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36)화 (36/159)

#36

“강현 아우님. 더 드셔도 됩니다.”

“아, 아닙니다. 석 형님.”

귀에 익지 않은 가명과 식사를 시작하며 정한 호칭에 늦게 반응하고 말았다.

도유는 자신의 실책을 깨닫고 자책하며 잔을 사수했다. 그 모습이 마치 비어 있는 잔에 뭔가를 더 채워 넣을까 겁에 질린 사람처럼 보이길 바라며 도유는 애써 웃는 얼굴로 덧붙였다.

“제가 정말 많이 먹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술을 잘 못해요.”

“너무 조금 드셨는데요.”

“이게 조금이라고요?”

식탁에는 석주언이 직접 차려 준 요리와 술이 가득했다. 재료의 대부분이 그가 직접 가꾼 텃밭에서 나온 것이었고, 술은 전부 그가 직접 담갔다는 과실주와 약주였다.

간만에 오는 손님이 많이 반가웠는지 그는 그 귀하다는 커다란 산삼을 넣은 술까지 꺼내 와 도유에게 주려고 했다.

평소에는 몸에 해가 되는 것에 눈길조차 주지 않던 성희유마저 잠깐 눈을 번뜩였을 정도로 귀한 술이었다. 도유는 거절했다. 산삼이라 해도 어차피 술에 절여지면 술이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에 마시고 싶지 않았다.

술이 약한 건 아니었지만 즐겨 하지도 않았고, 술로 위장을 채울 바에야 달콤한 음료수로 채우자는 주의였기에 눈길도 주지 않았다.

“허어. 아쉽군요.”

“술보다는 음료를 좋아합니다. 이 직접 담그신 오디청, 정말 맛있네요. 강우도 잘 먹고요.”

“그럼 돌아가실 때 좀 나눠 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언제 돌아갈지는 몰랐지만 오디청이 마음에 들기는 했기에 도유는 싱긋 웃어 보였다. 성희유가 후식으로 나온 과일을 포크로 찌르다 말고 도유를 본다. 동그랗게 뜬 아이의 눈이 말한다. ‘그거 뇌물로 처리된다는 거 아시죠?’ 도유도 눈빛으로 대답했다. ‘예의상 대답한 겁니다.’

다행히 성희유는 눈길을 거뒀다. 그러고는 하품을 하며 도유의 팔에 뺨을 비볐다. 그 감촉에 움찔할 뻔했지만, 식탁 아래로 도유의 손가락을 꽉 움켜쥐는 손길에 가까스로 떨지 않을 수 있었다.

“아빠, 나 졸려.”

“아! 이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도유는 정말 놀랍다는 듯 시계를 보는 행동을 취하고 아쉬움이 역력한 표정으로 저를 보는 석주언에게 말했다.

“석 형님, 잘 먹었습니다. 제가 뒷정리를 해도 될까요?”

함께 저녁 식사를 시작했을 때 협의한 호칭으로 불러 주자, 석주언이 은근히 만족스러워하는 것을 보니 도유는 그가 조금 안타까워졌다.

“손님은 대접만 받는 게 예의입니다. 불편해하지 마시고 올라가서 이만 쉬세요. 강우야, 미안하다. 이 아저씨가 이제 네 아빠를 놓아줄게.”

“아저씨, 밥 맛있었어요. 잘 먹었습니다.”

“허허. 정말 강우는 성숙하군요.”

강우를 연기하는 성희유를 향한 석주언의 눈빛은 인자한 동시에 동정이 고스란히 떠올라 있다. 석주언이나 마을 사람들에게나 지금 도유는 ‘아내를 너무나 일찍 여의고 만 불쌍한 청년 가장’일 것이다.

“혹시 필요한 거 있으면 꼭 부르고요.”

“네, 감사합니다. 덕분에 저녁 든든하게 잘 먹었습니다. 강우야, 올라가자.”

“아저씨, 잘 자요~!”

“그래, 너도 잘 자렴.”

