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8)화 (8/159)

#8

세상이 멈춘 것처럼 소리가 사라졌다. 사람들의 소리도, 바람의 소리도, 공원 옆의 호수의 물결이 바람에 밀려나는 소리도 모두 시간이 멈춘 것처럼 사라졌다.

동시에 도유는 사람들을 쫓던 거대한 마력의 흐름이 멈추고, 도망치던 사람들이 모두 서서히 멈추더니 약속이라도 한 듯이 청신을 돌아보는 모습을 목격했다.

공포마저 잊은 눈들이 모두 청신을 향한다. 청신이 손을 들었다. 그가 검지를 들어 입술에 붙였다.

“쉿. 조용히 있으면 끝납니다.”

마치 잠들기 직전에 듣는 인사처럼 낮고 작은 목소리였다. 그러나 멀리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청신의 말을 듣고 홀린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소리가 사라진 채, 체감하기에는 길었으나 실제로는 짧은 시간이 흘렀을 무렵 도유는 불길한 색의 거대한 마력이 하나로 모여들어서 하늘 높이 치솟아 사라지는 것을 보고 숨을 삼켰다.

그것을 청신도 느낀 것인지 청신이 마법을 거뒀다. 멈췄던 소리가 다시금 흘러들어 오기 시작했다. 청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잘해 주셨어요. 이제 괜찮습니다.”

청신의 말에 이 참극이 끝났다는 것을 알아차린 사람들의 입에서 흐느낌과 거친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청신이 도유에게로 돌아와 허리를 숙여 도유가 떨어트린 핸드폰을 주워 주었다.

“선배, 아무래도 오늘은 진도 빼기가 어려울 것 같네요.”

그가 고갯짓을 했다. 얼결에 그 끝을 따라간 도유는 공원의 입구에서부터 이쪽을 향해 뛰어오는 카단 마법사 협회의 제복을 입은 사람들을 발견했다.

이제 이 공원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카단으로 불려 가 검사와 심문을 받게 될 것이다. 청신의 말대로 늦은 시간까지 카단에 붙잡혀 있어야 할 것이 뻔했다. 도유는 저를 보며 싱글벙글 웃는 청신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청신이 말했다.

“그렇게 사랑스럽게 보셔도 카단은 제가 못 막아 드려요. 시민의 의무라서요.”

이상한 마법은 막아 줄 수 있어도 카단은 막아 줄 수 없다는 말보다, 이제는 대놓고 ‘사랑스럽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도유는 뭔가 크게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

카단의 지역 본부에서 일반 시민으로서 조사를 받은 다음 날, 도유는 청신과 만나자마자 대뜸 물었다.

“어떻게 안 거지?”

청신이 눈을 휘둥그레 뜨는 모습을 본 도유는 자신이 너드가 아니라 카단 협회의 특수부, 서도유로서 물었다는 것을 깨닫고 곧바로 [너드 매뉴얼]에서 본 대로 다시 말했다.

“어, 어제 말야. 사람들한테, 조용히 하라고… 했잖아.”

“아아. 그거 말인가요.”

청신은 가벼운 어조로 말하고는 주변을 둘러봤다. 어제는 협회에서 조사를 받은 뒤 개인별로 집까지 데려다줬다. 덕분에 끝내 연구실을 구하지 못한 채로 청신과 헤어진 터라 오늘도 카페로 출석했다.

그 탓일까. 청신이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는 행동을 보이니 도유는 답을 듣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제 손을 꼭 쥐었다.

“왜 그래…?”

“일반인이 듣기에는 조금 위험한 내용이라서요.”

“그럼 사람이 없는 룸 형식으로 된 장소로 옮길까?”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요. 선배, 잠시 이쪽에 앉으시겠어요?”

도유는 순순히 청신의 옆에 앉았다. 청신이 기다렸다는 듯이 몸을 딱 붙이며 도유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너무나 가까워진 거리와 허리까지 껴안는 손길에 도유가 청신을 떼어 놓으려던 때, 웃음기를 머금은 미성이 들려왔다.

“불편해도 잠깐 참아 줘요. ‘그런’ 부류의 마법 관련된 이야기는 일반인들이 있는 곳에서 하면 안 되잖아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에 결국 도유는 고개를 끄덕이고 몸에서 힘을 풀었다. 청신이 흡족하게 웃는 걸 보고 도유가 눈살을 찌푸릴 무렵, 청신이 도유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왔다.

이렇게까지 타인과의 거리를 좁혀 본 적이 없는 도유는 옅은 숨결이 제 귓가에 느껴지자 소스라쳤다.

“어제 관찰해 보니 유독 소리를 크게 내는 사람들부터 죽더라고요. 그래서 파동 마법과 다른 마법을 섞어서 만든 창조 마법이라는 걸 알아차렸어요.”

숨결이 닿으며 귓가가 간질거렸다. 청신의 말에 집중해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알았지만 낯선 감촉에 도유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푹 숙였다.

조금이라도 청신과 멀어지기 위해서였지만, 청신은 기다렸다는 듯이 도유를 껴안은 손에 힘을 주며 방긋방긋 웃었다.

“만약 거기가 밀폐된 공간이었다면 심장이 뛰는 소리만으로도 금방 사람들이 죽어 나갔을 거예요. 탁 트인 장소라서 정말 다행이었죠.”

“그, 그렇구나…. 그런데 청신아, 좀만 떨어져 주면, 안 되겠니?”

