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41)화 (41/159)

#41

성희유를 에워싸고 공격할 태세를 갖췄던 언데드들의 목이 한순간에 바닥을 굴렀다. 석주언은 성희유의 곁에 나타난 장신의 남자를 보았다.

새하얗게 센 머리카락. 그 아래 2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얼굴은 굉장히 젊었다. 그러나 석주언의 모습을 바라보는 주홍색 눈에는 사람의 이지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껍데기처럼 보이는 죽은 눈이다.

석주언은 성희유와 남자를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남자의 얼굴은 성희유의 얼굴과 무척이나 닮아 있었다.

마치 성희유가 성장하면 저 남자의 얼굴이 될 것 같았다. 눈동자 색 또한 똑같았다. 그의 입술이 달싹였다. 경악을 담았던 눈이 환희로 물든다.

“아…. 이렇게. 이렇게 완벽한 인형이…. 내가 왜 이 방법을 생각을 못 했을까. 아아….”

거리가 조금 있음에도 불구하고, 석주언은 저 남자의 육신에 강대한 마력이 머물고 있다는 걸 깨닫고 눈물까지 글썽였다.

저건 분명 마법사의 몸이다. 인형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육신의 마력을 빼고 시전자의 마력을 변형시켜 만든 실을 혈관의 신경 대신 넣어야 하는데, 남자의 몸은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

그저 온전한 육신 그대로 썩지도 않은 채 완벽하게 인형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자신이 바라는 가장 이상적인 인형을 마주하게 된 석주언은 환희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너, 네 혈육의 몸을 인형으로 만들었구나!!”

성희유는 대답 대신 빙긋 웃어 보였다. 그것이 신호라도 되듯, 석주언이 인형이라 칭한 남자가 움직였다. 그는 들고 있던 대검을 휘둘러 성희유의 어린 육신을 옭아맨 붉은 줄을 끊어 냈다.

“너도 카단이겠구나. 카단이 이런 완벽한 인형술을 가진 걸 알았더라면 진즉에 거기부터 갔을 텐데! 아, 아깝구나 아까워! 나도 인형술에 한평생을 바쳤건만!”

석주언은 완전히 들떠 있었다. 그의 흥분을 알려 주듯, 그가 난폭하게 마력을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네 인형술을 내게 알려 주거라! 네 마법은 인형술사의 인형술보다 더 완벽할 거야!”

“당신이 생각하는 ‘완벽한 인형술’이 뭔가요?”

목소리는 ‘인형’ 쪽에서 흘러나왔다. 오랫동안 말하지 않았던 듯 깊게 잠긴 목소리였다.

“실을 심어도 썩지 않는 육신을 유지하는 것? 아니면 마력을 품고도 당신과 의식을 공유하고 마법도 사용할 수 있는 것을 ‘완벽한 인형술’이라고 하나요?”

이번에는 어린 모습의 성희유가 물었다. 석주언이 외치듯 대답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나는 인형술사처럼 분명한 자의식을 가진 마법사의 의식마저 빼앗고 그들을 인형으로 부릴 수 있는 인형술을 원한다! 그래, 너처럼! 네 힘만 손에 넣으면 내가 두 번째 인형술사가 될 수 있어!”

“당신은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물건으로 보는군요.”

“나보다 열등한 것들은 모두 인간이 아니야. 네가 머리를 베어 버린 그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들이 그중 가장 최악이지. 마법사도 아니고, 능력도 없고, 육신은 쓸 수도 없어. 한번 인형으로 부리면 너무 쉽게 썩어 버리지.”

“음, 고마워요. 계속 고민하고 있었는데, 당신에게 가장 적합한 고문이 뭔지 지금 정했어요.”

웃음기 어린 앳된 목소리와 동시에 성희유가 손을 뻗었다. 그의 손가락 끝에 빛이 모였다가 사라졌다.

석주언은 지금의 흐름을 느끼고 이제야 저 어린 몸이 품은 마력이 일반인과 똑같은 이유를 알아차렸다. 수도꼭지를 잠가 두듯, 필요할 때마다 성인체인 인형의 몸에서 끌어다 쓰고 있는 거다.

그런 섬세한 컨트롤까지 가능하다는 사실에 경이까지 느끼며 석주언이 성희유를 잡으려던 때였다.

스으으윽.

석주언은 제 앞에 일어난 현상에 놀라 그대로 움직임을 멈췄다.

인형이 베어 버렸던 언데드들의 목이 작게 흔들리더니 쓰러진 몸을 향해 스스로 붙었다. 더 놀라운 변화는 다음으로 이어졌다.

“어, 어, 어떻게…!”

육체에 목이 붙자 언데드들의 피부가 빠르게 재생되기 시작한다. 썩었던 피부에 새로운 붉은 피가 흐르고 멀쩡한 빛깔의 살점이 차올랐다. 그 일련의 과정이 끝났을 때 언데드들이 동시에 눈을 떴다.

“당신 입으로 말한 ‘열등한’ 존재에게 어디 한번 죽을 때까지 뜯어 먹혀 보세요. 아, 걱정 마세요. 당신이 죽어도 제가 얼마든지 ‘인형’으로 되살려 드릴 테니. 그 뒤에 당신 뇌에서 그동안 당신이 사용한 마법식과 피해자들의 신상 명세와 그들에게 한 짓을 끄집어낼 거예요. 당신이 해 줄 필요는 없어요. 제가 전부 알아서 할 거니까.”

