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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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신이 아는 도유는 무엇이든 잘한다. 싸우는 것도 잘하고, 상황을 파악하는 것도 잘하고, 머리도 좋고, 얼굴도 잘하고, 몸도 잘하고… 어쨌든 청신의 관점에서 도유는 무엇을 해도 완벽하게 해낼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청신은 도유가 ‘전부’ 완벽하지는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맛없으면 뱉어도 돼.”
도유가 만든 볶음밥을 한 입 씹자마자 영화의 정지 화면인 듯 아름다운 웃음을 머금은 채 굳어 버린 청신의 모습을 본 도유가 말했다. 청신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가 입 안의 것을 한 번 더 씹고 그대로 꿀꺽 삼켰다.
“맛없지?”
“아니, 형…. 어, 맛, 맛있… 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없다는 것도 아닌데…. 어, 저기… 으음. 어떻게 하면, 이렇게 참신하고 독창적이면서 돌아 버린 맛이 날 수 있는 건가요?”
“너 지금 욕한 거지?”
청신은 마치 엄청난 오해를 받은 사람처럼 진심으로 억울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럴 리가요. 진심으로 궁금해서 물어봤어요. 분명 초반에 주방에 왔을 때, 꺼내 놓은 양념장이나 재료로는 이 맛이 날 수 없거든요.”
도유가 어떤 재료와 양념들을 사용하는지 유심하게 보았던 청신이다. 나중에 함께 신혼집을 차리고 생활을 하려면 도유가 선호하는 것들을 알아 둬야 하지 않겠는가.
“그냥 요리하다가 그때그때 당기는 거 넣고 있는데. 서로 상호 작용으로 독성을 일으키는 물질만 아니면 넣고 있어.”
“…그럼 여기엔 뭐가 들어간 거죠?”
“레몬이랑 바질이랑 로즈마리랑 소금이랑 마요네즈랑…. 아. 다시다?”
대체 어떻게 하면 저런 조합이 즉석에서 당길 수 있을까? 청신은 이런 도유의 엉뚱함마저 사랑스럽다고 생각하며 순수하게 칭찬했다.
“아, 어쩐지. 입에 머금은 순간 훅 하고 이성을 후려치는 맛이라고 생각했어요.”
도유는 잠시 청신이 저를 욕하고 싶어서 고도화된 화법을 사용하는 것인가 의심을 품었다.
“형은 평소에도 이렇게 드시는 거죠?”
“아니. 보통은 이런 걸 먹거나, 퇴근길에 사 오거나, 도시락 정기 배달시켜서 먹지.”
도유가 검지로 가리킨 건 단백질 셰이크와 프로틴 브라우니같이 몸 관리를 위한 것들이었다. 청신은 눈을 깜빡였다. 생각해 보니 도유는 제 몫의 볶음밥을 덜지 않았다. 그저 단백질 셰이크만 앞에 놓아 뒀을 뿐이다.
“형….”
청신은 말을 잃었다. 이렇게까지 평소에 직접 뭔가를 해 먹지 않는 사람이 오롯이 청신에게만 요리를 직접 해 주었다. 그 뜻은 너무나 분명했다.
“형도 역시 저를 사랑-.”
“첫 손님이라서 조금이라도 더 성의 있게 대접해 주고 싶었을 뿐이야.”
빠른 일갈에 상처받기도 잠시 청신은 도유의 말을 곱씹고 눈을 부릅떴다.
“첫 손님이요?”
“응. 그동안 누구를 초대해 본 적이 없거든. 이런 때는 집 요리를 해 줘야 한다고, 같은 팀 사람이 그러길래….”
특수부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도유에게 ‘집’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고아원은 도유의 집이 아니었고 두 번 입양되고 모두 파양을 당했을 때도 눈치를 보느라 누군가를 초대한다거나 하는 행동은 시도도 할 수 없었다.
아카데미에 잠입 수사를 하게 되며 얻은 곳은 숙소였으니 집이라는 표현도 아까웠다.
물론 이곳도 카단이 제공해 준 집이긴 하지만, 입사한 뒤부터 줄곧 머물렀던 곳이었기에 도유에게는 이곳이 ‘집’으로 느껴졌다.
“너도 내가 너희 집에 갔을 때 맛있는 걸 만들어 줬잖아. 그래서 챙겨 주고 싶었어. 미안하다. 지금이라도 배달시켜 줄게.”
“아, 아니에요, 도유 형. 먹을 거니까 둬요.”
“네 표정 다 봤어. 그리고 그렇게 마음 안 쓰니까 걱정 마. 사실 나도 너 주기 전에 맛보고 글러 먹었다고 생각했거든.”
맛을 보고 글러 먹었다 생각한 도유도 귀엽다고 생각하며 청신은 미련 없이 그릇을 치우는 그의 뒷모습을 보다가 물었다.
“도유 형. 재료 남았어요?”
“있기야 하지.”
“제가 봐도 될까요?”
“…마음대로.”
도유는 순순히 냉장고를 열었다. 본인 말마따나 정말 대부분 사 먹어서 그런지 재료는 많이 없었다.
그러나 청신의 머릿속에는 저것들로도 충분히 만들 수 있는 여러 가지의 요리가 떠올랐다. 그는 저를 지켜보는 도유를 돌아보며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제안했다.
“그럼 형, 제가 가르쳐 줄게요. 같이 요리해서 먹어요.”
예상하지 못했던 제안에 잠시 머뭇거리던 도유가 이내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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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로 출근하자마자 성희유의 부름을 받은 도유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
그리고, 성희유가 한마디 하자마자 도유는 도토리를 떨어트린 다람쥐처럼 큰 충격을 받고 입을 떡 벌렸다.
