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29)화 (29/159)

#29

[오늘은 비가 내려 이청신이 제 몫의 우비까지 가져왔습니다. 평범한 우비인 줄 알았더니 본인이 만든 아티팩트였습니다. 저를 위해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아침으로는 오믈렛과 소시지 등이 들어간 도시락을 싸 왔습니다. 음료는 사과케일주스였는데 맛있었습니다.]

도유의 보고들이 하나같이 그런 식이었다.

마법에 대해 설명해 주거나 이야기를 나눴을 때의 내용도 상세하게 있었지만 대부분이 도유에게 청신이 열심히 먹인 것들에 대한 감상 평이었다.

청신이 먹을 걸 챙겨 줄 때마다 ‘맛있다’, ‘괜찮네’ 정도로만 품평했던 도유가, 실제로는 이런 생각을 하며 먹었다는 걸 알게 되니 너무나 귀엽게 느껴졌다.

아니지. 도유는 원래 귀여웠다. 사실은 단걸 좋아하면서도 싫어하는 척하는 것도 귀여웠고, 맛있는 걸 먹을 때마다 눈을 빛내는 것도 귀여웠고, 오물거리며 먹는 입술도 빨아 주고 싶을 정도로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잠시 도유의 사랑스러움을 곱씹으며 보고서를 끝까지 읽은 청신은 보고서에서 시선을 떼며 성희유를 불렀다.

“성희유 씨.”

어느덧 청신은 진지한 얼굴로 성희유를 보았다.

청신의 표정 변화 하나로 공기가 무거워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으나, 성희유는 그가 은근슬쩍 제가 건네준 도유의 보고서를 서류 가방에 챙겨 넣는 것을 보고 입술을 감쳐물었다.

일단은 저게 음식 리뷰 같은 글만 써 있긴 해도 나름 마법식이나 마법과 관련된 보안 정보가 포함되어서 반출이 안 된다.

성희유는 그걸 청신에게 고지할 의무가 있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입을 열어야만 했고, 입을 여는 순간 큰소리로 웃음을 터트릴 게 뻔했기 때문에 그는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어차피 대상은 청신이다.

협회장 송유원의 아들이기 이전에, 도유에게 푹 빠진 남자는 분명 온갖 마법을 걸어서 저 보고서를 보존하고 사수할 것이다.

청신의 허락도 없이 읽거나 훼손시킬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는 걸 알고 있는 성희유는 순식간에 판단을 내리고 기꺼이 청신에게 보고서를 내어 주었다.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이번엔 성희유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그의 주홍색 눈이 반짝였다.

“네, 말씀하세요. 은인의 부탁이라면 무엇이든 들어 드리죠.”

특수부 제1팀 팀장인 성희유가 아니라, 청신 덕분에 구명받았던 이로서 답하겠다는 뜻에 청신은 망설임 없이 말했다.

“도유 형을 특수부에서 제외시켜 주세요. 형의 남은 형량은 제 선에서 없애 버릴 수 있으니까.”

“…이유를 알려 주시죠.”

청신은 이번 조용환의 일이나, 이전에 자신을 범법자라고 단정 짓고 도유가 급습했을 때를 떠올리며 확신에 찬 어조로 답했다.

“도유 형은 약합니다. 지금까지는 운이 좋아 살아남은 것 같지만, 지금의 방식이라면 형은 반드시 죽어요.”

확신 어린 청신의 말에 진지했던 성희유의 표정이 무너졌다.

이윽고 그는 체면도 잊고 폭소를 터트렸다.

*

도유는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침인데도 하늘은 당장 비를 쏟을 것처럼 우중충했다.

사람들이 우는 소리가 언뜻 들리는 듯했다. 아니, 실제로도 울고 있을 것이다. 방금 전까지 죽음의 그림자가 가장 짙게 깔리는 곳, 고인과 마지막으로 인사하는 장소에 있다가 나왔기에.

도유는 카단에서 첫 월급을 받았을 때 제일 먼저 검은색 정장을 샀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새하얀 국화꽃을 샀다.

짧은 시간, 자신을 입양해 키워 준 양부모님에게 바치기 위해서 샀던 것뿐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도유가 특수부로서 임무를 수행하며 만난 이들을 위해 주기적으로 정장을 맞춰 입고, 국화를 사게 되었다. 전부 새까만, 먼지 한 톨조차 보이지 않는 단정한 정장을.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도유는 정장 주머니에서 담배 케이스에 넣어 두었던 담배 형태의 약을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어젯밤에 조용환이 병원에서 끝내 사망했다는 말을 듣고 아침 일찍 찾아온 탓에 몸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

한 모금 빨아들이자 통증이 옅어지고, 들쑥날쑥하며 제멋대로 마력의 흐름을 보던 시야가 원래대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입에 물고 있던 약을 급하게 손으로 옮겨 들며 도유가 몸을 돌렸다. 장례식장 안에서 가볍게 고개만 끄덕여 인사했던, 검은 옷을 입은 이서연이었다.

그녀는 지난번에 봤을 때보다 안색이 더 좋지 않았다. 조용환이 죽은 후 많이 울었는지 눈시울이 퉁퉁 부어 붉었다.

“안녕하세요. 이서연 씨.”