“미안해요. 그건 좀 힘들겠어요.”

“뭐, 뭐가 힘든데? 아니, 나 다 들었으니까 자리로 돌아갈게.”

“선배가 바라시니 바로 놓아 드리고 싶은데, 이렇게 안고 있으니까 너무 좋네요. 선배, 생각보다 근육도 붙었고. 운동해요?”

허리에 딱 붙은 청신의 손이 도유의 허리와 배를 슬슬 누르고 어루만진다. 아무렇게나 누르는 것 같았지만 은근히 도유가 예민하게 반응하는 부근을 찾을 때마다 집요하게 누른다.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다.

“운동하긴, 하는데… 잠깐, 떨어져. 이제.”

더 만지작거리면 청신을 공격할 것 같았다. 도유가 단호하게 말하자 다행히 청신이 순순히 물러났다. 다만 여전히 도유를 안은 채였다.

“떨어지라니까?”

“이렇게 붙어 있으면 안 돼요?”

“그럴 필요가 없잖아.”

“‘필요’라. 그럼 만들면 되겠네요.”

청신이 들고 왔던 가방에서 뭔가를 꺼낸다. 도유가 냉큼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청신이 태블릿을 꺼내 도유의 앞에 내려놓았다.

“이거 보세요, 선배.”

“어?”

“어디까지나 제 추측이라 카단 쪽에 말하진 않았는데 선배한테는 보여 드릴게요. 어제 공원에서의 창조 마법 원리랑 수식이요.”

“뭐?!”

“쉬잇.”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자 청신은 도유를 달랜 후, 태블릿의 메모장을 켜서 전용 펜으로 수식을 적어 나가며 도유의 반응을 살폈다.

도유는 어느새 제가 다시 끌어안겨졌음에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듯 눈을 반짝이면서 청신의 손이 움직이는 궤적을 열심히 쫓고 있었다. 그 모습을 청신은 눈이 부신 것을 보듯 애정을 담뿍 담아 보았다.

*

그렇게 헤어질 시간까지 마법에 대해 청신과 이야기하고, 엊그제 갔던 한정식집에 또 가서 저녁까지 먹은 후 헤어졌다.

“아 망할.”

집에 돌아온 도유는 벽에 이마를 박았다. 청신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서 오늘 만나자마자 물어볼 것 중 두 번째로 물어보려고 했던 것을 묻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제가 선배처럼 예쁘고 사랑스럽고 잘생겼다면, 선배가 저를 당장 눕혀 놓고 키스했을 거 아녜요?’

공원에서 청신이 했던 말.

‘난 선배에게 그러고 싶거든요. 선배가 너무 예뻐서.’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이던 말을 떠올린 도유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그 녀석은 그런 식으로 피해자들을 꾀어낸 것이 분명하다.

이번에 공원에서 있었던 일에서 청신이 보인 반응은 정상이 아니었다. 그의 이력들을 보면 더욱 의문이 깊어졌다.

기록으로 남은 것들 중, 청신은 지금까지 사람이 죽는 사고에 익숙해질 만한 일에 엮인 적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공원에서의 청신은 어땠는가? 그는 사람들이 바로 눈앞에서 죽어 가는데도 태연했다. 태연하다 못해 호기심으로 눈을 반짝이며 관찰까지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도유는 그 이유를 캐 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아니, 이야기를 꺼낼 생각도 못 했다. 청신이 설명해 주는 마법 이야기에 푹 빠지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 소득도 없는 건 아니었다. 청신이 설명해 준 공원의 참사를 일으킨 마법에 대한 원리가 카단에서 짐작한 것과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일반 시민으로서 카단에 검사와 진술을 하러 갔을 때 직접 도유를 찾아왔던 성희유는 도유의 ‘보고’를 들었을 때 이렇게 말했었다.

‘이번 사건은 우리가 쫓고 있는 범법자의 마법인 것 같네요. 도유 씨의 ‘눈’은 절대로 잘못 볼 리 없으니까요. 마력을 충돌시켜서 이상 현상을 끌어내는 게 아닌, 마력의 흐름을 폭발시켜서 이상 현상을 만들고, 순환시키는 건 범법자만 사용하는 흔치 않은 방식이라.’

그러고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도유 씨가 잡았다는 꼬리가 이청신 씨라고 했죠. 그가 이번 사건의 피해를 막았다고. 확실히 인터뷰 내용을 보면, 이청신 씨의 실력이라면 가능하긴 하네요. 후후. 그럼 조만간 정보부를 통해서 오늘 요구하신 정보를 보낼게요.’

성희유가 어쩐지 즐거워하는 것 같아서 조금 소름이 돋았지만 도유는 현재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청신.

그가 범법자라는 증거를 반드시 얻어 내, 이 이상의 희생자가 나오는 것을 막아 낼 것이다.

그동안 피해자들은 청신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그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누가 줬는지 모른다. 어느 순간부터 앞에 있었던 것 같다’라면서 두통을 호소했을 뿐이다.

만약 그들이 지금 청신이 도유에게 하는 것처럼 스킨십과 애정을 가장한 악덕한 행위에 노출되고, 끝내 이용만 당하다가 기억까지 지워져 버린 거라면. 이 이상의 피해자가 나오게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좋아.”

내일부터. 적극적으로 청신의 장단을 맞춰 줘서 반드시 그가 범법자라는 증거를 잡고 말겠다고 다짐하며 도유는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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