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청신의 완전한 실력은 알지 못했지만, 몇 날 며칠 밤을 지새우면서 청신의 마법을 뜯어보았던 사람이 도유였기에 그가 어지간한 상황에서는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 단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갑작스럽게 들어오는 특수부 임무는 목숨이 오가는 예측 불허의 상황의 연속인 경우가 많았다.
애초에 특수부의 제1팀에 들어오는 모든 임무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지만 말이다.
“아니야. 괜찮아. 일단 본부로 가자. 어떤 임무를 맡을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가르쳐 줄 수 있는 건 가르쳐 줄게.”
자꾸만 굳으려는 얼굴에 억지로 힘을 빼며 웃어 보인 도유는 아카데미를 나가기 위해 다시 너드 분장에 필요한 가발과 마스크, 안경을 착용하고 자세를 바꿨다.
“걱정 마세요, 도유 형. 저는 형이 뭘 상상하든 그것보단 훨씬 더 강하니까요.”
도유의 불안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확고한 어조로 청신이 말했다. 평소라면 무시했을 말이지만 지금은 달랐다. 도유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믿어.”
*
카단에 도착하자마자 짧은 인사만 나누고 성희유는 바로 브리핑을 시작했다.
“일단은 ‘미라화’ 사건이라고 해 두죠.”
그가 손에 쥔 리모콘을 조작했다. 한 벽면을 꽉 채웠던 사진이 그래프와 표로 바뀌었다. 도유의 눈이 가늘어졌다.
3개월 동안 발생한 총 3건의 사건에 대한 사망자는 도합 253명. 그중 가장 최근 발생한 사건은 바로 청신과 함께 공원에 갔을 때 겪었던 그 사건이었다.
“첫 번째 사건은 이 지역에서 일어났어요. 오전 8시경으로 추정, 교회 예배당에 있던 73명 전원이 사망, 현장 생존자 없음. 현장 발견자는 잠시 화장실에 다녀왔다는 장로였어요. 그 덕분에 사건 현상 발생 및 유지 시간 10분 이내로 추측할 수 있었죠.”
달칵. 다음 장으로 넘어가며 현장 사진이 여럿 떠올랐다. 시신의 모습들 또한 그대로 있었다. 의자에 앉은 채 죽은 사람, 바닥에 쓰러진 채 죽은 사람 등 죽음의 형태는 다양했다.
신성하고 아름다운 예배당 곳곳에 널브러져 있는 그을린 듯 검고 말라비틀어진 사람의 형상들은, 멀리서 보면 예술가가 전시해 놓은 조형물처럼 느껴질 정도로 비현실적이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저것들이 조형물 따위가 아니라 전부 살아 있었던 사람이라는 걸 알지 못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성희유는 계속해서 설명했다.
“두 번째 사건에서는 167명의 사망자가 나왔어요. A 건물에서 열린 강연에 참석했던 청중과 강연자 모두 사망하고, 현장을 발견하고 신고한 사람도 동일한 현상으로 사망하면서 1명이 더 늘어났거든요.”
두 번째 사건의 현장 사진으로 화면이 바뀌었다.
이곳의 사건은 더욱 비참했지만, 도유는 사진에서 눈을 떼지 않고 냉담하게 현장을 살피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검게 말라비틀어진 사람들의 시신이 출구 쪽에 몰려 있다.
“현장의 문이 잠겨 있었습니까?”
“네. CCTV에 찍힌 걸 봐 주시겠어요?”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으로 추정되는 동영상이 벽면에 재생되었다.
무대에서 마이크를 들고 강의를 하는 강연자와 의자에 앉아 저마다 필기를 하며 듣는 사람들의 모습은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이변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마이크를 들고 있던 강연자가 갑작스럽게 고통을 호소하더니 그대로 검게 말라비틀어지며 사망했다.
놀란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비명을 지르는 모습과 함께, 도저히 맨정신으로 보고 싶지 않은 장면이 이어졌다. 도유는 주먹을 꽉 쥔 채로 꿋꿋이 동영상을 응시했다.
사람들은 도저히 상식적으로 대응할 수 없는 상황에 겁을 먹고 강연장을 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문고리를 쥐고 흔들고, 발로 찼음에도 아무도 문을 열지 못했다.
뒤늦게 문으로는 나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창문으로 뛰어내리려고 했던 사람이 있었지만 창문으로 향하던 와중에 사망하고 말았다.
결국 아무도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그로부터 1분 뒤 문이 열리고 현장을 발견한 남성이 뒤로 넘어지는 게 보였다.
화면은 문밖의 남성이 있는 복도의 CCTV 화면으로 전환되었다.
핸드폰을 몇 번이나 놓치면서 신고를 하던 와중, 남성이 비명을 지르며 죽는 모습이 고스란히 재생되었다.
“…문은 왜 잠겨 있었던 겁니까?”
“현장에 남은 흔적으로 봤을 때 잠금 마법이 걸려 있었습니다. 문에 남은 마력의 흔적을 보니 잠금 아티팩트를 사용했더군요. 그 정도는 일반인도 돈만 있으면 충분히 구할 수 있는 데다, 공급량도 많아서 구매자를 찾기가 꽤 까다로워요.”
화면이 바뀌어 그간 수사했던 내용들로 바뀌었다. CCTV를 분석하여 아티팩트를 설치한, 범인으로 추정되는 이를 찾으려 했으나 끝내 찾지 못했다는 내용이 마지막 문단에 적혀 있었다.
