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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23)화 (23/159)

#23

뭔가 깨달은 듯한 청신의 감탄사가 들려왔다.

슬쩍 다시 뒤돌아본 도유가 본 건, 환하게 웃고 있는 청신이었다. 도유는 의문에 사로잡혔다.

저 녀석은 어째서 뺨을 붉히는 걸까? 지금 좀, 숨이 거칠어진 것 같은데 내 착각인가? 제 눈이 잘못됐나 싶어서 다시 유심히 살펴봤지만, 청신의 반응이 더 또렷해질 뿐 달라지지 않는다.

“네, 이해했어요. 좋아요.”

“…그래.”

생각해 보면 청신은 도유가 이해하기 어려운 녀석이었고, 이상한 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미 이상했으니 곱씹어 보면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청신이 어떤 반응을 보이든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어서 가자.”

“네에, 도유 형.”

빨리 제복으로 갈아입히고 증인과 만나 봐야 했다.

아침부터 본부에서 심문을 받으며 지쳤을 증인을 떠올리면 시간이 촉박했다.

급한 마음에 도유는 청신의 손을 잡아끌고 서둘러 탈의실로 걸음을 옮겼다.

*

특수부는 서류 업무보다 현장에서 몸으로 직접 뛰어다니는 일이 잦다.

특히 그중에서도 제1팀은 사람의 목숨이 오가는 위험한 현장에 제일 많이 투입되는 팀이었다.

마법에 의한 이상 현상이 발생한 곳에 직접 가서 현장 조사를 하거나, 원인을 제거하거나 인질을 잡은 범인을 잡는다거나, 금기를 어긴 마법사를 사살하는 일 등.

위험하고 좋지 않은 일이라면 전부 투입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도유는 그런 특수부 1팀에서 20년을 넘게 버텨 온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타고난 감 같은 게 있었다. 노련한 형사들의 감과 비슷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쨌거나 도유는 제 맞은편에 앉은 창백한 인상의 여성을 보며 좋지 않은 느낌을 받았다.

주관적인 관점에서 도출된 결과에 따른 느낌 따위가 아니었다. 종류가 달랐다. 잠시 망설이던 도유는 서로 통성명을 한 뒤부터 줄곧 말이 없는 그녀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무엇이 그렇게 무섭습니까?”

도유의 질문에 증인으로 온 이서연이 놀란 얼굴로 고개를 확 들었다.

그녀의 시선이 도유를 향했다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도유의 뒤를 지키듯 서 있는 청신에게 닿았다.

그녀의 눈이 크게 흔들리고 이내 입술을 달싹이다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이서연의 눈에 떠오른 건 공포였다. 도유는 몸을 틀어 뒤에 선 청신을 올려다봤다. 얼굴의 절반을 가리는 새하얀 반가면을 쓴 청신이 도유의 시선에 응한다.

입과 턱은 가면이 가리지 않은 덕분에 훤히 드러나 있는데, 눈이 마주치자마자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보고 도유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눈빛으로 청신에게 물었다.

‘너 내 뒤에서 뭐 했냐?’

도리도리. 용케도 알아들은 청신이 작게 고개를 젓는다.

겁을 준 것도 아닌데 어째서 이서연이 청신을 보고 잔뜩 겁을 먹은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도유는 잠시 고민했다.

이윽고 그는 바들바들 떨고 있는 이서연과 청신을 한 번 번갈아 본 뒤에 다시 그녀에게로 몸을 기울였다.

“이서연 씨.”

“네, 네…. 죄송합니다. 가면… 가면이 너무, 무서워서요.”

“그렇습니까.”

그녀를 이해했다. 청신의 눈에 띄는 얼굴을 가리기 위해 쓴 반가면은 일반인의 관점에서는 무섭게 느낄 만했다.

저 가면 아래 청신의 이마 한가운데에는 도유가 힘껏 먹인 꿀밤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걸 아는 도유는 청신에게 복면으로 바꾸란 말도 못 하고 손짓으로 나가란 신호를 보냈다.

탈의실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도유를 덮치려고 했다가 한 대 맞은 청신은 사랑스러운 이의 손짓에 기분 나빠 하는 대신 걱정 어린 시선을 보냈다.

물론 가면의 눈구멍마저 검은 천이 덧대어져 있어 녹색 눈은 보이지 않았지만 도유는 알 수 있었다.

“나가서 대기하고 계셔도 됩니다.”

“…예, 알겠습니다.”

청신이 떠밀리듯 심문실을 나갔다. 도유는 이따 나가고 나면 이 심문실을 사용하는 게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넌지시 말해 줘야겠다고 생각하며 이서연을 보았다.

시야에 보이던 가면이 사라지자 과연 그녀는 한결 나아진 안색으로 고개를 들었다.

“죄송해요. 그리고 감사해요.”

“괜찮습니다.”

도유는 최대한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살짝 웃어 보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런 ‘유’의 심문은 저와 맞지 않음을 절감하며, 도유가 물었다.

“이서연 씨, 괜찮으시다면 앞서 다른 조사관들에게 했던 이야기들을 제게도 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네, 네. 그럼요.”

그녀는 작게 심호흡을 하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곳에 오기 전, 앞서 그녀가 했던 증언들을 문서로 정리해 놓은 것을 빠르게 외웠던 도유는 머릿속으로 그녀가 지금 하는 말들에 달라진 점이 없는지 비교해 가며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

“이서연 씨의 말로는 남자 친구가 범인 같다는 거야.”

