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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21)화 (21/159)

#21

*

오늘의 청신은 굉장히 기분이 좋아 보였다.

오죽했으면 꽃다발까지 사 왔을까. 꽃병까지 사다가 꽃을 꽂아 넣는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근사했다.

그와 반대로 도유는 홀로 소나기를 쫄딱 맞은 채 출근한 직장인처럼 암울하고 퀭했다.

어제, 청신을 집에 데려다주고 온 도유에게 성희유는 이렇게 말했다.

‘아카데미에는 계속 다니세요. 범법자를 찾지 못했잖아요.’

맞는 말이었다. 청신을 범법자로 오해했으니 이번에야말로 진짜 범법자를 낚아야 할 때였다.

이번에는 어떻게 낚아야 할까? 공들여서 만든 범법자용 미끼에는 엉뚱하게 청신이 낚여서 더는 사용할 수 없었다.

계속 너드인 척하면서 학생들에게 다른 방향으로 찔러봐야 할 텐데, 이번에는 어떤 방법을 사용해야 할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도유는 암담한 기분에 두 손을 들어 얼굴을 감쌌다. 울고 싶다.

그러나 울지 못했다. 직장인은 아이가 아니다. 그러니 울고 싶을 때마다 어른스럽게 통장이 대신 울게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도유에겐 대신 울어 줄 통장의 잔고가 없었다.

“왜 그래요, 도유 형?”

귀에 기분 좋게 감기는 미성과 함께 뒤에서 끌어안는 손길을 느낀 도유는 물고기처럼 펄떡이며 얼굴에서 손을 뗐다.

곧이어 바로 마주한 미인의 얼굴에 걱정이 한가득인 것을 보고 제 허리에 감긴 팔을 쳐 내려던 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도유 형, 울어요? 어떤 놈이 울렸어요?”

“너.”

청신에게 죄가 없다는 걸 알고, 전부 도유 자기 자신이 원흉이라는 걸 알았으나 입은 애꿎은 원망의 대상을 지목했다.

도유는 제가 바로 대답해 놓고 어른스럽지 못했다는 걸 자각하고 서둘러 정정했다.

“미안-.”

“정말 제가 형을 울렸어요?”

이 대답에 그렇다고 하면 어떤 대답이 돌아올까.

순수한 호기심이 일었다. 만약 ‘그렇다’라고 대답하면 청신이 이렇게 치근덕거리는 걸 그만둘까?

토요일로 넘어가던 새벽, 그 습격 사건이 있은 뒤로 이틀 만에 만났으나 청신은 마치 1년은 헤어져 있던 연인을 대하는 것처럼 도유를 대했다.

거머리처럼 딱 달라붙어 껴안고 만지작거리길 반복했다는 뜻이다.

“만약 네가 울렸다고 하면 어떻게 돼?”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도유의 솔직한 물음에 청신이 상냥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형을 울리지도 않았는데 울렸다고 하시는 거니까, 굉장히 억울할 테니 진짜 울게 만들려고요. 저기에서.”

저기, 라고 하며 청신이 가리킨 것은 연구실 구석에 있는 간이침대였다.

졸업 작품을 위해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고 연구실 지박령이 되는 가여운 학생들을 위해 준비된 침구를 보고 도유는 얌전히 자신의 생각을 철회했다.

“그냥 내 미래가 암담해서 우울해졌을 뿐이야. 네가 울리기는. 전혀 그렇지 않아.”

“아쉽네요.”

입맛까지 다시는 모습에 도유는 저지르기 전에 질문을 하길 잘했다고 스스로를 칭찬했다.

“그런데 왜 암담해요? 제가 있는데.”

“그, 일단 떨어져 주지 않을래? 청신아.”

“무슨 이유인지 알려 주면요. 혹시 저와 결혼하면 미래가 암담해져서 그런 거예요?”

“뭐? 무슨 개소리야?”

“은근히 입이 험한 것도 형 매력이에요.”

청신은 도유의 연갈색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방긋 웃었다.

마치 고양이 쓰다듬듯 조심스러운 손길로 도유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고 손가락으로 빗기도 하며 손장난을 치는 손길이 무척 간지럽게 느껴졌다.

도유는 벗어 두었던 너드 분장용의 검은색 가발을 다시 쓰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정말 청신은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이다.

‘왜 지 촉각 놀이를 남의 머리카락으로 하는 거지?’

따지고 싶었으나 청신은 도유에게 여러모로 갑이었으므로, 도유는 일단 얌전히 있었다.

무엇보다 자신을 만지는 손길이 그렇게 기분이 나쁘지 않았기에 내칠 생각이 크게 들지 않았다.

“도유 형, 제가 제 입으로 말하기엔 조금 그렇지만요. 제가 엄청 잘났잖아요. 봐요, 외모는 입 아프게 말할 필요도 없고 능력도 좋잖아요. 작은 의뢰 한 건만 처리해도 형 건물 두 채 사 줄 돈은 들어와요. 그리고 굳이 일을 받지 않아도 지금까지 모아 둔 돈도 많구요.”

조목조목 맞는 말이라 짜증이 날 틈도 없었다. 도유는 잠시 아득한 눈으로 월급 통장에서 내달 빠져나갈 돈을 떠올렸다. 도유의 월급날은 대체로 3일 천하가 아니라 3시간 천하였다.

“저와의 미래를 걱정하는 거라면 울 필요 없어요. 제가 도유 형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살게 해 드릴게요.”