“세 번째 사건은 도유 씨와 청신 씨가 겪은 그 사건인데, 기억하시죠?”
“…네.”
도유는 우울하게 대답했다. 화면은 그날의 현장 사진으로 바뀌었고 범인을 찾기 위해 카단에서 했던 조사의 결과를 띄워 냈다.
세 번째 사건 역시 범인으로 추정되는 이를 찾지 못했다.
“두 분 덕분에 이번 사건에 사용된 범법자의 마법이 어떤 원리인지 파악했고, 대비책도 준비해 둘 수 있게 되었지만 범인을 체포하지 않는 이상 사망자는 계속 생기겠죠.”
그의 말이 맞았다. 아무리 대비책이 있다 하더라도 사망자가 발생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게다가 사건은 주로 일반인이 모이는 곳에서 발생했다. 그림자처럼 빠르게 퍼져 나가는 마법에 도유는 입술을 깨물었다.
“도유 형.”
지금까지 잠자코 브리핑을 듣던 청신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도유는 제 손등 위에 손을 겹치는 손길에 고개를 돌렸다.
“…왜.”
짤막한 대답에 청신이 도유 쪽으로 상체를 기울이며 속삭였다.
“입술 한 번만 더 깨물면 키스해 버릴 거예요.”
누구 멋대로?
되물을 뻔했지만 청신이라면 정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행동으로 옮길 것 같아 도유는 냉큼 턱에 힘을 빼고 고개를 끄덕였다.
성희유가 그런 둘을 보며 상냥한 어조로 물었다.
“계속해도 될까요?”
“죄송합니다. 부탁드립니다.”
“네.”
고개까지 숙이는 도유와 다르게 청신은 무슨 일 있었냐는 듯 사근사근 웃으며 경청의 자세를 취했다.
“수사에 진전이 없던 중에, 오늘 반가운 소식이 들어왔어요.”
“범인에 대한 단서가 발견됐습니까?”
“비슷하네요. 범인을 알고 있다는 사람이 제 발로 카단에 찾아왔거든요.”
드문 상황이었지만 아예 없는 일은 아니다. 도유는 차분하게 가라앉은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카단에 직접 찾아와 진술을 하고, 성희유에게까지 전해졌다면 심증과 물증이 어느 정도 확실한 ‘진짜’ 증인이라는 뜻이다.
카단은 청취를 받을 때 증인의 동의하에 심문 마법을 사용한다. 오히려 범죄자를 심문할 때보다 더 세심하게 살피고 관찰한다.
증인의 말 한마디로 수사의 방향이 정해지고, 증인이 위증을 한 범인일 경우엔 사건이 영영 미제로 남게 될 수 있기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범인을 완전히 놓치게 되는 것도 심각한 일이었지만, 무고한 사람을 범인으로 잡을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자발적으로 찾아온 증인은 반가운 존재인 동시에 순수하게 반길 수 없는 존재였다.
“카단에서는 그녀의 증언을 받아들였고, 즉시 신변 보호와 함께 조사에 착수하기로 했어요. 지금 5층 조사실에 있으니 도유 씨와 청신 씨가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세요. 그 후 수사의 방향을 정해서 제게 말해 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도유는 성희유에게 인사를 한 뒤 청신을 데리고 회의실을 나갔다.
곧바로 5층으로 가기 위해 성큼성큼 걸어 나가던 도유가 돌연 몸을 돌려 청신을 보았다.
“도유 형?”
청신이 의아해하며 눈을 깜빡인다. 도유는 대답하지 않고 청신의 몸을 위아래로 훑었다.
평소처럼 눈에 띄는 화려한 미인의 얼굴. 녹색 눈은 에메랄드보다 더 다채롭고 투명하게 빛나서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게다가 옷을 입는 센스도 좋아서 청신은 꼭 잘나가는 연예인처럼 보였다.
도유는 속으로 혀를 찼다.
청신은 카단으로 오자마자 성희유에게 불려 온 탓에 아직 제복으로 갈아입지 못한 상태다.
운이 좋아 오늘 본부에 도착한 뒤로 마주친 사람은 없었지만, 5층으로 내려가면 청신을 보는 사람이 생길 것이다.
그럼 나중에 청신이 특수부에서 나갔을 때 그가 특수부의 ‘그’ 1팀에 있었다는 걸 자연히 기억하는 사람도 분명 존재하게 될 터였다.
도유는 확신했다.
객관적으로 보나 주관적으로 보나 이청신이라는 인간은 한 번만 봐도 도무지 잊을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런 청신이 일시적이라도 1팀에 소속되어 있었다는 건 둘째 치고, ‘그’ 서도유의 파트너라는 게 알려지면 청신의 명예에 금이 가게 된다.
도유는 생각을 마치고 당장 청신의 옷부터 갈아입히기로 결심했다. 제복은 맞춤 제작이지만 성희유의 성격을 보면 그의 제복은 이미 준비되었을 것이다.
“도유 형, 그렇게 귀엽게 빤히 쳐다보면 덮치고 싶어지는데요.”
탈의실에 먼저 가자고 입을 열기 직전, 청신이 웃으며 한 소름끼치는 말에 도유는 여느 때보다 빠르게 다시 몸을 돌렸다. 등 뒤에서 청신이 아쉬워하며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하고 제 할 말만 했다.
“옷 갈아입고 가자. 지금 이 시간이라면 탈의실에 아무도 없을 테니까 아무도 널 보지 못할 거야.”
“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