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16)화 (16/159)

#16

“그렇죠. 다 도유 씨처럼 운이 좋은 건 아니니까요.”

“……네. 그러니, 더는 늘어나지 않았으면 합니다.”

도유는 과거에 범법자에게 마법을 받아 수많은 사상 사고를 낸 ‘피해자’였다.

카단에서 파악하기로 범법자가 최초로 존재를 드러낸 사건의 범인이기도 했다.

12살의 도유는 범법자로부터 마법을 받았다. 그리고 그 마법을 사용해서 자신을 입양해 준 양부모를 사망케 했으며, 십수 명의 무고한 사람들을 휘말리게 하여 크게 다치게 했다.

어떻게 보면 범법자가 준 마법의 피해로는 가장 적은 규모의 피해였지만 이 나라의 법률은 어떤 인과 관계가 있던, 자의적으로 금지된 마법을 ‘사용’한 도유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사형수가 된 도유를 구한 것이 바로 성희유였다. 그렇기에 그는 굳은 결심으로 단단하게 빛나는 도유의 푸른 눈을 보며 흡족하게 웃었다.

“좋아요, 그런 각오라면. 기꺼이 바라는 대로 해 드려야죠.”

“정말입니까?”

도유는 순수하게 놀랐다. 성희유의 성격상 상부의 지령이 있고 더 명확한 근거가 있을 때까지 기다릴 줄 알았다.

“이렇게 된 것, 고집 센 꼬마에게 빚 하나 지게 만들죠.”

“제가, 그렇게 고집이 강했습니까…?”

“글쎄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성희유가 도유를 팀장실에서 내보냈다.

그리고 그날 새벽, 청신의 집을 급습하기 위해 특수부 제1팀이 투입되는 것이 확정되었다.

*

새벽 2시. 대부분의 사람이 잠드는 야심한 시각.

카단의 검은 제복을 입은 이들이 청신의 집을 에워쌌다.

범법자의 마법 실력과 그의 집을 감싼 결계를 사전에 알고 있었기에 마법사인 팀원들은 장거리에서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에 반해, 마나 감응력이 높은 도유와 마법사지만 힘이 약한 팀원 두 명이 도유를 보조하는 형식으로 함께 집 내부에 침입하기로 결정되었다.

도유는 예전에 이 집에 왔을 때 봐 뒀던 주차장을 통해서 조심스럽게 집 안으로 들어갔다.

유일하게 결계 마법은 물론이고 침투에 따른 탐지 마법도 설치되어 있지 않은 계단과 복도를 도유가 선두로 올라갔다.

도유는 지금 저와, 제 뒤를 따르는 팀원들의 기척과 기운을 모조리 지워 주는 특별 제작 아티팩트가 아직 유효함을 확인하며 거실로 들어섰다.

새벽 2시라 그런지 거실에는 불이 꺼져 있었다. 도유는 팀원들과 눈짓을 주고받았다. 한 명이 제복 주머니에서 구슬 형태의 아티팩트를 꺼내 발동시키고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쪽으로 살며시 굴렸다.

소리도 없이 계단 아래에 부딪힌 구슬이 작은 빛을 냄과 동시에, 계단에 쳐져 있던 결계가 미약하게 흔들렸다. 곧이어 결계의 마력이 흐트러지는 것을 느끼자마자 도유가 손짓했다. 그러자 대기하고 있던 다른 팀원이 두 번째 아티팩트를 발동시켰다.

-좋아요. 들어가요.

성희유의 허락과 동시에 도유를 비롯한 팀원들이 계단 위를 뛰어올라 갔다. 소리는 울리지 않았다. 2층으로 올라간 도유는 청신의 침실로 향했다. 전에 청신의 집에 왔을 때 그가 말해 줬기에 바로 올 수 있었다.

도유는 자신을 뒤쫓아 온 팀원 둘에게 여기 대기하라는 손짓을 보내고 그대로 아티팩트로 문을 없앴다. 순식간에 문이 모래처럼 입자 단위의 알갱이로 변하여 허물어졌다.

문이 강제로 개방되자 도유는 곧장 침실 안으로 쳐들어갔다. 그리고 놀라서 저도 모르게 멈칫했다.

활짝 열린 창문, 그 아래 침대에 나신으로 잠들어 있는 청신의 모습이 달빛에 훤히 보였다.

청신은 자신의 집의 침입자를 전혀 느끼지 못한 듯, 곤히 잠든 얼굴로 깊이 잠든 사람들 특유의 호흡까지 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도유는 마치 성역에 발을 디딘 듯한 배덕감을 느끼고 멈칫했다.

-쯧.

그때 도유의 귀에 걸린 통신용 아티팩트에서 성희유가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정신을 차린 도유는 지금이 기회라는 걸 깨닫고 마법사 구속용 도구를 꺼내 들어 무방비한 이청신의 몸을 제압하려고 했다.

턱.

“……!!”

갑자기 눈을 뜬 청신이 제게 내밀어진 도유의 손을 꽉 잡고 끌어당기지 않았더라면, 필시 제압에 성공했을 것이다.

도유는 지금까지 겪어 본 적 없던 강한 힘에 끌려가면서도 아티팩트를 발동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마력이 흐르는 것을 감지함과 동시에 틱, 하는 소리와 함께 아티팩트가 망가졌다.

“너…!”

그러는 사이 도유는 반강제로 청신의 배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차하면 청신의 목을 졸라 제압하면 될 테니까.

도유가 두 번째 수단으로 청신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비어 있던 손을 움직였으나 그 손마저도 청신이 강하게 틀어쥔 것으로 무력화시켰다.

