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청신 님.”
“왔어요?”
내내 집 주변에 숨어 있던 남자, 산은하가 모습을 드러냈다.
은하는 기분이 좋아 보이는 청신을 보며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가 제 상사에 대한 예의가 아니란 걸 자각하고 표정을 갈무리했다.
“예.”
“평소의 용건이라면 내가 할 거니까 은하 형이 안 해도 된다고 이미 말했는데.”
웃고 있지만 저게 진심이 아니라는 건 은하가 누구보다도 더 잘 알았다. 그는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말했다.
“최근에 청신 님에 대해 조사하는 인간이 있습니다. 아직 누군지 특정하지 못했지만 주의하십시오.”
“그래 봤자 또 스토커겠죠. 그리고 상관없어요. 어차피 기록으로 남긴 것들은 통제되지 않아도 되는 정보니까.”
“압니다. 다만 곤란한 일에 휘말리시게 될 예감이 들어서 걱정됩니다.”
“음, 글쎄요. 현재 나를 곤란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딱 한 사람뿐이라.”
은하는 청신이 말하는 이가 누군지 알았다. 방금 전에 청신의 집을 떠난 아카데미의 선배, 서도유였다.
청신으로부터 서도유에 대해 조사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기에 그에 대해 조사하진 않았지만 은하는 어딘가 그가 석연찮게 느껴져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의 공간에 타인이 들어오는 것을 극도로 혐오하고 거북해하는 청신이 스스로 집 안까지 들인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다. 서도유는 어딘가 위화감이 있었다.
몇 번 목격했던 도유는 겁 많고 긴장해있는 것처럼 몸을 움츠리고 다니면서 시선을 똑바로 맞추지 못하는 소심한 학생이었지만, 맨날 입고 다니는 품이 큰 체크 남방 아래로 보이는 몸은 분명 단련된 이의 것이었다.
특히 공원에서 일어났던 참극 때, 먼발치에서 청신과 도유를 보고 있던 은하는 도유가 혼비백산한 사람들 틈에서 냉정하게 상황을 살피는 모습을 전부 보았기에 더더욱 도유의 존재에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부터라도 서도유라는 인간의 모든 것에 대해 조사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청신이 제 목을 비틀어 버릴 걸 알기에 그만뒀다.
“지금 몇 시죠?”
“8시입니다.”
“이런. 문 닫겠네. 지금 가야겠어요.”
청신은 뭐가 재밌는지 작게 웃으며 말하고는, 은하에게 ‘다음에 봐요.’라는 말만 남기고 집을 나섰다.
은하가 뒤에서 제게 고개를 숙이는 걸 느꼈지만 청신은 뒤돌지 않고 도유가 먼저 걸어갔던 길을 느긋하게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청신이 도착한 곳은 그의 집과 20분 거리의 석영역 사거리에 위치한 대형 서점이었다. 청신은 문에 손을 대지 않고 마법으로 문을 밀어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열렸지만 그 앞에 서 있던 직원들 누구도 청신을 보지 못한 것처럼 제 할 일만 했다. 직원뿐만이 아니었다.
서점 내에 있는 사람들 그 누구도, 청신과 눈이 마주치거나 그를 보지 않았다. 마치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이것이 그의 마법 중 하나였다. 육안으로도 존재를 인식할 수 없으며, 사방에 달린 CCTV 또한 그의 모습을 담을 수 없게 하는 투과 마법.
청신은 도유와 다니지 않을 때 이 마법을 사용하고 다니며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신을 가렸다. 거의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목적지가 분명한 걸음이 멈춘 곳은 ‘의뢰인’이 지정한 코너의 서가 앞이었다.
청신은 책 한 권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훑어보는 척, 소매에서 꺼낸 얇은 종이를 책갈피처럼 끼워 넣었다.
“부디 미끼를 물어 주세요, 선배.”
그렇게 중얼거린 그는 다시 책을 원래의 자리에 내려놓고 유유히 서점을 빠져나갔다.
청신이 자리를 떠난 지 얼마나 됐을까.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젊은 남성 한 명이 서가 사이를 훑으며 서가 앞에 멈춰 섰다. 긴장 어린 남자의 눈이 서가의 책들을 훑는다.
이윽고 남자는 떨리는 손으로 책 한 권을 들고 훑어보듯 넘겼다.
그의 손이 어느 한 부분에서 멈췄다. 남자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그대로 책 틈에 끼워져 있던 것을 제 주머니에 넣고 도망치듯 자리를 빠져나갔다.
남자마저 사라진 빈 책장 앞.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도유가 나타났다. 도유는 서가의 앞을 기웃거렸다. 청신이 멈췄을 만한 곳을 가늠하며 책장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분명 이쯤이었는데.”
도유는 청신이 큰길가로 나온 것을 보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뒤를 밟았다.
그가 이 서점으로 들어와 이쪽 코너로 오는 것도 보았다. 그러나 중간에 부모님을 잃고 안절부절못하는 아이를 발견하고 잠깐 직원에게 데려다주느라 시선을 뗀 사이, 청신을 놓치고 말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청신이 서점을 나가는 모습을 발견한 시간이나, 걸음의 길이를 생각해 봤을 때 이 서가에 서 있던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육안으로 보기에 책들이 빽빽하게 꽂힌 서가는 특별해 보이는 것이 전혀 없었다.
도유는 허탕을 쳤다는 걸 깨닫고 터덜터덜 서점을 나갔다.
그리고 그날로부터 일주일 후.
