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13)화 (13/159)

#13

오늘까지 세공을 끝낸 다음, 내일부터는 본격적으로 마법식을 새기고 마력이 순환할 수 있도록 특수 실을 이용한 세부 조정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이것을 완전히 마무리하면 졸업 작품 중 첫 번째 아티팩트의 1차 가공이 끝난다. 그러니 오늘 내로 이것을 전부 다듬어야 했다.

내일.

내일을 생각하자 도유의 눈빛이 깊어졌다. 범법자와 청신의 마법 간에 완전히 똑같은 부분은 없었다. 다만, 유사점이 몇 가지 보였다.

마법사에게는 저마다 특유의 방식이 존재한다.

컴퓨터 공학으로 친다면 같은 언어로 한 기능을 구현할 때, 개발자별로 구현하는 코드가 다른 것과 같았다. 청신은 범법자의 마법에서 보이는 유사점을 그대로 보이고 있었다.

도유는 확신했다. 청신이 마법을 새기는 모습을 직접 본다면, 분명 확신할 수 있을 거라고.

환상열석 사건 때 유력한 범법자로 의심받았던 산은하와의 접점까지 있으니 서로가 공범이라면 충분히 이 지긋지긋한 사건을 끝낼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틱!

“아.”

도유는 멍하니 제 손을 보았다. 붉은 피가 순식간에 맺히더니 그대로 손바닥 위에 고이다 못해 아래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세공 도구에 깊게 베였는지 살짝 움직이자마자 살이 벌어지며 속살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선배? 왜 그래요? …! 선배!”

청신이 피를 뚝뚝 흘리고 있는 도유를 발견하고 경악하여 한걸음에 달려왔다. 도유는 제가 열심히 깎던 아티팩트의 틀에 피가 떨어지지 않도록 한쪽으로 치우며 말했다.

“미안해. 신경 쓰지 마.”

그렇게 말하곤 대충 티슈를 뽑아 손바닥을 눌렀다. 손바닥을 길고 깊게 베인 탓에 티슈는 금방 붉게 물들었다. 청신이 도유의 손을 붙잡았다.

“어떻게 신경을 안 써요? 손 줘 보세요.”

청신은 도유가 반응할 틈도 없이 손수건을 꺼내더니 그대로 마법을 사용했다. 손수건에 옅은 빛이 휘돌며 그대로 붕대처럼 길게 변했다. 형태를 변이시키는 마법과 정화 마법이다. 일순 손수건의 위로 떠오른 마법 문양을 알아본 도유는 눈을 깜빡였다.

“청신아, 너 지금 마법 쓴 거-.”

“그게 중요해요? 선배. 피가 이렇게 나잖아요. 많이 아프죠?”

속상해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청신이 눈시울까지 붉히며 즉석에서 만든 붕대로 도유의 손바닥을 꽁꽁 싸맸다. 이 정도 상처는 솔직히 상처라고도 생각하지 않았고, 생각보다 아프지 않았기에 민망했다.

“이 정도면 돼. 난 괜찮, 청신아!”

“괜찮긴 뭐가 괜찮아요? 아, 사랑스러운 선배의 손에 이런 상처라니.”

도유는 붕대에 싸인 제 손을 조심스럽게 쥐고 은근슬쩍 입을 맞추는 청신을 보며 경악했다. 도유가 그러거나 말거나 청신은 보는 사람이 가슴이 아플 정도로 슬퍼하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결심한 눈으로 말했다.

“안 되겠어요, 선배.”

뭐가 안 되냐고 물을 틈도 없었다. 청신은 도유를 반쯤 끌고 연구실을 나갔다.

*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들을 바로 이해하지 못한 도유가 이마를 감싸 쥐었다.

청신은 도유를 차에 태우더니 바로 대형 병원으로 데려갔다. 어째선지 접수나 대기도 없이 의사를 바로 봤고, 의사는 기본적인 처치를 해 준 뒤 청신의 눈빛에 못 이겨 만약의 감염을 대비한 주사까지 놔 줬다.

거기까지만 해도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운데 청신이 도유를 또다시 차에 태웠다.

“청신아.”

“네, 도유 선배. 아직 아파요? 아니면 머리 아파요? 왜 머리를 쥐고 있어요? 다시 병원 갈까요?”

“진정해. 안 아프니까. 그보다 어디 가는 거야?”

병원에서 빠져나온 차가 아카데미 방향이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 향하는 걸 보고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도유 선배네 집에 데려다 드릴게요. 오늘 오른손을 못 쓰시니까 제가 시중을 들어 드릴게요. 걱정 마세요, 선배. 저 집안일은 물론이고 씻기는 것도 잘하니까요.”

“……아니, 그럴 필요는 없는데…. 애초에 내 집 주소 알아…?”

“전에 계약서에 기재되어 있었던 곳 아닌가요?”

“마, 맞긴 한데.”

그걸 굳이 외우고 있었던 걸까? 도유는 당황한 나머지 말을 더듬고 말았다.

“선배 손이 나을 때까지 제가 곁에 꼭 붙어서 도와드릴 테니 걱정 마세요.”

네가 우리 집에 오는 게 걱정이다.

도유는 말을 가까스로 삼켰다. 청신의 기세로 보아 이대로 도유의 집에 도착하면 온갖 핑계를 대면서 쳐들어올 기세다.

제집 바닥에 범법자와 청신의 마법을 분석한 종이들이 바닥에 난잡하게 흩어져 있는 걸 떠올린 도유는 초조함에 입술을 꾹 깨물었다.

