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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11)화 (11/159)

#11

“개소….”

“선배, 설마 개소리라고 하려는 거 아니죠?”

“아니야. 말이 헛나왔어.”

너드는 욕을 안 한다. [너드 매뉴얼]의 내용을 속으로 되새기며 도유는 재빨리 정정했다.

청신이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그렇죠?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전 선배가 욕해도 좋을 것 같아요. 예쁜 목소리니까.”

도유는 잠시 이 녀석의 취향을 의심했다. 결국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정말 네가 이해가 안 된다.”

저도 모르게 말한 도유는 제가 한 말을 깨닫고 흠칫하며 청신의 눈치를 보았다.

혹시나 화를 내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던 것과 다르게, 청신은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마치 재밌는 말을 들은 사람과 같은 반응에 도유는 생각했다.

미쳤나?

“왜, 왜 웃어?”

“선배. 선배는 이미 저를 이해하고 있어요.”

이 무슨 헛소리란 말인가. 지금도 청신을 이해하지 못해서 슬그머니 몸을 내빼고 있는데. 청신은 도유가 그러거나 말거나 말을 이었다.

“선배. 그거 알아요? 인간은 자기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인간과는 진지한 일을 하지 않아요. 일종의 방어 기제죠. 상처 입지 않고, 손해 보지 않고 자기를 지키려는 거예요. 그런데 선배는 제게 신뢰가 필요한 일을 같이 하자고 했잖아요.”

도유는 잠시 생각했다. 신뢰가 필요한 일이 뭘까? 정답으로 추정되는 건 오래 생각지 않아 금방 나왔다. 도유는 잠시 두통이 이는 걸 꾹 참으며 조곤조곤 말했다.

“그…. 그게 졸업 작품이면 목숨이 걸렸기 때문이라는 생각은 안 들었어? 청신아. 졸업을 앞둔 학년은 졸업을 위해서라면 길가의 고양이에게라도 넙죽 엎드릴 수 있는 존재야.”

“제가 고양이같이 귀엽다고요? 아, 쑥스럽네요.”

“……넌 네가 듣고 싶은 말만 골라서 듣는구나.”

할 말을 잃은 도유는 더는 청신을 상대할 기력이 남지 않았기에 이 자리를 떠나고 싶었지만 청신이 여전히 손을 잡고 있어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선배. 이윤원이랑 안 만날 거죠? 연락처 삭제는 강요하지 않을게요.”

“만나는 건 하지 말라는 뜻이야?”

“네. 제가 정말 사람 보는 눈은 있거든요. 감이 좋다고 할까요? 그놈 너무 쎄해서 그래요.”

아무리 쎄한들 그 무엇도 너보단 아닐 것 같다. 그렇게 대답하고 싶은 걸 꾹 참으며 도유는 아까부터 은근슬쩍 제 손을 주물럭거리고 뺨을 열심히 비비는 청신으로부터 손을 빼내며 말했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만 만져.”

“좋아요. 약속.”

그제야 청신은 평소처럼 생긋 웃었다.

물론 도유는 약속을 지킬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 녀석이 이렇게까지 윤원과의 만남을 꺼리는 이유를 눈치챘기에 오히려 윤원과 적극적으로 만날 생각이었다.

*

주말이 되자 도유는 예정대로 윤원과 만났다.

핑계로 댔던 영화를 보는 도중에 그대로 상영관을 나가는 척하며 카단에서 만들어 둔 통로를 통해 특수한 마법 처리가 되어 있는 룸에 들어왔다.

윤원은 단둘만 있는 룸에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보따리를 풀듯 정보를 풀었다.

“선배님이 요청하신 자료입니다.”

윤원이 손을 움직이자 허공에 홀로그램처럼 옅은 빛을 머금은 글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도유는 쓰고 있던 뿔테 안경을 벗고 그것을 읽기 시작했다.

도유가 본부에 요청한 정보는 ‘마법사’인 이청신이 살아오면서 참여했던 프로젝트들의 상세 작업 내용이었다.

본디 보안상 감춰져야 할 정보였지만 카단의 힘은 어렵지 않게 청신의 흔적들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청신이 작성했던 마법 수식과 설계도가 끊이지 않고 허공에 나타났다.

윤원은 마법사였지만 지적 호기심보다는 거부감이 들 정도로 이해하기 어려운 마법식의 향연에 결국 눈을 돌렸다.

그러나 도유는 옅은 빛을 머금은 푸른 눈으로 그 내용을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제 머릿속에 담았다.

동시에 그동안 범법자가 일반인들에게 주었던 마법들의 수식을 머릿속에서 분해하고 조립하여 청신의 흔적들과 비교했다.

“후우.”

허공에 새겨진 글이 모두 사라지고,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도유가 얕은 한숨을 내쉬며 손수건을 꺼냈다. 땀으로 젖은 이마를 눌러 닦으며 미리 주문해 뒀던 차가운 음료를 한순간에 빨아들였다.

“전부 보셨어요?”

“네. 수고하셨습니다. 이윤원 씨.”

윤원은 감탄한 눈으로 도유를 보았다.

아카데미에서 도유는 상체를 은근히 웅크려서 겁 많고 소심해 보이는 모습을 연출했다. 목소리에서도 힘을 뺐고, 일부러 말을 더듬었다.

하지만 지금의 도유는 정자세로 허리를 펴고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을 보였고 어조나 표정은 감정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무표정했다.

즉, 카단 내에서 소문이 자자한 그 ‘특수부’다운 모습이었다.

