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꿈속에서 마법사는 도유를 원망한다. 딱 한 번 병문안을 갔을 때 만났던 그의 딸은 왜 자길 죽게 내버려 뒀냐며 순수하게 묻는다.
“도유 형.”
뺨을 감싸는 손길에 도유의 몸이 크게 떨렸다. 청신이 안타까운 듯, 가여운 것을 보듯 슬픈 얼굴로 도유를 위로하듯이 뺨을 쓸었다.
“그날 괴로운 일이 있었나 봐요. 제가 위로해 드려도 될까요?”
“…됐어.”
도유는 청신의 손을 떨쳐 냈다. 잠깐이나마, 청신에게 기대면 편해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지금은 현장이다.
다행히 조용환은 집으로 들어간 뒤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어쨌든 이번에 범법자가 사용한 마법은 무미아와 같은 원리일 거야. 타인의 생명을 빼앗아 그것을 조용환 씨의 생명력으로 바꾸는 거겠지. 네가 알려 준 대로 소리를 통해 생명체를 감지해 내기 때문에 첫 번째와 두 번째 사건처럼 밀폐된 장소에서 사망자가 단시간에 그렇게 많이 나왔던 거겠고.”
건물 안. 특히 창문과 문을 굳게 닫은 공간에는 소리가 반사된다.
그렇기에 도유가 보았던 그 거대한 마력의 흐름은 예배를 하던 사람들과 강연을 듣던 사람들을 삼켜 조용환의 생명으로 바뀌었으리라.
“결정적인 증거를 잡아야 해. 보통 범법자의 마법은 한 번 사용하고 나면 그 사람에게 귀속되니까, 범법자가 줬을 마법진이 그려진 종이나 그게 새겨져 있던 도구를 찾아야 해.”
범법자가 마법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고, 접할 기회조차 거의 없는 일반인에게 마법을 주는 수단은 현재 파악된 바로는 저 두 가지였다.
이 바로 직전에 일어났던 사건 또한 찢으면 바로 발동되는 마법진을 회사원에게 주지 않았던가.
‘그러고 보니.’
문득 떠오른 생각에 도유가 입을 열었다.
“이청신.”
“네, 도유 형.”
“너 전에…. 내가 네 집에 처음 갔을 때 말야.”
“네.”
“그날 저녁에 서점에 가서 뭔가 했잖아. 마법으로 모습까지 가리면서.”
“그랬죠.”
“뭘 했던 거야?”
그날 같은 장소에서 회사원이 범법자로부터 마법을 얻었다.
회사원이 마법을 얻기 전, 그곳에 머물렀던 청신이 무엇을 했는지 도유는 결국 알아내지 못했다.
다른 의문점인 청신과 범법자의 마법이 유사점이 있는 이유는 그가 특수부 1팀에 들어오겠다고 한 날, 그를 바래다주며 들어서 더는 궁금하지 않았다.
‘그야, 이렇게 하는 게 가장 적은 마력으로 가장 큰 마법을 사용할 수 있으니까요. 요즘 마법식들을 보면 너무 비효율적이고 쓸데없는 소모가 많아서 한심해요.’
정말 한심해하는 표정을 지었던 것을 떠올리던 도유는 청신이 어물쩍거리는 걸 발견했다.
“청신아?”
“그게…. 제가 제 입으로 말하기에 수줍어서요.”
“……그럼 말하지 마.”
말마따나 뺨까지 붉히며 정말 수줍은 듯 입술을 달싹이는 모습을 보고 도저히 알고 싶지 않아졌다. 호기심을 이렇게 한순간에 죽일 수 있는 것도 능력이다.
청신은 정말 더 안 묻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눈빛을 쏘아 보냈다. 물어봐 주기를 바라는 희망찬 눈빛이었으나 무시했다.
본능이 맹렬하게 속삭이고 있었다. 지금 제 호기심을 해소하기 위해 되묻는다면 호기심이 독으로 변하게 된다고. 그냥 독이 아니라 좀 불쾌한 쪽의 독을 얻게 되리라고.
정 궁금해지면 카단 쪽에 남은 자료를 보면 되는 일이다.
아무리 협회장의 아들이라 하더라도, 단순히 그 이유만으로는 완전히 용의자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일인데 청신은 그날 바로 범법자의 의심을 벗었다.
필시 그날, 청신이 서점에서 한 ‘어떤 짓’에 대한 해명이 완벽히 되었고, 상부에서도 그걸 납득했기 때문에 지금의 청신이 이 자리에 떳떳하게 있는 것이리라고 도유는 생각했다.
“네가 말했던 ‘마법 문명 시대’에 어울리는 감시 방법이나 말해 봐.”
그렇기에 도유는 호기심을 버렸다.
흥미가 뚝 떨어진 얼굴로 대놓고 말을 돌리자 청신이 울적한 표정을 지었다.
“진짜 안 궁금해요?”
“그렇게 물어봐 주길 바라면 네가 말하든가.”
냉랭한 반응에 청신이 우울하게 답했다.
“편지 썼어요.”
“뭐?”
“도유 형에게 사랑하니까 사귀어 달라는 편지를 썼다고요. 그때 도유 형이 제 뒤를 밟는 거 알고서 급하게 쓰느라 글씨가 조금 엉망이었지만…. 도유 형이 가져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책 사이에 곱게 접어 끼워 뒀었던 거예요.”
“…….”
“운이 없게도 범법자가 마법을 끼워 둔 책에 저도 편지를 끼워 놓은 꼴이 되어 버렸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렇게 도유 형과 있을 수 있게 됐으니 기뻐요.”
말마따나 정말 기쁜 얼굴이라 도유는 할 말을 잃었다.
