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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10)화 (10/159)

#10

사실 마음 같아서는 거기에서 숙식을 하고 싶을 정도였다. 연구실에 입퇴실 제한 시간만 존재하지 않았더라도 필시 행동으로 옮겼을 것이다.

청신을 관찰하고 증거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도유는 굉장히 한가한 사람이었다.

본부였다면 서류 업무라도 했을 테지만 지금은 본부에 갈 수 없었다. 그렇기에 도유의 여가 시간은 운동을 하거나, 마법 공부하거나 [너드 매뉴얼]을 읽으며 앞으로의 연기를 위해 시간을 할애할 뿐이었다.

“하아….”

도유는 한 시간 뒤면 만나게 될, 질 좋은 도구의 손맛을 그리워하며 서가에서 꺼내 온 책을 넘겼다. 연구실에 입장 가능한 시간까지 아카데미 내의 도서관에 처박히는 건 한 달 전부터 정해진 도유의 일상이었다.

팔락.

팔락팔락.

읽지도 않고 빠르게 넘기는 종이 소리가 거슬렸는지, 조금 떨어진 거리에 앉은 학생이 자신을 흘기는 것을 예민하게 눈치챈 도유는 얌전히 책을 덮고 그 위에 엎드렸다.

망할. 도유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앞으로 한 시간 뒤에 연구실에 들어간다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이청신이 떠오르며 독서고 뭐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근래에 도유는 고민 중이었다. 아니, 고뇌 중이었다.

이청신과 함께 연구실에 주 5일간 틀어박혀서 함께 졸업 작품을 만들기 시작한 날부터 오늘까지, 청신은 도유에게 있어 인생에서 만나 본 가장 난해한 인간 1위로 당당하게 등극했다.

청신은 틈만 나면 도유를 끌어안거나 입을 맞출 듯이 제 얼굴을 들이밀며 치근덕거리고 달콤한 말만 골라서 했다.

눈이 마주칠 때면 짝사랑하는 소년처럼 예쁘게 웃어 보이며 ‘도유 선배. 왜요? 제가 예뻐요?’ 하는 개소리를 당당하게 지껄였다.

처음에는 이놈이 도유를 다음 피해자로 점찍고, 자기의 노예로 만들어 사건을 일으키게 하려고 수작을 부리는구나 하는 생각으로 경계했다. 하지만 날을 거듭하며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나자 도유는 한 가지 의문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청신 같은 인간이 굳이 이렇게 공을 들여서 피해자들을 꾀어낼 필요가 있는가?’

아카데미 내에 연구실을 들락날락하며 평일 중 절반에 가까운 시간을 함께 있다 보니 도유는 자연히 청신에 대해서 알게 될 수밖에 없었다.

청신은 도유가 봐도 대단한 인간이었다. 사람의 삶이 축복받았다는 게 어떤 것인지 실감이 될 정도로, 청신과 함께 아카데미 내를 걷고 있으면 모두가 청신을 보고 호감을 드러냈다.

그들은 인사는 물론, 항상 청신에게 뭔가를 주려고 안달복달이었다. 도유가 보기에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청신이 부탁하는 건 작은 부탁이라도 목숨 거는 기세로 해냈다.

아카데미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청신을 향한 사람들의 그런 태도는 계속되었다. 얼굴을 보고 시선을 떼지 못하는 사람들이나, 마법사 전용 상점에 들어가면 뭐라도 얹어 주는 사람이 많았다.

즉, 이청신은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애정을 받는 존재다. 그런 존재가 굳이 이런 ‘고생’을 하면서까지 피해자를 심적으로 무너트리고 제 마법으로 대혼란을 일으킬 이유가 있을까?

여기까지 생각하면 도유는 언제나 같은 의문에 시달렸다.

그렇다면 왜, 청신은 제게 수작질을 하는 건가?

범법자가 아니라면 청신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자기가 봐도 접근하고 싶지 않은 너드에게 접근해서 치근덕거리는 취향 이상한 놈이 세상에 존재할 리가 없지 않은가.

“선배님?”

갑자기 바로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도유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쳐들었다.

누군가가 이렇게 지근거리까지 접근해 오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에 자책하기도 잠시, 본 적 있는 얼굴을 발견하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전에 도유에게 딸기우유와 함께 청신의 정보를 전달해 줬던, 카단 협회에서 심어 놓은 다른 잠입 요원이었다.

“이윤원 씨?”

“여긴 아카데미 도서관이니까, 윤원아, 라고 해 주세요.”

한쪽 눈을 찡긋한 윤원이 자연스럽게 도유의 옆자리에 앉았다.

도유는 윤원의 얼굴을 살폈다. 마력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는 걸 봐서는 마법이 아니라 본래의 얼굴이다. 신입이라서 그냥 투입시킨 건가 하고 생각하는 사이, 윤원이 손을 내밀었다.

“선배님. 잠깐 손 좀 주세요.”

도유는 순순히 손을 내밀었다. 윤원이 손장난 치듯 도유의 손가락을, 손바닥을 누른다.

손가락으로 ‘ㅈ’을 쓰고, 도유의 손가락 두 개를 누른 윤원은 미련 없이 손을 뗐다.

정보부 제2팀.

“선배님, 주말에 시간 되세요? 저 영화 보고 싶은데 같이 보러 갈 사람이 없어요.”

말로 하거나 칩으로 전달할 수 있는 정보가 아니라는 뜻이다. 도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 돼. 몇 시에 만날래?”

“선배님이 원하는 시간요. 아, 번호 교환해요.”

“그럼 내가 내일 보고 연락 줄게.”

