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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20)화 (20/159)

#20

뜬구름 잡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도유는 청신의 말이 충분히 가능성이 있음을 알았기에 결국 고개를 숙였다.

성희유가 이번 일로 도유를 완전히 배제시키고 온전히 팀장인 자신의 잘못으로 돌리려는 것을 보고 이사진의 반응이 좋지 않다는 건 알았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나쁠 줄은 몰랐다.

특수부의 제1팀에 속한 팀원은 전원, 사형이 유예된 사형수였기에 아무리 실수라 하더라도 변론할 시간도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청신이 도유의 뺨을 감쌌다.

“그러니 도유 형, 걱정 마세요.”

감미롭게 웃는 미인의 얼굴을 보니 정말 말 그대로 아무 걱정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본능이 속삭였다. 온전히 청신에게 기대도 되는 건지. 좋지 않은 상황을 면하려다가 영영 벗어날 수 없는 늪에 발을 담그게 되는 일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밀려들었다.

아니, 걱정이 아니다.

이번에 청신의 힘으로 상황을 모면하는 것을 시작으로 서서히 그에게 의지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더 컸다.

“네가 어떻게 벌을 대신 받겠다는 건지 알고 싶구나.”

가만히 청신과 도유를 지켜보던 송유원이 말했다. 가면을 쓴 탓에 표정이 보이지 않았지만, 목소리를 통해 그녀가 굉장히 즐거워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청신이 웃으며 송유원을 보았다.

“제가 특수부 제1팀에 들어가죠.”

“뭐라고 했니?”

“뭐?”

“말 그대로예요. 카단의 제187조 2항에 의거하면 어머니가 걱정하시는 제 신원도 보호되고, 카단은 장래가 유망한 천재 마법사를 꼭두각시처럼 쓸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니 뭐라고 지껄이지 못하겠죠.”

제187조 제2항. 도유는 머릿속에서 멋대로 내용을 끄집어냈다.

재해에 준하는 심각한 범법을 저지른 이가 범법을 저질렀다는 심증이 명확하게 있으나 물증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 특정 기한 동안 용의자를 카단의 특수부에 소속시켜 감시 및 신변 보호를 하는 조항이었다.

즉, 용의자가 죄를 저질렀다는 물리적인 증거가 나올 때까지 카단에 소속시켜 놓고 굴려 먹는다는 뜻이었다.

“어머니도 이번 일로 제 신원이 카단의 임원들에게 드러나는 건 원치 않으시잖아요?”

만약 일반적으로 처리를 한다면 청신이 범법자가 아니라는 걸 알려 주기 위해 필시 그가 송유원의 아들임을 밝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청신이 말한 대로 처리한다면, 임원들에게도 청신의 진짜 신원을 비밀리에 붙일 수 있었다.

그녀는 한참 동안 생각에 잠긴 듯 말이 없다가 물었다.

“그래도 괜찮겠니.”

“네. 당연하죠.”

“…그래. 네 말대로 하자꾸나.”

“고맙습니다, 어머니.”

*

“무슨 속셈이야?”

도유의 질문에 조수석에 앉아 창밖을 보던 청신이 고개를 돌렸다.

“속셈이요?”

“1팀에 들어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몰라?”

“잘 알죠, 도유 형. 제가 협회장 아들인데요.”

“그래 놓고 1팀을 지목해? 지금이라도 다른 팀에 가겠다고 해. 네 실력이라면 다들 뭐라고 안 할 거야.”

도유는 청신이 걱정스러웠다. 아직 젊고 어린, 본인의 말마따나 장래가 유망한 천재 마법사다.

아무리 신변이 보호되고 임원들이 알아낼 수 있는 정보가 한정적이라고는 하지만, 얼굴이나 목소리를 보면 나중에 봤을 때 금방 알아볼 것이다.

청신은 보기 드문 미인이었고, 그 얼굴만큼이나 목소리도 잊기 힘든 미성이었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도유 형이 저를 걱정해 주는 건 짜릿할 정도로 기쁘지만, 저는 1팀이 좋아요. 더 자세히 말하자면 도유 형 옆이요.”

“이청신. 농담 말고….”

“농담이라고요?”

청신이 도유 쪽으로 몸을 확 기울였다. 도유는 안전벨트를 매던 손을 멈췄다. 가까이 다가온 청신의 녹색 눈에 도드라진 안광에, 마치 사로잡힌 토끼처럼 놀라 굳었다.

도유는 제 턱을 쥐는 청신의 힘에 저항하지 못했다. 그대로 끌려갔다. 입술이 스치듯 닿았다가 떨어졌다.

“제가 말했잖아요, 도유 형. 사랑한다고. 몇 시간도 안 지난 것 같은데 벌써 잊었어요?”

“아니, 기, 기억은, 하고 있지만….”

“잊지 않았으면 됐어요.”

청신이 다시 제자리에 앉았다. 도유는 조수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는 청신을 멍하니 보았다.

“그래도 이해가 어려워….”