“요원님께서 오셨다는 걸 어머님께 듣고 찾았어요. 제가 좀 전에는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인사를 드리지 못했어요. 죄송해요.”

“괜찮습니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뇨. 카단 협회분에게 들었어요. 요원님 덕분에 용환이와 제가 인사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던 거라고.”

도유는 일그러지려는 표정을 가까스로 가다듬었다.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언질을 주었음에도 이서연에게 말했을 인간이 누군지 짐작이 갔기 때문이었다.

본부에서 마주치면 한 대 쥐어박으리라 다짐하며, 도유는 정중하게 말했다.

“저는 어디까지나 제 임무를 했을 뿐이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도요. 고마워요, 정말…. 전 누구보다 남을 생각했던 용환이가 그렇게 타인의 목숨을 앗아 가면서까지 살았던 이유를 짐작도 못 했거든요. 그랬는데 요원님 덕분에 알게 됐어요.”

사람에게는 감이란 것이 있다. 그녀는 벅찬 듯한 얼굴로 말했지만, 도유는 그녀의 표정 아래 감추어진 절망을 보았다.

범법자가 일반인에게 주는 마법이란 모두 금기로 지정된 마법을 바탕으로 한다. 이번 사건에 쓰인 마법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도유는 그녀와 조용환을 감시하고 있던 카단의 사람으로부터 조용환이 그렇게까지 하며 살아남으려고 했던 이유를 들었기에 그녀의 절망을 이해했다.

‘내가 죽으면 너는 완전히 혼자가 되어 버리잖아. 그래서 살려고 했어. 그래서 사람들을 죽인 거야.’

천애 고아인 그녀를 혼자 둘 수 없다며 조용환은 죽기 전까지 그녀의 손을 붙잡은 채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도유는 생각했다. 그건 정말 이기적인 ‘유언’이라고. 조용환은 그 말을 하는 것으로 자신의 죄에 이서연을 끌어들였다.

그렇지 않아도 이서연은 마법이나 범죄와 무관한 삶을 살아온 사람이었다.

또한, 조용환의 말 하나로 그의 아버지와 친척들은 그녀에게 책임을 전가하고자 들었다.

‘우리 애가 그럴 애가 아닌데. 다 너 때문이야! 네가 그 착한 애를 네가 살인마로 만든 거야! 네가!’

도유가 장례식장에 도착하자마자 들은 말이었다.

조용환의 아버지가 이서연을 향해 외치자 주변 친척들이 그렇다며 입을 맞췄고 오로지 그의 어머니만이 이서연은 관계가 없다며 그녀를 변호했다.

그러다 결국 다들 울음이 터져 우는 소리만 가득해졌지만.

“요원님은 마법사이신가요?”

갑작스러운 질문이었지만 도유는 당황하지 않고 대답했다.

“저는 마법사가 아닙니다.”

“그렇군요. 그럼, 혹시…. 용환이와 같은 사례가 많았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아. 제 말은 그러니까…. 사람을 희생시키는 마법을, 자기가 살기 위한 마법을 그렇게 자기가 써 놓고, 전가하는 사람이 많은지…. 정말 저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지고 만 건지… 알고 싶어서. 죄송해요. 제가 지금 혼란스러워서 말이 계속 꼬여요.”

“괜찮습니다.”

두서없는 물음이었으나, 도유는 그녀가 하고자 하는 질문을 충분히 이해했기에 목소리에 점점 울음기가 섞여 드는 이서연에게 손수건을 내밀었다.

그녀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받아 들자 도유는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사람들은 마법이 만능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의 기적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일반인의 눈으로 보면 인간이 이성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대가 없이 일으키는 것처럼 보이니 이해합니다. 다만, 마법 또한 대가가 있습니다. 그리고 마법은 자신이 분명하게 이해하고 ‘선택’하지 않으면 아무런 현상도 일으킬 수 없습니다.”

도유는 제 손을 내려다봤다. 언제 어디서 만났는지, 얼굴도 전혀 기억나지 않는 범법자가 제게 줬던 종잇조각을 들고 있던 감촉이 지금도 선명했다.

“특히 타인의 희생을 대가로 사용하는 마법이 그렇습니다. 마법사가 직접 마법을 사용하든, 그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물리적인 수단을 받은 비마법사든 상관없습니다. 사용자는 자신이 행하는 마법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충분히 이해해야 현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건 최초로 생명과 관련된 마법을 만들어 냈던 마법사가 남긴 안배였다. 생명의 가치를 재단할 자격이 없는 존재가 다른 생명을 재단하는 것을 이해하고 사용하길 바라며 세운 마법식.

도유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과거의, 12살의 자신은 범법자가 줬던 종이를 찢던 순간에 그 마법을 온전히 이해하고, 사랑해 주길 바랐던 부모가 그렇게 죽는 걸 이해했기에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던 걸까?

그날의 범법자가 준 마법에는 생명에 관한 수식이 없었지만 스스로 ‘마법’에 대해 떠올릴 때면 의문을 품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고맙습니다. 요원님.”

도유가 생각에 잠긴 사이, 말없이 하늘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던 이서연이 내뱉은 말에 도유는 잠시 내리깔았던 시선을 들어 그녀를 보았다.

절망과 슬픔이 완연했던 그녀의 표정이 한결 가벼워진 것을 본 도유는 살짝 웃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