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7)화 (7/159)

#7

*

“도유 선배, 이거 드세요.”

“…아, 고마워.”

청신이 내민 커다란 솜사탕을 보고 잠시 멈칫했지만, 침울하게 젖어 들었던 눈이 어느덧 빛을 되찾고 기대감에 반짝이는 것을 보니 거절할 수 없었다. 도유는 받아 든 솜사탕을 한 입 뜯어 먹었다.

“맛있어요?”

“응. 맛있어.”

“다행이다. 다음엔 아이스크림 먹어요.”

그렇게 말하며 청신이 아이스크림 트럭을 가리킨다. 도유는 그 손끝이 향한 곳을 보다가 고개를 돌려 주변을 보았다.

평일 낮인데도 불구하고 탁 트인 공원에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가벼운 러닝을 하는 사람부터 돗자리를 깔고 본격적으로 봄을 즐기는 사람, 뛰노는 아이들 등 다들 저마다의 방식으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도유는 잠시 멍하니 그 풍경을 보았다. 평화롭고 눈부셨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죠?”

“그러네. 그런데 넌 이제 좀 괜찮아졌어?”

청신이 바람을 쐬자며 데리고 온 곳이 이 공원이었다. 산책하기에는 좋은 장소였지만 도유는 의외라고 생각했다.

오늘 정보부로부터 받은 정보에 따르면, 청신은 사람 많은 곳을 그리 내키지 않아 하는 기록이 종종 보였다.

실제로 취미도 전부 혼자서 조용히 할 수 있는 것뿐이었고 인기가 많지만 사교 활동을 딱히 하지는 않았다.

그런 사람이 이런 공원에서 산책이라.

도유는 제가 청신을 잘못 파악한 걸까 고민하며 솜사탕을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와중에 솜사탕이 제법 맛있어서 먹는 속도가 빨랐다. 생각했던 것보다 금방 사라진 솜사탕에 도유가 아쉬워하고 있을 때, 옆에서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청신이 물었다.

“더 드실래요?”

“너는?”

“전 괜찮아요. 그리고 도유 선배가 드시는 모습을 더 보고 싶어서요.”

“그, 그래?”

생긋 웃으며 청신이 도유의 손에서 빈 막대기를 가져가고 제 몫의 솜사탕을 쥐여 주었다. 청신은 제 몫도 사 와서는 한 입도 먹지 않았다.

의외로 단걸 싫어하는 걸까. 그럼 왜 자기 것까지 산 걸까. 의심을 품으며 도유는 열심히 두 번째 솜사탕을 뜯었다.

“선배, 마스크는 왜 쓰고 다녀요?”

“어?”

“어제도 느꼈지만, 선배는 마스크를 쓰지 않은 게 훨씬 보기 좋아요.”

“…그으래…?”

속으로 낭패했다. 어제 함께 설계도를 수정했던 카페에서는 음료도 마스크만 살짝 들어 올려서 빨대로 먹었지만 이후에 간 한정식집에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예 마스크를 벗고 식사를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도유는 제 얼굴이 눈에 띄는 걸 알았다. 그것도 눈에 띄게 잘생긴 얼굴이다.

자랑이 아니었다. 이 얼굴 때문에 지금까지 잠입 수사에서 배제되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잠입하게 된 거였으니까.

“마스크를 쓰는 게 편해서….”

“음, 그래요? 이유를 물어봐도 되나요?”

청신의 손이 도유의 뺨을 조심스레 감싸고, 제 쪽으로 살짝 끌어당겼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눈을 크게 뜨는 순간 청신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다. 도유는 숨을 삼켰다.

“저도 예쁘고 잘생겼다는 말은 참 많이 듣는데, 선배를 보면 전혀 그런 것 같지 않아요.”

“무슨, 뜻이니?”

“제가 선배처럼 예쁘고 사랑스럽고 잘생겼다면, 선배가 저를 당장 눕혀 놓고 키스했을 거 아녜요?”

“뭐… 라고?”

“난 선배에게 그러고 싶거든요. 선배가 너무 예뻐서.”

지금 얘가 뭐라고 말한 거지? 도유의 움직임이 뚝 멈췄다.

어지간한 상황에 단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청신이 한 말을 들은 순간 사고가 멈췄다. 이해할 수가 없다. 자신이 배운 이 나라의 언어와, 청신이 배운 언어가 다른 건가?

얘가 지금 나한테 뭐라고 한 거야?

“아, 그런데 생각해 보니 마스크를 벗고 다니면, 아까처럼 벌레가 꼬이겠네요. 그냥 쓰고 다녀요. 제 앞에서만 벗으시고요. 도유 선배.”

생긋 웃으며 청신이 손을 내렸다. 손이 떨어지는 감촉에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도유는 청신이 제게 한 말들을 곱씹어 보았다.

‘선배처럼 예쁘고 사랑스럽고 잘생겼다’. ‘선배가 저를 당장 눕혀 놓고 키스했을 거…….’

“이런 미친 새-.”

청신의 말의 의미를 이해하는 동시에 도유의 입에서 저절로 욕이 튀어나온 순간이었다.

“아으, 으아아악!!!”

머리가 울릴 정도로 커다란 비명이었다. 도유의 시선이 저절로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향했다.

돗자리에 앉아 담소를 나누던 사람들이 보였다.

그중 한 사람이 자리에 일어나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긁고 있었다.

