 내가 누구보다 잘 알지. 보고를 받았으니까. 정말 고생 많았어.”

“흔적 남겨 놓고 그냥 간 건 뭐, 참을 수 있었는데요, 단독 행동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이런 말씀 드려서 죄송해요. 전 정말 그 미친놈과 일하고 싶지 않아요.”

게다가 청신은 그렇게 일방적으로 조사를 ‘혼자’ 끝내 놓고 담당으로 붙었던 박연에게는 말도 없이 혼자서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훌쩍 돌아오기까지 했다.

어디 다녀왔냐 물었더니 반가면 아래 드러낸 입매만 슥 올릴 뿐 아무 말도 안 했다.

박연으로서는 그런 청신이 미친놈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박연아. 네가 말한 미친놈이랑 같이 현장에 나갈 일은 앞으로 없을 거니까 걱정 마. 그리고 이번 현장은 너와 서주랑 박하만 갈 거야.”

“다행이네요! 그럼 당장 준비할게요!”

현의 말에 박연은 반색하며 팀장실을 뛰쳐나갔다. 현은 그녀가 자료를 받지 않고 파견 준비부터 하러 갔다는 사실에 살풋 웃다가, 그녀에게 넘겨주려던 자료로 시선을 내렸다.

가장 첫 장은 신문 기사의 헤드라인이 기재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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