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4)화 (4/159)

#4

청신이 카운터에 주문하러 간 사이, 도유는 테이블 아래로 주먹을 꾹 쥐었다.

성희유가 말한 범법자가 청신일 확률이 더 높아졌다. 이렇게 빈틈없이 저보다 더 일찍 나오고, 의심할 거면 해 보라는 듯이 당당하게 자리를 비우는 배짱. 그리고 무엇보다.

도유는 청신이 저를 기다리는 척하며 읽었을 책으로 시선을 옮겼다.

책에 끼워진 책갈피의 위치로 보아 읽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했다. 책 제목은 도유에게 익숙한 것이었다.

<당신을 사랑해도 되나요?>라는 질문형의 제목.

도유는 긴장 어린 눈으로 책을 노려봤다.

청신은 저 책의 내용을 알고 제 앞에 일부러 꺼내 놓은 걸까?

남주인공인 마법사가 여주인공인 일반인의 뒤통수를 치고 끝내 남주인공의 마법으로 세계가 멸망한다는 내용의 로맨스 책이라는 걸 알고서 미리 꺼내 놨다면, 이청신이란 녀석은 정말 주도면밀한 놈이었다.

이렇게 대놓고 떡밥을 뿌리는 범죄자는 아무도 없을 거라는 생각에서 함부로 범인이라 특정하지 못할 테니까.

“선배.”

“응?!”

불쑥 들려온 청신의 목소리에 도유는 반사적으로 대답하며 고개를 쳐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너, 손! 손에 힘 풀어!”

도유와 눈이 마주친 순간, 바로 받아 왔을 밀크티가 담긴 큰 종이컵을 잡은 손에 청신이 힘을 주면서 내용물이 조금 넘쳤다. 청신의 손을 타고 흐르는 연갈색의 액체를 티슈로 닦아 주며 도유가 물었다.

“청신아, 괜찮아?”

후두둑.

“…….”

“…아.”

도유는 눈을 깜빡였다. 동시에 이 녀석이 자기를 지금 시험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대체, ‘괜찮냐’고 묻자마자 큰 종이컵이 다 구겨지도록 손에 힘을 주는 건 무슨 심보란 말인가? 아까운 내용물들이 청신의 손과 그 손을 닦아 주던 도유의 손에 튀고 바닥에 뚝뚝 떨어져 내렸다.

“야…?”

“아, 이런. 죄송해요, 선배.”

화사하게 웃으며 말한 청신이 도유 쪽으로 상체를 숙였다. 도유가 물러날 틈도 없이 청신이 밀크티에 젖지 않은 반대쪽 손으로 손수건을 꺼내 도유의 손을 닦아 주기 시작했다.

“잠깐 딴생각을 하느라 힘 조절을 못 했네요. 선배, 손 괜찮아요?”

“나, 나보단 네가… 더 걱정스러운데….”

도유는 밀크티가 몇 방울 튀었을 뿐이고 청신은 한 손이 아예 밀크티로 푹 젖고 말았다.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건가. 아무리 범법자로 의심되는 청신이지만, 도유는 저보다 어린 학생을 챙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일단 화장실에 가자. 찬물로 손 씻어.”

“선배가 씻겨 주시면 안 돼요? 이왕이면 다른 곳도.”

“뭐?”

“농담이에요. 다녀올게요, 선배.”

청신은 도유에게 싱긋 웃어 보이고는 화장실로 떠났다. 도유는 멀거니 청신이 사라진 곳을 보다가 황급히 대걸레를 들고 이쪽으로 다가오는 직원을 보고 정신을 차렸다.

“제가 할게요.”

“아뇨, 손님! 괜찮으니 앉아 계세요!”

직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도유는 꿋꿋이 바닥에 흘린 밀크티를 닦아 내고, 화상을 입었을지도 모르는 청신을 위해 얼음까지 받아 뒀다.

청신이 돌아온 건 도유가 두 번째 밀크티를 받아 자리로 돌아온 뒤였다.

*

[이청신. 25세. 이카루스 아카데미에서 매 학기 수석을 놓치지 않는 인재이며, 마법사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마력 운용과 창조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소위 말하는 천재.

외모뿐만 아니라 신체 능력도 목소리도 우수하여 이청신을 싫어하는 사람이 없다. 그렇기에 이청신은 그와 함께하고 싶어 하는 학우들 때문에 매일이 바쁘다.]

도유는 이 아카데미에 잠입하기 전, 꼬박 이틀 동안 밤을 새워 가며 외웠던 정보부의 아카데미 학생들의 신상 명세를 떠올렸다. 거기에 기재된 이청신은 그를 조사했던 정보원마저 사로잡았는지 다른 학생들보다 유독 사감이 많이 들어가 있었다.

[이청신과 만나기 위해선 최소한 두 달 전부터 약속을 잡아야 한다는 증언이 다섯 건 이상.]

그중 마지막 줄을 문득 떠올린 도유는, 정보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의심했다.

“진심이야?”

“네, 선배.”

도유의 고민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청신이 고개를 기울였다. 도유는 청신이 작성한 계약서의 내용을 다시금 확인했다.

아카데미 내에서는 졸업 작품을 만들 때 타인의 도움을 받을 경우에 계약서를 작성해야 한다. 그렇기에 도유는 청신에게 먼저 선택권을 주었다. 선택권이란 졸업 작품을 만들기 위해 만나는 횟수 또는 주기였다.

청신은 그에 이렇게 썼다.