“네, 기다리겠습니다!”

연락처를 교환한 뒤 윤원은 손을 흔들며 도서관을 떠났다.

와중에 도유는 윤원이 자기가 상주해 있는 곳을 완벽하게 파악했다는 사실에 잠시 멈칫했다.

정보부인 윤원이 바로 도유를 찾았다는 건, 상부에 자신의 행동이 전부 보고되고 있다는 것을 뜻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새삼스러울 것도 없고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긴 했지만 이렇게 대놓고 바로 찾아오니 조금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직속 상사인 성희유 팀장이라면 도유가 도서관에 틀어박혀 책을 읽는 것을 농땡이 친다고 생각하지 않을 거다. 다른 부서가 문제였다.

다른 부서의 인간들은 특수부를, 특히 도유를 좋지 않게 본다.

도유가 시간이 빌 때마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다는 이야기가 그들의 귀에 들어가면 반응은 뻔했다.

도유는 잠시 본부로 복귀했을 때 그들이 제게 할 말들을 떠올리다가 암울해져서 생각을 그만두었다. 오히려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현재 자신은 범법자로 의심 가는 사람을 조사 중이고, 혹시 몰라 이렇게 짬이 날 때마다 도서관을 오가며 수상한 사람이 있는지도 꾸준히 확인하고 있는 것뿐이다.

이걸 좋은 말로 치장해서 보고한다면 크게 문제 삼지 못할 것이다.

드륵.

의자를 끄는 소리에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가, 도유는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형형하게 번뜩이는 녹색 눈에 그대로 얼어붙지 않았더라면 필시 비명을 질렀을 것이다.

그만큼 놀랐다. 정말 공기와 같은 존재감으로 순식간에 나타나 제 옆에 앉은 청신의 존재는 귀신을 봤을 때보다 더 공포스럽게 느껴졌다.

청신은 늘 보여 주는 웃는 얼굴이 아니었다. 당장 사람 하나 잡아 죽여도 이상하지 않은 굳은 얼굴이었다.

“어, 언, 언제 왔어?”

“선배.”

이번만큼은 너드 연기를 위해 일부러 말을 더듬은 것이 아니었다. 놀라서 콩닥콩닥하며 빠르게 뛰는 심장의 고동을 느끼면서 도유는 슬쩍 뒤로 몸을 뺐다.

“방금 이윤원 맞죠.”

“…응.”

청신의 입에서 명확하게 윤원의 이름이 곧바로 나올 줄은 몰랐던 도유는 더 놀랐지만, 곧 냉정을 되찾고 청신의 표정과 눈빛을 살피기 시작했다. 굉장히 의심스러웠다.

청신은 아카데미 5학년이다. 신입생인 윤원과 얽힐 일이 없다.

신상 명세에 기재되어 있던 청신과 윤원의 학과와 수강 과목, 담당 교수, 각자 속한 동아리를 떠올리면 청신이 윤원에 대해 알고 있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둘 다 정반대의 위치에 있는 건물에서 수강하고 소속된 동아리도 없었으니까.

청신은 혹시 제가 가지고 놀 다음 피해자를 찾기 위해 윤원에 대해서 조사한 것이 아닐까?

“이윤원이랑 만나지 마세요.”

“만나지 말라고?”

“네. 그 녀석 수상해요.”

“……!”

설마 윤원이 카단의 잠입 요원이라는 것을 눈치챈 건가? 도유는 속으로 경악하며 청신을 보았다.

“왜, 왜 그렇게 생각해…?”

윤원이 들켰고, 청신이 범법자라면 오늘 내로 윤원이 죽을지도 모르기에 당장 본부에 윤원과 자신의 보호를 요청할 생각이었다.

윤원이 들켰다는 건 도유 자신도 들켰다는 걸 의미하기에 살려면 어쩔 수 없었다.

청신의 표정이 달라졌다. 어느새 그의 표정은 부루퉁하게 변해 있었다. 그가 책상에 올려 두었던 도유의 손을 꼭 잡고 끌어당기더니 제 뺨에 가져가 찰싹 붙였다.

“그야, 선배 같은 사람에게 저렇게 치근덕거리는 건 불순한 의도가 있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잖아요.”

“…….”

지금 얘가 날 욕한 건가?

아니면 나한테 시비 거는 건가?

그것도 아니면, 나한테 한 대 맞고 싶은 건가?

들켜서 신변이 위험해지지 않은 건 다행이긴 한데, 묘하게 욕 같은 말에 도유는 자신이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했다. 결론은 좀처럼 나지 않았다. 그럴 틈이 없었다.

“그러니 선배, 이윤원 그놈 연락처 지워요. 주말 약속도 취소해요.”

“……다 듣고 있었어?”

“네. 선배가 도서관에 있을 것 같아서 왔더니 딱 그놈이랑 약속 잡고 있는 거 보고 제가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슬펐는지 아세요?”

“지켜보고 있었구나. 그래도 내 일인데 네가 왈가왈부하는 건, 조금….”

“왜요? 선배. 저 버릴 거예요? 저도 선배 영화 보여 줄 수 있어요.”

어째서 윤원과의 약속 취소 여부가 청신을 버리냐 버리지 않느냐로 직결되는지 이해하지 못한 도유는 어떻게든 그를 이해해 보기 위해 노력했다. 청신은 틈을 놓치지 않고 도유에게 얼굴을 들이댔다.

“이렇게 예쁘고 잘생기고 일도 잘하는 저를 버릴 거라고요?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잔인할 수가 있어요?”

청신이 슬픈 듯 눈시울을 적시는 척하며 하는 말에 도유의 입이 저절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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