“내용이 궁금하죠? 원하시면 카단에서 회수한 것, 가져다드릴게요.”
도유는 미친놈 보듯 청신을 보았다. 이놈이 쓴 자신을 향한 러브 레터가 향후 20년간 카단에 전자 기록과 실물 기록으로 보관된다고 생각하자 정신이 아찔해지기까지 했다.
“혹시나 해서 묻는데. 그거… 기록 남았지?”
“네, 당연하죠?”
뭘 그런 걸 묻느냐는 듯 청신이 생긋 웃으며 답했다. 당당한 대답에 도유는 주먹을 말아 쥐었다.
“협회장 아들 권한으로 삭제하거나 뭐 그런 건 안 될까?”
“아무리 제가 유능하다 해도 그건 원칙적으로 무리죠.”
“…….”
세상에. 도유는 암담해지는 기분에 잠시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앞으로 카단에서 원하는 사람만 있으면 누구든 청신이 도유에게 썼다는 러브 레터를 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럼 인근에 사람 없는 곳으로 가요. 제 집이 가장 최적이긴 한데 거긴 안 갈 거죠?”
청신은 도유가 분노와 절망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사이,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웃으며 물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었다는 걸 인정한 도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힘없이 대답했다.
“당연하지.”
갔다가 무슨 일을 당하려고. 도유는 말을 삼켰다. 지금도 청신의 집을 급습했던 날, 청신의 손길에 유린당했던 것이 또렷하게 떠오르는데 어찌 맨정신으로 갈 수 있을까.
“도유 형이 이렇게 단호하게 나올 때마다 짜릿해서 빨고 싶어지는 거 아세요?”
“됐고, 이유.”
언제 사람들을 다시 노릴지 모르는 용의자의 집 앞에서 말이 길어지는 걸 원치 않았기에 매몰차게 말하자 청신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몸 상태가 좀 안 좋아질 수 있거든요. 그러니 가급적 누울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해요.”
“그렇다면….”
도유는 현재 자신이 있는 위치와 올해 초에 카단에서 임무 지원 및 협회원들을 위해 위장으로 운영 중인 다양한 업종의 상점들의 위치를 떠올린 후 말했다.
“이 근처에 카단에서 위장용으로 운영하는 룸 카페가 있어. 그중에 결계가 설치된 방을 대여하면 되겠네.”
“…좋아요.”
와중에 도유는 마법 문명 시대에 사용하는 신식 감시 방법이라면, 몸이 안 좋아지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묻고 싶었다. 그러나 제집을 매몰차게 거절당한 청신이 우울해하는 모습에 얌전히 차를 몰았다.
그 후, 룸 카페에 도착해 그 ‘마법 문명 시대의 감시 방법’을 사용했을 때 도유는 청신이 ‘누구의’ 몸 상태가 ‘좀’ 안 좋아진다고 했는지 명확하게 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청신의 품에 시체처럼 흐느적거리며 안기고 나서야 깨닫고 땅을 치고 후회했다.
*
청신이 말한 마법 문명 시대에 어울리는 감시 수단이라는 것은 사역마를 부려 시야를 공유하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청신이 한 마리의 시야만 공유받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친절한 조언까지 해 줬음에도 불구하고, 도유는 약간 어린아이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생각 없이 세 마리의 시야를 공유받고 지옥을 맛보게 되었다.
“윽, 우욱….”
시야가 크게 흔들린다. 만약 하나만 보고 있었더라면 괜찮을 테지만, 동시에 각각 다른 세 개의 시야가 머릿속에 흘러들어 오니 토할 것 같았다.
식은땀으로 젖은 이마를 티슈로 살며시 눌러 닦아 주는 손길이 느껴졌지만 도유는 청신의 손을 쳐 낼 기운도 없었다.
“괜찮아요. 도유 형. 익숙해지면 괜찮을 거예요.”
청신은 다정하게 속삭이며 제 위에 반쯤 누운 도유를 홍분 어린 표정으로 보았다. 그러나 지금의 도유는 검은 안대로 눈을 가린 상태였기에 청신의 표정을 보지 못하고 그의 위에서 끙끙거릴 뿐이었다.
도유의 입장에서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시야가 방해되기에 안대를 쓴 것뿐이었지만 청신의 눈에는 지금의 도유의 모습이 저를 유혹하는 것처럼 보여 곤혹스러웠다.
하얗게 질린 얼굴과 식은땀으로 젖은 얼굴에 달라붙은 연갈색 머리카락과 입을 틀어막고 있던 손을 내리자 바짝 마른 입술이 가늘게 떨리는 게 얼마나 색정적인지. 청신은 제 입술을 핥았다.
당장에 도유의 입술을 머금어 촉촉하게 적셔 주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그랬다가는 도유가 제 멱살을 쥘 것을 잘 알아서 행동으로 옮기진 못했다.
청신은 아쉬움을 담아 도유의 뺨에 달라붙은 연갈색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 주는 것으로 욕망을 억눌렀다.
“넌, 왜… 멀쩡… 욱….”
눈을 가린 탓에 청신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몸이 바짝 붙어 있기에, 아니 반쯤 누운 자세로 앉아 있는 청신의 위에 해파리처럼 널브러진 상태이기에 도유는 그가 지나치게 멀쩡하다는 것을 알았다.
“저는 익숙하니까요.”
현재 청신이 운용하고 있는 사역마는 다섯 마리다.
사역마의 시야를 빌려 조용환의 집 밖, 집 안 곳곳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었지만 청신은 지친 기색도 없다.
도유는 위아래로 휙휙 바뀌는 시야에 다시금 어지러움을 느끼며 청신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