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45)화 (45/159)

#45

성희유의 너머로 저 멀리 카단의 문양이 그려진 차들이 이쪽을 향해 오는 걸 보고 도유가 말을 돌렸다.

“예의상 맛있다고 대답한 거면 세 잔이나 마시진 않았겠죠.”

“아….”

“괜찮아요, 도유 씨. 제가 전에 말했잖아요. 좋아하는 건 좋아한다고 말해도 된다고.”

“…알겠습니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팀장님, 저도 부탁드립니다.”

“좋아요. 백휘 씨도 이번에 도유 씨 서포트하느라 고생했으니까요.”

부끄러워진 마음에 도유가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들었다. 마침 차에서 내린 조사부와 청신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청신은 이 거리에서 봐도 눈에 띄었다. 저 인간은 그냥 빛이 아닐까, 하고 흘러가듯 생각을 하는 사이 그들을 태운 차가 부드럽게 출발했다.

*

임무가 끝나고 보고서까지 제출해서 올리자 성희유가 짧은 휴가를 주었다.

단 하루뿐이었지만 그래도 휴가가 어디냐는 생각에 들뜨기도 잠시, 도유는 그 휴가를 간장처럼 묵혀 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카데미에서 범법자를 찾는 임무가 끝나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었다.

‘간장은 오래 묵히면 묵힐수록 비싸진다는데, 내 휴가는 처량해질 뿐이네~.’

서글픈 직장인은 속으로 흥얼거리며 아카데미의 교수와 만나 졸업 작품 진행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도유는 의외로 기분이 굉장히 좋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청신이 자발적으로 판 무덤에 스스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즉, 천화 마을 실종 사건의 용의자인 석주언과 관련되어 현장 조사를 자처한 청신이 아직도 그 천화 마을에 있다는 뜻이었다.

도유는 그날 땅굴을 달리며 이곳을 조사하게 될 조사부가 몇 날 며칠은 머물며 말 그대로 개고생해야 한다는 걸 절절하게 느끼고 조사부를 동정했었다. 그런데 그 개고생을 이청신이 하게 된다니?

상상만으로도 기대됐다.

도유 때문에 특수부 1팀에 온 청신이 힘든 일에 투입된 것은 안타깝고 안쓰러웠다.

하지만 청신이라면 도유가 찾지 못했던 것을, 조사부가 미처 알아채지 못한 것을 찾아낼지도 모른다. 도유는 청신의 실력을 믿었고, 그렇기에 기대를 품었다.

하나라도 더 밝혀져서 그곳에서 죽은 피해자들의 넋이 조금이라도 달래지기를 바랐다.

…사실 아카데미에서 만날 때마다 도유에게 달라붙는 청신이 없어 오늘은 간만에 수사다운 수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더없이 기뻤다.

청신을 범법자로 오인하고 급습한 날 이후 이 잠입 수사에 아무런 진전이 없었으니 조만간 불려 갈까 무서웠던 도유는 오늘은 반드시 진전을 시키리라 다짐하며 담당 교수를 찾아갔다.

“거기 앉아서 기다리게.”

“네….”

보고서 제출만 하고 곧장 가려고 했던 도유는 교수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딱히 시간이 없는 것은 아니기에 얌전히 교수가 가리킨 자리에 앉았다.

좌불안석이기는 했다. 도유는 긴장한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눈만 데굴데굴 굴리며 교수실을 구경했다. 솔직히 담당 교수를 직접 마주하는 건 처음이었다.

7학년 서도유라는 신분은 정교한 신분 조작과 정보 조작 및 이 아카데미 학장과 카단의 모종의 거래를 통해 만들어졌다. 들킬 염려는 없었지만, 교수가 뭔가 알아차리고 추궁하면 어떤 식으로 대응할지 [상황별 대처 매뉴얼]을 빠르게 머릿속에서 넘겨 보았다.

‘망할, 없잖아.’

교수와 가짜 학생으로 만났을 경우 어떻게 대처하라는 매뉴얼이 없다.

도유가 그럼 어떻게 교수를 대하는 게 가장 의심을 사지 않는 방법일까 고민하는 사이, 보고서를 다 읽은 교수가 매서운 눈으로 도유를 봤다.

“이거, 도유 학생이 쓴 건가?”

“네, 네…. 제가 썼어요….”

거짓말이 아니다. 아무리 바쁘고 잠을 자고 싶어도 청신이 쓴 것을 그대로 쓰기에는 양심이 찔렸기에 결국 도유는 어제 본부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서를 다시 썼다.

첨부한 사진이나 마법식은 그대로 넣는 수밖에 없었다. 사진을 찍으러 연구실에 갈 상황도 아니었고, 마법식은 도유가 손 글씨로 썼던 걸 청신이 워드로 옮겨 적어 준 것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교수가 눈을 번뜩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도유는 그것이 의아했지만, 교수가 빈 A4 용지와 펜을 들고 제 맞은편에 앉는 모습에 더더욱 의문을 품게 되었다. 뭐지?

“도유 학생. 이 수식에서 이 부분을 이런 식으로 한 건 어째서인가? 이렇게 하면 아티팩트를 사용했을 때 소모되는 마력의 양이 많을 텐데.”

도유가 제출한 보고서의 한 부분을 짚으며 묻는 교수의 말에, 도유는 잠시 놀랐지만 곧 대답했다. 대답을 하고 나자 교수의 표정이 굳었다.

뭔가 잘못 말했나, 너무 학생답지 않은 말을 했나… 도유가 움찔한 사이에 교수는 몇 가지 질문을 더 던졌다.