마지막까지 투철하게 강우를 연기하며 석주언에게 방긋방긋 웃어 보인 성희유와 도유는 곧바로 2층으로 올라갔다.

석주언으로부터 몸을 돌린 순간부터 언제 웃었냐는 듯 무표정해진 성희유는 2층 침실에 도착하고 주변을 잠시 둘러보더니 도유에게 말했다.

“아빠, 저 씻는 거 도와주세요.”

“…그래. 그럼 잠깐만. 강우가 갈아입을 옷 좀 챙기자.”

도유 씨, 가 아닌 ‘아빠’다. 발랄한 목소리와는 다르게 무표정한 성희유가 검지로 제 입을 가리켰다. 도청기라는 뜻이다.

고개를 끄덕인 도유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척, 괜히 부산스러운 소리를 내며 성희유가 위장용으로 가져온 가방에서 그의 잠옷을 꺼냈다.

오, 세상에. 도유는 이번 임무에 성희유의 의상을 고른 인간이 누군지 몰라도 평소 그에게 악의가 가득했던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성희유와 아보카도 캐릭터 무늬 잠옷이라니.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이런 잠옷을 입은 성희유는 키즈 잡지 모델처럼 귀여운 아이겠지만 그가 카단의 특수부 제1팀 팀장이라는 것을 아는 도유와 같은 인간들에겐 그냥 공포 영화의 한 장면이다.

“잠옷 챙겼어. 강우야, 저기가 욕실인가 보다. 조심해서 들어갈까?”

“응!”

도도도. 아이처럼 욕실로 뛰어 들어가는 모습이 정말 무서웠다. 도유는 그를 따라 들어가 문을 닫았다. 욕조에 물을 받으며 도유는 성희유에게 고갯짓을 했다. 다행히 그는 이번엔 고개를 끄덕였다.

“재미있는 걸 발견했어요.”

그가 물소리보다도 더 작은 소리로 말했다. 원래대로 돌아온 성희유의 어조에 도유는 기쁜 마음을 억눌러야만 했다.

“현관에 마법사의 표식이 있던데요.”

“표식 말입니까?”

마법사의 표식은 마법을 이용해 영구적인 결계를 칠 때 축이 되는 곳, 즉 일종의 지붕을 떠받치는 기둥의 역할을 하는 곳에 새기는 것이었다.

도유는 이 집에 들어올 때 주변에 자연적으로 머무는 마력은 보았지만, 결계 마법으로 인해 생기는 마력의 막은 보지 못했다. 도유의 반응을 살펴본 성희유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도유 씨 눈에 보이지 않았다면 표식은 현재 사용되지 않고 있거나, 결계가 이 ‘아래’에 있다는 뜻이겠네요.”

“지하, 말씀이십니까.”

“예. 지하요. 그리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이 집의 구조상 지하를 만드는 건 얼마든지 가능해요. 아까 살펴봤을 때는 없었지만, 다른 곳에 입구가 있을 수도 있는 일이죠.”

욕조에 물이 채워졌다. 도유는 성희유가 옷을 벗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그가 편히 씻을 수 있도록 등을 돌렸다. 그 모습을 본 성희유가 웃음을 터트렸다.

“봐도 괜찮은데.”

“직장 상사의 몸을 보는 건 심적으로 조금 그렇습니다.”

그것도 도움이 필요 없는 아이의 육신이다. 도유의 반응에 성희유는 작게 웃으며 욕조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도유 씨가 어렸을 때는 제가 몇 번 씻겨 드렸는데, 기억 안 나요?”

“그때는….”

도유는 입을 다물었다. 그걸 씻긴 거라고 할 수 있을까?

‘흐어엉! 형아! 무서워! 희유 형아! 잘못했어요! 너무 높아! 으아아!’

‘형이라고 하지 말고 팀장님이라고 불러요, 도유 씨.’

‘으엉엉!’

도유가 살려 달라고 하는데도 공중에 띄워 놓고 물 마법으로 씻겼다.