카단에서 제공한 숙소는 누군가가 불법 침입을 하는 순간 집 내부에 설치된 아티팩트가 무엇도 남기지 않도록 폭발하도록 되어 있었지만, 도유가 함께 들어가거나 문을 열면 그 아티팩트가 발동되지 않았다.

즉 이대로는 도유가 청신을 의심하고 조사하고 있다는 걸 들키게 된다.

도유는 운전대를 잡은 청신의 손을 잡았다.

“선배?”

“이만 됐어. 청신아, 오늘 도와줘서 고마워. 나 혼자 집에 가도 돼. 여기서 내려 줘.”

“걱정돼서 그래요. 네?”

“아니야. 괜,”

“선배….”

청신이 슬프게 웃는 얼굴을 직면한 도유는 속으로 비명을 삼켰다. 운전 중일 때 앞을 보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너무나 슬픈 청신의 눈빛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알았어요, 선배. 선배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으니까 선배 집에 가자는 말은 더 안 할게요.”

이대로 밀어붙일 줄 알았던 청신이 내뱉은 뜻밖의 말에 도유는 놀라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놈이 웬일이지? 그동안 졸업 작품을 함께 만들며 청신은 도유에 관한 것에 있어서는 은근슬쩍 자신의 의견을 밀어붙였다.

가령 도유가 좋아하는 단것을 먹여 준다거나, 도유에게 같이 밥을 먹자거나, 같이 있고 싶다면서 함께 서점에 가거나 하는 등의 행동 말이다. 그랬던 녀석이 갑자기 양심을 되찾은 것처럼 물러나니 도유는 당황했다.

“제 집에 가는 건 어때요, 선배?”

“네 집…?”

“네. 선배가 너무 걱정돼요. 제 지인 중에서도 선배처럼 아티팩트를 세공하던 과정에 작은 상처로 세균 감염이 돼서 세상을 떠난 분이 계셔서, 지금 너무 무서워요.”

“…….”

도유는 청신과 접점을 가졌던 산은하의 정보를 떠올렸다. 산은하와 가까이 지냈던 지인 중에 지금 청신이 말한 사유로 죽은 사람이 분명히 있었다.

당황으로 물들었던 푸른 눈이 차분하게 가라앉은 것을 청신은 운전을 하느라 보지 못했다.

“그러니 어떠세요, 선배?”

원래는 거절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도유는 생각을 바꿨다. 청신의 집에서 뭔가 결정적인 단서를 잡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알았어. 그럼, 잠깐 신세 질게.”

“고마워요.”

도유의 허락에 청신이 환하게 웃었다.

*

청신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도유는 그가 사는 집이 부자들이 사는 동네에 위치한 3층짜리 단독 주택이라는 사실보다 그 집을 둘러싼 결계 마법을 보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지금의 도유는 마나 감응력이 높아 이따금 제멋대로 뒤바뀌는 시야를 유지하기 위해 약으로 감각을 억누른 상태다.

그렇기에 평범한 사람들과 비슷한 시야임에도 불구하고 청신의 집을 둘러싼 결계 마법이 굉장히 강력하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어서 오세요. 저, 제 집에 누군가를 초대한 건 처음이에요.”

청신이 수줍게 웃었다. 도유는 굳었던 표정을 풀고 그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잡지에서나 볼 법한 집 내부가 보이자 도유는 긴장으로 몸을 딱딱하게 굳혔다.

집 외부의 결계 마법은 그렇다 쳐도, 집 안에 쳐져 있는 결계 마법은 뭐란 말인가.

거실이면 거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주방, 닫혀 있는 방문 등 위치마다 각각 다른 결계 마법이 쳐져 있었다.

카단 협회 본부도 이런 식이었지만 그곳은 협회고 여긴 마법사 개인이 거주하는 주택이었다. 이 정도의 보안은 분명히 정상적인 수준이 아니었다.

역시 뭔가 숨기고 있는 걸까? 도유는 그렇게 생각하며 청신을 살폈다.

“선배, 잠시 앉아 계세요. 배 많이 고프죠? 드실 걸 만들어 올게요.”

“아, 아냐. 괜찮아….”

주눅 들어 있는 척 도유가 말하자 청신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지금까지 보였던 부드러운 태도와는 전혀 다른 단호함이다.

“드셔야 해요. 어제나 오늘 식사 제대로 못 했죠? 잠도 깊게 못 잤고요.”

“어떻게 알았어?”

“평소보다 0.5초 느리게 걷고, 몸에 힘이 없는 걸 보고 알았어요.”

0.5초의 차이를 어떻게 인지했냐고, 너 그렇게 맨날 나만 관찰하고 있었던 거냐고 묻고 싶었으나 도유는 말을 삼켰다.

게다가 몸에 힘이 없다니. 몸 상태가 좋지 않았던 탓에 평소보다 주의를 기울여 행동했건만 청신은 도유를 꿰뚫어 보았다. 도유의 안에서 청신이 범법자일 확률이 더 올라갔다.

“이런 연약한 상태에서 상처까지 입으셨으니…. 식사하고, 약 먹어요. 알겠죠?”

아이를 달래는 것 같은 어조가 마음에 걸렸지만, 청신이 주방에 머문다면 주변을 둘러볼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기에 도유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일단 마실 것 좀 드릴까요?”

“괜찮아.”

“그럼 선배가 드실 죽을 만들어 올게요. 처음부터 만들 거라 조금 기다려 주셔야 해요. 20분 정도요.”

“으응. 고마워.”

오히려 시간을 끌수록 좋았다. 청신이 주방으로 사라졌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