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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42)화 (42/159)

#42

그 어떤 마법도 저런 형태를 띠는 건 없었다. 더군다나 아무리 강한 마법이라고 해도, 상반되는 속성의 마법을 사용하면 조금이라도 녹는 게 옳았다. 하지만 도유가 만들어 낸 얼음은 오히려 더 단단하고 견고하게 언데드들을 얼렸다.

“이상한 힘을 쓰는구나!”

석주언은 곧바로 다른 마법을 사용했다. 도유는 자신을 붙잡기 위해 날아온 돌덩어리 같은 것을 옷소매 아래 숨겨 놓았던 나이프로 쳐 냈다. 쳐 낸 순간 제가 뭘 쳐 냈는지 자각한 그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죄송합니다.”

마법으로 일시적으로 만들어 낸 돌덩어리인 줄 알았더니 언데드의 손이었다. 이 이상 시신이 최대한 훼손되지 않기를 바랐건만, 석주언이 협력해 줄 리가 없다.

“석주언 씨. 피해자의 신체 일부를 날리는 건 조금 삼가 주십시오.”

“마법사도 아니면서 아티팩트를 사용하고, 이상한 힘은 그렇다 쳐도…. 움직임을 보아하니 강현 아우님, 카단의 개였습니까?”

카단의 개라니. 도유는 울컥했다.

개는 이쁨이라도 받는다. 애교 부리면 간식도 받고 가만히 있어도 사랑받는다.

서도유는 카단의 개가 아니었다.

그는 그냥 카단의 노예였다!

동시에 석주언이 누구의 밑에서 일해 본 적 없는 인간이라는 걸 눈치챘다. 같은 노예 신세를 겪어 본 적이 있다면 개라는 좋은 단어는 사용하지 않았을 테니까.

도유가 속으로 서러워하거나 말거나, 석주언은 카단의 개가 유독 언데드들의 몸을 훼손하거나, 훼손해야 할 때 멈칫하는 걸 알아차렸다.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아직 자유로운 언데드들, 심장이 살아 있는 젊은 남성과 여성의 몸을 움직여 도유를 공격했다.

확실히 이번에도 반응이 달랐다. 그 짧은 틈에도 저를 덮치려는 남성의 손목을 잡아 맥을 짚어 본 도유는 그가 살아 있다는 걸 알고 순식간에 뒤로 돌아가 뒷덜미를 내리쳤다.

아무런 전문 지식이 없는 사람이 하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위험한 기술이었으나 도유는 전문적으로 배운 사람이었다. 죽는 게 아니라 기절한다. 그러나 뒷덜미를 맞은 남성의 육신은 멀쩡하게 움직여 도유를 향해 손을 뻗었다.

“역시.”

도유가 중얼거렸다.

“소용없습니다. 모두 내 인형술로 움직이고 있으니까.”

그럼 2안밖에 없구나. 도유는 속으로 중얼거린 뒤 이런 경우에 요긴하게 쓰이는 방법을 사용했다.

우득! 우드득!

남성의 양팔을 뽑아 버린 도유는 주머니에서 긴 막대 형태의 아티팩트를 꺼내 다리 쪽으로 던졌다. 발동된 아티팩트가 곧바로 남성의 다리를 휘감아 단단하게 땅에 고정시켰다.

이어 도유은 제 머리를 노리는 여성의 품을 파고들어 팔을 잡아챘다. 남성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과정이 이어졌다.

겉보기로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무자비한 행동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 도유는 속으로 ‘죄송합니다’라는 단어를 팔 하나를 뽑을 때마다 100번씩 복창하고 있었다.

벌레처럼 몸을 꿈틀거리는 피해자 두 명의 안색을 잠시 살펴보는 사이, 어린아이의 몸을 한 석주언이 마법을 준비하는 걸 알아차린 도유는 곧바로 허리춤에 숨겨 놓았던 총을 꺼내 쏘았다.

소리도, 피도 튀지 않았다. 오로지 도유의 눈에만 보이는 마력이 타오르는 불꽃처럼 탄환이 스쳐 지나간 곳을 중심으로 사라졌을 뿐이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걸 내가 보게 될 줄이야.”

석주언도 제가 시전 중이던 마법이 그대로 파훼되었다는 걸 깨닫고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이만 투항하십시오.”

도유는 마지막으로 아이의 몸을 확보하기 위해 석주언을 향해 다가갔다.

한 걸음 내디딘 순간, 아이의 목은 물론 얼굴의 핏줄이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점점 아이의 몸이 붉게 물들고 핏줄과 피가 요동치는 게 피부 너머로 보였다. 저것이 무슨 증상인지 잘 아는 도유가 멈칫하자 석주언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움직이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강현 아우님이 움직이면 이 몸은 터질 테니까. 그리고 강현 아우님이 데리고 온 아이도 죽일 겁니다. 시체로도 인형은 만들 수 있으니까요.”

꼭 이런 놈들이 있었다. 피해자의 목숨을 인질로 삼아서 자기 목숨을 지키려는 놈들. 지겹게 봐 온 타입이었다. 도유의 무표정한 얼굴에서 질색하는 기색을 용케도 알아본 석주언이 덧붙였다.

“마법에 대한 지식이 있다면 알 겁니다. 저와 동급 이상의 마법사가 아닌 이상 체내의 마력을 폭발시키는 현상을 막아 낼 수 있는 방법 따윈 없다는 걸.”

“맞는 말입니다.”

도유는 순순히 인정했다. 현재 도유가 가지고 있는 아티팩트들은 물론, 다른 마법사가 이 자리에 있다 해도 체내의 마력을 폭주시켜서 폭발하도록 만드는 것에 대응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렇기에 도유는 당당하게 말했다.

