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31)화 (31/159)

#31

특수부의 제1팀은 형량이 무기한이나 다를 바 없다. 전부 사형수들이니까. 사형수에서 1팀으로 들어오면서 ‘사형’이라는 부분이 150년이란 형량으로 수정되었지만 100세 시대에서 150년이란 평생을 뜻했다.

그러니 사실상 형량은 의미가 없었다. 특수부 1팀에 소속된 대부분의 이들은 임무를 수행하다가 생을 마감했고, 도유도 앞서 죽은 팀원들의 죽음이 곧 제 죽음이 되리란 걸 너무나 잘 알았다.

“저는 협회장과 이사진을 설득할 수 있어요. 설득이랄 것도 없죠. 특히 이사진이라면 제 말에 꼼짝도 못 해요.”

확신 어린 어조에 도유는 청신이 이사진의 약점을 틀어쥐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니 특수부를 관두신 뒤에, 저와 같이 살아요.”

“…뭐? 왜 결론이 그렇게 되는 건데?”

기가 차서 묻자 청신이 진지하게 대답했다.

“형이 다른 곳에 이직하는 것도 싫고, 저는 도유 형이랑 24시간 붙어 있고 싶으니까요. 돈 걱정은 하지 마세요. 저 돈 많아요. 돈은 제가 벌 테니 제 곁에만 있어요.”

“하…. 청신아.”

도유는 청신이 어리기는 어리다는 걸 깨달았다. 아무리 천재 마법사라고 해도 정신적으로는 미숙한 걸까.

“…!!”

파삭, 하는 소리가 들렸다. 청신의 녹색 눈이 크게 뜨였다. 그 순간 마법 속박을 푼 도유가 청신의 발목을 잡았다. 청신이 바로 대응하며 마법을 사용한 순간, 섬광탄처럼 눈앞이 번쩍이며 시야를 하얗게 물들였다.

청신은 재빨리 다른 마법으로 대응했다. 그러나 조금 전까지와는 전혀 다르게, 마력으로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던 도유의 존재가 느껴지지 않았다. 마법으로 만들어 낸 형상들은 도유의 존재를 찾아내지 못하고 움직이지 않았다.

그에 청신이 체내의 마력을 순환시켜 여전히 보이지 않은 눈을 회복한 순간 본 것은 제 코앞에 겨눠진 총구였다.

“내 실력이 네가 보기에는 약해 빠진 무지렁이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지금까지 운으로 살아남은 게 아니거든.”

청신은 마른침을 삼켰다. 도유가 겨눈 총은 아티팩트가 아니다. 일반 권총이다.

하지만 저 권총의 탄환 하나하나에 마법을 파훼시키는 마법진이 새겨져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청신은 제가 조금만 움직이면 도유가 방아쇠를 당길 것을 알았다.

긴장 어린 녹색 눈이 조금의 흔들림 없이 방아쇠에 걸쳐 있는 도유의 손가락에 닿았다. 청신은 생각했다. 어떻게 이 사람은 손가락도 섹시하게 보이지?

“음. 생각해 보니까 운이 좋은 것도 있긴 하네. 너처럼 내가 비마법사라는 걸 알고 방심하는 녀석들이 많았거든.”

도유는 피식 웃으며 중얼거리듯 말하더니 총구를 위로 향해 쐈다. 탕! 하는 소리와 함께 처음에 설치했던 아티팩트의 마법이 깨지며 원래 있던 공간으로 돌아왔다.

“아, 역시 아티팩트로는 공간 차단이 완전히 안 됐나 보네. 청신아, 미안한데 바닥 복구 좀 해 줘. 이것들 전부 네가 했, 억!!”

덮치듯이 저를 꽉 끌어안아 오는 청신에 놀란 도유가 비명을 지르거나 말거나, 청신은 여전히 먼지투성이인 도유에게 뺨을 비비적거리며 외치듯 말했다.

“아, 도유 형. 방금 너무 멋있고 예뻤어요! 사진으로 남겨 뒀어야 하는 건데!”

“미쳤어?”

“걱정 마세요, 형. 그리고 형의 노력을 폄하하고 가볍게 생각해서 미안해요. 앞으로는 제가 평생 지켜 줄 테니까 같이 힘내요.”

이 녀석이 무슨 생각을 한 건지는 몰라도, 진심으로 보이는 모습에 언짢았던 마음이 씻은 듯 사라졌다.

도유는 미소 띤 얼굴로 손을 뻗어 청신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마지막에 도유가 한 공격으로 단정하게 넘겼던 머리카락이 흐트러진 것을 조심스럽게 손으로 정리해 주자, 청신이 오이를 발견한 고양이처럼 쭈뼛하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카데미에서 만난 뒤 처음으로 도유가 저를 만진 것은 물론, 머리카락까지 정돈해 주는 손길을 처음 받았기에 어쩔 수 없는 반응이었다.

“나 때문에 네 정장에 먼지가 많이 묻었네.”

“아, 아니에요, 형. 이 정도는 제가 마법으로-.”

“우리 집에 올래? 먼지 털어 줄 겸, 저녁 대접할게.”

과연 올해 안에 들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던 말을 듣게 된 청신은 석상처럼 굳었다.

도유는 개의치 않고 청신이 답하길 기다렸다. 청신이 자신을 마음 깊이 걱정해 주고 있다는 것과 순순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에 챙겨 주고 싶었다.

별 사심 없이 초대한 것뿐이었지만, 청신에게는 도유의 말이 다르게 들렸다. 그는 잠시 얼떨떨한 얼굴로 멍하니 서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는 쫓기는 사람처럼 빠르게 대답했다.

