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27)화 (27/159)

#27

그 색은 도유에게 익숙한 색이었다.

‘도유야. 사랑하는 우리 아들.’

“아….”

범법자에게 받은 마법을 사용했을 때. 일주일 후에 부모님의 몸도 저것과 똑같은 검은색 힘에 휩싸여 있었다.

그리고 그다음에 벌어진 일도 기억하기에 도유는 더는 멍청하게 지켜만 볼 수 없었다.

“막아야…, 막아야 해…!”

비명처럼 중얼거리며 도유는 마력을 차단하는 도구를 꺼냈다. 도구를 손에 쥔 순간 이걸로 저 흐름을 멈출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멈출 수 없었다.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도유 자신의 숨소리였다.

식은땀이 흐르고 미친 듯이 몸이 떨렸다. 다리가 납덩이라도 된 것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눈앞의 풍경이 시시각각 바뀐다. 처음으로 제게 웃어 준 양부모님의 얼굴로 바뀌었다가 조용환의 얼굴로 바뀌는 모습에 숨을 쉬는 것이 힘들어졌다.

“윽, 하아, 하아….”

“도유 형. 잠깐 실례할게요.”

“…! 흡!”

입이 막혔다. 무방비하게 벌어진 입술 사이로 기다렸다는 듯이 혀를 밀어 넣는 청신의 형형하게 빛나는 녹색 눈을 보고서야, 도유는 그가 제게 키스했다는 걸 깨달았다.

청신을 밀어 낼 생각도 못 했다. 제 입 안을 유린하는 청신의 혀에 숨이 가빠졌다. 도유가 한계에 다다랐을 때쯤, 청신이 미련 없이 떨어져 나갔다.

“너, 허억, 뭐, 뭐 하는 거야!”

반사적으로 외치고 나니 도유는 자신이 길 한복판에서 청신과 키스했다는 걸 깨닫고 버럭 화를 냈다.

청신은 도유를 보고 있지 않았다. 녹색 눈은 어느새 주저앉은 채 웅크리며 몸을 떨고 있는 조용환을 보고 있었다.

사람들이 조용환을 향해 모여든다. 도유는 흠칫했다. 조용환은 부모님과 똑같이 새까만 힘에 삼켜져 있었다.

“마법으로 가려서 지금은 우리 둘 다 아무도 못 봐요. 그보다 형, 형은 ‘이게’ 보이는군요.”

“이거라니…. 설마, 너도 저게 보여?”

“형의 눈을 빌렸으니 보이죠.”

“…?!”

내 눈? 도유는 손을 들어 제 눈을 더듬었다. 무심코 한 행동이었지만 청신이 흘끗 그걸 보고 웃음을 터트리는 모습에 얼굴을 붉혔다.

“아, 형. 너무 귀여워요. 방금 사진으로… 아니, 동영상으로 찍었어야 했는데.”

“설명이나 해. 납득하지 못하면 이걸 네 목에 채워 버릴 거니까.”

“그런 플레이도 나쁘지 않은데요. 그건 나중에 단둘이 있을 때 침대 위에서 하죠. 형은 저 새까만 힘. 저거 때문에 놀라셨던 거죠?”

차분한 목소리가 내뱉은 질문에 도유는 되레 자기까지 차분해지는 걸 느끼며 대답했다.

“맞아. 저게 대체 뭔지는 모르겠지만 저대로 두면 피해가 커질 거야.”

도유의 부모님도 그랬다. 저 검은색 힘에 삼켜진 부모님은 주변 사람들을 크게 다치게 만들었다.

인간이라는 육신에서 이성이 거세되는 순간을 목격하고, 그로 인한 참극을 눈앞에서 목격했던 도유는 주먹을 꽉 쥐었다.

“형은 저게 뭔지 알아요?”

“넌 알아? 알고 있다면 당장 막을 방법을 알려 줘. 시간이 없어.”

“방법은 간단해요.”

청신이 조용환을 손끝으로 가리켰다.

“완전히 삼켜지기 전에, 죽이면 돼요.”

“죽인다고?”

“네. 어차피 저 사람은 사형이에요. 조금 전에 저 사람 집 안방에서 범법자의 마법이 새겨진 손수건과 잠금 아티팩트 구매 영수증을 발견했어요.”

미인이 활짝 웃으며 경고했다.

“서둘러요, 도유 형. 지금 죽이지 않으면 변이가 시작될 거예요. 변이가 시작되면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다 죽어요. 보장하죠.”

“변이?”

“네. 말 그대로 육체가 변화하는 거죠. 음, 쉽게 말하면 사람 껍질을 뒤집어쓴 괴물이 된다고 하면 될까요?”

청신이 즐거운 듯이 웃었다. 아니, 그는 분명히 이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도유는 묻고 싶었다. 이런 상황이 대체 무엇이 즐겁느냐고.

하지만 사람은 자신과 동족이라 생각했던 존재가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판단한 순간 얼어붙기 마련이다.

지금의 도유 또한 그랬다. 청신은 그런 도유의 얼굴을 음미하듯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비마법사의 육체는 애초에 이 세계에 존재하는 에너지조차 감당할 수 없게 설계된 몸이에요. 그런데 저 조용환 씨는 범법자의 마법으로 담아선 안 될 힘과 변질된 에너지를 수없이 담고, 담았죠. 그 탓에 육신을 구성하는 흐름이 더럽혀졌어요. 저건 제어구나 구속구를 채워도 못 끊어요. 죽이는 것만이 답이에요.”

