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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37)화 (37/159)

#37

백휘는 보이지 않는 발판을 밟은 것처럼 허공에 발을 딛고 더 높이 상승했다. 휘몰아치는 바람에 도유의 몸이 떨려 오자 백휘가 마법을 사용했다.

빠르게 몸속에 번지는 온기. 바람에 식어 가던 몸이 백휘의 마법 덕분에 체온을 되찾았다. 몸의 떨림이 멎자 도유가 미소 지었다.

“고마워, 휘야.”

“감기 걸리면 안 돼.”

“응. 네 덕분에 걸릴 것도 안 걸리겠다.”

농담처럼 대답한 도유는 다시금 주변을 둘러보았다. 새까만 먹물을 들이부은 듯한 산에는 그다지 눈에 띄는 게 없었다.

하늘에는 눈처럼 떠다니는 자연이 품은 마력의 흐름만이 바쁘게 움직일 뿐이다.

이따금 유독 음산해 보이는 산골 쪽에서 가느다랗고 불길한 붉은색을 품은 마력이 흘러나오는 게 보였지만 저것 또한 자연스러운 현상이었기에 무시했다.

‘아니, 자연스러운 건 아니지.’

도유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음기로 가득한 곳이 저런 색을 띠었다. 그리고 보통 저런 곳은 과거에 사람이 많이 죽은 장소거나 아주 깊은 원한을 가진 ‘귀신’이라는 존재가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저건 도유의 영역이 아니라 특수부 제2팀의 영역이라 못 본 척했다.

“뭔가 보여?”

“역시 안 보이네. 팀장님은?”

“마찬가지래.”

성희유는 혼자 석주언의 집 근처와 그 인근에서 지하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를 찾고 있었다.

도유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석주언이 의심스러웠지만, 몰래 그 집을 나오기 전에 살펴봤던 그는 수면 안대에 향초까지 켜 놓고 숙면을 즐기고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도유와 성희유의 형상을 씌운 사역마를 침실에 둔 백휘가 별말 하지 않고 있으니 여전히 자고 있는 게 분명했다.

“도유야. 슬슬 돌아가자고 하셔.”

“알았어. 그보다 휘야. 피곤하면 내 침대에서 잘래? 난 오늘 안 잘 거거든.”

먼 곳을 보고 있던 백휘의 시선이 도유를 향한다.

마법을 사용하는 중인 백휘의 눈이 별빛이 가득 떠 있을 때의 하늘처럼 푸른 마력을 담고 반짝이는 게 보였다.

마력의 흐름이 보이지 않는 사람의 눈에는 백휘의 눈은 평범한 연하늘색이었지만, 도유의 눈에는 물비늘처럼 다채로운 빛으로 보였다.

도유는 문득 마법을 사용하지 않아도 반짝거리는 청신의 얼굴을 떠올리다가 백휘가 살며시 웃는 모습을 보고 정신을 차렸다.

“지금 유혹하는 거야?”

저 말을 한 게 이청신이었다면 곧장 개소리라고 내뱉었을 도유는 순순히 긍정했다.

“응. 앞으로 얼마나 이곳에 있을지 알 수 없으니까 쉴 수 있을 때 쉬어야지.”

백휘는 말을 저렇게 해도 선을 넘지 않는다. 오랜 전우이기에 알았다.

“휘야, 네가 임무 중에 잠들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는데 그래도 임무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이번 일에 투입된 거잖아. 그래서 걱정돼.”

“어쩐지 평소보다 날 걱정하더라.”

“그러니 내 말대로 하는 게 어때?”

걱정하는 기색을 전혀 숨기지 않은 솔직한 얼굴이 이 어두운 밤에도 선명하게 보였다. 백휘의 입가에 한결 짙은 미소가 어렸다.

백휘는 특수부 제1팀의 팀원들과 그다지 많이 교류를 하지 않지만, 자신이 도유에게는 유독 신경 써 주는 걸 알았다. 그 이유도 잘 알았다.

연백휘는 도유가 입사하기 전부터 있었고, 유일하게 지금까지 살아남은 극소수 중에 하나였기 때문이다.

백휘가 딱히 친근하게 굴지 않아도 홀로 제 눈치를 보면서도 조금씩 다가왔던 어린 도유의 모습을 기억하기에, 처음에 도유를 싫어했던 백휘도 지금은 그에게 너그러워졌다.

“걱정해 줘서 고마워. 정말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마, 도유야.”

“…알았어.”

도유를 땅에 내려 준 백휘는 주머니에서 낮에 성희유에게 받았던 초콜릿을 꺼내 도유의 손에 쥐여 주었다. 도유가 거절하려고 했지만 초콜릿을 쥐여 준 손을 꼭 쥐는 것으로 막았다.

“내가 지켜 줄 테니까 안심하고 자도 돼.”

이 초콜릿이 일종의 약속의 징표라는 걸 깨달은 도유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초콜릿을 챙겨 넣자 만족스럽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백휘의 모습이 사라졌다. 공간 사이에 자신의 몸을 숨긴 것이다.

이동 마법이나 공간 전이 마법은 할 수 없고 오로지 자기 몸만 공간 사이에 숨길 수 있는 능력이었지만 볼 때마다 대단한 능력이었다.

도유는 성희유와 합류하기로 한 지점으로 걸음을 옮겼다. 성희유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얼굴로 가만히 나무 사이로 드러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오셨어요? 백휘 씨가 별다른 소득은 없다고 했지만, 물어볼게요. 뭔가 보였나요?”