“선배.”

졸음기라고는 조금도 없는 녹색 눈이 달빛 아래 유독 형형하게 빛났다.

청신이 제 위에 강제로 올라탄 도유를 당장 삼킬 것처럼 그윽한 눈으로 올려다보며 입술을 핥았다. 그 모습에 소름이 끼친 도유가 숨을 삼키는 사이, 청신이 말했다.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그렇죠. 제 집에 침입하고, 이렇게 침실까지 쳐들어와서 덮치면 어떡해요?”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지? 잘 들어, 너는 카단에서-.”

“제가 평소에 선배에게는 토끼처럼 사랑스럽지만, 침대에서는 짐승이 되는 걸 몰랐나 봐요.”

동시에 시야가 뒤집혔다.

도유는 숨을 크게 삼켰다. 어떻게 이렇게 된 건지도 몰랐다.

눈을 깜빡였더니 위아래가 바뀌어 있었다. 도유는 어느새 자신이 침대에 누워 있고, 제 위에 청신이 올라탔음을 깨닫고 몸을 바르작거렸다. 그가 붙들고 있던 도유의 손을 쓸었다. 그러자 손이 침대에 딱 붙은 것처럼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다리로 청신을 걷어차려고 하는 시도도 똑같이 무력화되었다. 도유는 눈을 번뜩이는 청신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어째서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팀원이 안 들어오는 걸까?

1차로 자신이 청신을 제압하고, 실패하든 성공하든 팀원은 도유의 보조를 해야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조용했다.

심지어 바깥에서 이 상황을 주시하고 있을 같은 특수부 마법사들의 지원도 없었다.

“이게, 무슨….”

이상했다. 정말 이상했다. 혼란스러워하는 도유의 모습을 보면서 청신이 웃었다.

“선배, 제복 입고 하는 플레이 좋아해요? 저도 이런 단정한 차림을 흐트러뜨리고 제 걸로 잔뜩 더럽히는 플레이는 제법 구미가 당겨요. 그런데 우리 일단은 첫날이니까 그냥 평범하게 하죠. 그리고 다음에는 마법사 협회 제복 말고 다른 거 입고 해요. 여기 제복은 코스튬 플레이 하면 제재 먹거든.”

그렇게 말한 청신이 빠르게 도유의 제복을 벗기기 시작했다.

그가 도유의 코와 입을 가리고 있던 복면을 아래로 끌어 내렸다.

“아. 역시. 선배는 안경 안 쓴 게 더 멋있어요. 앞으로는 쓰지 마세요.”

이윽고 청신의 손은 물장난 치는 아이처럼 턱을, 목선을 손으로 길게 훑으며 제복의 넥타이부터 조끼, 그리고 제복 셔츠의 단추까지 풀어 내렸다.

와중에 도유를 다른 손으로 은근히 자극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농밀한 손길에 도유는 청신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고 다급하게 외쳤다.

“난 너랑 자려고 온 게 아니야!!”

“그렇겠죠. 무방비하게 자고 있던 저를 덮치러 왔잖아요. 기다려요, 선배, 제가 먼저 덮칠 테니 그다음에 천천히 덮쳐 주세요.”

이 무슨 신박한 개소리인가. 순간 상황도 잊고 혈압이 오른 도유가 소리쳤다.

“아니, 망할, 미친놈아 손 떼! 난 널 범법자로 체포하러 온 거라고!”

도유의 외침에 청신은 상냥하게 웃으며 물었다.

“그런 설정인가요?”

“내 제복 주머니 봐, 망할 놈아.”

“일단 벗기고 볼게요. 아, 선배. 너무 귀여워. 깨물어서 한입에 삼키고 싶어요.”

“만, 만지지 마!”

“부끄럼 타지 마세요. 제 것도 얼마든지 보세요. 물고 빨아도 돼요. 근데 일단 제가 선배 것부터 음미하고요.”

사람의 눈이 이성을 잃은 것을, 도유는 바로 코앞에서 목격했다.

청신의 녹색 눈이 형형하게 번뜩이며 남은 단추를 거칠게 뜯어냈다. 상체가 드러나자 청신이 도유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바지의 벨트를 잡았다.

와중에 벨트에 숨긴 아티팩트를 눈치챘는지, 또다시 틱 하는 소리와 함께 아티팩트가 고장나는 것이 느껴졌다. 아티팩트가 우연히 고장난 게 아니라 이 녀석이 했다는 걸 알아차린 도유는 정말 빼도 박도 못하게 됐다는 걸 깨닫고 외쳤다.

“하지 마, 이청신! 이 미친놈아!”

“괜찮아요. 첫날이니 안 아프게 할게요.”

정말 끝까지 갈 기세다. 이대로라면 죽는 게 아니라 정말 홀라당 먹히고 말 것이라는 걸 깨달은 도유가 지금까지 숨겨 왔던 비장의 수단을 꺼내 들려던 순간이었다.

“이런.”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한쪽 귀에 낀 아티팩트를 통한 음성이 아닌, 분명한 육성임을 알아차린 도유가 소리가 들려온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문가에 성희유가 서 있었다. 그의 뒤에는 도유를 지원해 주지 않은 모진 팀원 두 명이 무장을 푼 상태로 눈을 휘둥그레 뜨고 이쪽을 보고 있었다.

“도유 씨를 말리러 온 것뿐인데, 제가 방해했나 보군요.”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팀장님? 아니, 그 전에 저 좀 구해 주, 야! 만지지 마!”

사람들이 저렇게 뻔히 쳐다보고 있는데 착실하게 손을 움직이는 청신을 향해 소리치자, 청신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