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35)화 (35/159)

#35

증명을 위해 경찰들과 협력하여 함께 산을 이 잡듯 뒤졌던 주민들은 허탈해졌다.

결국 소득이 없고, 실종자가 나올 때마다 마을 주민들의 공모를 의심하는 경찰들에 지친 마을 주민들은 외지인에게 더는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 시체가 걸어 다니는 듯한 현상도 그냥 보지 못한 척하게 됐다.

그래서 근래에는 경찰이든 카단이든, 사설탐정이든 간에 조사를 나오면 지치고 힘들어 그들을 피하고 있다고 했다.

“정보부가 조사한 것과 일치하네요.”

가게를 떠나기 전, 가게 주인에게 선물로 받은 과자를 먹으며 성희유가 말했다.

오래전 마을 아이들이 타고 놀았을 굵은 나뭇가지에 매단 그네에 앉은 성희유가 떨어지지 않을까 조마조마한 기분으로 지켜보던 도유가 그네를 잡아 주며 물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떻게 하긴요. 직접 둘러봐야겠죠.”

그의 시선이 사위를 둘러싼 산을 빙 둘러본다. 산속을 뒤져 보자는 거다. 마법의 흔적은 정보부에서도 찾아내지 못했지만 도유의 눈으로 보면 다른 걸 찾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도유는 성희유가 건넨 빈 과자 봉지를 잘 접어 가방에 넣으며 눈을 흘겼다. 저 멀리, 이쪽을 지켜보는 마을 주민이 있었다. 가게를 나온 뒤부터 가는 곳마다 마을 주민의 시선이 반드시 따라붙었기에 놀라지는 않았다.

도유와 성희유가 사이 좋은 부자를 연기하며 손을 잡고 마을 곳곳을 누비는 모습을 바라보는 마을 사람들의 눈에는 대부분 경계가 가득했다. 그러나 지금의 마을 주민처럼 걱정을 담아 보는 사람도 제법 있었다.

또 젊은 사람과 어린아이가 실종될까 봐 조마조마해하는 듯했다.

“도유 씨. 그네 밀어 줘요.”

“…네.”

세상에 그네에 가만히 앉아 있는 어린아이는 없다. 그걸 알지만 대상이 성희유라 자꾸만 몸이 멈추려고 했다. 도유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이기 위해 노력하며 열심히 그네를 밀어 주었다.

이런 건 즐겁지도 않을 텐데도, 아이인 척하는 성희유는 정말 그 또래 아이들이 그네를 탈 때처럼 신나 하는 얼굴로 활짝 웃었다. 그 모습에 도유는 두려움과 동시에 깊은 존경심을 느꼈다.

과연 몇십 년 차 직장인은 다르다.

성희유의 진짜 나이와 경력에 대해선 몰랐지만, 도유가 카단에 입사하기 전부터 카단의 팀장이었기에 적어도 20년은 넘었다는 건 알았다.

“슬슬 배고프네요.”

한참 동안 그네를 타고 내려온 성희유가 도유에게 안기며 말했다. 도유는 여전히 이쪽을 보고 있는 주민 때문에 식겁하며 도망치는 대신, 떨리는 손으로 성희유를 안아 들며 웃는 얼굴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도유가 말했다.

“둘러봤을 때 식당과 숙박 시설로 보이는 곳은 따로 없었습니다만, 차에 가서 주무시겠습니까?”

차에는 비상식량도 있었다. 애초에 사람이 하루 굶거나 하루 잠을 설친다 해서 크게 문제가 될 것도 없다. 그러나 단서를 잡기 전까지는 이 마을에 있어야 했기에 차에서 자는 건 가급적 피하고 싶었다.

“마을 회관에 가보죠. 거기라면 숙식이 가능할 거예요. 정보부에서 그랬거든요.”

마을 회관에 머무는 것 자체가 행동 제약이 생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도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백휘라면 굳이 먼저 요청하지 않아도 센스 있게 처리를 해 줄 것임을 알았기에 그를 믿었다.

그렇게 둘이 함께 뉘엿뉘엿 저물어 가는 해를 등지고 마을 회관이 있던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던 때였다. 도유는 점점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마을 주민을 보았다. 조금 전 그네를 타기 전부터 줄곧 두 사람을 지켜봤던 마을 주민이었다.

“안녕하세요.”

마을 주민의 인사를 들은 도유의 눈빛이 살짝 달라졌다. 지금까지 도유가 이곳에서 대화를 나눈 건 두 명뿐이었지만 그 만남으로 도유는 이곳 주민의 말투에 대해 대강 파악했다.

지금 말을 건넨 주민은 이 지역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투와는 달랐다. 오히려 도유와 비슷한, 도시에서만 살아 본 어조였다.

품에 안긴 성희유가 겁먹은 척 도유의 옷깃을 살짝 잡아당긴다. 대답하라는 재촉이었다. 도유는 갑작스러운 인사에 크게 당황한 사람처럼 눈을 깜빡거리다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아까부터 계속 지켜봤습니다. 혹시 주무실 곳을 찾고 계시지 않으십니까?”

“아…. 그렇긴 해요. 이 인근에 식당이나 숙박 시설이 보이지 않아서요. 그래서 마을 회관에 가려던 참이었습니다.”

도유의 말에 마을 주민이 측은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안타깝게도 요즘에 마을에서 일어난 실종 사건 때문에 마을 회관이 문을 닫았습니다.”

“문을, 닫아요?”

특수부의 임무로 몇 번 이런 마을의 마을 회관에 가 봤던 터라 언제나 열려 있는 그곳이 닫혀 있다는 사실이 믿기 어려웠다.