도유는 운전대를 휙 꺾었다. 끼어들려고 했던 옆 차선의 차량이 가차 없이 박을 듯한 기세의 도유의 차에 식겁하듯 황급히 멈춰 서는 게 보였다.

조수석에 앉은 청신이 오, 하고 작게 감탄하는 소리를 가뿐히 무시하며 도유가 말을 이었다.

“그녀의 남자 친구인 조용환 씨는 일 년 전에 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았대. 항암 치료를 시작했지만 상태가 호전되지 않고, 다른 장기에도 암이 전이가 됐고.”

끼익!

신호등에 걸리자 도유가 쯧, 하고 혀를 차며 차를 멈췄다. 일순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가 되돌아온다. 청신의 입매가 굳었다.

“살려고 안 해 본 게 없었대. 그런데도 상태가 악화되니까 조용환 씨가 섬망 증상까지 보이기 시작했고 호스피스를 알아보던 중에 그와 이틀간 연락 두절이 됐다고 해.”

차가 다시 출발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일순 몸이 뒤로 젖혀졌을 정도로 정말 성급한 출발이었다.

청신은 생각했다. 이 차가 그렇게 안 좋은 차가 아닌데.

협회에서 제공하는 차이기 때문에 어지간한 차보다는 제법 가격이 나가고, 승차감이 좋으며 차에 탄 느낌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고 소문이 자자한 차였다.

그런데 지금은 움직이면 움직이는 대로 몸이 흔들리고 쏠리고 난리였다.

“이서연 씨가 경찰에 실종 신고하려던 때 조용환 씨가 돌아와 이렇게 말했대. ‘난 이제 살았다.’라고. 그녀는 처음에는 그 말의 의미를 몰랐고, 호스피스에 자리가 나서 그곳에 들어가기 전 조용환 씨에게 같이 교회에 예배드리자고 권유했대. 그는 승낙했고.”

“그 교회가 첫 번째 사건이 일어났던 그곳이겠군요.”

“맞아. 조용환 씨는 좀 더 있고 싶다면서 먼저 그녀를 집으로 보냈고 사건 발생 1시간 전에 집에 돌아갔다는데, 이건 정보부가 지금 그날 인근 CCTV 뜯고 있을 테니 나중에 확인해 보면 되겠지.”

끼이이익!

“아, 죽일 뻔했네.”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은 도유가 태연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무단 횡단을 하던 사람이 겁에 질려 털썩 주저앉는다.

그 일행으로 보이는 사람이 창문 앞으로 와서 고개를 여러 번 숙여 사과하는 모습에 도유는 얼른 가라는 듯 손짓했다.

다치지는 않았는지 둘이 나란히 고개를 숙이고 황급히 인도로 건너가자 도유는 다시 차를 몰았다.

“뒤따라오는 차도 없었고, 다친 사람도 없어서 다행… 청신아, 왜 그래?”

도리도리도리. 청신은 입을 손으로 막은 채로 열심히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청신은 평생에 멀미를 단 한 번도 해 본 적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멀미를 하는 상황에서 혼자만 안 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 어려운 걸, 도유가 해냈다.

게다가 차가 급히 멈춰 서는 순간 혀를 살짝 깨물고 만 청신은 생경한 고통에 눈물을 찔끔 흘렸다. 도유와 키스하다가 깨물렸으면 오히려 더 흥분했을 텐데, 이런 식으로 혀를 깨물게 되니까 아픈 것보다 서러웠다.

더 서러운 것은 청신이 고개를 젓자마자 관심을 끊어 버린 도유였다.

“괜찮으면 됐고. 그 첫 사건이 일어난 당일 저녁, 이서연 씨가 뒤늦게 교회 소식을 듣고 조용환 씨를 찾아갔다고 해. 그런데 당장 쓰러질 것처럼 안색이 좋지 않고 황달까지 왔던 조용환 씨가 건강했을 때처럼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는 거야. 심지어 못 먹었던 밥도 실컷 먹고, 큰 소리로 이야기도 하고.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놀라더래. 암이 사라졌다고.”

도유는 잠시 말을 멈추고 심호흡을 하며 긴장을 풀었다.

목적지와 가까워질수록 긴장으로 몸이 딱딱하게 굳었지만 첫 임무에다가 첫 현장 경험을 하게 되는 청신이 바로 곁에 있다. 자신이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기에 도유는 최대한 몸에서 힘을 뺐다.

무심코 청신 쪽을 다시 보게 된 도유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너 혹시 멀미해?”

도유가 놀라자 청신은 입을 막고 있던 손을 떼고 말했다.

“…지금은 혀를 깨물어서 그래요.”

“다행이네. 이 차, 팀장님이 외근 가실 때마다 애용하시는 차라 여기다 토하면 팀장님이 불쾌해하실 거거든.”

내심 도유가 ‘괜찮냐’, ‘내가 봐 줄게’ 하면서 제 혀를 만지작거리길 바랐던 청신의 녹색 눈이 침울하게 가라앉았다.

어떻게 이렇게 매정할 수가 있나. 상처받기도 잠시, 돌연 청신이 눈을 빛냈다.

곱씹을수록 은근히 짜릿하다.

이런 매정함도 은근히 사람을 자극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나중에 도유가 청신을 사랑하게 되었을 때, 똑같은 상황이 반복된다면 과연 이 사랑스러운 사람은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

상상만으로도 당장 도유를 덮치고 싶어졌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란 걸 알고 있기에 청신은 성숙하게 대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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