윤원은 카단에 입사하기 전부터 특수부에 대한 이야기, 특히 성희유가 이끄는 제1팀에 대한 이야기는 귀가 닳도록 들었다.

그렇기에 그는 제 앞에 앉은 도유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란 걸 알았지만 호기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윤원 씨?”

“아. 죄송합니다.”

도유는 아무 말도 없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저를 빤히 보기만 하는 윤원의 태도에 잠시 제가 말실수라도 한 건가 고민했다.

그러나 곧 신경을 껐다. 본부로 복귀하면 지겹도록 겪을 시선임을 알기에, 신경을 써 봤자 의미가 없었다.

“정보는 이게 전부가 맞습니까?”

“아, 아뇨. 하나 더 있어요. 성희유 팀장님께서 전달하라 하신 정보예요.”

“…팀장님께서 제게 전달하라 하셨습니까?”

“네? 네. 그렇습니다.”

오늘 아침만 해도 성희유에게 가벼운 보고를 하며 답장을 받았다. 성희유는 그때 별다른 답변을 주지 않았다.

애초에 보고하는 대부분의 연락에 대한 답변은 읽고 무시하기가 대부분이었다.

그렇기에 그가 윤원을 통해서 제게 주는 정보가 과연 제 심장을 얼마나 곤두박질치게 만들 것인지 고민스러워서 당장 말해 보라고 채근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윤원은 빠르게 업무를 종료하고 주말을 즐기고 싶었기에 도유의 답변을 기다리지 않고 말했다.

“그대로 읊어 드릴게요. ‘‘환상열석’ 사건 때 범법자로 추정되었으나, 증거 부족 외 10가지 사유로 제외된 산은하 씨가 이청신 씨와 주기적으로 만나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조사해 봤을 때 그들 간에 접점이 있는 부분은 없었습니다.’라고 전달해 달라고 하셨어요.”

환상열석 사건은 19년 전, 약 500명이 거주하는 촌 단위의 작은 마을이 범법자의 마법에 의해 한순간에 수몰된 사건이었다. 그 현장에 보내졌던 것이 도유였기에 도유는 어렵지 않게 그때 범법자로 의심받던 산은하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었다.

산은하. 45세. 남자. 마법사지만 카단에서 측정한바, 일반인에 가까운 수준.

그러나 마법에 대한 지식은 뛰어남. 20년 전 마법 아티팩트 제작 회사에서 근무 중, 사고로 반신불수가 되었으나 기적적으로 회복. 30년 전 일어난 ‘대폭발’ 사고로 산은하를 제외한 그의 가족들이 모두 사망.

서류에 기재되어 있던 글귀를 고스란히 떠올린 도유는 생각에 잠겼다.

성희유가 이 정보를 줬다는 것은 그도 청신을 의심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렇기에 알아보라고 정보를 준 것이다. 어딘가 석연찮게 느껴졌지만 지금은 그것이 어떤 것에 기인한 것인지 알 수 없었기에, 도유는 생각에서 빠져나왔다.

“전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윤원 씨. 오늘 고생하셨습니다.”

“아, 네…!”

“그럼 이만 돌아갑시다. 혹시 모르니 역 앞까지만 동행하는 것으로 하죠.”

그렇게 말하며 도유는 벗었던 뿔테 안경을 다시 쓰고 마스크도 콧등 위로 끌어당겨서 최대한 얼굴을 가렸다. 곧게 펴고 있던 허리를 살며시 굽히며 상체를 움츠려 빠르게 ‘너드 서도유’를 만들어 냈다. 그 모습을 실시간으로 눈앞에서 본 윤원은 눈을 반짝였다.

“선배님, 오늘은 이대로 귀가하시는 거예요?”

“네.”

귀가한 후 윤원이 준 정보들과 범법자의 마법들을 상세 비교해 볼 생각이었지만 굳이 말하지 않았다.

“그럼 오늘 저랑 같이 노실래요?”

“네?”

도유는 난생처음 듣는 권유에 놀라 정직한 반응을 내보였다.

윤원은 이런 방금 전까지만 해도 감정이라곤 한 톨도 보이지 않던 사람이 뿔테 안경과 마스크를 썼다고 당혹스러운 듯 눈을 크게 뜨는 모습이 신기해 웃음을 터트렸다.

“듣자 하니 선배님이 잠입한 지 꽤 지났다고 하던데, 그동안 제대로 못 쉬셨을 것 같아서요. 저 오늘은 선배님께 보고하는 것 외에는 시간이 완전 비어서 이것저것 보고 놀 생각이거든요? 괜찮다면 같이 가요.”

“…제안은 감사합니다만 거절하겠습니다.”

정중한 거절에 윤원이 아쉬운 듯 눈썹을 모았다.

“아무리 아카데미에서 떨어진 곳이라 해도 만약의 상황이 있을 수 있는 법입니다. 이윤원 씨와 아카데미가 아닌 사적인 장소에 함께 있는 것이 목격되면, 후일 문제가 발생했을 때 대처하기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윤원은 도유의 말을 이해했다. 도유가 말한 ‘문제’라는 것이 범법자든, 어떤 경로로든 잠입 수사 중인 것을 둘 중 하나가 들키고 위험에 처했을 때를 상정함을 알았다.

윤원이 도유에게 사과하려던 때였다.

“만약.”

“네?”

“…만약, 이번 임무가 끝나고 본부에서 만났을 때 다시 권유해 주신다면, 그때는 거절하지 않을 겁니다.”

“……! 네! 그럼 그때 다시 말씀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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