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26)화 (26/159)

#26

“지금이라도 하나만 보여 드릴까요, 도유 형?”

“슬슬… 으… 익숙, 해질… 거야.”

“알았어요.”

청신은 반대하지 않았다. 제 위에 늘어진 도유의 무게도 숨결도, 이따금 일부러 사역마를 빠르게 움직여 시야를 휙 움직일 때면 움찔거리는 몸의 떨림도 더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도유는 조용환이 책상에 앉아 얼굴을 가린 채 혼자 중얼중얼하는 것을 새의 형태를 한 사역마의 눈을 빌려서 보며 생각했다.

이딴게 마법 문명 시대의 최첨단 수단이면, 차라리 집에 몰래 침입해 CCTV를 설치하거나 녹음기를 설치하는 것이 더 나았다고.

그때 조용환이 고개를 휙 들었다. 그가 노트북을 켜는 것이 보였다.

다급하게 움직이는 손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사역마의 위치에서는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보이지 않지만, 집 안에 있는 날벌레의 형태를 한 사역마의 눈에는 훤히 보였다.

그는 이 인근의 행사들을 찾아보고 있었다. 전시회, 박람회, 강연, 축제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것들을 위주로 검색하며 그 앞에 ‘실내’라는 키워드를 반드시 넣었다.

고작 저걸 검색한 것만으로는 그를 체포할 증거가 부족하다.

“마법진 찾았어?”

“아직 못 찾았어요.”

조용환을 감시하고 있는 세 마리의 사역마와 그가 범법자에게 받았을 마법진이 그려진 물품이나 종이를 찾아 움직이고 있는 사역마가 두 마리다.

제법 시간이 흐른 듯했으나 여전히 진전이 없는 까닭에 도유는 초조함을 느꼈다.

“아.”

도유가 저도 모르게 앓는 소리를 흘렸다. 조용환이 외출하려는 듯 외투를 걸치는 것을 보았다. 핸드폰을 챙기지 않고 놓고 가는 걸 보며 고개를 쳐들었다.

“우리도 움직이자. 혹시 이동하면서 감시 가능해?”

“당연하죠. 제가 얼마나 유능한데요. 연결을 끊어 드릴까요?”

“부탁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속을 울렁거리게 만들었던 사역마들의 시야가 머릿속에서 말끔하게 지워졌다.

시야가 공유될 때도 느꼈지만, 이렇게 끊기는 것까지 경험하니 생경한 감각에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잠시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스윽.

눈을 가리고 있던 안대가 청신의 손에 의해 사라졌다. 어둠에 익숙해졌던 눈이 빛을 머금자 아려 왔다. 찡그린 얼굴로 고개를 숙인 채 몇 번 눈을 깜빡이고 나서야 빛에 적응한 도유는 제 꼴을 자각하곤 흠칫했다.

“실례했어.”

도유는 청신의 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내심 놓아주지 않으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했던 것과 다르게 청신은 도유가 휘청이는 것만 잡아 지탱해 주고 순순히 놓아주었다.

그 모습에 도유는 청신이 공과 사를 구분하는 성격이라는 것을 느끼고 깊이 안도했다.

“조용환 씨가 검색한 곳 중에 현재 사람이 많이 모이고 실내에서 하는 건 오케스트라 연주회밖에 없었어. 그리로 갔을 것-.”

“아니요.”

청신이 웃음기가 사라진 차가운 눈으로 도유를 응시했다. 도유는 녹색 눈과 마주친 순간 그가 저를 보고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굳이 그리로 갈 필요도 없죠. 지금 이 시간대는.”

“그럼 어디로 갔는데?”

“이 시간대에 가장 붐비는 건 지하철이잖아요. 승강장에도, 지하철 안에도. 달리는 지하철 안은 말할 것도 없죠. 칸마다 사람이 넘치고, 소리가 울리면서 밀폐된 장소니까요.”

도유는 시간을 확인했다. 6시. 하루의 고된 업무를 마친 대부분의 사람들이 퇴근하느라 가장 붐비고 시끄러운 시간이었다.

“역으로 가고 있는 거야?”

“네. 조용환에게는 현명한 선택이죠. 그의 집 근처에서 가장 가까운 역은 환승 구간이라 사람도 많으니.”

청신의 말에 도유는 곧바로 핸드폰을 들었다.

퇴근 시간인 만큼 지금 그들이 있는 곳에서는 최대 속력을 밟는다 해도 조용환이 향했을 역까지 대략 10분이 소요가 되기에 마법사들의 지원을 요청하는 게 나았다.

“어디에 전화하려고요?”

“지원 요청. 이동 마법이 가능한 마법사가 있으니, 그가 먼저 가서 조용환 씨를 제압하도록 요청할 거야. …이청신. 손 놔.”

도유는 제 손을 막는 청신을 보며 표정을 굳혔다. 조용환의 집에서 지하철역은 아무리 느리게 걸어도 도보로 3분 거리다.

사람들이 휘말리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기에 도유는 좀처럼 제 손을 놓지 않는 청신의 행동에 화가 치미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청신은 청신 나름대로 못마땅한 기색이 분명했다.

“형 앞에 유능한 마법사가 있는데 왜 딴 새끼 찾아요? 질투 나게.”

“뭐. 너 이동 마법 쓸 줄 알아?”

마법사라고 해서 모두가 이동 마법을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그건 머리가 좋다고 해서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이동 마법은 말 그대로 천부적인 재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론으로는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어도, 타고난 감각이 없으면 엉뚱한 곳에 끼어 죽거나 공간과 공간 사이에 갇혀 죽기 마련이었다.

