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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46)화 (46/159)

#46

영연의 정보를 기억해 내느라 어영부영 대답한 사이, 영연은 도유의 어쭙잖은 반응을 긍정으로 받아들이고 활짝 웃었다.

“와! 나도 7학년에 아는 형 생겼다!”

“그…….”

도유는 당황했다. 초면인데도 불구하고 빠르고 친근하게 말을 붙여 오는 성격에 놀란 것도 있지만 기억해 낸 정보가 이상했기 때문이었다. 푸른 눈이 뿔테 안경 너머 박영연의 얼굴을 뜯어보았다.

영연이 말한 학과와 이름은 똑같았다. 아카데미에서 제출한 신상 명세 사진과 영연의 얼굴은 일치했다.

하지만 도유가 봤던, 아카데미에 입학할 때 박영연이 다닌 고등학교에서 제출한 신상 명세 속의 사진은 지금의 얼굴과 전혀 달랐다.

“형, 날 구해 줬으니 내가 밥 사 줄게!”

평소의 도유라면 이런 쾌활한 성격의 사람은 먼저 피했을 것이다.

게다가 영연의 목소리가 크고, 아카데미 내 ‘망상증 너드’라 불리는 서도유의 조합이라 슬슬 이쪽을 보는 이들이 늘어났다.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도유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영연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밥은 됐고, 나중에 네가 배우는 것 좀 물어봐도 돼?”

“응?”

“내가 졸업 작품 만들고 있는 게 있는데…. 마침 지금 막히는 부분이, 네 과에서 네 학년에 배우는 부분 같아서…. 괜찮을까?”

“나 그렇게 공부 못하는데. 알았어. 그럼 전화번호 줘, 형!”

순순히 영연에게 제 연락처를 넘겨 주었다.

연락처를 딴 게 뭐가 그렇게 좋은지 연신 싱글벙글 웃는 영연과 헤어진 도유는 영연이 사라질 때까지 관찰하는 눈으로 그를 지켜보다가, 목적지를 바꿔 학생 식당으로 향했다.

*

지금은 점심시간이다. 밥에 미친 굶주린 학생들이 몰리는 시기였지만 도유는 이번만큼은 개의치 않았다.

역시나.

식당에 도착하니 찾던 얼굴이 바로 보였다. 도유는 메뉴를 보는 척하면서 한쪽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밥을 먹고 있는 카단의 정보부 요원, 이윤원이 저를 보기를 기다렸다.

진짜 학생이었다면 밥을 먹거나 친구들에 집중해서 주변을 살피지 않았겠지만 카단의 요원은 다르다.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이윤원이 슬쩍 눈을 굴렸다가 도유를 보고 멈칫했다. 도유는 부스스한 제 머리카락을 만지는 척하며 신호를 보내고 몸을 돌려 식당을 나갔다.

그렇게 저와 청신이 빌린 연구실에서 기다린 지 얼마나 되었을까. 노크 소리가 들렸다. 일정한 횟수와 박자를 통해 그가 여기까지 오면서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죄송합니다. 마저 먹느라 늦었어요.”

“괜찮습니다.”

식사 중에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건드린 자신이 잘못한 걸 알았기에 오히려 미안할 뿐이다. 도유는 윤원이 편하게 앉을 수 있도록 친절하게 의자를 밀어 주었다.

윤원은 경계하는 아르마딜로처럼 고개를 뻣뻣하게 세운 채 의자에 앉았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긴장하는 모습에 도유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여기엔 저와 윤원 씨 둘뿐입니다.”

윤원은 청신의 정체를 알지 못하고, 어디까지나 도유의 실수로 피해를 본 피해자로만 알고 있을 터였다. 상부에서 그렇게 정보를 통제했으니까.

그렇기에 더더욱 이곳에 없는 타인, 즉 이청신을 신경 쓰는 태도에 의심을 품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물었다.

“혹시 저 때문입니까?”

“아, 아닙니다! 선배님 때문이 아닙니다.”

“그렇습니까? 자리가 불편한 거라면 말씀해 주십시오. 자리를 옮기겠습니다.”

“그러실 필요 없어요! 그나저나 호출하신 이유가 뭔지 여쭤봐도 될까요?”

딸기를 좋아하는 윤원을 위해 딸기 향의 가향차를 준비하려던 도유는 그가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어 한다는 것을 눈치채고 바로 윤원의 맞은편에 앉았다.

“정보를 요청드리고 싶습니다. 이름은 박영연. 나이는 24세. 3학년 속성 마법 화염 계열 3학년 소속입니다. 가급적이면 그의 출생 때부터 현재까지의 신상 정보와 사진을 부탁드립니다.”

성희유에게 메시지를 보내도 됐지만, 지금의 그가 굉장히 바쁘다는 걸 알기에 윤원에게 직접 요청했다. 도유의 말을 들은 윤원은 내용을 복기하듯 도유의 말을 입 속으로 한 번 중얼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조사가 끝나는 대로 선배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럼 용건은 끝이겠죠?”

사람에게는 감이라는 게 있다.

또한 도유는 시치미 떼는 수많은 용의자를 만나 온 사람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이 순간 윤원의 반응을 통해 그 감이란 것이 움직였다. 윤원은 이곳에 들어온 뒤부터 안절부절못했다. 그는 계속 눈을 굴려 빈자리를 보았다.

그 빈자리의 책상에는 이청신이라는 이름표가 끼워져 있었다.

“없으신 걸로 알고 전 이만 가보겠,”

“앉으십시오. 윤원 씨.”

“옙.”