도유는 일단 몇 번은 말로 대답하다가 나중에 가서는 교수가 꺼내 왔던 A4 용지와 펜을 빌려 직접 예시로 들 수 있는 수식들을 막힘없이 적어 내려갔다.

처음 설계를 했을 때 이 부분을 차용하지 않은 이유와 보완을 할 경우에 어느 부분에 문제가 생기는지 등등.

여러 상황을 고려한 수식들을 설명해 주며 A4 용지의 여백을 빼곡하게 채워 넣었다.

물론 카단의 인간인 걸 눈치챌 수 없게 이 아카데미에서 가르치는 수준에 맞추어 말하는 걸 잊지 않았다.

그러나 도유는 몰랐다.

아카데미 학생들이 전부 수업을 듣는 족족 이해하는 게 아니며, 자기가 관심 있는 게 아니라면 배워도 하루면 잊어버리고 만다는 것을.

하나의 전공에 7년을 내내 매달린다 하더라도 예시까지 만들고, 예시에 따라 생길 장단점과 또 그걸 응용한 마법식을 세울 수 없다는 것을.

가능한 학생도 분명히 있기야 있었다. 이청신이 그 대표적인 예였다. 그러나 그런 학생은 1년에 한 손으로 꼽을 정도로만 나왔고 찾아내는 것도 힘들었다.

“이해했네. 그럼 혹시, 최근 학회에 나온 마법 이론 중에 이런 것이 있는데 읽어 보겠나?”

그렇게 말하며 교수가 도유에게 건넨 건 학술지였다. 도유도 틈틈이 읽어 보는 학회에서 발간한 거였다. 읽어 보지 못했던 것이기에 도유는 집중해서 그것을 읽고 눈을 빛냈다.

눌어붙어 찌든 기름처럼 업무에 찌들어 있던 사이에 이런 게 나왔다니.

그는 기쁜 마음으로 그것을 정독했다. 그리고 교수는 또 그것과 관련해서 도유에게 질문을 던졌다. 도유는 성실하게 대답하면서도, 교수가 자신이 이해한 것, 그리고 생각한 것에 대해 말해 주자 깊은 흥미를 느끼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리고 그렇게 제법 시간이 흐른 뒤, 도유는 제 개인 연구소에 들어와서 함께 일하지 않겠냐며 표범처럼 눈을 번뜩이는 교수를 보고 뭔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됐다는 걸 깨닫고 말았다.

*

도망치듯 교수실을 나오며 도유는 성희유에게 자신의 실책을 솔직하게 보고했다. 그래야 성희유가 자신의 선에서 처리해 줄 테니까. 마침 성희유도 한가했는지, 답장이 금방 돌아왔다.

[^^....ㅎ]

복도를 걷던 도유의 걸음이 우뚝 멈췄다. 도유는 성희유의 답장을 보고 체온이 싹 빠져나가는 걸 느꼈다.

입 없이 웃는 이모티콘만 해도 성희유의 기분이 저조하다는 증거인데 ‘.’까지 4개나 연속으로 찍혀 있다.

그것만으로도 무섭건만 화룡점정으로 ‘ㅎ’이 달랑 하나만 찍혀 있다는 건, 명백하게 도유를 가만 내버려 두지 않을 거라는 은유적인 뜻이었다.

“억!”

성희유의 문자에 벌벌 떨며 모퉁이를 도는 순간, 충격을 느꼈다. 몸이 반사적으로 반응했다. 제게 부딪혀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지는 학생을 향해 도유는 손을 뻗어 학생을 붙들었다.

“어, 어…?”

눈을 질끈 감고 있던 학생이 어리둥절해하며 ‘어어’ 소리를 내다가, 제 팔을 강하게 붙든 도유의 손과 도유의 얼굴을 보고 허억, 하고 숨을 삼켰다. 도유는 학생의 반응을 이해했다. 아카데미 학부생들이 죄다 피해 다니는 너드가 자길 붙잡아 줬으면 기겁하는 게 당연하다.

“우와! 감사합니다!”

놀란 것도 잠시, 학생은 쾌활한 어조로 외치며 제대로 자리에 섰다. 도유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작은 소리로 물었다.

“괜찮아…?”

너드의 본분을 잊지 않았기에 소심하고 작은 목소리다. 심지어 마스크까지 쓴 상태라 학생은 도유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제 얼굴을 도유에게로 들이댔다.

“네? 못 들었어요. 죄송한데 다시 말씀해 주세요!”

이 학생은 원래 목소리가 이렇게 크고 밝은 걸까. 해맑게까지 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도유의 대답을 기다리는 학생의 눈빛에서는 악의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다.

도유는 청신보다는 아니지만 얼굴을 들이대는 학생에게 부담감을 느끼는 척 뒷걸음질 쳤다. 교묘하게 학생의 손이 닿지 않는 위치까지.

“괜찮냐고 물었어. 넘어질 뻔했잖아.”

“아아, 괜찮아요! 어, 선배? 선배인가요? 아님 후배? 모르겠네. 전 3학년이에요! 속성 마법 화염 계열 학과 박영연!”

도유의 나이를 모르기에 고개를 갸웃하던 학생, 박영연이 외쳤다.

“나는 아티팩트 제작과 7학년 서도유야.”

대답하는 동시에 머릿속으로는 빠르게 3학년생 중에 박영연이라는 이름의 인간의 정보를 찾았다.

“와, 그럼 선배네요? 혹시 형이라고 불러도 돼요?”

“어, 어 응….”

“말도 놔도 돼요? 형이 저 구해 줬으니까 친해지고 싶어요~!”

“어,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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