도유는 자신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지금까지 많은 사건을 처리하며 ‘사랑’ 때문에 벌어진 온갖 희극과 비극을 제삼자의 입장에서 본 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그 경험은 결국 자신의 경험이 아니다. 도유는 ‘사랑’ 때문에 제 발로 타 부서 사람들이 혐오하는 자신의 팀에 들어오려는 청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용케 도유의 목소리를 들은 청신은 마치 연인의 새로운 귀여운 모습을 본 사람처럼 웃었다.

“제가 1팀에 들어가면 도유 형이랑 오래 붙어 있을 수 있겠죠?”

“그렇긴 하지….”

협회장실을 나오기 전, 송유원은 도유를 붙잡더니 청신을 잘 부탁한다고 말했다. 그 말뜻은 너무나 분명했다. 청신이 1팀에 들어오면 그의 파트너는 도유로 확정이라는 뜻이다.

특수부는 원래 개인 위주로 활동하는 팀이지만 큰 임무나 신입이 들어올 경우에는 2인 1조로 활동하는 게 규칙이었다.

특히 신입의 경우에는 임무가 아닐 때도 교육할 것이 많아 거의 하루 종일 붙어 있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저는 특수부에 있는 동안 도유 형을 유혹할 거예요.”

당당한 말에 도유는 반사적으로 질색했다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대놓고 그런 소리를 하면, 내가 네게 넘어갈 것 같아?”

“네.”

“…….”

조금이라도 망설였다면 얄미워 보이진 않았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보니 제가 청신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는 기분이 들었다.

“저는 도유 형의 욕망이 뭔지 알고 있거든요.”

“내 욕망?”

갑자기 무슨 욕망 타령일까. 청신은 도유의 푸른 눈에 시선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입가에 스미듯 떠오른 가벼운 미소가 차창 너머로 스미는 새벽빛처럼 눈부시게 보였다.

“형, 그거 알아요? 유혹이라는 것은 대상이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 욕망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어요. 유혹하는 사람이 그 ‘욕망’을 대신 채워 주고, 대상이 바라는 욕망이 뭔지 깨닫지 못하게 만드는 거죠.”

도유는 입을 꾹 다물었다.

청신은 노래하듯 맑고 또렷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왜냐면 그 대상은 자기가 바라는 욕망이 뭔지 모르지만 유혹하는 사람을 통해서 채우게 되니까 점점 더 바라고, 의지하다가 끝끝내 스스로에 대한 통제력을 잃게 되는 거거든요.”

청신의 말대로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가 인지하지 못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고, 그걸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충족하게 되면 그것을 충족시켜 준 것에 매달린다.

마약 중독자들이 대표적인 예시다. 도유는 청신의 말을 이해했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잠시 곱씹다가, 눈살을 찌푸리며 청신을 불렀다.

“야.”

“네, 도유 형.”

“그걸 나한테 미리 알려 주면 어떡해?”

청신의 손바닥에서 놀아날 생각은 없었지만 당당하게 선언을 하니 따지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도유가 반드시 청신을 사랑하게 될 것임을 확신하는 어조가 아닌가? 건방지다면 건방졌지만, 도유는 이런 게 청신답다고 생각하면서도 따질 수밖에 없었다.

도유의 말이 의외였는지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던 청신이 웃음을 터트렸다.

“걱정 마세요. 도유 형은 평생 자기 욕망이 뭔지 모를 테니까. 제가 알게 하지 않을 거거든요.”

평생.

도유는 그 단어를 곱씹었다. 단 한 번도 타인에게서 들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단어였다. 그렇기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바로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런 도유를 이해한다는 듯 청신이 다시금 고개를 숙여 그의 입술에 입을 맞추려고 했다.

조금 전에는 얼결에 당했지만 이번에는 정신을 차린 도유는 고개를 휙 돌리는 것으로 입술을 피해 냈다. 미인의 얼굴에 노골적인 아쉬움이 떠오른다.

“이청신.”

“네?”

“너 정말, 가끔씩 나한테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욕하는 거 같은데 내 착각인가?”

“제가 왜 사랑스러운 도유 형을 욕해요? 많이많이 사랑해요, 도유 형.”

“조용히 해. 출발할 거니까 안전벨트나 매.”

“네, 알겠어요.”

시키는 대로 안전벨트를 매자 기다렸다는 듯 도유가 바로 출발했다. 청신은 운전에 집중하기 시작한 도유의 옆얼굴을 보았다.

도유는 최선을 다해 무표정을 짓고 있지만 자세히 보면 뺨도, 귀도 탐스럽게 익은 석류처럼 붉어져 있다.

마음 같아서는 도유의 붉어진 귀를 만지작거리고, 핥아 주며 반응을 즐기다가 붉은빛이 도는 입술을 삼키고 농락해 주고 싶었다.

그러나 청신은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다. 도유가 애정을 받고 나누는 것에 익숙지 않은 사람이란 걸 알았기에 더더욱 자신의 욕망대로 행동하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처음부터 단계를 밟으며 하나씩 알려 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는 충동으로 움찔거리는 손을 얌전히 무릎 위에 올려놓고 주먹을 쥐었다.

만약 도유가 이런 청신의 생각을 알았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급습했을 때 옷부터 벗겨서 덮치려고 했던 놈이 잘도 단계 운운하네.’

그러나 도유는 청신이 지금 한 생각을 평생 알지 못할 테니, 청신으로서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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