다시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는 윤원은 엉덩이에 밤송이라도 깔고 앉은 사람 같은 안색이 됐다.

카단의 정보부는 부서의 특성상 잠입해야 할 때가 많다. 그래서 훈련을 받을 때 싸움보다 먼저 감정을 갈무리하거나 연기를 하는 것부터 배웠다.

동요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표정이나 목소리의 떨림만으로 상대방은 의심을 품게 되니 특히 표정과 목소리를 위주로 한 기술을 배우는 것을, 도유는 알고 있었다.

그런 고도화된 기술을 배운 윤원이 이렇게 도유의 앞에서 동요하고 티를 낸다. 아무리 눈치가 없는 사람이라도 이번만큼은 윤원의 반응만 보고도 원인을 손쉽게 알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덧없는 희망이란 걸 알면서도 절박하게 기도하고 바라는 것처럼, 도유는 제발 아니길 바라는 마음으로 물었다.

“이청신이 윤원 씨에게 뭐라고 했습니까?”

“아아뇨?”

“저와 관련돼서 윤원 씨에게 뭔가 했군요.”

“아, 아닙…. 으흑.”

청신이 뭔가 한 게 분명했다. 부정하다가 제 신세가 처량하게 느껴졌는지 울컥한 윤원을 보고 도유는 이마를 감싸 쥐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짓을 했습니까?”

윤원이 입술만 달싹이고 말을 하지 않는다. 도유는 고양이를 병원에 데려가는 사람처럼 어르고 달래는 어조로 말했다.

“말해도 괜찮습니다. 이청신이 윤원 씨에게 보복할 수 없도록 만들겠습니다.”

다른 사람이면 천재 마법사인 청신을 어떻게 마나 감응력만 높은 도유가 이길 수 있겠느냐 되물었을 것이다.

그러나 윤원은 아주 잠깐 생각하는 듯 눈을 굴리더니 혼자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윤원이 ‘그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요.’라는 등의 부정의 말을 할 줄 알고 다음 말을 준비하던 도유의 표정이 살짝 떨떠름해졌다.

“두 번째로 선배님과 접선했던 그다음 주 월요일에, 이청신 선배님이 아침에 저희 집 앞까지 찾아와서 아카데미까지 차 태워 줬어요….”

“……?”

도유는 고민했다.

‘접선이라 하니 부패하고 비리가 가득한 어떤 짓을 저지른 것 같으니 다른 단어를 쓰는 게 어떻습니까?’

‘일단 윤원 씨 말만 들어 보면 이청신이 웬일로 후배에게 선배다운 짓을 한 것 같습니다만.’

이 두 말 중에서 뭘 먼저 말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어 바로 입을 열지 못했다.

도유의 표정을 보고 그 고뇌를 용케도 알아차린 윤원이 서둘러 보충했다.

“그, 저 내려 주기 전에 선배님이 그러셨어요. 도유 선배님께 치근덕거리지 말라고. 한 번만 더 도유 선배님께 수작질하면 화를 낸다고 하셨는데, 표정은 죽여 버린다였어요.”

그때가 떠올랐는지 윤원이 비에 흠뻑 젖은 강아지처럼 부르르 몸을 떨었다.

“이청신이 그런 말을 했다는 겁니까?”

“네. 진짜예요.”

축약한 거지만 요점이 그랬다. 그리고 그 중간에 이청신이 도유에 대해 ‘매력적이다, 사랑스럽다, 핥고 빨고 싶다, 탐스러운 존재로 보인다, 맛보여 준다’는 등의 이상한 단어를 사용했다는 건 만약을 위해 말하지 않았다.

윤원의 선택은 옳았다. 이미 도유는 청신이 뭣도 모르는 - 공식적으로만 - 1학년 신입생의 집까지 찾아가 저를 넘보지 말라며 경고한 청신의 유치한 행동에 화가 난 상태였다.

만약 윤원이 중간 말까지 넌지시 전했다면 도유는 당장 청신을 불러 멱살을 잡았을 터였다.

“하…. 고생 많으셨습니다, 윤원 씨. 저 때문에 미친놈… 아니 이청신과 엮여서 많이 놀라셨을 것 같습니다.”

“아니에요! 어쨌든 전 선배님이 궁금해하신 것 말씀드렸으니까! 잘 부탁드립니다.”

“알았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도유는 윤원을 연구 동 앞까지 배웅해 주었다. 헤어지기 전에 일전에 줬던 사탕 중에서 직접 골라낸 딸기 사탕을 한 움큼 쥐여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윤원은 사탕을 받고 기뻐하며 연구 동을 떠났다.

다시 연구실로 돌아온 도유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제 작업대 앞에 앉았다.

박영연의 정보는 늦어도 이틀 내로는 올 테니, 그 전까지 청신이 세 번째로 새길 아티팩트의 마법식을 점검하는 게 나았다.

아까 교수와 대화를 나누면서 더 효율적으로 고칠 수 있는 부분을 떠올렸기에 설계도에 연필을 그어 나가는 도유의 손은 막힘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 가는 것도 모르고 도유가 설계도에 집중한 지 꽤 긴 시간이 흘렀을 무렵이었다.

도유가 설계도에서 시선을 떼고 고개를 든 순간 두 눈 위에 따듯한 체온이 덮였다. 이미 등 뒤에서 나타난 익숙한 기척을 읽었기에 도유는 공격하는 대신 기다렸다는 듯 상대방의 양 손목을 꽉 움켜쥐었다.

“아, 도유 형. 형도 저 보고 싶었어요?”

“이번만큼은 널 보고 싶어서 기다리고 있었어.”

“정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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