“이번 임무는 도유 씨랑 저만 갑니다.”
“네? 팀장님이랑 단둘이 가는 겁니까?”
너무 놀란 나머지 저도 모르게 날것 그대로의 반응을 보이고 말았다.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입을 다물었으나 불행하게도 성희유의 귀는 너무나 멀쩡했기에 도유의 목소리는 물론 거기 어린 경악까지 선명하게 들었다.
성희유는 사람 좋게 웃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제복만 입고 있지 않았다면 귀여운 아이 그 자체였지만 내용물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 자리의 성희유는 도유의 직속 상사이며 제 부하의 말실수를 무시하고 넘어가 주는 대인배가 아니었다.
“왜요, 싫어요?”
싫다고 하는 순간 정말 싫다는 게 뭔지 알려 줄 것임을 도유는 지난 경험을 통해 절감하였기에 뻣뻣하게 몸을 굳혔다.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그리고 호불호 때문에 여쭤본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와 단둘이 가기 싫다는 뜻, 잘 알았습니다.”
“봐주십시오, 팀장님. 그런 뜻이 아니란 거 아시잖습니까….”
건드리면 당장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박을 기세다. 이런 도유의 반응이 재밌어 이따금 일부러 놀리는 성희유였지만, 아쉽게도 이번엔 그럴 수가 없었다.
“농담이었습니다. 이 이상 놀렸다간 청신 씨가 심술부리겠군요.”
당황한 탓에 얼굴이 붉게 물들었던 도유의 얼굴이 순식간에 원래의 낯빛을 되찾는다.
“예?”
도유의 표정이 참으로 정직했다. 이 자리에서 청신의 이름이 나오는 이유를 짐작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고스란히 드러난 표정. 성희유는 근래에 도유를 바늘에 꿰인 실처럼 졸졸 쫓아다니는 청신을 가엾다고 생각하며 말했다.
“도유 씨가 놀란 것도 이해합니다. 제가 임무에 직접 나가는 일이 드무니까요.”
“네. 팀장님께서는 지금까지 현장 지휘 및 지원을 주로 해 주셨기에 현장에 직접 나서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제 역할인 게 맞습니다만, 이번 사건은 조금 특이하거든요. 도유 씨. 시체가 되살아난 이야기, 들어 보셨습니까?”
“네. 들어 봤습니다. 과거에 ‘언데드’라 명명한 되살아난 시체를 생산하는 불법 실험실을 급습하여 현장에 있던 마법사 전원을 사살했다는 사건 기록도 보았습니다.”
“잘 알고 있어서 다행이네요. 이번에 발생한 사건에 대해 설명을 하죠. 최근에 한 시골 마을에 놀러 간 젊은 가족과 그 자녀가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했어요. 처음에는 단순하게 살인에 의한 실종이나 자살에 의한 실종으로 알고 경찰이 조사했는데 이번에 그게 아니란 게 밝혀졌죠.”
“그렇다면….”
“네. 도유 씨가 지금 생각하신 대로 마법에 의한 실종 사건입니다. 가장 최근에 신고가 접수된 젊은 가족 말고도 이전에 동일한 구성의 실종 사건이 3건 있더군요.”
자료를 건네주자 도유는 그것을 받아 빠르게 눈으로 훑기 시작했다. 실종자 총 23명. 그중 8명이 어린아이다. 풍광과 인심이 좋기로 소문난 시골 마을에 놀러 온 가족뿐만 아니라 친구들과 여행을 갔다던 젊은 청년도 목록에 있었다.
“마법 현상도 감지가 되지 않고, 마을 주민을 대상으로 조사를 해 봐도 나오는 정보가 없어서 수사에 난항을 겪고 있던 차에 이런 정보가 들어왔어요. 177페이지 봐요.”
도유의 손이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그곳에는 마을 주민들의 증언이 적혀 있었다.
“실종자로 보이는 사람이 걸어서 산으로 올라갔다는 증언이, 다섯 건이나 되네요.”
시간과 장소는 모두 달랐지만 외형의 특성이 일치했다. 검보랏빛으로 부패한 몸, 한쪽 눈알이 녹아내리고 길게 혀를 빼문 몸. 증언이 최근 날짜에 가까워질수록 부패가 더 진행됐는지 묘사가 더 확고해졌다.
“그래서 저와 도유 씨가 현장 투입 인원으로 발탁됐어요. ‘당신 쪽’인지 ‘제 쪽’인지. 그도 아니면 순수하게 이 땅의 것인지 구분하고, 규명하여 실종자들을 찾아야 해요.”
“알겠습니다. 그럼 당장 출발 준비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전에 우리가 가서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수사할지에 대해 미리 알아야겠죠?”
성희유가 방긋 웃었다. 그 웃음을 보며 도유는 기이한 기시감에 심장이 느리게 뛰는 것을 느꼈다.
뭘까? 왜 이럴까? 지금의 이 기분은 마치, 아카데미에 너드로 잠입하라는 말을 듣기 전에 느꼈던 초조하고도 음습한 두려움을 닮았다.
간만에 직장인의 본능이 소리쳤다.
‘도망쳐. 못 하겠다고 해 봤자 특수부 1팀이니 일단 해야 하는 거긴 하지만, 일단은 지금은 도망쳐!’
본능에 집중할수록 맹렬하게 커지는 불안감과 도유가 열심히 싸우고 있을 때 성희유의 말이 이어졌다.
“우리는 그 마을에 부자지간으로 잠입을 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