“그러니 부탁해. 이건 내가 어떻게 못 하겠다.”

“뭐?”

도유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광풍이 땅굴 안에 휘몰아쳤다. 시야가 번쩍거렸다. 그에 도유가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뜨는 순간 털썩, 하는 소리가 들렸다.

쓰러진 석주언이 등지고 있던 방향에서 백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주변을 맴도는 뇌전의 마력을 본 도유는 빙긋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도와줘서 고마워, 휘야.”

“인사는 됐어. 널 돕기 위해 여기에 온 거니까.”

와이어에 휘감겨 꿈틀거리며 벗어나려던 언데드들도 모든 움직임을 멈추고 축 늘어진 것을 확인한 도유는 이어 실이 끊어진 남성과 여성, 그리고 아이의 몸을 살폈다.

“다행이다.”

실이 끊어졌는데도 아직 심장이 미약하게 뛰고 있었다. 처치만 잘한다면 살아남을 수 있다. 도유의 행동을 읽은 것처럼 백휘가 도유에게 돌을 건넸다. 마력을 주입시킨 마석이라고 불리는 돌이었다.

도유는 마석을 받아 들자마자 벨트에서 뽑아낸 얇고 긴 침에 마석에 깃든 마력을 흡수시킨 뒤, 피해자들의 손목에 조심스럽게 꽂았다. 그러자 서서히 그들의 얼굴에 혈색이 돌아오는 걸 보며 도유가 옅게 웃었다.

“그러고 보니 팀장님은?”

임시 처치를 마친 도유가 물었다. 성희유가 잘못될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은 가벼운 어조다. 실제로 도유는 성희유를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제가 잘못되면 잘못됐지, 그는 카단의 특수부 제1팀 팀장 성희유다.

특수부에서 가장 긴 시간을 보낸 사람. 현재는 직접 임무에 뛰어드는 일이 드물었지만 도유는 지난 20년간 그와 함께 지냈기에 확신했다. 애초에 백휘가 지금 도유에게 온 것이 그 증거다.

백휘가 시선을 내리깐다. 그의 주변에 휘돌던 옅은 마력이 사라지자 대답이 돌아왔다.

“지금 석주언을 ‘확보’했으니 위에서 합류해서 조사부를 호출하시겠대.”

“나가는 입구가 여기에 있나?”

두리번거렸지만 밖으로 통하는 흐름이 딱히 보이지 않는다. 처음 도망쳤을 때 언데드가 왔던 방향으로 가야 하나 싶어서 도유가 걸음을 옮기려던 때, 주변의 풍경이 흔들렸다. 녹아내리는 솜사탕처럼 그들이 서 있던 장소의 결계가 풀리며 점점 원래대로 돌아왔다.

“……여긴.”

제일 먼저 본 것은 녹이 슨 철창이었다. 한두 개도 아니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었으며 많았다. 도유는 보자마자 알았다.

이곳은 오래전에 만들어진 지하 감옥이었다.

이 안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은 걸까? 도유는 새빨간빛을 품은 불길한 마력이 화마에 휘감긴 것처럼 방 곳곳을 가득 채운 것을 보고 비틀거렸다. 눈에 붉은 물감을 칠한 것처럼 시야가 온통 시뻘겋다. 백휘가 다가와 몸을 지탱해 주지 않았더라면 넘어졌을 터였다.

“…고마워.”

“응.”

정작 땅굴 속에 있었을 때는 맡지 못했던 젖은 흙냄새와 곰팡이 냄새, 그리고 시신의 냄새가 한데 뒤엉켜 후각을 마비시켰다.

도유의 푸른 눈빛이 남색에 가까운 색으로 물들었다. 이 안에서 석주언이 오랫동안 사람을 실험체로 사용해 자신의 욕구를 채웠다는 사실을 다시금 인지하자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도유야.”

입술 사이로 뭔가가 파고들었다. 도유는 그게 약용으로 만든 담배라는 걸 알고 백휘를 보았다. 제 주머니에서 꺼내 가는 것도 몰랐다. 눈이 마주치자 백휘가 담배 끝에 불을 붙여 주었다.

“괜찮으니까 피워.”

도유는 입에 문 약을 빼내려고 했다.

“내가 봐야 할 게 있을지도 몰라.”

“팀장님이 허락하셨어.”

“……알았어.”

성희유가 허락했다면야. 도유는 마음 놓고 약을 빨아들였다. 시야를 붉게 물들인 마력이 점점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그에 목 아래까지 차올랐던 구역감이 조금씩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숙여 한쪽에 나란히 눕혀 둔 이번 사건의 생존자들을 보았다.

‘그래도 세 명을 구했으니까.’

자신이 한 일이 완전히 무의미한 일이 아니었다고 스스로에게 변명하듯 중얼거리며 도유는 백휘와 함께 걸어 나갔다.

*

결계 밖으로 나와 카단에 조사부 파견을 요청한 뒤, 도유는 이 마을에 들어올 때 탔던 차 안에서 혼자 대기하게 되었다.

성희유도 함께 와서 쉬었으면 마음이 편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석주언에게 볼일이 남았으니 차 안에서 조사부가 올 때까지 대기하란 말만 남기고 연락을 끊어버렸다.

백휘는 도유를 차까지 데려다준 뒤, 생존자를 일단 안전한 곳으로 옮겨 놓겠다며 다시 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졸지에 혼자 쉬게 된 도유는 가시방석에 앉은 사람처럼 이따금 몸을 움직이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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