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도유의 손에 의해 입이 막힌 청신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제 입을 막은 도유의 손등을 제 손으로 겹쳐 쥐었다.
뭘 하려나 싶어서 청신을 보던 도유는 손바닥을 핥는 감촉에 기겁하며 손을 빼내려고 했지만 청신에게 손이 잡힌 터라 실패하고 말았다.
“놓으십시오!”
청신이 노골적으로 아쉬운 티를 내며 도유의 손을 놓아 주었다.
“더 핥고 싶었는데요. 이왕이면 다른 곳도.”
“팀장님, 출발해도 되겠습니까?”
무시가 답이라는 걸 깨달은 도유가 제복에 손바닥을 슥슥 닦았다.
성희유는 흥미진진한 눈으로 둘을 번갈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출발해도 된다는 허락에 도유는 냉큼 운전대를 잡고 차를 출발시켰다.
“선배는 운전하는 모습도 예쁘네요.”
“…….”
“하아, 이렇게 보니까 머리카락이 방에서 봤던 것보다 색이 옅네요. 입 안에 넣으면 녹아내릴 것 같아요.”
“…….”
“혹시 평소에 렌즈 꼈던 거예요?”
“…끼지 않았습니다. 제 원래의 눈 색 그대로입니다.”
중얼거리는 말은 무시로 일관했지만 질문에는 어쩔 수 없었다.
협회장의 호출을 받은 현 상황에서 괜히 협회장 아들의 심기를 이 이상 나쁘게 만들었다간 말 그대로 목이 날아갈 수 있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청신이 감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따라 유난히 예뻐 보여서 물어봤던 건데. 이제 보니 선배가 그냥 더 예뻐진 거였나 봐요.”
“감…. 감사…? 합니다.”
도유는 청신이 이제 입을 다물어 주기를 바랐다.
백미러 너머로 성희유가 무슨 흥미진진한 코미디 영화를 보는 것 같은 표정으로 자신을 주시하고 있었기에 더욱 민망했다.
차라리 성희유가 끼어들어 청신과 대화를 나눴으면 좋겠다고 바랐지만 성희유는 입을 꾹 다물고 관망할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제 더는 선배라고 부르면 안 되겠네요. ‘저 때문에’ 허탕을 치게 됐으니 아카데미는 그만둘 것 아니에요?”
“아카데미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청신 님 때문에 허탕을 친 것이 아닙니다. 제가 부족해서 실수한 것뿐이며, 이청신 님의…. 그, 마음을, 모르고 그런 것이니……. 이청신 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럼 도유 형이라고 불러도 돼요?”
“네, 네. 편하신 대로 불러 주십시오.”
권력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는 직장인이었기에 도유는 비굴해질 수밖에 없었다.
“제가 편한 대로 불러도 된다면 ‘자기야’라고 해도 돼요?”
“…그건 곤란합니다.”
당당한 헛소리에 청신의 페이스에 휘말려 콩닥콩닥 뛰던 심장의 고동과 손의 떨림마저 멎었다. 평정을 되찾은 도유는 싸늘한 눈으로 앞을 노려봤다.
“아쉽네요. 그런데 도유 형. 아까부터 ‘씨’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더니 ‘님’이라고 하시는데. 이것도 똑같아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한 번만 더 ‘씨’, ‘님’ 같은 존칭을 붙이면 당장 눕혀 놓고-.”
“알겠습니다! 그럼 뭐라고 부르면 됩니까?”
“평소처럼 청신아, 라고 부르면 돼요. 그리고 존댓말도 하지 마세요. 굉장히 흥분되거든요.”
“응, 알았어. 청신아.”
곧바로 되돌아온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청신이 흡족하게 웃었다. 도유는 제가 대답하자마자 성희유가 웃음을 터트리는 걸 들었지만 무시했다.
어쩔 수 없었다. 그동안 관찰한 이청신이라는 인간은 정말 한다면 하는 인간이었으니까.
*
도유는 협회장을 만날 기회가 없었다. 시무식이나 종무식을 할 때만 봤다.
다른 부서였다면 이사회 같은 협회의 임원들이 모이는 자리에 호위를 위해 투입되며 봤을 테지만, 특수부 제1팀은 그런 자리에 투입되는 팀이 아니었다.
만약 투입되었다 하더라도 청신의 집에서 잠깐 사진을 본 것만으로는 떠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협회장은 가면으로 늘 얼굴을 가리고 다녔다.
이유는 아무도 몰랐다. 누군가는 그녀의 얼굴에 커다란 흉터가 있어서라고 했지만 어린 시절 본부에 처음 왔을 때 그녀의 얼굴을 본 도유는 그녀의 얼굴에 아무런 흉터도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서도유 씨와 이렇게 보는 건 오랜만이군요.”
“안녕하십니까.”
도유는 고개를 푹 숙였다. 여전히 가면을 쓴 그녀는 깊은 새벽인데도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도유와 청신을 맞이했다.
성희유도 함께 왔다면 그의 행동을 보고 적당한 선에서 예의를 차릴 수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이 자리에 도유와 함께 있는 건 청신이었다.
청신은 협회장 송유원에게 고개만 작게 숙였다 들었을 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모자간 다정한 인사를 나누는 걸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도유는 애교가 많은 청신의 성격상 제 모친에게도 비슷하게 굴지 않을까 내심 생각했기에 조금 놀랐다.