한 무역 회사가 입주한 층이 순식간에 화마에 휩싸여, 근무하던 직원 80여 명과 사장이 죽는 사고가 발생했다.
원인은 마법에 의한 화염 계열 마법. 일정 범위 내에 있는 생명체의 활동이 정지될 때까지 꺼지지 않는 불을 일으키는 마법이었다. 그 사건으로부터 살아남은 것은 당일 오전에 퇴사한 남자뿐이었다.
현장에 남은 마력의 잔해로 마법을 분석하자 범법자의 마법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것을 성희유로부터 전해 들은 도유는 그에게 부탁하여 살아남은 남자를 직접 심문했다. 심문 끝에 죄책감과 두려움을 견디지 못한 남자가 말했다.
“서점, 중앙서점에서 얻었습니다! 사거리에 있는 가장 큰 서점이요!”
“중앙서점이라면, 석영역 근처에 있는 서점 맞습니까?”
“네, 네!! 정말 저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썼던 겁니다! 그렇게 다 죽을 줄은 몰랐다고요! 다! 제가 죽인 게 아닙니다! 제가 한 게 아니라고요!”
“어떤 경위로 얻게 되었는지 상세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남자는 자신이 범법자의 마법을 얻게 된 경위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자길 괴롭히는 직장 사람들을 죽이고 싶어서 인터넷 사이트 중 하나인 ‘소원 나무’에 소원을 빌었다.
그랬더니 거기에 일주일 전 그 시각에, 서점의 C 코너에 꽂힌 서적에 ‘부적’이 나타날 거라는 비밀 답글이 달렸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남자가 지정된 날짜와 시간에 맞추어 가 보니 답글의 내용대로 ‘부적’이 있었다는 거였다.
남자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꺼낸 부적은 반으로 찢어진 종잇조각이었다. 일반인이라도 찢기만 하면 바로 발동되는 완전한 마법진의 형태였기에 어려울 것도 없었다.
도유는 남자를 뒤로하고 심문실을 나와 카단의 힘으로 그날 서점에 찍힌 CCTV를 확인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CCTV에 찍히지 않았으나 카메라에도 담기는 마력의 ‘밀도’가 남자가 나타나기 전, 도유가 청신의 뒤를 밟다가 그 서가 쪽에서 놓쳤을 때 달라졌다는 것을.
“그렇다는 건, 투과 마법을 이용해서 자기 모습을 지운 거군요.”
도유와 함께 CCTV를 보던 성희유가 말했다. 도유는 유독 밀도가 달라진 서가의 한쪽을 보고 입술을 깨물었다.
CCTV에 찍힌 장면과, 지난 일주일 동안 청신이 도유가 만든 아티팩트에 마법을 새기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했기에 알 수밖에 없었다. 도유는 억눌린 목소리로 말했다.
“팀장님, 이청신이 범법자 같습니다.”
“책임질 수 있나요?”
“예. 그가 범법자가 될 수 있다는 증거는 가져왔습니다.”
아침, 본부로 호출되기 전에 지금까지 열심히 정리했던 것들을 혹시나 해서 챙겼던 것뿐이었지만 이렇게 바로 제출하게 될 줄은 몰랐다.
오늘 몫의 일을 마치고 연구실에서 헤어질 때도 여전히 저를 예뻐해 달라는 듯 치근덕거리며 도유에게 애교를 부리던 청신의 모습을 떠올리면, 그가 범법자라는 게 여전히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도유는 냉정하게 자신의 의견을 관철했다.
이게 만약 실수가 되는 행위라 해도 범법자로 인해 비능력자인 일반인들이 마법을 두려워하며 희생당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성희유는 잠시 도유를 물끄러미 보았다. 아이의 앳된 얼굴이었으나 도유를 올려다보는 주홍색 눈은 오래 산 사람처럼 한없이 깊었다. 도유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는 도유가 제출한 자료를 한참 동안 꼼꼼히 살피더니 입을 열었다.
“도유 씨가 제출한 증거물은 우리가 움직일 이유가 충분히 돼요. 좋습니다. 상부에 보고하죠.”
“오늘 급습하면 안 됩니까? 특수부의 권한으로 충분히 가능하다 생각합니다.”
“도유 씨 말대로 우리 특수부 제1팀은 선조치, 후보고가 허락된 유일한 부서긴 하죠. 그런데 평소와 다르게 굉장히 적극적이네요, 도유 씨.”
“이청신이 범법자가 맞다는 것이 명확해진 이상, 피해자가 더 나오는 것을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습니다.”
“으음, 어쩔까.”
어린아이의 외형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고민 어린 표정이 성희유의 얼굴 위로 떠올랐다. 그러나 곧 그의 얼굴은 장난스러운 웃음으로 바뀌었다.
“솔직하게 말해 볼까요, 도유 씨?”
“뭘 말입니까?”
“도유 씨가 서두르는 진짜 이유요.”
뻔히 아는 사람이 잘도 묻는다. 도유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 방에 저와 성희유밖에 없었기에 순순히 털어놓았다.
“이용수 씨. 사형당하지 않습니까.”
도유가 심문한 남자의 이름이었다. 범법자에게 마법을 받아 사용하여 많은 사상자를 낸 ‘피해자’들과 마찬가지로 남자는 이제 곧 있으면 사형대에 오르게 될 것이다.
범법자가 일반인에게 마법을 쥐여 준 것과 별개로 그것을 사용하면 사람들이 죽는다는 걸 알면서도 사용한 ‘피해자’들의 죄목이 분명하기에 그들의 끝은 사형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