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30)화 (30/159)

#30

“아닙니다.”

“덕분에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았어요. 고맙습니다.”

고개를 숙여 인사한 그녀가 몸을 돌렸다. 장례식장 안에서 봤던 힘없는 걸음이 당찼다.

소매까지 걷어붙이는 모습이 잠시 의아했지만, 도유는 그녀의 앞이라 드러내지 못했던 통증에 눈살을 찌푸리며 약을 다시 물었다.

그러나 거의 다 타 버린 탓에 새로 꺼내야 했다. 새로 꺼낸 약을 입에 물고 불을 붙이려던 찰나, 눈앞에 모인 마력을 인지함과 동시에 불이 붙었다.

도유는 이서연을 대할 때와는 달리 무심한 눈으로 약을 피우며 제게 다가온 불청객을 보았다.

“도유 형.”

도유와 마찬가지로 검은 정장을 입은 청신이다. 장례식에 온 사람이 아니라 정장 모델이 행선지를 잘못 알고 온 게 아닐까 싶은 모습이었지만 도유는 개의치 않고 눈짓만 했다. 할 말 있으면 하라는 뜻이었다.

찰칵.

“…사진은 왜 찍어?”

찰칵찰칵.

다가오다 말고 멈춰 서서 핸드폰을 꺼내기에 뭘 하려나 싶어서 보고 있으려니 열정적으로 사진을 찍어 대는 게 어이가 없어서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청신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핸드폰을 집어넣으며 답했다.

“도유 형이 너무 잘생겨서 어쩔 수가 없었어요. 그보다 형, 담배 피웠어요?”

“이거 약이야.”

“약이요?”

청신은 마치 ‘약주면 약이니까 마음껏 마셔도 몸에 좋아.’라고 말하는 어르신을 힐난하는 표정으로 도유를 봤다. 도유가 쯧 하고 혀를 차며 설명했다.

“너도 내 눈을 멋대로 빌려 봤으니 알 거 아냐? 눈 때문에 정보량이 과다해서 이걸 안 쓰면 두통이 심해.”

그 외에도 다른 이유가 있었고, 담배 형태의 약 말고도 섭취하는 약이 있었지만 굳이 청신에게 말해 줄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다행히 청신은 이해했는지 도유가 담배를 다 피울 때까지 아무 말도 없이 서서 도유의 얼굴만 빤히 보았다.

찰칵, 찰칵.

아니. 사진만 열정적으로 찍어 댔다. 청신은 도유가 한마디 하려고 눈을 흘기자 그마저도 좋은 건수를 잡은 기자처럼 손가락을 열심히 움직였다.

그 모습을 불가피하게 가까이서 보게 된 도유는 저절로 측은한 표정이 되었다.

“그보다 여긴 어쩐 일이야?”

“도유 형이 보고 싶어서요.”

“바쁘다고 했잖아.”

둘러댄 말이 아니라 진짜 바빴다. 본부로 다시 돌아가 아카데미에서 범법자를 낚을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청신의 표정이 시무룩하게 변했다.

한순간에 제가 해서는 안 될 망언이라도 한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슬퍼하는 미인의 얼굴에 도유가 멈칫할 때였다.

청신이 슬쩍 도유의 손을 잡았다. 떨쳐 낼 수 없었다. 그걸 용케도 알아차린 미인은 애처롭게 눈을 깜빡이며 입을 열었다.

“데이트 안 해 줄 거예요? 저 도유 형이랑 데이트할 생각으로 왔는데.”

“…안 돼.”

“뭘 해도 안 해 줄 거예요?”

“응.”

또 사람을 끌고 간다거나 제멋대로 이동해 버리면 화낼 생각으로 단호히 끊어 내자 청신이 언제 시무룩했냐는 듯 사르르 웃더니 말했다.

“그럼 저랑 대련해요, 도유 형.”

“대련?”

“네. 대련이요. 저 특수부로서 받아야 할 훈련은 하나도 못 받은 상태예요. 이런 상태에서 또 실전에 투입되면 죽을 수 있잖아요. 물론, 도유 형이 저를 절대 죽게 만들진 않겠지만요.”

무슨 꿍꿍이일까. 도유는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가, 주머니에서 아티팩트를 꺼내 발동시켰다.

“형?”

청신은 순식간에 저와 도유의 주변을 넓게 감싸는 투명한 장벽을 보았다. 일시적으로 공간을 차단하는 아티팩트였다. 도유가 말했다.

“네가 무슨 생각인지 대강 알 것 같아. 어디 한번 덤벼 봐.”

“네?”

“대련하자며.”

도유가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기에 눈만 깜빡이며 상황 파악을 하는 청신을 뒤로하고 도유는 담배를 비벼 껐다.

“여기에서 하자, 지금.”

“진심이세요? 저는 마법사이고, 형은 지금 무기도 없잖아요.”

“우리 팀이 투입되는 작전은 대부분이 지금과 같은 상황이야. 불시에 터지고, 환경은 열악하지.”

물론 대비하기 위한 온갖 종류의 아티팩트와 장비는 지원해 준다.

그러나 흡입한 약 때문에 나른해진 도유는 말하는 게 너무나 귀찮아서 굳이 덧붙이진 않았다. 대신 청신을 재촉했다.

“됐고, 공격해. 마법이든 뭐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아. 그런데 광범위의 마법은 사용하지 마. 공간 차단된 수준에서-.”

쐐애애액!

도유는 몸을 옆으로 틀었다. 그 직후, 도유가 서 있던 곳을 날카로운 유리 조각 같은 것이 스쳐 지나갔다.

“일부러 느리게 한 거예요, 형.”

“알아.”

