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39)화 (39/159)

#39

타르처럼 검고 끈적해 보이는 물이었지만, 실제로는 그저 바닥이 수초나 이런 것 따위 때문에 검은색으로 보이는 듯했다.

도유와 함께 커다란 물웅덩이를 내려다보던 성희유가 도유를 올려다보고 피식 웃었다. 잔뜩 굳은 얼굴. 경직된 입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는다.

성희유가 제 손을 잡자 겨우 물웅덩이에서 시선을 뗀 도유가 성희유를 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그러나 입 밖으로 내뱉진 않았다. 성희유가 잡은 도유의 손에 자신의 손가락을 살며시 눌렀다.

‘여기.’

약속해 둔 제스처와 동시에 고개를 기울이는 성희유를 보며 도유가 길게 눈을 깜빡였다. 성희유의 입가에 어린아이 같지 않은 성숙한 미소가 떠오른다.

이 물웅덩이가 바로 그들이 찾던 지하로 가는 입구였다.

바스락.

나뭇잎이 밟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의 시선이 자연히 그쪽으로 향했다.

바스락, 바스락.

점점 소리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도유의 푸른 눈이 충격으로 크게 떠졌다가 이내 냉정을 되찾고 서둘러 성희유를 제 등 뒤로 감췄다. 그러고는 어느덧 저와 성희유의 주변을 감싸듯 점점 다가오는 사람들을, 아니 한때 사람이었던 것을 보았다.

“으어, 에에….”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코를 찌르는 부패의 냄새. 죽음을 맞이한 육신이 움직이고 있다. 보고서에 있던 ‘언데드’가 바로 이것이었다.

부패해 가는 까닭에 속도는 답답할 정도로 느렸으나 도무지 그들의 사이를 뚫고 도망칠 틈이 보이지 않았다.

도유는 겁에 질린 척하면서 냉정하게 언데드들을 살폈다. 성인 남성과 여성, 총 열 명이다.

부패하며 부풀어 오른 육신과 기록으로 남은 신체적인 특성을 보고 제 앞에 있는 이들의 신원을 머릿속으로 빠르게 대조해 본 도유는 입술을 깨물었다. 2명을 제외한 8명이 모두, 실종자의 명단에 올라와 있던 얼굴이었다.

-“도유 씨.”

육성이 아닌 머릿속으로 성희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성희유가 자주 사용하는 통신 마법이다. 성희유가 겁에 질린 아이처럼 도유의 몸을 꽉 붙들었다.

-“겁먹고 뒷걸음질 치는 척하면서 저를 안고 웅덩이로 떨어지세요.”

도유는 곧장 성희유의 명령에 따랐다. 마치 아들을 보호하려는 아버지처럼 성희유의 몸을 안아 들고 거리를 좁혀 오는 언데드들을 피하듯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물웅덩이의 가장자리에 가장 첫 발자국이 닿았을 무렵.

“-!”

스스로 발을 헛디딘 척하지 않아도, 수면에서 튀어나온 뭔가가 발목을 끌어당기는 감각을 느낌과 동시에 성희유와 함께 물웅덩이로 끌려들어 갔다.

*

눈을 감지 않으려고 해도 떨어지는 순간부터 뭔가로 눈을 가린 듯 시야가 새까맣게 변했다.

도유는 성희유를 보호하기 위해 온몸으로 그를 감싸며 팔에 힘을 주었다. 그가 괜찮다는 듯이 도유의 등을 토닥이는 손길이 느껴졌지만 힘을 풀지 않았다.

부유감이 계속되고 있다. 몸이 하염없이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바람은 느껴지지 않았으나, 끌어내려지고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히 알았다. 혹시나 해서 목소리를 내 봤지만 제 귀에 닿는 목소리가 없다. 마치 지워진 것 같다.

‘완전히 개미지옥이군.’

도유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곳 지하에 개미지옥처럼 완벽한 자기 영역을 만든 마법사는 얼마나 오래전부터 이곳에 자리를 잡았던 걸까?

결계 안으로 진입했을 때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건 몇십 년은 족히 같은 마법을 수십, 수백, 수천 겹으로 쌓아 올려야 나타났다.

산속에 흐르는 마력의 흐름이 더께처럼 결계에 쌓이고 그 위에 또다시 새로운 결계를 쌓는 방식으로 해 놓은 탓에 도유의 눈으로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만약 결계가 몇 겹밖에 되지 않은 상태였다면 도유가 금방 알아봤을 터였다.

‘휘가 들어올 수 있나? 아니지. 휘는 오히려 이곳에서 행동 제약이 없을 것 같은데. 그럼 잘된 것 같기도 하고?’

평소였다면 이대로 떨어져서 몸이 지면에 닿은 순간 으스러져 죽는 게 아닐까 겁먹고 덜덜 떨었을 것이다.

하지만 도유는 언데드들을 조종하면서 저와 성희유를 결계 입구로 몰아넣은 것을 보고 언데드를 조종한 마법사가 저와 성희유를 이렇게 허무하게 죽이지는 않을 거라고 판단했다.

죽일 생각이었다면 결계로 몰아넣는 수고도, 이렇게 안내 역할의 촉수도 친히 발목에 휘감아 보내지 않았을 테니까.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도유가 떨어지고 있다는 감각조차 잊어갈 즈음, 어둠뿐이던 시야에 빛이 스몄다. 어둠에 익숙해졌던 눈에 빛이 스미자 눈이 아려 왔다.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던 도유는 제 품에 안겨 있던 성희유가 움직이는 걸 느끼고 눈을 떴다가 숨을 들이켰다.