“제대로 말해, 이청신. 네가 말하는 변질된 에너지가 뭐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마력과 또 다른 기운, 음…. 세상에 쌓인 부정적인 에너지에요. 더 쉽게 말하자면…. 누군가는 이걸 사기(死氣)라고 부르고, 또 누구는 그걸 액이라고 부른다고 하면 이해할까요? 저는 이 에너지를 탁류라고 부르지만요.”

“탁류라고?”

청신의 목소리는 어딘가 들뜬 듯했다. 뺨에도 옅은 홍조가 올라왔다.

마치 제 평생 말하지 못할 비밀을 털어놓듯이, 그것을 도유에게 공유하게 된 것이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 것처럼.

“부정적인 에너지라는 건 대부분 생명이 가졌던 절망과 증오, 슬픔 따위거든요. 그렇기에 언제든 다른 것에 의해 맑아질 수도 있고, 더 더러워질 수도 있는 거니까요. 다만 맑아지게 하려면 그만큼 정순하고 가장 깨끗하면서도 강대한 에너지가 필요해서 정화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죠.”

청신이 박수를 짝, 하고 쳤다. 그러자 사위에서 빛이 터졌다. 도유는 무심코 눈을 감았다가 떴다. 낯선 공간이었다. 이곳에는 도유와 청신, 그리고 기절한 듯한 조용환밖에 없었다.

갑자기 쓰러진 그를 돕기 위해 몰려온 사람들도, 핸드폰을 들고 사진을 찍으며 구경하던 사람들도, 소란스럽게 도로를 오가던 차의 소리도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완벽한 남색의 공간. 도유는 발밑을 보았다. 돌과 같은 질감의 평평한 남색은 바다를 밤에 가둔 것처럼 보였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곳이니 여기라면 도유 형이 편히 일 처리를 할 수 있을 거예요. 아까 그곳에서 아무런 방비 없이 저 사람을 죽였다면 그대로 폭주했을 테니까.”

도유는 이제야 냉정을 되찾고 청신을 돌아보았다. 어릴 때의 기억에 사로잡혀 제대로 이성을 차리지 못했기에 알아보는 게 늦었다. 저를 관찰하는 청신의 시선을.

동시에 도유는 그가 자신을 시험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무엇을 시험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범법자에게 마법을 받은 ‘피해자’라 해도, 사람을 죽이는 데 망설임 없는지 확인해 보기 위한 시험일까?

아니면 도유가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미지의 힘에 겁을 먹고 움츠러드는지. 마땅한 대응을 찾을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걸까.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도유는 벨트에 숨겨 놓았던 검을 뽑았다.

검이라 해도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단검이다. 그마저도 벨트에 숨길 수 있을 정도로 얇고 휘어지는 까닭에 무기로써의 실용성 따윈 조금도 없는 물건처럼 보였다.

청신은 녹색 눈을 가늘게 뜨며 도유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뽑아 든 단검을 한 번 허공에 휘둘렀다. 궤적이 어두운 공간에 선명하게 남았다. 도유는 깊게 가라앉은 푸른색 눈으로 단검의 끝을 본 후, 조용환에게로 다가갔다. 조용환의 바로 앞에 멈춰 선 도유는 말했다.

“청신아.”

“네, 도유 형.”

도유는 청신을 향해 빙긋 웃었다. 억지로 꾸며 낸 웃음이 아닌 진심을 담은 웃음에 청신은 얼떨떨한 얼굴이 되었다.

그런 청신을 바라보며, 도유는 여전히 웃음을 머금은 채 여느 때보다 더 다정한 어조로 속삭이듯 말했다.

“난 너 같은 성격은 딱 질색이야.”

동시에 도유가 단검으로 제 반대편 손을 있는 힘껏 내리찍었다. 단검의 날이 손바닥을 꿰뚫고 붉은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도유의 자해에 청신의 얼굴에서 표정이 완전히 사라졌다.

“도유 형?!”

무심코 도유를 향해 뛰어가려던 청신이 멍하니 그를 보았다. 아직 도유의 눈을 빌린 상태였기에 청신은 도유의 손에서 흐르는 피가 조용환의 위에 떨어짐과 동시에 벌어지는 변화를 보고 숨을 삼켰다.

조용환의 몸 위로 피가 떨어짐과 동시에 육신을 새까맣게 뒤덮은 힘이 도망치듯이 빠르게 사라져 간다. 청신은 그것이 무슨 현상인지 단번에 이해했다.

조용환을 삼킨 부정적인 힘이 정화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언제나 남이 제시한 선택지에서만 고민하고, 거기에서만 답을 선택하는 멍청이였다면 난 오래전에 죽어서 너와 만날 일도 없었을 거야.”

영원처럼 느껴지는 짧은 시간이 흐른 후 도유가 손을 거뒀다. 조용환을 삼켰던 불길한 힘은 그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완전히 정화되었다는 걸 알아차린 청신은 작게 숨을 삼켰다.

“청신아. 네가 특수부에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특수부에 있는 동안엔 지금과 같은 실수는 하지 마. 아무리 너라도 위험할 수 있거든.”

그렇게 말한 도유는 이내 제 말이 너무 꼰대 같았다는 걸 자각하고는 조금 쑥스러운 듯 웃으며 말을 이었다.

“물론, 네 지금의 파트너는 나니까 어떤 일이 있어도 너를 죽게 하지 않을 거지만.”

청신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아서 이렇게 하지 않으면 정신을 잃어버릴 것 같았다.

지금까지 많은 사랑 고백을 받아 왔지만 지금 도유가 한 고백만큼 강렬하고 심장과 뇌에 깊이 박히는 말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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