“이리로 와서 앉아요.”
송유원의 권유에 따라 긴 소파에 앉으니 기다렸다는 듯이 청신이 도유의 옆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도유는 청신에게서 떨어지려고 했다. 그러나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송유원이 미리 준비해 뒀을 차를 따르려는 걸 보고 황급히 입을 열었다.
“협회장님, 제가 하겠습니다.”
“괜찮습니다. 내가 해도 되는 일이에요.”
도유는 그러지 마시라고 말하고 싶었다. 사장이 직접 따라 준 차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 마실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청신이 도유를 물끄러미 보더니 손을 움직였다.
“어머니는 이런 사소한 일에 마법을 쓰지 말라고 가르치셨지만.”
청신의 말과 함께, 비어 있던 세 사람의 찻잔에 찻물이 저절로 차올랐다.
“도유 형이 부담스러워하니까 제가 따르죠.”
적당히 찻물이 차오르자 찻잔이 스스로 움직여 세 사람의 앞에 각각 놓였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움직인 것처럼 느껴졌다. 도유는 속으로 경악했다.
청신이 뛰어난 마법사라는 건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러나 이렇게 순수하게 마력만 움직여 이런 이상을 일으키는 일은 굉장히 섬세한 컨트롤과 오래된 경험이 필요했다.
아무리 천재 마법사라 해도 하기 힘든 것인데, 그걸 청신이 힘든 기색도 없이 해낸 것이다.
“청신아.”
“네, 어머니.”
“난 너를 부르지 않았단다.”
“네, 압니다. 전 도유 형이 있어서 온 것뿐이니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쫓아내기 전에 나가렴.”
“어머니께서 도유 형의 ‘실수’를 불문에 붙이겠다면, 얼마든지 나가 드리죠.”
“그 이야긴 성희유 팀장을 통해 듣지 않았니? 서도유 씨에게 벌을 내리지 않을 거라고.”
“특수부 전체를 말하는 겁니다, 어머니.”
짧은 침묵이 흘렀다. 도유는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와중에 청신이 저를 감싸 주려는 것이 고마웠다.
성희유는 도유에게 팀장인 자신의 잘못된 판단과 정보 부족으로 이번 일이 일어났음을 인정하고 자신이 벌을 받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그 말에 도유는 마음을 편히 가질 수 없었다. 특수부의 팀장에게 주어질 벌은 물론, 이번 일로 다른 특수부의 팀들과 관련하여 상부에서 압박이 있을 테니 말이다.
특수부라는 건 카단 내에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고, 제1팀은 그중 터지기 직전이라 취급받는 팀이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언제나 눈엣가시처럼 제1팀을 치우고 싶어 했던 사람들이 온갖 트집을 잡으며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어느 쪽이든 암담하지만, 적어도 성희유와 팀원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방향을 고심하며 도유가 끙끙 앓기 시작할 때, 청신이 다시 말을 이었다.
“전 이번 일은 어머니께서 저를 보호하기 위해 은폐한 정보 및 정보 조작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저도 잘못이 있긴 하죠. 제가 조금만이라도 덜 잘생겼거나 멍청했거나 부족했다면 도유 형이 저를 의심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
도유는 저도 모르게 청신을 흘끗 보고 말았다.
맞는 말이긴 한데 청신이 제 입으로 말하니 맹숭맹숭한 기분이다. 와중에 송유원은 고개를 끄덕여 긍정을 표했다.
“인정하마. 네 말이 맞긴 하단다. 네가 조금이라도 모자랐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테니.”
“그렇죠? 그러니 이번 일은 비밀리에 붙여 주세요. 어차피 이번에 차출된 이들이 모두 특수부 제1팀의 인원이라고 들었습니다. 소모된 아티팩트야, 기록 조작은 은하 형에게 시키면 되니까요.”
송유원은 생각에 잠긴 듯 잠시 말이 없었다. 그녀는 이윽고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완전히 은폐하는 건 안 된단다. 네 말대로 하는 건 카단의 규정에 어긋나.”
“그럼 특수부에 내려질 벌은 제가 받겠습니다.”
“뭐?”
되물은 건 도유였다. 청신이 안심하라는 듯 웃으며 도유의 손을 꼭 쥐어 왔다. 도유는 그 손을 떨쳐 낼 생각도 못 했다.
“내가 한 실수를 왜 네가 뒤집어써? 그냥 내가 실수했고 잘못한 거야. 협회장님, 이번 일은 제가 대상을 오해하면서 생긴 일입니다. 벌은 제게 주십시오.”
“도유 형.”
붙잡힌 손이 저릿했다. 힘이 들어간 손을 보던 도유는 고개를 돌려 청신을 보았다. 청신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제가 특수부 제1팀의 일개 팀원이 ‘혼자’ 벌을 받는다는 말이 뭔지 모를 정도로 카단에 무관심해 보여요?”
“아니, 난 그저-.”
“최근에 이사진들이 특수부 중에 특히 1팀을 없애려고 텅 빈 머리 굴리고 있는 것, 알고 있어요? 그런 상황에서 협회장 아들인 저를 범인으로 단정하고 습격했다는 게 알려지고 그 책임을 도유 형이 다 지게 되면, 도유 형은 특수부에서 잘리고 곧바로 사형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