“예…. 실종자들의 대부분이 마지막에 마을 회관에서 숙식을 하고 떠났다는 이유로 폐쇄되어 있던 사이에, 누수가 심해져서 내부 공사를 하고 있는 중이거든요.”

마을 회관에 들어가 본 건 아니지만 대문 너머로는 보았기에 전혀 몰랐다. 도유가 멍하니 마을 주민을 바라보자 그가 주름진 얼굴로 사람 좋게 웃으며 말했다.

“괜찮다면 저희 집에서 묵지 않으시겠습니까? 저도 이 마을에서 살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요. 마을분들께선 아직 저를 어려워하셔서 많이 적적하거든요. 이렇게 귀여운 아드님을 데리고 있는 젊은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오랜만이고, 타지인이라고는 해도 이렇게 젊은이와 아이가 온 걸 보니 챙겨 주고 싶어서…. 아! 거절하셔도 됩니다.”

거절하면 딱히 갈 곳이 없다는 걸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알았지만 그걸 대놓고 지적할 사람은 없었다. 그때 도유는 제 옷자락을 잡아당기는 감촉에 고개를 살짝 숙였다.

“아빠, 내려 줘.”

도유가 서둘러 그를 내려놓자 성희유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마을 주민을 올려다봤다. 어린아이다운 경계 어린 호기심. 이윽고 마을 주민이 마음에 든 것처럼 성희유가 배시시 웃으며 도유의 손을 잡았다.

“아빠, 우리 아저씨네 집에 가는 거야?”

질문과 동시에 성희유가 도유의 손바닥을 손가락으로 두 번 누른다. 허락의 의미다. 도유는 망설이는 척 마을 주민과 성희유를 번갈아 보면서 입술을 달싹이다가, 이내 곤혹스러운 듯이 웃어 보이곤 대답했다.

“응, 아저씨가 우리를 도와주신대. 저, 그럼…. 부탁드려도 될까요?”

“당연하지요! 환영합니다.”

*

도유와 성희유를 초대한 남자의 이름은 석주언이었다. 그는 자신이 정년퇴직을 한 후, 여유롭고 자연 친화적인 삶을 살기 위해 3년 전부터 이곳에 전원주택을 짓고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그의 집은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산속에 있었다.

집 주변으로 향하는 길에 보았던 텃밭은 그가 얼마나 공들여서 돌보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파릇파릇한 녹색 잎을 품었다.

그 녹색을 보며 무심코 청신을 떠올린 도유는 의외로 아무 연락도 없는 청신에 속으로 놀랐다.

그 녀석의 성격이라면 전화까지는 아니더라도 메시지 한 통은 보낼 줄 알았건만 한 통도 오지 않았다.

혹시 사역마로 지켜보고 있나 싶어서 주변을 둘러봤지만 사역마로 보이는 건 없었다. 도유는 청신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다가 괜한 걱정이라는 걸 깨닫고는 그에 대한 생각을 떨쳐 냈다.

“여기입니다.”

마침 석주언의 집에 도착했다. 도유는 높은 담벼락을 넘은 나무를 보았다. 무슨 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하얀색 꽃이 마치 솜 방울처럼 피어 있는 게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순수하게 감탄하며 석주언을 따라 대문 안으로 들어선 순간, 도유는 더욱 놀라고 말았다.

“와…. 이걸 다 직접 꾸미신 건가요?”

“허허, 예. 적적하면 별걸 다 하게 되더군요.”

작은 정원이 눈앞에 있었다. 색색의 꽃과 풀이 보기 좋게 심어져 마당을 꾸미고 오리가 새끼를 졸졸 달고 걷고 있다.

한쪽에는 풀을 뜯고 있는 토끼들도 보였다. 그와 조금 떨어진 창고로 보이는 지붕 위에서 고양이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쪽을 내려다보는 모습은 정말 평화 그 자체였다.

“귀엽지요?”

“아, 네. 고양이가 오리나 토끼를 잡아먹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네요.”

임무 중이라고는 하나 지금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석주언이 하하, 하고 큰소리로 웃으며 현관문을 열었다.

“저 애들은 생각보다 소심합니다. 그래서 맨날 오리와 토끼에게 당하고 살죠. 저기 덩치가 제일 큰 오리 보이죠? 이 마당 서열 1위가 바로 저 녀석입니다. 얼마 전에는 멧돼지도 쫓아냈습니다.”

신비로운 생태계다. 도유는 감탄하며 석주언을 따라 현관 안으로 들어갔다.

“정말 대단하네요. 아까 이 집도 직접 설계하고 지었다고 하셨죠? 저 나무 계단도 직접 하신 건가요?”

도유는 성희유가 주변을 관찰할 수 있도록 석주언의 눈길을 끄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런 도유의 손을 잡고 묵묵히 현관 안으로 들어오던 성희유의 시선이 현관문에 걸린 장식품으로 향했다. 일순 그의 입가에 아이답지 않은 미소가 맺혔다가 사라졌다.

*

석주언은 사람 좋게 2층을 통째로 내어 주었다. 부담스러워하는 도유에게 자신이 초대했고, 손님들에게 내어 주는 곳이니 신경 쓰지 말라는 말로 설득을 하고는 옷까지 빌려주는 친절을 베풀었다.

이런 친절이 부담스러웠기에 처음엔 거절했지만 거듭된 권유에 결국 받아들이고 말았다. 도유는 생각했다. 그냥 딱 잘라 거절할걸, 하고.

처음만 잘 잘라 냈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에 처하지 않을 수 있었을 걸 알았기에 속이 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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