[(갑) _______이/가 졸업할 때까지 (을) 이청신은/는 갑을 주 5일, 8시간 이상 돕는 것을 의무로 한다.]

갑은 당연히 도유였다. 도유는 표정을 관리하기 위해서 괜스레 마스크를 콧등 위로 올렸다.

와중에 머릿속에서는 맹렬하게 또다시 청신을 의심하고 있었다.

약속을 잡으려면 최소한 두 달 전부터 서둘러야 한다는 아카데미의 스타가 너드에게 직장인의 평균적인 업무 시간과 똑같은 시간을 할애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아니다.

도유는 단호하게 말할 수 있었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불손한 의도가 아니고서야.

“선배는 내키지 않나 보네요.”

“아, 아니야! 오히려 좋은데, 좋은데….”

“좋은데?”

뒷말을 반복하며 청신이 도유 쪽으로 상체를 기울였다. 계약서에 반쯤 코를 박고 있던 상태의 도유는 화들짝 놀라며 청신과 거리를 두었다.

청신을 범법자로 의심하는 것 이전에, 일단 지나치게 눈에 띄는 미인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오는 건 정신적으로 부담스러운 일이었기에 어쩔 수 없는 반응이었다.

“나야 좋긴 한데 이러면 네가 너무 힘들지 않을까 해서…. 나는 주 2회, 3시간 미만이라도 감지덕지라고 생각했어. 이렇게 긴 시간을 적어 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해서, 솔직히 놀랐어.”

“아하, 그게 문제였군요.”

“응. 아직 내가 서명하지 않았으니까 줄이는 건 어때?”

“저는 가능하다면 주 7일, 24시간으로 하고 싶은걸요, 선배.”

“뭐라고…?”

도유는 경악했다.

자기를 꾀어내 다른 피해자들과 마찬가지로 금기의 마법을 쓰게 해서 대규모 인명 피해를 일으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면, 청신의 이런 말은 세상 물정 모르는 가녀린 사회의 새싹의 여린 발언에 불과했다.

도유는 잠시 고민했다. 진지하게 청신에게 노동법을 가르쳐 주고 어떤 회사에 가야 부당한 노동을 하지 않게 되는지에 대해 설명해 주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지만 이 녀석의 인기와 능력이라면 그런 곳은 알아서 걸러질 텐데 굳이 지금 제가 가르쳐 줄 필요가 있을까? 라는 갈등 사이에서 도유가 마음고생을 하는 사이, 청신이 말했다.

“저는 선배와 가급적 오랫동안 같이 있고 싶거든요.”

청신이 도유의 손을 감싸 쥐었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도유를 바라보는 청신의 녹색 눈이 번들거린다.

“24시간 붙어서 졸업 작품 말고도 다른 것도 하고 싶고요.”

슬그머니 손에 힘까지 주는데, 그 감각마저 몸의 감각을 예민하게 만들었다. 도유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청신에게 붙잡힌 손에 살며시 경련이 일었다. 이런 도유의 떨림을 느낀 청신이 입꼬리를 올렸다. 사람을 홀리는 매력적인 웃음이다.

“선배도 저와 똑같은 마음이면 좋겠는데 말이죠.”

“아, 아냐. 주 7일은 안 돼. 노동법에 걸려. 그러니까 이대로… 이대로 하자…!”

“알았어요. 선배가 바라는 대로 해요.”

언제 그랬냐는 듯 청신이 도유의 손을 놓아주었다. 그에 도유는 쫓기는 사람처럼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똑같은 내용의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나자, 청신이 기다렸다는 듯이 제 몫의 계약서를 거둬 갔다. 그 손길을 멍하니 보던 도유는 처음에 청신이 기입했던 주 5일 8시간을 그대로 유지하고 말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 그러시죠, 선배?”

“…아니야…. 아무것도.”

“그래요?”

청신은 어딘가 아쉬움이 뚝뚝 묻어나는 눈으로 도유를 보더니, 도유가 더는 말을 잇지 않자 곧장 다음 단계를 밟았다.

“그런데 선배. 계약서에 보니까 선배가 설계한 것을 도구에 새기는 과정뿐만 아니라, 기존에 선배가 작업하신 설계도에 제 의견을 덧댈 수 있는 조건이 있던데요.”

이미 계약서 작성이 끝난 시점에서 이 말을 할 줄은 몰랐다.

“응. 거기에 명시한 대로야. 혹시 그걸로 하고 싶은 말 있어?”

도유는 두꺼운 뿔테 안경 너머로 눈을 빛냈다. 방금 전에는 청신에게 휘둘리고 말았지만 더는 그러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도유가 작성한 설계도와 그와 관련된 계약 내용은 일종의 함정이었다. 만약 청신이 카단에서 찾고 있는 범법자가 맞다면 청신은 분명 도유의 설계를 뒤틀어 인명 피해가 많은 쪽으로 수정하도록 보완하고자 할 테니 그것을 노렸다.

“잠깐 봤을 뿐이지만,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어서요. 그 부분을 보완만 한다면 완성도를 더 올릴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씀드려도 되나요?”

“정말? 어느 부분인데?”

기다리던 순간이 찾아오자 도유는 가방에서 예의 설계도를 꺼냈다. 청신이 싱긋 웃으며 물었다.

“선배, 잠깐 옆에 앉아도 될까요?”

“내 옆에?”

“네. 자세히 말씀드리려면 아무래도 같은 시각에서 보는 게 좋아서요.”

“알았어. …이리로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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