석주언은 정신을 차리고 저를 텅 빈 눈으로 노려보는 언데드, 아니 피해자들을 죽이기 위해 화염 마법을 사용하려고 했다.

“어…?”

그러나 그 순간 석주언은 마력을 운용하기는커녕, 고갯짓을 하는 것도, 손끝을 움직이는 것, 하다못해 눈을 깜빡이는 것조차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겨우 눈알만 굴려 제 몸에서 뿜어져 나온 것처럼 가닥가닥 달라붙은 수백 개의 줄을 보았다. 그리고 그 줄의 끝은 성희유의 곁에 선 백발의 인형과 이어져 있었다.

석주언은 자신이 잘못 파악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인형이라고 생각했던 성인 남성의 모습을 한 마법사의 육신이 성희유의 본체였다.

그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오래전 석주언은 인형술사가 카단에 붙잡혔다는 이야길 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의 석주언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의 우상이자 목표인 인형술사가 카단 따위에 잡힐 리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만약 그게 사실이었고, ‘그’ 인형술사가 카단 밑에서 일하고 있던 거였다면?

“그들이 죽기 전에 품었던 원한이 제법 깊어서 딱히 제가 조종하지 않아도 되겠군요. 음, 일단 가볍게 카단에서 파악한 실종자 수만큼만 죽어 보시죠.”

성희유가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말하자마자, 언데드들이 석주언을 향해 달려들어 그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

성희유가 석주언과 대화를 시작할 즈음, 도유는 언데드들에게 쫓겨 달리고 있었다.

도유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도망가기만 하자 언데드들의 목에서 웃음소리와 비슷한 쉰 소리가 흘러나왔다.

도유는 귀를 쫑긋 세우고 그 소리를 낸 언데드들의 얼굴을 기억했다. 혀가 부패하고 숨을 쉬지 않으니 제대로 된 소리를 낼 수 있을 리가 없다.

‘셋만이라도 살릴 수 있다면.’

가급적이면 한 명이라도 더 구해 내고 싶었지만 이미 너무 늦어 버리고 말았다는 걸 알았기에 속이 쓰렸다.

특수부의 일을 할 때면 석주언같이 타인의 생명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이용하는 마법사들을 많이 만났다.

마법사가 아니어도, 범법자의 마법을 얻었던 피해자들이나 불법적인 아티팩트를 구해서 자신의 득을 위해 타인을 희생으로 삼는 비마법사도 많았지만 비율로 따지면 마법사가 더 많았다.

어쩌면 도유를 쫓는 저 언데드들 중에서도 그런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걸 알았지만 도유는 가능하다면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구하고 싶었다.

후일 어떤 치죄를 받게 된다 한들 당장은 제 앞에서 죽지 않길 바랐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멍청하고 지독한 이기심인지 알기에 도유는 더는 망설이지 않았다.

달리던 속도가 점점 느려졌다. 이윽고 걸음이 완전히 멈췄다. 완전히 막다른 길이다. 더 나아갈 길이 없다.

도유는 무겁게 가라앉은 푸른 눈동자로 제 앞을 막은 벽을 보았다.

긁은 자국이 가득한 벽이다. 사람의 피로 보이는 다섯 개의 검은 줄이 마치 짐승이 할퀸 상흔처럼 한 벽면을 채울 정도로 가득 남아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곳에서 벽을 긁으며 생을 갈구했던 걸까.

그는 저를 비웃듯이 멈춰 선 언데드들 사이로 걸어 나온 아이 모습의 석주언을 보았다.

“매번 사람들을 여기까지 몰아넣었던 겁니까?”

도유의 말투가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그러나 석주언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사람 좋게 웃으며 답했다.

“적어도 달릴 수 있는지는 봐야 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인형으로 만드는 수고를 들이는데, 달리지도 못하는 몸이라면 만드나 마나 불량품이지 않겠습니까. 강현 아우님은 예상대로 잘 달리니 마음에 듭니다.”

사람을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는 어조다. 예상은 했지만 직접 들으니 속에서 열이 뻗쳤다. 도유는 울컥울컥 치미는 분노를 그 어느 때보다 꾹꾹 눌러 두고 손을 움직였다.

쩌적!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언데드들의 몸이 허공으로 떠오름과 동시에 버둥거리자마자 새하얗게 얼어붙었다. 땅굴 안에 한기가 스미기 시작했다.

“마법사였나? 아니야, 마법사였다면 이곳에 들어왔을 때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을 리가 없어.”

석주언이 중얼거리며 당황하는 사이 도유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움직였다.

손목에 낀 팔찌에서 뽑아낸 와이어로 제게 달려드는 언데드들을 제압하고, 곧바로 얼리는 것으로 움직임을 봉쇄했다.

석주언이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마법을 사용했다. 그는 언데드들을 붙잡은 얼음들을 향해 불꽃의 형상을 한 마법을 쏘았다.

“…아티팩트인가? 아티팩트였다면 내 마법에 녹아야 하는데?”

도유가 만든 얼음은 조금도 녹지 않았다. 오히려 역으로 불꽃이 얼음에 맥없이 흩어지고 말았다. 석주언은 잠시 당황하다가, 도유와 눈이 마주치고 흠칫하며 표정을 굳혔다.

도유의 푸른 눈동자가 빛을 머금고 있었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과 같은 은은하고 옅은 빛이지만 또렷하게 보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