함께 앉아 있던 일행들은 물론, 주변에 있던 사람들 또한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 멍하니 그 사람을 보았다.

얼굴과 목, 가슴을 긁는 남자는 굉장히 괴로워 보였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에 손자국이 남았다.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걸 보고 정신을 차린 일행 중 하나가 남자의 손을 잡아 막으려던 때였다.

“히이익!”

“꺄아아악!”

눈 깜짝할 사이에 남자의 몸이 말라비틀어지고, 입에서 검은 피를 토해 냈다. 일행들이 비명을 지르며 주위에서 벗어난다. 이목이 집중되어 있던 터라 다른 사람들도 그 광경을 보고 비명을 삼켰다.

툭.

이윽고 남자가 눈을 새하얗게 뒤집더니 그대로 돗자리 위에 쓰러졌다.

“누가 구급차를, 구급차를!”

“사람이-!”

“아아악!!”

새로운 비명이 터졌다. 죽은 남자로부터 멀어졌던 일행들이었다. 그들은 조금 전에 남자가 그랬던 것처럼 몸을 뒤틀며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도 순식간에 남자와 똑같은 결말을 맞이했다.

한 번에 다섯 명이 동일한 증상을 보이며 쓰러지자, 그나마 비명을 틀어막았던 사람들도 비명을 지르고 혼비백산하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도유는 입을 꾹 다물고 핸드폰을 꺼내 구급차를 부르고 곧바로 카단의 민간 신고원에 해당 사건을 신고하기 위해 번호를 찍으려 했다.

“아, 안 돼! 안 돼에!!”

도유의 손에서 핸드폰이 떨어졌다. 도유는 눈을 크게 뜬 채, 제 앞에 펼쳐진 풍경에 잠시 얼어붙었다. 돗자리에 있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사람들이, 하나둘 동일한 증상을 보이며 바닥에 쓰러지는 모습은 영화를 보는 것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도망쳐! 도망쳐!! 전염병이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그 소리를 듣자 공포에 멈춰 있던 사람들도 정신을 차리고 비명을 지르며 공원 밖을 향해 뛰쳐나가기 시작했다. 그 소리에 정신을 차린 도유는 자리에서 일어나 차고 있던 손목시계에 손을 가져다 댔다.

청신이 옆에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이게 만약 마법적인 현상이라면 자신이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손목시계를 조작함과 동시에 도유는 시계 아래로 제 피부에 파고든 바늘의 날카로운 통증을 느꼈다. 바늘 안에 주입돼 있던 액체가 몸에 들어오자, 기다렸다는 듯 몸의 감각이 바뀌었다.

도유는 마법사는 아니지만 마나 감응력이 마법사들보다 높다.

그런 도유의 눈에는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세상이 보였기에 평소에는 약물로 억제해야만 했다. 그리고 지금, 그 약물의 효력을 바로 사라지게 하는 약을 투입했다.

천천히 시야가 바뀌기 시작했다. 푸른 눈에 빛으로 된 커튼을 뒤집어씌운 것 같은 마력의 물결로 반짝이는 세계가 점점 차오른다.

“저건, 대체…!”

시야가 완전히 바뀐 직후, 도유는 경악했다. 사위를 감싼 밝은 빛 사이로, 너무나 불길한 검은 빛을 품은 거대한 마력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들은 도망치는 사람들을 쫓아가듯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 움직임이 마치 자아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검은 빛을 품은 마력이 사람을 삼키자, 그 마력에 삼켜진 사람의 신체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멀쩡했던 사람의 내부에 있던 마력이 강제로 빨려 나가는 것이 도유의 눈에 생생하게 보였다.

그렇게 마력이 전부 흡수당한 사람의 몸은 순식간에 말라비틀어지고, 검은 피를 토해 내고 쓰러졌다. 그렇게 또다시 검은 마력은 거대해지고 다음 희생자를 찾아 움직였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얼어붙거나 충격적인 광경에 기절한 사람들은 바로 지척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력의 흐름에 스치지도 않는다. 오로지 달아나는 사람만을 노릴 뿐이다. 뭐지? 무슨 차이지? 도유는 두통이 일 정도로 생각을 거듭하며 ‘차이점’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청신을 보게 되었다. 마법사인 그가 사람들을 도울 생각도 않고 가만히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무심코 본 것뿐이었다.

청신의 옆얼굴을 본 순간, 도유는 눈을 크게 떴다. 청신은 웃고 있었다. 당황하거나 공포로 인해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서 짓는 웃음 따위가 아니라, 흥미로 반짝이는 눈을 하며 이 상황을 웃으며 지켜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쳤다.

“이건 또 재밌네요. 선배.”

“재미…?”

“이런 마법 형태를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거든요. 마음 같아선 계속 보고 싶지만, 선배의 표정을 보니 선배는 막고 싶은 것 같네요. 그렇죠?”

마치 자신은 이 상황에서 절대 희생자가 되지 않을 것임을 확신하는 어조였다. 도유는 기가 막혀서 황당하다는 어조로 되물었다.

“당연한 거 아니야?”

“역시. 그럼 잠시만 여기서 기다리세요.”

청신은 도유가 대답하기도 전에 걸어 나갔다. 검게 말라비틀어진 사람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스쳐 지나가며, 그는 공원 입구로 뛰어가는 사람들을 향해 손을 움직였다.

그 순간 소리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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