도유는 청신이 사용할 수 있는 마법 중에 이동 마법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와 관련된 인적 서류를 전부 살펴봤으니까.

딱. 청신이 손가락을 튕겼다. 도유는 숨을 삼키며 저와 청신을 휘감는 마력의 흐름을 보았다. 운해와 같은, 틈이 조금도 보이지 않는 마력의 흐름에 휩쓸려 간다고 생각함과 동시에 시야가 바뀌었다.

제일 먼저 자각한 건 웅성거리는 소리였다. 도유는 주변을 둘러봤다.

서일역 1번 출구라고 쓰인 지하철역 입구와 갑작스레 나타난 저와 청신을 보며 놀라는 사람들의 표정이 보였다.

상황을 파악하고 입을 벌린 채 할 말을 잃은 도유를 보며 청신이 손수 입을 닫아 주었다.

“어, 어떻게….”

“하아, 도유 형, 이렇게 무방비하게 입술만 뻐끔거리시면 너무 귀여워서 박아 버리고 싶어지거든요?”

진지한 헛소리에 겨우 정신이 돌아온 도유가 청신의 손을 잡았다.

“아니, 그거 말고! 지금 이동 마법, 너뿐만 아니라 나까지 이동시킨 거잖아!”

“당연하죠. 저는 도유 형의 유일한 인생의 파트너인데 혼자 갈 수는 없잖아요.”

청신은 이쯤에서 도유가 질색하면서 ‘헛소리 말고 현장이나 가자.’ 하고 대답할 줄 알았다. 그러나 도유의 반응은 언제나처럼, 청신의 예상을 벗어났다.

“청신아, 너 진짜 대단해!”

푸른색 눈이 반짝거린다. 생명을 품은 듯 경이롭고, 신성하게까지 보이는 아름다운 눈에 번진 순수한 경탄에 청신은 제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한 걸 느끼며 입매에 힘을 주었다.

“협회 이동 마법사도 혼자만 이동할 수 있는데 넌 나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이동시켰잖아. 인수 제한이 없는 거야?”

주변에 이쪽을 주시하고 있는 일반인이 있다는 걸 깨달았는지 필사적으로 목소리를 낮춰 보지만 청신은 도유의 목소리가 굉장히 들떴다는 걸 알아챘다.

제 손을 꼭 잡은 도유의 손에도 그 흥분의 여파가 고스란히 번져 여느 때보다 더 강한 힘이 들어가 있었다.

만약 지금이 임무 중이 아니었고, 조용환이 역에 거의 다 왔다는 걸 몰랐다면 당장 도유를 안아 들고 조금 전의 단둘이 있던 룸 카페 방으로 이동했을 청신은 아쉬움을 삼키며 대답했다.

“딱히 제한은 없어요.”

“그렇구나…!”

도유는 정말 들떴다. 너무 기쁜 나머지 청신이 헛소리를 해도 열 번까지 참아 줄 수 있을 정도로 좋았다!

그동안 도유는 수많은 임무에 참여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절절하게 이동 수단에 대한 변화를 바랐다.

임무를 하면서 빠르게 움직여야 할 때 차를 몰거나 미리 대기를 하는 것은 적잖은 고통이었으니까. 심지어 화장실도 마음대로 가지 못했다.

화장실은 둘째 치고 먹는 것도 마음대로 먹지 못했다.

일단 인간은 배가 고프면 흉포해지는 생명체인데, 일하는 직장인이 업무 시간에 굶으면서 일까지 하면 흉포한 걸 넘어서 억울해진다. 도유는 지금까지 그 억울함을 많이 겪어 왔다.

그렇기에 청신의 존재가 이 순간 너무 사랑스러워서 미칠 것 같았다.

청신이 있으면, 청신과 함께 임무를 하면 모든 게 해결이 됐으니까.

사역마의 눈도 빌릴 수 있고, 동시에 이동 마법까지 인수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다니!

최첨단, 마법 만만세였다.

너무나 소중한 이동 수단, 아니 전력인 청신을 도유는 어여쁜 것을 보듯 보았다.

“…도유 형?”

청신은 도유의 시선이 너무 좋았지만, 어쩐지 그 이면에 언뜻언뜻 보이는 기묘한 열기가 신경 쓰여서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도유가 자길 어여쁘게 봐 주길 바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도유의 눈빛은 어쩐지 자신이 원하는 방향과 살짝 다른, 뒤틀린 방향의 애정으로 보여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아! 이럴 때가 아니지.”

정신을 차린 도유가 중얼거렸다.

“청신아. 조용환 씨는 지금 어디까지 온 거야?”

말투까지 한결 상냥해졌다. 청신은 더더욱 알 수 없게 되어 버렸지만 일단 대답했다.

“저기예요.”

검지로 한 방향을 가리키는 걸 보고 자연히 고개가 돌아갔다. 청신의 말대로 조용환이 당장 쓰러질 것처럼 휘청이며 이쪽을 향해 오는 게 보였다.

그가 걱정된 건지 행인 몇몇이 조용환을 주시하고 있었다.

도유는 조용환에게 가려고 했다. 그러나 곧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형, 왜 그래요?”

조용환의 몸을 휘감은 뱀처럼 보이는 마력의 물결. 공원에서 봤던 그것들이 그의 몸에 스며들었다가 빠져나오는 게 보였다.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그의 몸에 들어갔다가 빠져나오길 반복하는 마력의 흐름 아니, 이제는 마력인지 뭔지도 알 수 없는 힘의 색이 점점 짙고, 불길한 검은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음을 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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