“그럼 진짜로 공격할게요. 물론, 도유 형이 지면 죽이지 않고 제 맘대로 할 거니까 걱정 마세요.”

청신은 그 말을 끝으로 무자비하게 도유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쩍! 쩌저적!

도유는 발을 디디고 선 얼음 덩어리 위에서 도약했다.

그에 따라붙듯이 불쑥 바닥에서 치솟은 투명한 물줄기가 도유를 잡기 위해 길게 늘어났다.

와중에 허공에서 생겨난 녹색 빛 덩어리가 총알처럼 빠르게 쏘아지는 것을 보고 도유는 팔을 휘둘렀다.

틱!

정장 주머니에 숨겨 놓았던 나이프 하나로만 그 모든 것들을 요령 좋게 끊어 내고 막으며 도유는 입꼬리를 올렸다.

청신이 대단한 마법사라는 것은 그와 보낸 시간이 제법 있었기에 잘 알았고, 대화를 나눌 때마다 느꼈다.

그랬던 대상이 이렇게 공격을 하니, 굉장히 즐거웠다.

마치 모든 게 자신의 적이 된 기분이다.

숨을 내쉬는 순간 화염구가 그 숨을 태우기 위해 날아오고, 발을 디딘 땅에서는 얼음과 나무뿌리 같은 형상이 올라와 도유를 제압하려 들었다.

손을 뻗은 곳에 있던 사물은 순식간에 어긋나 사라지고, 발을 디딘 곳은 허공이 된다. 던지는 족족 엉뚱한 곳에 명중한다. 그것을 이용하여 청신을 공격했지만 정신 차려 보면 청신은 다른 곳에 있었다.

도유는 청신이 자신을 ‘봐주고’ 있다는 걸 알았다. 이건 그의 전력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 정도라니, 정말 제대로 싸우면 청신은 필시 이 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도 날려 버릴 수 있을 정도의 힘을 발휘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생사가 걸린 임무가 아니고 청신이 저를 죽이지 않을 것을 알기에 이런 벅차오르는 기분을 느끼는 걸 자각하고 있지만 어찌 즐기지 않을 수 있을까. 도유는 지금까지 많은 마법사를 상대해 왔다. 그렇기에 확신했다.

청신의 마법은 다른 마법사들과 묘하게 다른 힘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그동안 긴가민가했지만 확인할 방법이 없었기에 운이 좋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어떻게 대응해야 저를 향해 눈을 번뜩이고 있는 청신을 누를 수 있는지 깨달았으니까.

도유가 멈춰 섰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석벽이 솟아오른다.

이윽고 보이지 않는 것이 도유의 육신을 눌렀다. 도유는 재빨리 바닥을 굴렀다. 정장이 더러워졌지만 상관없었다.

“-!”

바닥을 굴러 마법의 영향에서 벗어나자마자 청신의 발이 보였다. 도유가 반응하려고 하던 때, 청신이 아무런 감정도 비치지 않은 눈으로 도유의 가슴을 밟았다.

“읏…!”

“제가 이겼어요, 도유 형.”

힘 조절을 했지만 성인 남자의 체중을 그대로 실었기에 통증이 일었다. 도유가 손에 든 나이프를 던졌다.

청신의 뺨을 아슬아슬하게 스친 나이프는 그대로 그를 스쳐 지나가는 듯하더니 방향을 바꿔 도유의 목 옆에 꽂혔다.

“살벌하네.”

다음의 시도는 시작도 못 했다. 바닥에서 나온 투명한 물줄기가 그대로 도유의 양 손목을 묶어 바닥에 단단하게 고정시켰다.

그런 도유를 내려다보던 청신이 도유의 위에 올라탔다. 흙먼지가 잔뜩 묻고 이리저리 찢긴 도유의 행색과는 달리, 먼지 한 톨 묻지 않은 청신의 정장은 구겨진 곳도 보이지 않았다.

과연 마법사라고 생각하며 도유가 감탄하고 있을 때, 도유에게 입 맞출 듯 상체를 숙인 청신이 말했다.

“이런 실력이면 형은 분명 죽어요.”

“갑자기 대련하자고 해서 무슨 말을 하려나 싶었더니, 고작 그 말을 하려고 한 거야?”

“고작이라고요? 형. 도유 형이 상대하게 될 마법사는 이딴 실력으로는 제압도 못 해요. 오히려 형을 가지고 놀다 죽이겠죠.”

투두둑!

정장의 드레스 셔츠 단추가 뜯어지는 소리에 도유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청신은 아랑곳하지 않고서 단단하게 굳은 얼굴로 도유의 셔츠를 벌렸다.

훤히 드러난 상체에 뜨거운 손바닥이 닿았다.

“이청신.”

“형은 마나 감응력이 마법사보다 뛰어나다고 했었죠.”

도유는 대답 대신 가만히 청신을 올려다보았다. 청신의 손이 도유의 가슴을 쓸어내리듯 눌렀다.

“마나 감응력이 높은 일반인은 마법사에게 좋은 장난감인 거 알아요? 이렇게 접촉하고 있는 상태에서 체내 마력을 조금만 뒤틀어 버리면 혈관을 모조리 터트려서 죽일 수도 있고, 짐승같이 발정 나게 만들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솔직히 처음 알았지만 도유는 태연하게 되물었다. 지금까지 임무를 하며 미친놈들을 수없이 만나 본 도유다. 이 정도 말은 귀여운 수준이었다.

“‘그래서’라고요? 형. 들어요. 지금 나는 형에게 경고하는 거예요. 이런 실력으로 가다간 형은 죽어요. 그러니 특수부에서 나오세요.”

“그게 내 마음대로 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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