도유는 어느덧 성희유를 안아 든 채 서 있었다. 분명히 떨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멀쩡히 두 다리로 땅을 디디고 서 있으니 낯설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무리 둘러봐도, 영화에서나 봤던 광산 같은 땅굴이다. 충분히 서 있을 수 있는 높이였지만 길의 폭이 좁았다.

“아빠.”

“-!”

성희유의 목소리에 도유가 화들짝 놀라며 그를 재빨리 내려놓았다. 반사적으로 비명을 지를 뻔했다가 그가 저를 부른 호칭을 다시 곱씹어 보고 정신을 차렸다.

마법사가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아빠라 부른 거구나 하고 생각한 순간, 성희유가 겁먹은 아이처럼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도유에게 안기려고 했다.

도유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아빠, 왜 그래? 아빠….”

충격으로 떨리는 목소리. 눈시울까지 적신다. 약하디약한, 당장 안고 다독여 줘야 할 정도로 여린 모습에도 도유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었다.

“너, 누구야?”

“아빠? 나 강우야. 강우. 아빠, 강우 피하지 마.”

언제나 도유의 눈에 보이는 성희유의 주변에 실처럼 늘어져 있는 마력이 지금 이 순간, 눈앞에 있는 성희유에게는 조금도 붙어 있지 않다.

그에 도유는 바로 알아차렸다. 이건 성희유의 형체를 한 뭔가다. 아니면 제가 지금 환각 마법에 당했거나, 그도 아니면 악몽을 꾸고 있다고 확신했다.

“강우가 잘못했어. 아빠. 나 무서워. 빨리 안아 줘. 아빠아….”

훌쩍훌쩍 울기 시작하는 성희유의 모습이 너무 공포스러운 나머지 도유는 벽에 머리를 박아 기절하고 싶어졌다.

하필이면 성희유의 모습이다. 차라리 다른 징그러운 형상이나 귀신 같았다면 도유는 지금 이 순간 온 마음을 다해 환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성희유의 껍데기를 쓴 뭔가가 아이처럼 울기 시작하니 정신적인 충격이 굉장히 크게 느껴졌다.

성희유는 울지언정 자신을 보는 사람들의 눈을 찔러, 누구도 보지 못하게 만들고 혼자 울 사람이다.

물론 도유는 지금까지 그가 우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기에 진짜 그가 울 수 있는 인간인가 의구심이 들긴 했지만, 그건 지금은 중요하지 않았기에 일단 호기심은 뒤로 밀어 뒀다.

일단 당장 해야 하는 건 성희유의 모습을 한 이것의 목적이다. 목적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연기에 장단 맞춰 줄 것이 아니라, 더는 연기를 이어 갈 수 없도록 훼방을 놓는 것이다.

“거짓말 마. 넌 강우가 아니야. 강우는, 우리 강우는….”

이럴 때 최대한 냉정하고 바위처럼 단단하게 말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건만, 아무래도 외적인 모습이 성희유라 큰 충격을 받은 도유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동시에 도유는 제 앞의 저 성희유인 척하는 녀석이 이 결계를 만든 마법사일 수 있다는 생각에 말을 고른 뒤 입을 열었다.

“우리 강우는, 이런 상황에서 울지 않고 빨리 가자며 발길질을 할 성격이야.”

발길질은 최대한 미화한 말이다. 성희유라면 제 키보다 큰 대검을 목 아래 겨누고 ‘요즘 긴장이 많이 풀린 것 같네요, 도유 씨. 훈련소 3개월 코스 등록해 드리죠.’라고 했을 인간이었다.

“그러니 너는 절대 강우가 아니야.”

훌쩍훌쩍 울던 성희유의 형상을 한 뭔가가 거짓말처럼 울음을 뚝 그쳤다.

손으로 가려졌던 얼굴이 뚝 떨어지듯, 아래로 내려갔다.

“…어쩐지, 이런 곳에 왔으면서도 울지 않기에 어딘가 모자란 아이라고 생각했더니 착각이었나 보군.”

성희유의 모습을 하고 있던 뭔가가 순식간에 모습을 바꾼다. 도유는 눈을 크게 떴다.

상대는 여전히 어린 얼굴이었다. 그러나 피부는 푸르죽죽해서 마치 걸어 다니는 시체처럼 보였다. 도유는 아이의 얼굴을 보고 알았다.

눈앞의 아이는 가장 최근에 실종된 아이 중에 하나였다.

“강현 아우님. 모처럼 아들과 새 삶을 살러 왔는데 미안합니다.”

“…아우님?”

이 마을에서 도유를 ‘강현 아우님’이라고 부르는 건 석주언밖에 없었다. 그러나 도유가 본 그는 마법사가 아니었다.

“아우님이라면, 석 형님… 되십니까? 아니, 이게 어떻게? 무슨 일이죠?”

도유는 혼란스러운 척하며 그를 떠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의 모습을 한 석주언이 웃었다. 완전히 자신이 주도권을 잡았다고 생각했을 때의 사람들이 짓는 웃음과 똑같았다.

“근래에 마을에 오는 애들은 전부 불량이었는데, 강현 아우님과 강우는 내게 딱 좋은 인형이 될 겁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얻어먹은 값은 하셔야죠, 강현 아우님.”

겨우 두 끼 얻어먹고 하룻밤 묵은 것을 몸으로 갚으라니 날강도가 따로 없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