“그게 아니야.”

“그럼요?”

도유는 잠시 고민했다. 청신에게 범법자에 대해 말해도 될까?

결론을 짓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청신은 도유 때문에 휘말렸다. 게다가 앞으로 특수부 1팀에 함께 근무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청신도 범법자와 관련된 사건에 얽히게 될 것이 뻔했다.

“카단에서 범법자라고 부르는 마법사가 있어. 혹시 알아?”

엊그제 송유원과 대화를 나눌 때 청신이 특수부의 사정을 알고 있던 것을 떠올리고 슬쩍 운을 띄우니 예상대로 청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어디까지나 조금만 알고 있을 뿐이니, 형이 자세히 말해 주세요. 오늘부터 파트너잖아요.”

“정확하게는 저녁부터야. 아직 너는 학생이고.”

아카데미에서의 일정이 끝나면 청신과 함께 본부로 가야 했다.

청신이 특수부 제1팀에 소속되는 행정적 절차가 요구되었기에 앞으로 그를 가르쳐야 할 도유가 함께 갈 필요가 있었다.

“그래도 말해 줄게. 어차피 저녁에 듣든, 지금 듣든 똑같으니까.”

도유는 그렇게 말하고는 범법자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범법자가 저지른 죄들 중, 굵직한 것들 위주로 골라 순서대로 말해 주고 그에 사용된 마법에 대해 제가 이해한 선까지만 말했다.

이번에 도유가 청신을 범법자라 확정지었던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 주자, 가벼웠던 청신의 표정이 점점 무겁게 변해 가는 게 보였다.

도유의 이야기가 끝난 뒤 청신은 굳은 얼굴로 한동안 말이 없었다.

생각에 잠긴 얼굴이었지만 워낙 심각한 얼굴이라 선뜻 말을 걸기가 어려워진 도유는 자연히 눈치를 보게 되었다.

“도유 형.”

“으응?”

청신이 도유를 놓았다. 떨떠름한 눈으로 청신을 보며 생각했다.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무게를 잡는 걸까? 짐작도 가지 않는다.

범법자가 두려워서 그런 거라면 이해는 하지만 딱히 두려워하는 기색은 없다. 청신이 물었다.

“도유 형이 특수부 1팀에 있게 된 계기가 범법자 때문이라고 한 게 맞나요?”

“아…? 응. 내가 범법자의 마법을 가장 처음 사용했으니까. 물론 공식적인 기록일 뿐이고, 비공식적인 건 몰라.”

마음 같아서는 자신이 범법자의 ‘피해자’라는 것을 청신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본부의 다른 사람들이 지금 도유를 대하듯, 청신이 자신을 혐오하게 될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을 해 보면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두려움에 떠밀려 미루고 미루다가 청신이 타인을 통해 알게 되느니, 그냥 제 입으로 말하는 게 나았다. 적어도 곡해되지는 않을 테니까.

청신은 입술을 깨물었다. 피가 맺히는 걸 보고 놀란 도유가 놀라서 다급하게 청신의 턱을 붙잡았다.

“야, 힘 빼. 피 나잖아!”

“몰랐어요….”

“어?”

“얼마나 슬펐을까.”

청신이 도유를 꽉 끌어안았다. 무엇이 슬펐냐고 되묻지 알아도 도유는 알아들었다.

범법자의 마법으로 인해 자신을 입양해 준 양부모를 한순간에 잃었고, 자의적으로 마법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도유는 사형수가 되었다.

청신은 그걸 알고 지금 이렇게 괴로워하고 슬퍼하고 있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유를 안쓰럽게 보면서도 거북해하거나 혐오했다.

이런 반응은 처음 겪어 본 도유는 잠시 당황했지만 청신이 말하는 ‘사랑’의 일부라는 것을 이해하고 그를 다독였다. 솔직히 그리 나쁜 기분이 아니었다.

“도유 형은 범법자를 죽이고 싶어요?”

다시 고개를 든 청신은 울고 있지는 않았지만 눈시울이 붉었다. 도유는 씁쓸하게 웃었다. 청신에게 대답하려던 때, 핸드폰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몸이 저절로 반응했다.

“청신아, 잠깐 실례할게.”

도유는 주머니에 넣어 놨던 핸드폰을 꺼냈다. 번호만 찍혀 있을 뿐이지만 성희유의 전화라는 걸 알았기에 곧장 받았다.

“네, 팀장님. 서도유입니다.”

[“도유 씨. 지금 청신 씨와 함께 본부로 오세요.”]

“바로 가면 됩니까?”

[“네. 청신 씨에게는 미안하지만, 첫 임무가 내려왔어요.”]

“첫 임무… 말입니까.”

무심코 청신을 보고 말았다. 아직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못했는데 이렇게 급하게 첫 임무라니. 특수부 제1팀에 신입이 그렇게 많던 건 아니었지만, 입사한 지 일주일도 채 안 돼서 임무에 투입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대답과 동시에 통화가 끊겼다. 도유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걱정스레 청신을 보았다.

“왜 이렇게 핥아 주고 싶게 쳐다봐요?”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거지만 핥지 마. 그리고 방금 들었어?”

“네. 이렇게 가까이 있으니 듣고 싶지 않아도 들을 수밖에 없네요.”

“그럼 가자.”

“표정이 좋지 않아요, 도유 형.”

차마 네가 걱정돼서 그렇다는 말은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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