“아니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역시 지하가 답인 것 같은데…. 입구가 근처에 없다면, 멀리 떨어진 곳에 있겠네요.”

“소리나 파동 마법을 사용하면 쉽게 찾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지하에 결계 마법이 쳐져 있을 확률이 굉장히 높은데, 그 마법을 쓰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도유의 경솔한 발언에 성희유는 상냥한 어조로 만회할 기회를 주었다.

“생각이 짧았습니다. 결계 마법에 따라 다르겠지만, 최악의 경우에는 지하에 있는 무엇인가가 폭발에 휘말리거나 토사에 파묻히게 될 것 같습니다.”

“최악의 최악엔 그 결계가 쳐진 이 지상까지 모두 팡! 하고 날아갈 수 있죠. 추측건대 최초의 실종 사건이 일어났을 때부터 이 지방에 터를 잡고 있던 마법사라면, 그런 방비 정도는 어렵지 않을 거예요.”

“……부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하기 나름이죠.”

두 사람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산속을 걸어 석주언의 집으로 돌아갔다. 집 앞에서 도유가 성희유를 안아 들자 기다렸다는 듯이 둘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라 안전하게 활짝 열린 2층 창문 안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도유는 돌아오자마자 도청기가 설치된 쪽을 보았다. 백휘가 걸어 준 소음 마법이 도청기로 흘러들어 가는 소리를 여전히 차단하고 있었다. 앞으로 한두 시간 뒤면 자연히 마법이 풀리고, 다시 연기를 시작해야 한다는 걸 인지하자 조금 괴로워졌다.

작게 한숨을 내쉰 도유는 아티팩트로 신발과 옷에 묻은 흙먼지를 모조리 지워 낸 뒤, 성희유가 잠옷으로 갈아입고 애용하는 검은 안대까지 손에 드는 걸 보고 고개를 기울였다.

“저는 이만 자 볼게요. 아이에게는 너무 늦은 시간이라.”

저 몸속에 든 건 아이가 아니라 도유가 짐작도 못 할 나이대의 사람이 아닌가.

도유는 순수한 의문을 품었지만 육성으로 내뱉는 어리석음은 행하지 않았다.

성희유가 하나 있는 침대에 다소곳이 눕는다. 아보카도 캐릭터 잠옷에 안대까지 저리 끼고 있는 모습을 보니 여기가 남의 집이 아니라 성희유의 집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예. 안녕히 주무세요.”

“백휘 씨가 살펴보고 있을 테니까 도유 씨도 버티지 말고 그냥 자요.”

“하지만-.”

“팀장 명령입니다.”

“…예, 알았습니다.”

직장인은 상사 명령이라면 따를 수밖에 없는 슬픈 존재다. 도유는 성희유의 수면에 방해되지 않도록 기척을 최대한 죽이고 바닥에 이부자리를 펴기 시작했다.

“뭐 해요?”

“바닥이 차서 이불을 깔고 있습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성희유가 안대를 벗으며 상체를 들었다. 그가 제 옆자리를 팡팡 두드렸다.

“세상에 어린 아들 혼자 침대에 눕히고 자기는 땅바닥에서 자는 아빠가 어디 있어요? 만약에라도 석주언 씨가 보면 의아하게 생각할 테니, 그냥 이리 와서 같이 자요.”

“하지만 팀장님, 그렇게 하기엔 제 정신적인 타격이 너무 크지 않습….”

“네? 저와 한 침대에서 자는 게 정신적인 타격이라고요?”

“아닙니다.”

퇴근 없는 직장에 다니는 기분이라 도저히 잠이 안 올 것 같다는 말을 돌려서 한다는 게 저도 모르게 다른 솔직함으로 드러나고 말았다. 도유는 제 입을 퍽 치고 싶은 걸 꾹 참았다.

“도유 씨 어렸을 때는 맨날 제 옆에 꼭 붙어서 잤잖아요. 그냥 와요. 제가 도유 씨 재운다고 자장가도 불러 주고 그랬는데.”

“그때는 제가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아이였으니까요….”

도유가 아련하게 대답했다.

성희유가 자신의 평생의 직장 상사가 될 거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던 순수한 시절이었다. 상명하복이 뭔지, 자신이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이기도 했다.

그랬기에 도유는 그때 성희유가 자신을 잘 챙겨 주는 좋은 형이라 생각하고 형아라 부르며 따랐다.

본인이 팀장이라고 부르라고 몇 번을 정정해도 실수인 척 형아라 불렀다. 첫 임무에서 자신의 현실을 자각하기 전까지는.

“그럼 지금 아무것도 모르게 만들어 드릴까요?”

난 도유 씨 푹 자게 해 주고 싶은데. 하고 덧붙이는 목소리가 굉장히 상냥했다. 도유는 성희유의 친절에 망극해하며 방바닥에 폈던 이불을 곱게 접어 넣고 곧바로 그의 옆에 냅다 누웠다.

“안녕히 주무시고 좋은 꿈 꾸시길 바랍니다, 팀장님. 내일 아침에 깨워 드리겠습니다.”

시계가 없어도 새벽 5시가 되면 칼같이 눈이 떠지는 길들여진 직장인의 몸을 가진 도유와 다르게 성희유는 몸 상태에 따라 다른 수면 시간을 가진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도유는 겸손하게 말했다.

성희유의 입 끝이 올라간다. 만족스러운 웃음을 본 도유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푹 쉬며 이불을 덮었다. 물론 성희유의 목 아래까지 이불을 잘 끌어 올려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좋아요. 그럼 잘 자요, 도유 씨.”

짧은 인사와 함께 방 안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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