“제가 사실 지금 너무 지치고 힘들고 너무 많이 놀라서 마법을 쓰기가 어려웠어요. 네, 도유 형 집에 갈래요. 어서 가요.”

도유 앞에서 청신의 자존심 따윈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

도유의 집은 카단의 본부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그야 당연했다. 카단에서 특수부 1팀의 요주의 팀원들을 편리하게 관리 감독하고자 지원해 준 집이었기 때문이었다.

카드 키를 찍고 집 안으로 들어서며 도유가 말했다.

“손님 데려와 놓고 미안한데, 일단 난 좀 씻고 나올게.”

“네, 도유 형.”

순종하는 강아지처럼 눈을 반짝이며 청신이 곧바로 대답하자 도유는 잠시 오묘하게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차분하고 침착하게 자신의 불안감을 곱씹어 보았다. 뭘까? 어쩐지 가만히 내버려 두면 청신이 사고 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어차피 집에 있는 건 대부분이 협회에서 제공한 것이라 협회장의 아들인 청신이 부쉈다고 하면 아무런 배상도 하지 않을 터였지만, 그래도 사람의 감이란 것이 있었다.

“얌전히 기다려야 해.”

“불안하시면 같이 씻을까요, 도유 형? 제 로망이에요. 사랑하는 사람이랑 같이 씻다가 하는 거.”

청신은 단추가 뜯겨 나간 탓에 고스란히 벌어진 도유의 상체를 보았다. 여기까지 오는데 엄한 놈이 감히 도유를 노릴까 마법까지 사용해서 도유의 모습을 가렸던 청신이다.

저 살결에 고개를 파묻고 싶었던 것을 참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도유는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본인은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지만.

“너랑 자려고 온 거 아니라고 세 번째 말하고 있는데, 앞으로 한 번만 더 말하게 만들면 내쫓을 거야.”

“네, 형. 걱정 말고 천천히 씻고 나오세요. 옷 가져다드릴까요?”

“됐고. 얌전히 있어.”

한 번 더 강조한 도유는 욕실로 곧장 들어갔다. 등 뒤로 청신의 시선이 집요하게 박혔지만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고양이나 강아지나 앵무새가 아니니 혼자 둬도 짧은 사이에 집이 난장판이 되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어서, 욕실로 들어가자마자 도유는 쫓기는 사람처럼 빠르게 씻기 시작했다.

*

다행히 씻고 나왔을 때 청신은 다소곳하게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눈을 마주치자마자 생긋 웃는 모습이 ‘어때요?’ 하고 묻는 것 같아서 도유는 청신에게 옷에 묻은 먼지나 떼라며 돌돌이를 던져 주고는 주방으로 향했다.

냉장고를 열어 집으로 오는 내내 고민했던 요리를 위한 재료들을 꺼내 손질을 하기 시작한 도유가 한창 집중하고 있을 때였다.

스륵.

“도유 형.”

뒤에서 도유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청신이 도유의 옆얼굴에 슬며시 입술을 붙였다.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저 요리 잘해요. 칼질도 잘하고요. 요리가 아닌 것도 물론, 굉장히 잘하고요.”

의도를 전혀 숨기지 않은 손길이 도유의 배를 쓸듯이 움직이며 점차 바지 사이로 손가락을 끼워 넣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소라면 청신을 밀어 냈을 도유는 잡고 있던 칼을 꽉 쥔 채 움직이지 않았다. 청신이 의아함을 느끼면서도 다음 단계를 밟으려던 찰나,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닿았다.

“청신아. 부탁인데 내 집에서 기척을 숨기지 마. 찌를 뻔했어.”

“아.”

괜히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이다. 청신이 녹색 눈을 도로록 굴려 칼을 쥔 도유의 손을 보았다. 본인의 말마따나 얼마나 힘을 주어 참았는지, 손등에 힘줄까지 보였다.

청신이 애교를 부리듯이 도유의 어깨 위에 턱을 올렸다.

“죄송해요, 도유 형. 형의 뒤태도 너무 예뻐서 만지고 싶은 마음에 그랬어요.”

몸에 맞춘 정장 차림도, 너드의 연기를 할 때 입는 매일 똑같은 체크 남방 차림도, 카단의 제복 차림도 좋았지만 완전히 사복을 입은 도유의 모습은 매력적이었다. 단순한 셔츠와 바지 차림인데도 그랬다.

저 식탁 위에 도유를 눕혀 놓고 셔츠를 위에서부터 밀어 올리면 도유가 어떤 얼굴을 할지 굉장히 궁금해진 청신은 희망찬 눈빛으로 도유를 보았다.

그러나 도유의 서슬 퍼런 눈과 눈이 마주친 순간 얌전히 호기심을 밀어 넣었다.

“얌전히. 앉아서 기다려. 알겠지, 청신아?”

마지막 경고다. 흡사 강아지를 대하는 어조였지만 청신은 개의치 않고 얌전히 떨어졌다. 청신의 성격을 아는 이들이 보았다면, 언제나 제가 하고 싶은 대로 밀어붙이는 그가 말 잘 듣는 강아지처럼 얌전히 행동하는 걸 보고 기겁했을 테지만 여긴 도유와 청신뿐이었다.

“왜 거기 앉아?”

“도유 형 보려고요.”

“…….”

도유의 모습이 제일 잘 보이는 의자에 앉은 청신이 그윽하게 바라보자 도유가 들고 있던 칼을 고쳐 쥐었다. 청신은 바로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고 말했다.

“다 끝나면 불러 주세요, 형.”

“응.”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