그건 씻겼다기보단 그냥 빨래가 아니었을까?

물론 성희유가 그랬던 이유를 알고 있긴 했다.

그때의 도유는 성인만 보면 성별을 가리지 않고 얼어붙었다.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이었지만, 몸에 손이라도 닿으면 겁에 질려 덜덜 떨었기에 어쩔 수 없이 성희유가 도유를 전담하게 되었던 것이다.

어린아이의 모습이지만 정신은 성인인 성희유는 여러모로 도유에게 적합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집에서 도유와 함께 생활하며 편의를 봐주고 도와주었다.

이런 성희유의 친절을 느꼈는지, 12살의 도유는 저보다 키가 작은 성희유를 형아라고 부르며 졸졸 쫓아다니고 말을 잘 들었다. 다만 씻길 때만큼은 성희유도 어쩔 수가 없었다.

당시의 도유는 욕조에 넣어 씻기려고 해도 욕조같이 좁은 곳에 들어가거나 물을 끼얹으면 경기를 일으켰기에 마법으로 씻겨야 했다.

다른 이들이라면 물수건으로 닦아 주는 것에 그쳤겠지만, 성희유는 더러운 걸 극도로 싫어하는 성격이다. 그때만큼은 도유가 애원해도 절대 들어주지 않았다.

그 덕분에 도유는 나중에는 공포에서 해탈해서 즐기는 지경까지 가게 되었지만, 일단 그리 좋은 기억은 아니었다.

“기억나게 만들어 줄까요?”

“기억납니다. 기억나요.”

“다행이네요. 도유 씨는 젊은 나이인데 벌써 기억력 감퇴 현상이 일어나면 어쩌나 싶었어요. 뇌는 마법으로도 어떻게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니까요.”

“……그렇죠.”

도유는 저도 모르게 성희유를 돌아볼 뻔했다. 아니, 돌아보려다가 말았다. 그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대충 주워들어서 알았기 때문에 제가 내뱉은 같잖은 말에 그가 위로받을 리가 없다는 걸 알았다.

“도유 씨도 지금 씻고, 이따 나가기 전에 연기 좀 해요. ‘강우’처럼 얌전하게 씻는 또래 애는 좀처럼 없으니. 다 들리도록 반드시 칭찬하세요.”

당당한 요구다. 그리고 맞는 말이다. 거절할 길 없는 사유에 도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으로 제 입가를 손으로 문질렀다. 오늘 하루 종일 억지로 웃었더니 얼굴 근육이 아려 왔지만 앞으로 갈 길이 멀었다.

그래도 이 연기 또한 얼마 남지 않았다고 희망을 가졌다. 마법사의 표식이 있는 데다가, 손님방이라며 내어 준 방에 설치된 도청기라니. 이곳에 분명 무엇인가 있다는 뜻이었다.

석주언은 마법사는 아니었지만 만일 그가 마법사와 관련돼 있다면 오늘이나 내일쯤 습격을 하거나 뭔가 일을 벌일 거라고 생각했다. 도유는 부디 수사가 진전되기를 바라며 성희유가 먼저 다 씻기를 기다렸다.

*

산중에서의 밤은 도시보다 더 깊고 어둡다. 심지어 오늘은 달도 뜨지 않아 사방이 깜깜했다. 저 멀리 마을 곳곳을 밝힌 가로등이 보였다. 그마저도 구형이라 계속 빛이 깜빡이는 것이 공포 영화의 도입부처럼 보였다.

그 불빛을 가만히 바라보던 도유는 고개를 돌렸다. 기다렸다는 듯이 응수해 오는 시선에 도유가 말했다.

“여기에서 특별한 건 보이지 않아.”

“그럼 저쪽으로 이동할게.”

“응, 부탁해.”

백휘가 도유의 허리를 끌어안고 그대로 도약했다. 중력 마법과 가속 마법이 더해지자 두 사람의 몸은 순식간에 하늘 높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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